105화
공습
루프스는 엘프들에게서 한가지 정보를 얻고는 고심에 빠졌다. 그는 언데드들을 성공적으로 물리치면서 별다른 피해도 입지 않아 기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엘프들에게서 얻은 정보는 그의 감정을 차갑게 식혀버렸다.
"끄응"
'그러니까, 언데드 무리의 주인이 우리한테 별달리 관심 없을때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한다는 이야기잖아?'
엘프들은 그에게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의 강력함을 한없이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자면 현재 보유한 전력으로는 이 소란의 범인에게 일말의 저항도 하지 못하고 몰살당할것이했다. 이 일대에서는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최상급에 도달한 루프스가 있으며 다수의 상급과 중급의 몬스터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저 먼곳에 있는 적은 그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이라고 엘프들은 짐작하고 있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나로선 그 말을 믿지 않는것보다는 일단 피신이라도 가는게 좋다고 보지만... 문제는 이번에 승리로 들떠있는 부하들이겠군'
루프스는 그들의 말이 진실인가 아닌가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능성이다.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적들이 몰려오는 판국이다. 그런데 거기에 자신들이 감당못할 적이 추가될 가능성까지 생긴다면 그것이 얼마나 작더라도 일단은 피하고 보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생각대로 한창 승리에 들떠있는 고블린들이었다. 고블린들은 여러 거점을 파괴했다는 언데드들을 생각보다 쉽게 잡아냈다. 몇개의 거점을 파괴하면서 이곳에 도달한 언데드들이 함정과 압도적인 수를 이용했다고 해도 큰 희생을 내지 않고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압도적인 승리는 언데드들이 가지고 있던 성가신 특성과 다른 좀비들과의 차이점을 그들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지금의 고블린들에게 루프스가 아무래도 위험한 것 같으니 미리 대피한 인원들을 따라서 이동하자는 말에 반발이 올거라 예상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로 다가왔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루프스는 가능성이 아무리 낮더라도 이런 위험이 포함된다면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그 가능성이 그리 낮지도 않으며, 위험은 거의 확실시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수만에 달하는 고블린들과 동맹인 엘프들의 목숨을 등에 지고 있는 루프스로서는 부족에 남아 그대로 북상하고 있는 적들을 막아낸다는 것은 그로서는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결국 그는 남아있는 고블린들과 엘프들을 모아놓고는 그런 결정을 전달한 것이다.
그에게 정보를 전달할 정도로 사태의 심각성을 이미 눈치챈 엘프들은 그의 의견에 별다른 반발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의 예상대로 문제는 고블린들이었다.
압도적인 승리는 그들에게 자신감을 넘어서 자만심을 심어주었다. 그렇지않아도 약자인 고블린들은 지금까지 상대해온 적들 중에 그들보다 약하다고 판단될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코볼트들의 경우는 그들보다 월등한 강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가까운 시기에 자신들보다 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집단으로부터 승리를 쟁취한 고블린들은 이번 언데드들과의 싸움으로 그런 감정이 팽배해진것이다.
"왜 우리가! 캭!"
"족장! 놈들은 우리 상대가 되지 못한다!"
물론 그의 생각에 찬동하는 고블린들이 없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그의 측근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보인 셋의 고블린들은 그의 의견에 적극 찬동했다. 하지만 문제는 루프스, 그의 자식이었다. 언데드들과의 전투에 대비해 남쪽의 거점들이 적들의 진군을 막아주는 동안 다른 거점에서도 비전투인원들은 전 코볼트 영역으로 옮겨갔지만, 그들의 전력도 보호전력을 제외한 모든 전력을 부족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레 이미 성체가 된 그의 자식들 중 전투에 능한 일곱은 모두 거점으로 모여들어 있었다.
그리고 루프스로서도 자식들이 자신의 편을 들어줄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 그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만남을 이어가면서 친근감을 쌓아온 것이 그 근거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생각일 뿐이었던것 같다. 그의 자식들 중 셋이 그와는 반대편에 선 것이다.
"아버지, 우리의 전력은 충분히 적들을 분쇄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확인한 적들 중에 저희보다 강한 이들도 손에 꼽혔지요. 그런데 그런 적들에게서 꼬리말듯이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저런 아무 생각도 없는 언데드들이 우리 부족을 찾을 수는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의 첫번째 자식들 중 하나 쿠알론이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그 주변에 있는 고블린들도 동조하고 나섰다.
"이것참..."
고블린들의 반발에 루프스는 두통이 이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기분에 더더욱이 불쾌해졌다.
"저는 형님의 의견에 찬성입니다"
"드란...!"
그리고 드란과 함께 쿠알론의 쌍둥이 트레이까지 루프스의 자식들 중에 셋이 그의 의견에 반대를 표출하고 나선 것이다.
루프스는 그런 반발에 고블린들을 후방으로 물리는것에 실패를 했지만, 일단 희생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의견에 동조중인 엘프들을 먼저 후방으로 돌렸다. 다행히 고블린들은 겁쟁이들은 후방으로 빠져있으라는 이야기만 할 뿐 그들의 행보를 막지 않았다. 당연히 엘프들은 적의 두려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고블린들의 도발따위는 무시하고 루프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는 비전투인원이 있는 후방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루프스는 고블린들의 의견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자 자신과 절친한 세 고블린들만을 불러서 의견을 교환했다.
"후우... 저 멍청이들을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족장, 우리만 후방으로가면 안돼겠습니까?"
"... 마음같아서는 그러고 싶다만"
적에 대해서 들은 세 고블린들은 얼른 뒤로 빠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와 세 고블린들은 자신들보다 강력한 자들에 대해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자신들의 위에 있는 존재들에 대한 겁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적이 루프스보다 한등급 위의 존재가 단 하나 존재할 뿐이라면 이렇게 겁을 먹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 등급의 차이는 주변 환경과 미리 대비를 충분히 해놓고 수로 밀어 붙인다면 충분히 상대할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듣기로는 적은 그보다 적어도 둘에서 세 등급은 높은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세 등급은 어떤 잔수를 쓰더라도 극복하기 어려운 존재다. 세 등급의 차이는 고블린과 오우거의 차이다. 그야말로 대적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기상천외한 작전과 운 그리고 수많은 희생이 있어도 간신히 도망치는것만이 가능할거라 짐작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 멍청한것들은 이 이야기를 믿지도 않으니..."
당연히 루프스도 고블린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꺼냈었다. 하지만 고블린들은 믿지 않았다. 그들이 보아온 가장 강력한 적은 식귀였다. 고블린들로서는 그 당시의 끔찍함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인지 그보다 강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믿고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일단은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상정해서 퇴로부터 확보해 두죠. 그쯤 되면 녀석들도 도망쳐야만 한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판단이 섰을 때 곧바로 도주할수 있는 준비를 해두는게 좋겠죠"
이미 고블린들을 설득해서 도망치는 것은 포기한 프리트가 루프스에게 그들을 무작정 막기 보다는 상황을 직접 겪어 수긍시키자는 의견을 냈다.
"그 수 밖에 없나"
루프스는 그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을 내렸다. 현재로선 적들을 얕보고 마음이 풀어헤쳐진 고블린들을 설득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루프스로서는 그보다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그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