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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101화 (101/374)

101화

일상

엘라는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루프스를 바라보면서 왜 이곳까지 왔는지를 궁금해했다. 그가 특별한 일이 없다면 부족에서 나오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옛날이었다면 식량 채집이나 보다 강해지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밖을 종종 나가고는 했다지만 그것은 그녀가 부족에 들어오기 이전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에 대해서는 몰랐다.

"드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서 말이지..."

루프스는 특별한 일 없이 그녀를 만나러 오지 않는 자신을 생각하면서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렇게 운을 뗐다.

엘라는 그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가 이야기하는 드란이 자신이 아는 드란이라면 그가 이렇게 물어보겠다고 온것 자체가 특이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식들과 함께 지냈던 시간은 이번에는 상당히 짧았기 때문에 정확하진 않을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주변 환경에 따라서 성격이 변한다거나 강제로 변할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천성은 바뀌지 않는다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겪었던 드란은 매우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였다. 오죽하면 드란이 두달정도 자라고 부터 그녀가 그의 목소리를 듣는일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밖에 없었다.

"드란에 대해서는 나도 그다지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는데... 내가 겪은 그 아이는 딱히 말을 더하고 할 것 없이 그저 조용하다는 인상 단 하나 뿐이라..."

엘라는 곤란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녀의 말에 마찬가지로 난처한 표정을 지은 루프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럼 어쩔수 없지..."

그리고는 엘라가 듣지 못할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발, 최악의 경우만은..."

일단 드란에 대한 이야기는 간단히 끝낸 루프스는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주제는 지금 엘프 마을이 분주하게 한 루프스의 제안에 대해서였다.

"진행은 어때?"

루프스는 늦은시간이라 그런지 잠잠한 마을의 전경을 보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정말, 당신 너무 강박관념이 심각한거 아니예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는거라 동의하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 요즘 너무 바빠졌어요"

"음... 언제 무슨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는 일이지. 오랜시간 나타나지 않았던 식귀라는 놈도 나타났는데 그보다 더 한 일이 생기지 않을거라고 장담 할 수가 없으니까"

그녀의 투덜거림에 루프스는 너무 투덜대지 말라는 듯이 그녀를 토닥였다.

"그리고 그걸 우리 고블린들 부족에도 적용시켜야 되니까 나도 상당히 바쁘단말이지. 오늘도 드란의 일과 작업의 진척이 어느정도 되는지 알아볼게 아니었으면 못 왔을 테니까"

루프스는 얼마전에 있었던 식귀의 갑작스런 출몰을 기억하고 있었다. 식귀의 출현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루프스로서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처가 늦어졌었다. 그 때문에 식귀에 의해서 큰 피해를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좋은 교훈도 얻을 수 있었다.

그의 부족은 지상에서 오는 외적의 침입은 여러모로 막기위한 방비가 되어 있었다. 엘프들과 합심해서 만든 온통 위험한 함정이 도사리는 울창한 숲과 그 주변을 둘러보면서 적의 접근을 확인하고 있는 정찰대까지 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외의 장소에서 그들을 공격해 오는 것은 전혀 상정하지 못했다.

특히나 땅속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공격지점이었다. 갑작스럽게 바닥에서부터 튀어나와 그 위에 선 이들을 갈갈이 분쇄하던 식귀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고 두려운 모습이었다.

루프스는 그렇게 바닥에서부터 튀어나오는 적들을 대비하고자 수를 내기 시작했고, 그 첫번째로 실행되고 있는 것이 이 엘프마을이었다. 마침 엘프들은 루프스의 생각대로 만들기 좋은 재료를 가지고 있어 실험적으로 개시한 것이다.

"아, 그러고보니 필요한 물건들은 없나? 이제 대장간이 돌아가기 시작하니까 왠만한 철제 도구는 만들어 낼 수 있게 됬는데. 엘프들도 그쪽은 가지고 있는 기술도 딱히 없었지 않나?"

"그래서 몇가지 이미 주문 넣어뒀어요.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오겠죠"

엘프들에게서 방직기술을 얻은 루프스들이었지만 그들이 보유한 인간 노예들을 통해서 엘프들에게 대장기술을 알려주기는 힘들었다. 무엇보다 대장기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엘프들도 없었으며 자신들의 거주지에 대장간이 들어서는것도 꺼려했기 때문이었다. 기술을 배우고 말고 이전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엘프들의 특성이 철제 도구의 사용은 괜찮지만 대장간은 거부하고 있는것이다.

고지식할 정도로 발전된 문명보다는 자연속에서 살아가고 싶어하는 엘프들은 태생적으로 강렬한 불길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무언가가 타면서 발생시키는 연기를 매우 싫어했다. 그것이 이미 불타버린 자신들의 마을을 버리고 고블린 부족 옆에 새로운 마을을 짓는것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정도로 말이다.

엘라의 이야기를 들은 루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문을 이미 해뒀다면 더 말할 필요는 없겠군. 그러면..."

말을 하던 루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를 향해서 다가가 번쩍 들어올렸다.

"이제 잠이나 자자고. 어차피 시간도 늦었으니 지금와서 부족으로 돌아갈수도 없고 말이야"

오랜만에 그녀와 밤을 지세울 생각을 하자 눈을 반짝이던 그의 모습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늦은 시간에 그녀와 함께 있을때마다 단골처럼 나오는 그의 말에 그녀는 이제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의 손에 몸을 맡기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둘의 밤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었다.

///

다시 날이 밝자 루프스는 부족으로 돌아갔다. 한동안 자식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지켜본다고 미리 많은 일을 처리해두긴 했지만, 역시 나흘이나 일이 밀려버리니 그가 처리해야할 일의 양이 보통이 아니었다.

코볼트와의 전쟁이 끝나고 그는 만일을 대비해 여러 방책들을 만들고 있었다. 전날 떠올린 식귀들도 그랬으며, 부족 주변에 위치한 다른 몬스터들이 어느 순간 쳐들어 올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도 여러 방책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중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작업중인것이 그의 부족의 시야가 닿는 모든 지역의 지리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비록 세세하게 길 하나하나 그릴 수 있는 기술은 없었지만 대략적인 거리 표시와 그 장소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간단한 표식과 특히 특이한 지형지물, 눈에 띄는 길 정도의 표시를 해두었다.

지도의 작성 범위는 전 코볼트 영역과 고블린 영역을 넘어서서 다소의 희생을 감수하고서 최대한 넓은 지역을 포함시켰다.

그 외에도 부족의 주변에 있는 함정들을 대장장이들의 도움을 받아 보강했으며, 대장간이 없어졌을때 만들기 힘든 도구들을 미리 만들어두어 곳곳에 비축해두는 등의 작업도 행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루프스의 고블린 부족은 만일에 대한 대비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수개월 뒤 루프스가 미리 생각해두었던 대비들이 대체로 끝나가고 있을 그 때 숲의 곳곳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처음이 시작되었던 산자락에서는 시커먼 기운이 줄기줄기 치솟기 시작했으며, 그 순간부터 각종 몬스터들이 고블린들의 부족을 덮치기 시작했다.

크어... 크어!

다양한 몬스터들이 북상하면서 루프스의 부족을 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다급히 도망치는데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이 있어 빨리 치워버리고 더욱 빨리 도망치는 듯한 태도였다.

실제로 보통 자신들과 적대하는 이들을 대체로 모두 죽이는 몬스터들임에도 그들과 싸운 고블린들 중 많은 수가 살아서 도망치는 경우가 많았다.

몬스터들은 마치 도망치듯이 모두 다급하게 달리고 있었으며, 그것은 당연히 주변 상황을 살펴보던 고블린 정찰대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첫번째 거점이 괴멸했을 때 이미 그들의 이상행동에 대한 정보는 루프스의 본진까지 닿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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