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일상
고블린 부족의 한적한 한곳에 마련된 병영. 이곳에서는 갓 성체로 자라나 병사로 지내기를 원하는 고블린들과 전투로 불구가 되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얻어 더 이상 전투에 참가 할 수 없는 고블린들이 모여있었다.
병사들이 훈련하고 있는 모습을 한켠에 서서 루프스는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거의 곧바로 이곳에 도착했다. 그럼에도 병영에서는 훈련의 열기가 한창 후끈 달아오르는 중이었다.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최근들어서는 고블린들이 사용하는 무기에 따라서 병과가 주어지게 되었다. 특히나 호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고블린들이 들어오다 보니 막 성체가 되었다고 해도 각자 특기로 삼고 있는 무기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그리고 특기로 삼는 무기가 없는 드문 경우도 각자 관심있는 무기를 사용하는 훈련에 참가하도록 해서 각자의 적성에 맞는 길을 찾도록 해주고 있었다.
이들은 밖으로 나가 사냥해오는 이들과 다양한 공방에서 생산물을 만드는 이들과는 달리 고블린들에게 꼭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다만 적대 몬스터를 죽이면서 그들의 시체를 식량으로 삼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최근 식량은 충분하기 때문에 필요가 없어져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어 생산물로 치지는 않는다. 그러니 병사들이 물질적으로 무언가를 얻어내는 직업은 아니지만 절반 이상의 고블린들이 전직하는것이 병사들이었다.
그 이유로는 무엇보다 루프스를 따라 부족을 세운 고블린들이 호전적이었다는 것이다. 동굴에서 살던 무렵 항상 어딘가에서 랫맨들이 튀어나올지 몰라 주변을 경계하면서 돌아다니는 것은 그야말로 일상이었다. 고블린과 랫맨, 신체적으로는 고블린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그 수는 랫맨 쪽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어처구니없이 무너져내린 놈들이긴 했지만 그들과의 오랜 투쟁은 고블린들에게 안전해지기 위해서 보다 강해지고자 하는 욕구를 부여해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 부족을 세운 고블린들의 정신적 중심이었고, 그것은 그대로 다음 세대로 또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전투를 원하는 호전적인 고블린들이 만들어졌다.
가장 전투를 손쉽게 접할수 있는것은 병사들이고, 이런 고블린들의 성향은 절반 이상의 고블린들을 병사로 만들어버리는 기현상이 생겨나 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수가 병사가 된다고 하더라도 영역을 경계하는것에는 그 일부만으로 충분히 수행 할 수 있다. 루프스는 그런 상황에서 필요없는 나머지 병사들, 잉여 인력들을 분산시키고자 여럿으로 쪼개고 또 쪼개서 필요한 다양한 작업을 교대로 시키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렇게 다양한 일을 할 예정인 병사들이 될 예비병력들이었다.
칼을 다루는 병사들 창을 다루는 병사들 방패를 다루는 병사들 각각 사용하는 무기별로 분류되어 무기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딱히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검술 창술같은게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전투에 나섰던 고블린들이 모여서 조잡하게나마 만든 무기술들을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있는것이다.
해가 하늘의 중천에 걸릴때까지 무기술 훈련을 이어가던 고블린들이 배를 채우고는 자리를 바꾸었다. 같은 무기의 사용자들끼리 모여있던 고블린들은 서로 섞여서 둘로 나누어져 전투훈련을 시작했다.
양쪽으로 나누어진 고블린들은 한쪽은 부상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고참 고블린으로 루프스가 동굴에서 나서면서 함께 나선 고블린이었다. 반대쪽에 있는 것은 다름아닌 오늘 루프스가 이곳으로 걸음을 옮기도록 만든 원인으로, 두번째 출산으로 태어난 그의 자식인 드란이었다.
한쪽은 일선에서 많은 경험을 겪고 온 고블린이고 다른 한쪽은 아직 태어난지 채 일년도 되지 않은 어린 고블린이라는 언벨런스한 구조였지만, 어느쪽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있지 않은 눈치였다.
두 고블린 무리는 조잡한 목제 무기를 들고는 서로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서로를 달려드는 중 가장 먼저 시작된 공격은 화살 공격이었다. 뭉툭한 색소를 머금은 천으로 감싸인 화살촉이 각각 달려들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서 공격이 들어갔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화살을 막기 위해서 고블린들은 방패를 위쪽을 향해서 들어올렸다.
드란이 지휘하는 고블린들은 방패병들이 병력 전체에 퍼져서 산발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화살들을 막아냈다. 한편 반대쪽 고블린들은 대다수의 방패병들이 제일 선두와 후미에 위치해 있었다. 선두에 선 방패병들은 근접하는 적 고블린들을 막기 위해서 후미에 선 방패병들은 궁병들에게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내기 위해서였다.
궁병들은 병사들과 충분한 거리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를 향해서 날린 화살은 사정거리가 닿지 않아 대부분의 화살은 가까이에 위치한 머리위로 쏟아져내렸다.
방패를 들고있던 드란의 지휘하에 있는 고블린들은 소수가 화살에 당했을 뿐 큰 피해는 당하지 않았다. 반면 고참 고블린의 지휘하에 있는 고블린들은 전면부만 피해를 면했을 뿐 중간 부분에 있는 검을 든 병사들이 다수 당하고 말았다.
급소가 색소에 의해서 붉게 물든 고블린들은 전사자로서 그들을 지켜보는 감독관들의 지시하에서 하나 둘씩 빠지기 시작했다. 첫 공격으로 서로 적든 많든 피해를 주면서 다수의 고블린들이 무리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빠져나가고 두 무리는 곧 거리가 가까워져 충돌했다.
고참 고블린의 무리는 방패로 전면을 막고는 그 사이로 창을 찔러넣었다. 첫 충돌에서 생각보다 많은 피해를 입은것을 본 루프스가 고블린들에게 제안한 방식이었다.
드란의 무리는 전면에 자리한 방패병의 수가 부족했지만 마찬가지로 주변에 있는 창병들을 이용해서 서로의 창을 얽어 공격하기 까다롭도록 만들었다. 그대로 충돌했다가는 방패병이 부족한 드란의 무리가 불리하다고 판단해 직접 충돌보다는 서로의 무기를 치우는데 주력한 것이다.
그렇게 최선두가 서로 묶여있는 사이에 일열의 뒤쪽에 자리한 이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처음부터 전황을 예상하고 있던 드란의 무리였다. 그들의 이열은 도끼병들이 다수 자리잡고 있었다. 도끼병들은 먼저 양 옆구리에 달아놓은 목제 손도끼를 상대편을 향해서 투척했다.
퍽- 퍽-
"큭"
목제라지만 힘이 실린 투척에 맞은 고블린들은 휘청거렸다. 휘청거려 반격이 힘들게 만들고는 도끼병들이 앞으로 나서서 얽혀있는 창들을 수수깡처럼 내리찍어 부수어 길을 트고는 방패병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딱- 따닥-
어느새 앞서있던 창병들을 비롯한 소수의 방패병들은 도끼병들에게 앞을 내주고는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서는 대기중이던 검병들과 함께 예비로 차고있던 목검을 꺼내들고는 상대편의 방패가 망가지기를 기자리고 있었다.
반대쪽 무리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이열에 서있던 검병들이 반으로 쪼개져서 반은 앞으로 나서 방패를 내리찍고 있는 도끼병들을 방해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다시 반으로 쪼개서 방패병들의 양옆으로 돌아가 상대편 진영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궁병들은 서로 아군에 피해를 미치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적을 향해서 공격하고 있었지만, 곧 검병들에 의해서 난전이 시작되자 서로를 노리기 시작했다.
핑- 핑-
촉이 뭉툭한 천에 감싸인 나무로 교체된 화살들이 서로를 향해 날아갔다. 고참 고블린 쪽은 미리 대기중이던 방패병들 덕분에 막을 수 있었지만 드란의 궁병들은 방패병들의 수가 적어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해 결국 여러번에 걸친 화살의 공격에 전멸하고 말았다.
적측 궁병이 전멸하자 그들의 먹잇감은 한창 난전중인 근접병과들이었다.
둥- 둥- 둥-
튼튼한 트롤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북이 규칙적인 속도로 울려퍼졌고, 난전중이던 고블린들은 공격을 피해서 물러났다. 그 사이에 깊숙한 곳에서 난전을 치르던 고블린들이 대다수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탈락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러서는 고블린 무리들은 서로 도우면서 남아있던 고블린들 중 절반에 조금 못미치는 수 만이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아군 고블린들이 대다수 빠져나간것을 확인하자 물러나면서 재정비한 방패병들이 앞으로 나서서 쫓아오는 드란측 고블린들을 막아섰고, 그 사이에 고참 고블린측 궁병들이 방패에 막혀있는 적 고블린들을 향해서 화살을 쏘아냈고, 다급히 방패병들을 밀어내서 난전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 연속된 화살의 공격에 대다수가 탈락하고 마무리로 다시 난전에 들어선 고블린들이 마지막 고블린까지 탈락시켜 고참 고블린측의 승리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