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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98화 (98/374)

98화

일상

루프스는 대장간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장비를 옮기면서 부족에 새롭게 만들어진 대장간에는 소수의 고블린들과 인간 대장장이들이 고블린들이 사용할 무기와 도구들을 만들고 있었다.

캉- 캉-

대장간에 접근하자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들이 그의 귀로 들려왔다.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망치질 소리를 들으면서 루프스는 대장간의 안으로 들어섰다.

푸쉭- 푸쉭-

캉- 캉-

"망치 새거 없냐?! 이거 완전히 찌그러져서 써먹지 못하겠는데!"

"벌써 몇개째를 망가뜨리고 있는거예요? "

한 대장장이가 얼마나 두드린 것인지 완전히 찌그러진 망치를 들어올리면서 물건을 옮기고 있는 아직 어린것이 견습으로 보이는 다른 대장장이에게 다른 망치를 요구했다. 대장장이는 투덜거리면서 도구 창고로 가서 새 망치를 전달하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급히 물을 옮기고 있는 어린아이와 그 옆에서 함께 옮기고 있는 어린 고블린, 망치질하는 대장장이와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성체 고블린과 견습 대장장이들.

새로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대장간에는 열기와 생기가 함께 어우러지고 있었다.

루프스는 대장간이 전체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미리 확인해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다가간 곳에는 아직 완전히 자라지 못한 고블린 한마리가 열심히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온전히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 가까이 루프스가 다가온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망치로 모루위에 놓여진 길쭉한 철의 덩어리를 망치로 강하게 내리치고 있었다.

망치를 두들기고 있는 고블린은 아직 어린 고블린이었지만 다른 고블린보다 미묘하게 옅은 피부와 아직 다 자라지 못해 앳된 모습을 보이지만 그 키는 이미 성체 고블린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여성체라는 것을 나타내듯이 가슴께를 가린 천으로 만들어진 옷은 약간 부풀어 올라 있었다.

루프스는 망치로 두들기고 물로 식히고 다시 열로 가열한 철을 다시 망치로 두들기는 과정을 그 곁에 서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망치질 소리와 급냉으로 순식간에 식어버리면서 나는 소리, 다시 철을 달구면서 춤추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점점 철의 모양이 칼의 모형을 잡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지루함을 느낄새도 없었다.

어느새 그저 길쭉할 뿐이었던 철은 온전한 검신의 모습을 갖추었다. 검신의 날은 날카로웠으며 날에서 느껴지는 예기도 예사롭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루프스는 자신의 손가락을 날을 향해 가져다 댔고, 손가락은 칼날에 의해 미약한 생채기가 생겨났다.

"오오"

자신의 손에 난 생채기를 확인한 루프스는 나직히 감탄사를 내뱉었다. 완성된 검신을 두고 긴장이 풀렸는지 한숨을 내쉬고 있던 고블린 대장장이는 그 소리에 움찔하고는 고개를 올려다 보았다.

"아빠!"

루프스가 지켜보던 고블린 대장장이는 다름아닌 그의 딸인 시에란이었다. 그녀는 심혈을 기울여 검신을 제작하고 있었고, 그동안 자신의 옆으로 그가 다가온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좋은 검날이구나"

루프스는 검을 사용하지 않아 검의 좋고 나쁨을 판별하는것은 서툴렀다. 하지만 살짝 가져다댄 자신의 손가락에 생채기를 만들어낸 검날은 그야말로 명품이라고 불릴만 했다. 단순한 철검으로는 자신의 몸에 긁힌 자국 하나 남기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그저 손가락을 가져다 댔을 뿐인데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올 정도의 상처가 생겼으니 그는 자신의 딸을 칭찬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정말 감탄스럽구나. 내 피부에서 피를 보게 할 정도의 무기는 정말 드문데..."

루프스는 그녀에게 살짝 방울진 피가 맺혀있는 손가락을 그녀에게 내밀어 보여주었다. 얕은 상처였기에 순식간에 재생되 더 이상 피가 흘러나오지 않고 생채기의 흔적도 사라졌지만 그 위에 맺혀있는 은은한 핏방울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와! 정말 얘가 아빠한테 상처를 낼 수 있었어요?"

깜짝 놀란 한편 뿌듯하다는 듯한 모습으로 시에란은 그에게 물었다. 딸이 자신이 다친것보다 상처를 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모습에 좀 떨떠름한 느낌이 생기긴 했지만 그는 그 느낌을 떨쳐내고는 그녀가 원하는것을 직접 다시 보여주었다.

"잘 보거라"

다시 검날에 손가락을 가져다대자 역시나 그의 손에 생채기를 만들어냈다.

"서... 성공이다!"

당연히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살펴본 그녀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대성공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기쁘니?"

여전히 떨떠름한 듯한 모습으로 볼을 긁적이며 루프스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리고 시에란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네! 아빠한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건 동시에 왠만한 적들한테도 대부분 상처를 입힐수 있다는 얘기잖아요? 당연히 기쁘죠!"

제일 약한 이들인 최하급 몬스터들도 두번의 축복을 받으면 철제 무기로 그 몸에 피해를 주기가 힘들어진다. 철제 무기에 따로 능력이나 중급 이상의 몬스터들이 가진 마력을 이용하는 것이 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방도였다. 그런데 지금 그저 철검으로 그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으니 충분히 대단한 작품이라고 할만했다.

한참을 자신이 만든 작품을 자랑하던 그녀는 계속 자신만 이야기했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멈칫하고는 자신의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저... 아빠 이렇게 있어도 되시는 거예요?"

"그래, 오늘 남은시간은 너랑 대화가 하고 싶구나"

그의 이야기에 시에란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대화하는데 이런 철가루와 먼지가 날리면서 화로의 열기로 달궈진 곳 보다는 시원하고 상쾌한 바깥에서 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재빨리 정리를 끝낸 그녀는 루프스의 손을 잡고는 대장간의 바깥으로 끌고 나갔다. 루프스도 딱히 거부하지 않고 손에 이끌리듯이 바깥으로 나섰다.

루프스의 등장으로 알게모르게 경직되어있던 대장간은 그가 그렇게 나가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아니, 오히려 더욱 시끌시끌해졌다. 그를 처음 보았을때 느꼈던 강력하고 두려운 몬스터의 모습이 희석되어 자식에게 무른 아버지처럼 보인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그가 얼마전까지 자식들을 배척하는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몰랐기에 그렇게 평가한 것이지만 말이다.

바깥으로 나선 루프스와 시에란은 바깥을 거닐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루프스는 그녀가 생활하는데 불편한 점은 없는지, 어린아이들에게 무엇이 더 필요할지, 관심사가 어떤지와 같은 질문을 했다. 그리고 시에란은 그가 묻는 것에 답하면서 동시에 그에게 그동안 상대해본 몬스터들이나 인상깊었던 상대들 그리고 그 성장과정들을 그에게 물었다.

특히나 그녀는 루프스가 사용하는 무기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그가 도끼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무기를 사용하고 있는지는 잘 몰랐던 것이다.

"음... 인간들이 만든걸로 추정은 된다만..."

그가 사용하는 무구는 이전 트롤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인간들이 사용했던걸로 추정되는 도끼였다. 트롤의 둥지에서 손에 넣은 무기를 지금까지 수리에 수리를 거듭하면서 계속 사용해온 것이다.

"그리 좋은건 아니란다"

어느새 많은 적들을 상대하면서 그 자루에 손때가 묻고 여기저기 이가 나가고 녹이 슬어가는 도끼를 떠올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손질하는 법도 제대로 몰랐던 그는 그저 주변에 있던 풀잎이나 적의 가죽에 피를 닦아내기만 했을 뿐 그 외의 관리를 하지 않았기에 상태가 엉망이었다.

"그럼, 제가 아빠한테 도끼를 선물해도 괜찮을까요?!"

그런 그의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면서 그녀는 그렇게 소리쳤다.

"관리도 언제든 제게 가져오시면 되고, 파손되도 제가 수리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꼭 아빠가 제가 만든 무기를 사용했으면 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강하게 자신이 그의 무기를 만들고 싶다고 주장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흐믓한 기분이 든 그는 고개를 끄덕여 그러라 했다.

그의 생각으로도 방금과 같은 검을 만들어낼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녀가 대장장이로서 상당한 실력을 쌓은 증거가 된다고 생각했기에 별 망설임 없이 허락한 것이다.

그렇게 둘은 해가 질 무렵까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시간이 늦어지자 그녀는 아직 대장간에서 할 일이 남아있다면서 대장간으로 돌아가고 그는 자신의 움막으로 돌아왔다.

움막으로 돌아온 그는 그동안 거칠게 사용해 어느덧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도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더욱 좋은 무기를 만들겠다 다짐한 자신의 딸을 떠오르자 그의 입가에는 또 한번 미소가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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