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일상
라둔을 옆에 두고 두런두런 사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밤을 보낸 루프스는 해가 떠오를 시기에 일어나서 그를 늑대 목장에 데려다 주고는 헤어졌다.
라둔과 헤어진 그는 고블린 사냥꾼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고블린들 중에서 사냥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은 대체로 최하급의 고블린들이다. 하급 이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소수 뿐이다. 주로 동물들을 사냥하는데 동물을 사냥하는 것으로는 축복을 받기가 보통 어려운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축복을 받은 이들은 간혹 고블린 영역에 들어선 적대 몬스터들과의 싸움으로 축복을 받았다.
사냥꾼들은 이제 슬슬 몸을 움직이려는 것인지 어깨에 짐을 매고는 막 발걸음을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대부분 성체 고블린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드물게 어린 고블린들이 그들 사이에 끼어있는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어이"
그들을 향해서 느긋히 다가선 루프스는 팔을 흔들면서 그들을 불렀다.
"앗! 족장!"
그들을 부르는 소리에 막 발걸음을 떼던 그들은 고개를 돌렸다가 그들을 향해서 다가오는 고블린치고는 상당한 거구에 칠흑에 가까운 피부색으로 그들의 족장임을 알아채고는 깜짝 놀라했다.
코볼트들과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는 족장인 루프스도 그들과 함께 식량채집을 위한 사냥에 종종 따라나서곤 했었다. 그가 의식을 가지고 가장 처음 했던 일들이 식량을 구하는 일이었기 때문인지 그는 사냥과 채집에 은근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사냥꾼들은 어느 거점이나 일정 이상의 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사냥꾼들 채집꾼들과 병사들을 구분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모로 상황이 바뀌었고, 관리의 편리성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구분지어야만 했다.
분류된 병사들은 직접 단체로 채집이나 사냥에 나서지 않는다. 병사들이 하는 일은 대체로 영역을 순찰하며 위험한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는지를 확인하거나 영역의 경계로 적대 몬스터들이 넘어오지 않는가 감시하는 것이 주로 맡고있는 일이었다.
채집꾼들은 지금에 와서는 식량으로 취급되는 채집물들의 경우는 농경을 시작하면서 채집하지 않고있다. 그들이 채집하는 것은 오로지 약초들과 독으로 이용할수있는 독초들 뿐이었다.
그리고 사냥꾼들은 다른 몬스터들과의 싸움에 나서지 않고 주변에 서식하는 동물들의 개체수가 일정 수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부족이나 거점에 머물고 있는 고블린들에게 충분히 먹일만한 양을 사냥해서 고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사냥꾼들이 적대 몬스터와 싸우는 경우는 동물들을 사냥하다가 적들이 나타날시에 어쩔 수 없이 싸우는 경우 뿐이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이들은 사냥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사냥꾼들이었다. 사냥꾼들을 구성하고 있는 인원들은 대부분이 막 성체에 이른 고블린들이 대부분이다. 일부 베테랑 고블린들이 섞여있지만 이들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사냥꾼들의 대장들이다.
그리고 그런 고블린들 사이에 아직 완전히 자라지 못한 고블린들이 끼어 있었고, 그 중 하나는 루프스가 한참 찾고 있던 그의 아들중 하나인 그룬이었다.
그룬도 자신의 아버지가 족장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고 몇번 마주친적도 있기 때문에 충분히 그 모습도 머릿속에 각인시켜 두었다. 때문에 그의 모습을 보고 곧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는 생전 몇번 보지 못한 아버지가 찾아오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나도 함께 가도록 하지"
루프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들 고블린들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고블린들은 자신들의 작업에 족장이 참가한다는 것에 잘 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긴 했지만 대부분의 고블린들이 족장을 존경하고 좋아하기 때문인지 오히려 좋아하는 기색이 더 강했다.
그룬 또한 아버지의 참가에 밖으로 표출하진 못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자신의 아들을 유심히 관찰중이던 루프스의 눈에도 들어 올 수 있었다.
'그동안, 뭔갈 해준적이 전혀 없었으니...'
그로서도 자신의 아들인 그룬이 감정표현을 크게 티를 내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단순히 함께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겉으로 표출될 정도로 감정표현을 낸다는 사실에 그동안 제대로 신경써주지 못한것에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사냥을 위해서 밖으로 나선 그들을 지휘한것은 당연히 루프스였다. 코볼트 왕처럼 단순히 혈통만으로 족장의 자리를 얻었다면 그들을 지휘하는데 문제가 생길것이고 그러면 부하들이 그에게 실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높은 족장의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맨 처음은 그도 가장 밑바닥의 단순한 말단 고블린이었던 경험이 있었다.
차근차근 자리를 높여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의 사냥 지휘는 능숙했다. 바닥에 나있는 수풀이 밟혀 쓰러진 자리와 흙에 나있는 발자국 그리고 곳곳에 식어있는 동물의 배설물을 이용해서 동물을 추적해서 찾아내고 어린 고블린들 위주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자식인 그룬을 자신의 옆에 붙여서 사냥시에 주의해야 할 사항이나 동물 또는 그외의 그가 지금까지 경험해온 몬스터들이 남기는 흔적, 자신들이 남기는 흔적들을 알려주면서 다른 이들을 추적하는 기술과 다른 이들에게서 자신들을 숨길 수 있는 기술을 알려주었다.
그가 자식들을 직접 상대하는 일이 드물기는 했지만 엘라와 그동안 아이들과 어울린 다른 고블린들에게서 들었기에 자식들의 성격이나 원하는것들을 대체로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그룬에게 자신이 아는 사냥이나 추적에 쓸 수 있는 기술을 알려주었다.
다행히 그룬은 그의 예상대로 상당히 좋아했다. 그동안 사냥꾼들을 쫓아다니면서 다양하게 배우긴 했지만 그들과는 경험의 자릿수가 다른 루프스의 지식은 그야말로 격이 달랐던 것이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사냥꾼들은 오늘 하룻동안 사냥한 동물들을 도축하고는 뼈와 고기를 채취하고 나머지 내장과 같은 것들은 흩뿌려서 버려놓고는 부족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서 루프스는 그룬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룬이 그동안 어떤 일들을 경험했는지를 묻고, 하고 싶은 일, 원하는것은 없는지를 물었다. 그룬은 그 성격대로 필요한 말만으로 짧게 짧게 대답했지만 아버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기쁜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족에 돌아와 사냥꾼들과 헤어진 둘은 본인들의 몫으로 받은 사냥감들의 고기를 가지고는 따로 자리를 잡았다. 모닥불의 앞에 자리잡은 둘은 잠시 끊어진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생활하는데 불편은 없니?"
루프스는 이런걸 묻기 영 쑥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는 그렇게 물었다.
"없습니다. 사냥은 즐겁고, 이번에는 아버지도 저를 보러 와주셨으니 만족합니다"
그룬은 조용한 목소리로 그에게 그리 답했다. 그런 그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인 루프스는 따로 준비해둔 것을 그에게 내밀었다.
스윽-
"받아라"
"이건..."
루프스가 그룬에게 내민 것은 하나의 활이었다. 그의 아들이 활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준비한 물건이다. 그가 내민 이 활은 바로 얼마전 영역을 벗어나 고블린들의 영역으로 들어선 오우거를 쓰러트리고 그 뼈와 가죽 그리고 힘줄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활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활을 받고 뛸듯이 기뻐하는 그룬의 모습에 루프스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그를 바라봤다. 둘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야기는 해가 지고도 모닥불의 불을 의지해서 한참을 이어졌다.
그룬은 말을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루프스가 그에게 이야기하고 그룬이 듣는 식으로 대화가 이어졌었다.
시간이 늦어지자 둘은 그만 자리를 파하고는 일어섰다.
"그럼, 아버지 오늘 하루 감사했습니다"
그리고는 루프스를 향해서 허리를 직각으로 꺾어서 그에게 인사를 했다. 루프스도 그 인사를 받아주면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각자 그만 잠에 들기 위해서 각자의 거처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