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일상
루프스는 아직 성체로 자라지 못한 자식들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내면에서는 자식이라 아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자신과 적대 할 가능성이 있다는걸 생각하면 영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은 각자가 생활하는 모습도 개성이 드러나고 있었다. 엘라의 두번째 출산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넷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모두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들은 각자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식귀와의 전투가 끝나고 난 후 루프스가 다시 한번 축복을 받았을때 아이들의 능력 또한 강화가 되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더욱 개성을 살리게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낱 한시에 같이 태어난 아이들이지만 그의 자식들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모두 달랐다.
한명은 라둔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늑대들과 함께 지내기를 좋아하며 그가 가진 능력은 '동조'로 그와 함께하는 동물 형태의 몬스터와 자신을 연결시키는 능력이었다.
한명은 그룬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투척 또는 발사체 무기를 이용했을 때 명중률을 높여주는 '명중'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비교적 약한 지역으로 사냥을 나가는 고블린들을 따라 나서서 돌팔매질에 능력을 이용해서 작은 동물들을 잡아오고는 했다.
한명은 시에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이전에는 엘프들의 방직작업을 돕거나 견학으로 시간을 보냈다면 지금은 최근 부족으로 들어온 대장장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능력은 '제작'으로 그녀가 직접 제작한 물품의 질을 확연히 높여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 한명은 드란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군대를 통솔할 경우 매우 유용한 능력으로 '군대'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능력으로 그는 평소 아직 어린 아이들의 대장역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성장이 늦어 그보다 먼저 성체가 된 고블린들도 있었지만 아직도 그를 따르려는 고블린들도 상당수 있을 정도로 제법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루프스 본인이나 엘라나 바쁜 일정을 가지고 있어 아이들은 대체로 다른 고블린들의 손에 의해서 컸다. 그래서인지 엘라가 키웠던 첫 자식들에게는 어떻게든 접근을 했었지만 두번째 자식들에게는 아무래도 접근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루프스는 먼저 늑대들과 함께 뛰어놀고 있는 라둔을 찾아갔다. 최근 늑대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그들을 키우기 위해서 부족의 옆에 낮은 울타리로 영역만 표시해두고 방생시켜서 그들만의 영역에서 자라도록 하고 있었다.
그가 찾는 라둔은 그런 늑대들의 영역에서 한 늑대의 등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라둔의 능력이 발동중인지 늑대는 다른 늑대들보다 월등히 큰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키힛, 달려! 더 빨리! 더 빨리!"
라둔은 늑대를 향해서 더 빨리 달리라 재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재촉에 늑대는 호응하듯이 더욱 빠르게 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늑대의 발이 빠르게 달리면 달릴수록 그 위에서 타고 있던 라둔의 입가에는 점점 미소가 짙어지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둘이 달리는것을 지켜보던 루프스는 이내 라둔과 늑대가 늑대무리의 속으로 들어가 멈춰서는 것을 보고는 다가갔다.
"라둔"
라둔에게 다가간 그는 나직이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어...? 아... 아빠?"
늑대에서 내려 다른 늑대들과 뒹굴면서 놀던 라둔은 갑작기 들리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 봤고, 그 자리에 서있는 자신의 아버지, 루프스를 볼 수 있었다.
라둔은 태어나고도 몇번 보지못한 자신의 아버지가 나타나자 눈을 크게 뜨면서 놀라워했다.
"잘... 지내고 있나?"
루프스는 이 상황이 어색한듯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아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어... 잘 지내고 있어요... 헤헤"
갑자기 나타난 그였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라 기분이 좋았는지 헤프게 웃으면서 그에게 대답했다. 루프스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또한 눈이 둥글게 휘었다.
첫 대면의 어색함이 무색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둘의 대화는 망설임이 없어져갔다. 라둔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지금까지 자라면서 다른 고블린들의 손에 키워지는 동안 겪었던 일들이나 늑대들과의 첫만남 그 중에서도 그의 파트너 역할을 해주는 늑대를 소개해주면서 더욱 신나했다.
루프스도 계속 걱정을 하느라 아이들에게 접근을 자제하고 태어나게 하는 것도 최대한 자신이 감당 할 수 있는 선을 지키고자하고 있었다. 그리고 괜스레 정이 들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별 쓸모 없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루프스는 자신의 아이인 라둔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금까지 자식들에 대해서 생각하면 절로 떠오르던 걱정들이 전혀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부자관계에서 생기는 효과인지 지금까지 중 가장 즐겁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아이와의 대화는 그동안 그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처음 이제는 자신의 기억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는 인간의 기억을 가지면서 지금까지 항상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하나의 싸움이 끝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른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의 삶은 그야말로 숨쉬기도 힘들정도로 싸움에 싸움에 또 싸움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는 생존을 위해서 싸워야 했으며, 자신의 울타리로 들어온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서 싸웠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키운 부족을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했다. 그리고 싸움이 하나 끝나고 시간이 생긴 순간에도 그는 다음 싸움을 대비하기 위해서 자신의 성장과 아군을 얻기위한 싸움을 해야만 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자식과의 대화로 시간을 보내니 그 동안 지치고 다친 마음이 회복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빠! 아빠! 이 녀석이 내 파트너야! 이름은 바람이야! 아직 이름은 부여 받지 못했지만 내 파트너라서 내가 직접 이름을 지어줬어! 바람처럼 빨리 달리라고 지어준 이름이야!"
아들인 라둔이 신이 나서는 자신의 옆에 엎어져있는 늑대를 쓰다듬으면서 루프스에게 자랑하듯이 이야기했다.
"그래... 그러니"
루프스는 은은히 미소지으면서 자신의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친자식이라는 것은 자신이 가진 기억조차 뛰어넘었다. 기억속에서는 자신이나 아들 그리고 동족들의 모습은 그리 호감가지 안흔 외형이다. 사람의 반 정도 되는 키에 짤막한 팔다리를 가지고 긴 코와 귀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는것이 고블린들의 기본적인 외형이다. 축복을 받으면서 외형이 변하긴 하지만 기억에따르면 그도 그리 좋은 생김새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의 부하들이나 자식들에게 외형적인 혐오감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감이 가는 생김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적 취향은 전혀 변하지 않지만 말이다.
어느새 라둔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하루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그만... 가봐야 겠구나"
해가 자취를 감추고 희미한 달이 뜬 어스름히 점점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횃불을 제외하고는 별달리 밤을 밝혀줄 불빛을 가지지 못한 고블린들은 늦은시간이 되면 그들의 행동은 보통 두가지로 나뉜다. 쌓인 성욕을 풀기 위해서 임신하지 않은 고블린을 데리고 들어가던지 아니면 다음날을 위해서 잠에 든다.
어느새 해가 지자 아이도 그만 들여보내려 이만 일어나고자 한 것이다. 루프스가 일어나자 라둔은 벌써 시간이 늦어간다는 것을 알고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아버지와 즐겁게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그런 시간이 끝나간다는 것을 인지하자 서글퍼진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라둔은 저도 모르게 입을 뗐다.
"저기..."
"음?"
나직이 입을 연 자신의 아들의 모습에 멈칫한 루프스는 아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자 했다.
"저기... 같이 자면 안될까요?"
라둔은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자식의 모습에 바로 헤어지려던 것이 왠지 미안해져서 루프스는 라둔에게 그러자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