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정리
루프스는 바닥에 떨어진 왕의 목을 주워 들고는 그동안 걸어온 길을 거꾸로 거슬러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덕분에 간편하게 되돌아가던 루프스는 중간에 그처럼 지하로 침투한 다른 고블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다가온 고블린은 다름 아닌 스콘드였다. 스콘드는 그가 지하에 있는 동안 지상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루프스는 이번 전투가 고블린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를 따라 위로 올라온 루프스는 왕궁에서 코볼트 왕의 목을 들어올리면서 승리를 선언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고블린들은 환호성을 질렀으며 포로로 잡혀있던 코볼트들은 착잡하지만 어딘가 후련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투가 완전히 끝을 고하고 루프스는 다른 고블린들을 도와서 코볼트 부족이었던 장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장소를 재활용 하기 위해서 적을 막아주는 목책을 무너진 잔해를 완전히 치워버리고 새로운 목책을 쌓았다. 그리고 전투의 흔적만을 먼저 없애기 위해서 무너진 건물과 길거리의 잔해를 치워냈다. 그리고 길거리에 널려있는 코볼트들과 고블린들의 시체들도 구분을 시작해서 모두 화장을 하였다.
루프스로서는 코볼트들을 전멸시켜 버리는 것이 먼저 가버린 다른 동료들이 세웠던 부족들 기리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함께 왔던 다른 고블린 부족들이 모두 그들에 의해 전멸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전 동료였던 아스드에게 들었기에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에 새로 얻은 영역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릴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고블린들의 수는 늘어날 때마다 확장해 왔었다. 다른 몬스터들과 경계를 맞대면서 좀 주춤하긴 했지만 그 기간도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의 개체수로는 이번에 얻은 영역의 사분지일 정도만이 새로운 영역으로 편입하고 나머지는 방치하는 수 밖에 없었다.
루프스는 그것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고생해서 코볼트들을 적대하고 이겨낸것은 좋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된 고블린들의 수가 상당하다. 그는 기본적으로 고블린들 하나하나의 목숨에는 그리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번처럼 다른 몬스터와의 분쟁으로 또는 식량채집을 나가면서 마주친 동물을 상대로 그리고 먹을것의 구분을 잘못하고 독을 섭취하면서 죽는 고블린들의 수를 합치자면 상당하다.
그런데 하나 하나의 고블린들의 목숨에 모두 의미를 부여했다가는 그가 버티기가 힘들어진다. 하지만 이번처럼 종족을 위해서 시작한 전투로 죽어간 고블린들에게까지 그렇게 할 수 는 없었다. 그들의 희생을 쌓아서 얻어냈는데, 단순히 여력이 안된다는 이유로 버려버린다는 것은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코볼트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곳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코볼트들이었기에 고블린들보다 지리나 특성에 대해서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이용한다면 위장도 가능하다. 루프스가 이겨낸 이 코볼트 부족은 다름아닌 인간들과 교류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 주체는 아무래도 코볼트 왕으로 그가 없는 지금은 단절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자리를 고블린들이 차지하고 있다면 코볼트들이 고블린들에게 패배한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 자리잡던 코볼트들은 이 일대에서 트롤, 오우거, 리저드맨을 제외한다면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특히나 제대로 뭉치지 못하고 정해진 영역에서 살아갈 뿐인 트롤과 오우거 두 종족을 제외한다면 그들보다 강한 세력은 오로지 리저드맨 뿐일 정도였다.
고블린들의 경우 코볼트, 랫맨, 오크, 트롤, 오우거, 리저드맨들에 의해서 사방이 막혀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른 종족들을 그다지 보지 못했지만 이 일대에는 그들 외에도 우드맨, 포레스트 앤트, 블랙 비, 플랜트 워커와 같은 곤충, 식물형 몬스터들이 다수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 가장 강력한 코볼트 부족이 몰락했다는 것을 알면 인간들은 그 자리를 차지한 몬스터들을 경계 할 것이다. 특히나 그것이 과거 그들의 주도로 멸종을 기획했던 고블린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루프스로서는 그런 사태가 오는것은 피하고 싶었다. 인간들과의 접촉은 이 일대에서 지낸다면 언젠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장 그들과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있던 엘프들의 마을이 인간들에 의해서 파괴된 일이 있었고, 지금 코볼트 부족에도 얼마전에 인간들이 찾아온것을 목격한 일이 있었다.
인간들은 특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종족이기 때문에 루프스가 최대로 경계하고 있었다. 당장 엘라에게 전해들은 여기서 가장 가깝다는 소국의 전력만해도 고블린들이 가진 전력에 비해서 월등했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코볼트들을 이용해서 이 땅을 다스리는 주체로서 이용하면서 동시에 인간들을 향한 위장막의 역할도 동시에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루프스가 고블린들에게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코볼트들은 최대한 살려서 포로로 잡아두라고 지시해뒀던 이유였다.
///
루프스는 따로 자리를 잡고는 코볼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했다. 이 일대를 직접 돌아다니면서 본것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이 가진 문화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네 이름은?"
전 코볼트 왕의 대전에서 면담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루프스는 자신의 앞에 앉아있기를 허락한 코볼트에게 물었다.
"크... 크링크라고 합니다"
코볼트는 긴장한듯이 주변을 휘휘 둘러보면서 불안한 어조로 그에게 대답했다.
"난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너희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게 있었지, 너희들 중에서 주로 노동을 하는 이들 중에서 어째서 제법 강한 이들이 포진해있는지를 말이야"
"그... 그게"
루프스는 이전에 코볼트의 영역을 정찰하면서 목격했던 하루종일 노동만 하고 있던 코볼트들을 떠올리면서 물었다. 그들은 족쇄를 차고 마치 죄인처럼 일만을 하고 있던 모습이 지금 자리에 앉아있는 코볼트를 보니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코볼트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족쇄를 차고 힘을 제대로 사용하기 힘들도록 힘줄이 다친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꿀꺽
긴장해있는 코볼트는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실은... 족쇄를 달고 있는 이들은 모두 노예입니다"
"노예? 그건 인간들이나 가지고 있는 제도가 아니었나?"
노예라는 이야기에 루프스는 이상하다는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에게 물었다.
"여기... 수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수도?"
"아... 왕이 명칭한 이곳의 이름입니다"
"그런가? 계속해봐라"
"예...예, 왕은 인간들을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그들이 가진 문화에 매료되었다는게 맞겠지요. 그가 정확히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이 전 왕, 저희들이 족장이라고 부르는 그분께서 돌아가시던 때 그 자리를 물려받았습니다"
코볼트의 이야기에 루프스는 가장 위화감이 들던 이야기가 나와 코볼트의 말을 끊고는 그에게 물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자신보다 약한이들의 명령을 듣고 싶어하는 이들은 없을 텐데?"
그의 이야기에 코볼트는 그에게 그 이유를 알려줬다.
"그것은 모두 전대 족장이 가지고 있던 능력이 원인입니다"
"무슨 능력이지?"
하나의 능력이 힘을 추구하는 이미지가 강한 몬스터에게서 힘의 우위를 무시한 지배를 가능케 했다는 것에 흥미를 느낀 루프스가 그에게 물었다.
"그게... 세뇌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