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결전
싸움은 고블린들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질 확률이 높았던 싸움이었지만 세가지 요인으로 승리를 거머 쥘 수 있었다.
첫째로는 무엇보다 루프스의 존재자체였다. 그는 지금 이자리에서는 누구도 넘볼수 없는 강자로서 건재했다. 지금까지는 코볼트들을 이끄는 이가 자신과 비슷할 정도의 강자라 생각해서 행동을 자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코볼트들의 부족을 방문한 결과 그들을 이끄는 이가 단순히 혈통에 따른 지배로 그 강함과는 상관없다는것을 알아챘기 떄문에 전면에 나서는것이 가능해졌다.
루프스는 전쟁에서 한발 물러나 고블린들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는것에 우선했다. 대장전이 이루어지는 장소에서는 고블린 부족의 핵심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자식들이 코볼트들과 싸우는 것을 관전하면서 목숨을 잃지 않도록 다른 세 고블린들과 함께 조심스레 도움을 줬다. 그리고 전체적인 전투 상황을 살펴보면서 당장 위험한 곳에 자신의 분신을 투입해 고블린들의 승리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두번째로는 엘프들과 합치면서 추가된 궁수들이었다. 그들은 엘프들에 의해서 훈련을 받은 이들로, 초기에 훈련받은 이들 중 능력과 결합해 원하는곳에 정확히 화살을 쏘는것이 가능한 이들이 있을 정도로 원거리에서 강력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코볼트들의 수를 줄이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들의 화살촉에는 대부분 독이 발라져 있어 쏘아지는 화살에 맞거나 박혀있는 화살을 조심하지 않고 뽑아내다 조금이라도 스친 경우 최하급의 코볼트들이라면 순식간에 죽어 나자빠졌으며 하급 이상의 코볼트들도 움직임에 큰 지장이 생겨 고블린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였다.
세번째로는 코볼트들에 비해서 월등한 수를 자랑하는 중급 고블린들의 수였다. 코볼트들도 이곳에서 오랜시간 살아오면서 당장 고블린들과 싸우는데 자연스레 많은 수의 하급 코볼트와 중급 코볼트 그리고 여덟의 상급 코볼트를 동원 할 수 있었다. 비록 대부분의 코볼트들을 동원했기 때문에 가능한 수라고는 하나 일전에 겪었던 늑대들이나 바로 옆에있는 랫맨들과 비교하자면 격이 다를 정도였다. 실제로 하급의 코볼트들의 수로만 보아도 고블린들의 십수배에 도달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루프스의 능력 덕분에 일정 조건만 채운다면 확실히 한계단 올라 갈 수 있다는 것이 그들 부족의 가장 큰 힘이었다. 덕분에 본래라면 전력 부족으로 속수무책으로 밀렸을 전선이 그들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는것도 있었다.
"정말이지... 이런 능력을 갔고 있어서 다행이지"
루프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주변에는 많은 고블린들이 전장의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코볼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었지만 그만큼 고블린들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다. 최하급과 하급의 고블린들의 수도 겨우 이할 정도만이 살아남았다.
중급 고블린들도 살아남은 이들은 전체의 삼할이 채 안돼고 있었다. 대부분 코볼트들의 인해전술을 막다가 희생된 이들이었다.
그런 피해를 살피면서 루프스는 이번에는 탄식의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전력이 제대로 복구 될려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지..."
그동안 고블린들이 번식과 전투로 늘린 전력이 이번에 대부분 소진되어 버린 것이다. 이들도 이제 남은 코볼트들과의 싸움에서 또다시 희생이 날 것은 확실할 것이다.
루프스가 한숨을 내쉬며 걱정을 하는 것은 고블린들이 강해지는 것은 전투 경험을 쌓으면서 조건이 충족되는 순간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전력이 복구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최하급 부터 축복을 받아 하급이 되고 또 조건을 충족해서 중급 고블린에 자연적으로 올라서는것은 만만치가 않다. 루프스가 쉽게쉽게 올라서면서 축복을 받는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착각하기 쉽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다. 특히나 최하급부터 시작하는 고블린이나 코볼트와 같은 최약체의 몬스터들이 그렇게 올라서는 것은 더욱 어렵다.
태어나 막 성체가 된 고블린들은 최하급의 몬스터다. 이 몬스터 군락지라고 불릴 정도로 몬스터들이 많은 이곳에서 이들이 살아남고자 한다면 주변에 충분한 식량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요 이들의 주변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이 그들과 비슷한 수준에 세력까지 비슷한 이들만이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몬스터들은 탐욕스럽다. 보다 강한 힘을 추구한다. 루프스의 부족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언뜻 보기에는 주변의 위협이 없어 안전해지자 평화롭게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는 끝없는 투쟁이 있었다. 부족에서 지내던 이들이 끝없이 밖으로 빠져나간것에는 식량의 채집이 중요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강해지기 위한 수단을 발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몬스터인 그들이 강해지기 위한 수단은 단 하나로 계속되는 투쟁으로 한계단씩 올라가는 것 뿐이다.
다만 그들도 생명체였기 때문에 뻔히 죽을게 뻔한 싸움을 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고블린들은 부족의 주변에서 영역을 점차 넓혀갔다. 그리고 만났던 것이 코볼트, 랫맨과 같은 만만한 적들과 트롤, 오우거와 리저드맨 같은 어지간한 강자가 아니라면 감당하기 힘든 이들 이었다.
결국 고블린들은 트롤과 오우거의 서식지 쪽에는 혹시라도 부족에 쳐들어올까 하는 걱정에 상시 두는 감시병들을 제외하고는 다가가지 않았다. 리저드맨이 위치한 곳에도 어지간해서는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식량채집을 하면서 다가가는 곳은 거의 대부분 코볼트들과 랫맨들이 위치한 장소였다.
사실 루프스는 다른 몬스터들과의 전투를 걱정하고 있었다. 오랜시간 이곳에 적응해 살아남은 이들과 이제 막 정착한 자신들이 붙으면 십중팔구 질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강해지는것만 원하던 고블린들은 은근히 자신들과 비슷한 수준의 적과의 싸움을 지속적으로 원하고 있었다.
이번처럼 코볼트들과 대대적인 전투가 일어나면서 가장 좋아했던것은 다른 이들도 아닌 일반 고블린들이었다. 전투로 얼마가 죽을지는 생각지 않고 자신들이 강해지는 것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전투로 많은 고블린들이 하급에 들어서고 또는 넘어서 중급에 도달한 이들이 많았다. 고블린들에게는 힘이 곧 권력도 되기 때문에 서로 혈안이 되서 코볼트들을 하나라도 더 잡으려 했었다.
하지만 코볼트들은 결코 수월하게 상대 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그 결과 하급과 중급에 도달한 많은 고블린들이 패배해 죽거나 불구가 된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또한 많은 강자들이 생겨난 만큼 그보다 더욱 많은 이들이 전투에서 희생이 되었다. 코볼트들은 그야말로 고블린들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무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들을 상대하는데 항상 승리하는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반 이상의 고블린들이 희생이 되고 말았다.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축복을 내려 한단계 올라서게 만든다면 충분히 줄어든 전력을 보충하고도 넘치겠지만 그렇다해도 충분한 경험을 쌓았던 많은 이들의 희생은 상당히 아쉬운 일이었다.
특히나 코볼트들에게 승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들과의 전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수의 희생은 그에게는 뼈아픈 손실이었다.
"하는수없이, 코볼트들을 배제하는데 성공한다면 힘을 키우는 것에만 전력을 다해야 겠군"
고블린들을 성장시키는데 집중 해야만 하는 상황이 돼버리자 그는 제발 인간들이 그의 부족을 향해 오는것이 늦어지거나 아예 오지 못하기를 빌면서 고생한 상급 고블린들에게 치하하기 위해서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코볼트의 시체를 패대기치거나 고블린의 시체를 조심히 옮기는 고블린들만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