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침투
따로 격리된 두 장소. 그 중에서도 그가 위치한 문에서 가까이 존재하는 곳으로 다가갔다. 격리되었다고는 해도 딱히 또다른 문으로 막혀있다는건 아니었다. 그저 문이 없는 방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었다. 즉, 안에서 일어난 일은 바깥에서도 알기에 무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루프스가 다가간 장소가 그렇게 되어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벽을 짚으면서 그곳으로 들어섰다.
"음!"
벽으로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던 곳이 눈에 들어오자 그는 절로 입에서 신음이 나오는것을 느꼈다. 벽 뒤의 모습은 그가 어느정도 예상을 한 모습이었지만 동시에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최초에 보인것은 이곳에 놓여있는 다양한 도구들이었다. 신체를 고정시키기 위한건지 십자모양의 형틀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벽에는 팔다리 구속을 위한 족쇄가 눈에 띄었다. 탁상으로 보이는 곳에는 끝부분이 날카로운 쇠, 뭉툭한 쇠를 달고 있는 고문기구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채찍이나 단도와 같은 도구들이 보였다.
"이건... 녀석이 심심풀이로 이렇게 한 건가..."
도구에서 눈을 땐 루프스가 바라보는 주변의 풍경은 상당히 끔찍한 것이었다. 팔다리가 억지로 돌아가 쥐어짜진듯한 모습을 한 이들은 양호한 편이었으며, 무차별적인 구타를 한 것인지 온몸이 붉게 부풀어오른 것은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시체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었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채찍으로 만들어진것 같은 상처가 잔뜩 나있는 시체가 있었고 불로 달군 쇠로 지졌는지 심각한 화상이 맺혀있는 시체들도 부지기수 였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든 시체들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인간 남성들이군"
밖에 있는 노예들로 추측되는 인간들은 모두 여성들이었다. 그가 본 인간들의 말로는 자신들에게 방해가 되는 이들은 이곳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으니 분명 남성들도 제법 있어야 했다. 이곳을 보기 전까지는 식량 창고에 있던 남성들이 그들이라고 생각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그곳에 살아남은 남성들은 대부분이 대장장이였다. 범죄자들로 보이는 이들을 적대하는 이들이 모두 대장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이상하였다.
그리고 이곳을 보자 그 모든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곳에 있던 남성들은 대부분이 옛날부터 이 코볼트 부족에 지내온 대장장이 노예들일 것이다. 그들이 언제부터 코볼트들의 노예였는지는 모르지만 모두 달관한듯한 모습을 보였던것을 생각하면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온 이들을 포함한 도적들에게서 받은 이들은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런것치고는 남성들의 수가 적어보이긴 하지만 매번 이렇게 죽였다면 주기적으로 시체를 정리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리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이들은 제대로 훈련받은 이들인것 같군. 상처들 사이로 단단하게 잡힌 근육들의 흔적들이 있군"
도적들에게 적대적인 이들 중에서 제대로 훈련받거나 실전으로 근육을 키운 이들이라면 아마 병사들이 아니면 용병들일 것이다. 단지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는것만으로는 어느쪽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단순한 용병들이라면 이곳에 있기는 힘들 것이다. 그저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인다고해서 문제가 될리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도적들은 자신들이 처리하기 귀찮은 이들을 이곳으로 보낸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아마 병사들이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된다. 병사들이라면 그들의 관리를 위해서 생사여부를 알아 볼 수 있거나 대략적인 위치를 알 수 있도록 대비가 되어있을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쯧"
이들이 용병인지 병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법 강자로 보이는 이들이 생포되서는 이런 꼴을 당했다는 것에 괜스레 불편해진 마음이 더 이상 이들을 보고 있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자리를 뜬 루프스는 이번에는 또 다른 한곳의 격리장소를 향해서 다가갔다.
이곳은 방금전과는 달리 별달리 고문을 위한것으로 보이는 도구는 없었다. 게다가 이곳에 있는 인간들은 아직 살아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어째서 살아있을수 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번엔 전부 여자들이군"
어찌보면 그의 예상대로라고 할 수 있었다. 루프스가 볼 때 지금 이렇게 격리가 되어있는 이들은 방금전에 대전으로 보이는 곳에서 코볼트와 인간이 서로 대화를 한 원인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이들은 도적들이 자리잡은 장소 인근에 위치한 영지로부터 그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출발했던 정규 병사들이었다.
하지만 도적들은 미리 이들이 출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보를 입수한 도적들은 병사들에 대한 대비로 그들이 지나갈것으로 예상되는 경로에 미리 함정을 설치해뒀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함정지대의 위를 지나가는 순간 일제히 함정을 발동했고 순식간에 무력화되어버렸다. 그리고 도적들은 무력화된 적들을 포박해서는 이곳까지 끌고와서 코볼트들에게 넘겨버린 것이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루프스였지만 그들의 대화와 이들의 모습으로 얼추 추측하는 정도는 가능했다.
"...이들도 코볼트 왕의 노리개가 될 운명들인가 보군"
그가 그렇게 판단한것은 그들의 상태와 관련이 있었다. 남성들이 있던곳에서 처럼 고문이 있을 거라면 이곳에도 그에 걸맞는 도구가 있거나 이들의 몸에 상처가 있어야 할테지만 이들의 몸은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옛날에 생겼다가 이미 완전히 아물어 희미한 흉터자국만 있는 정도였다.
이들의 몸에 아무런 상처가 없는 대신에 정신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인지 제대로된 용기에 담겨진 약으로 보이는 물체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몸을 구속하고 한번도 풀어주지 않았는지 그들의 다리 밑에는 이들이 싸지른것으로 보이는 오물들이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지금 제정신을 가지지 못한했는지 눈은 흰자만이 번뜩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고, 코와 입가에는 콧물과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상당히 악취미로군'
루프스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에 그다지 탐탁치 않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들을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다. 일단 제정신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드문데다가 이들을 데리고 간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득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음...'
이런 자신의 태도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어색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루프스는 이곳에서 몸을 빼냈다. 바로 밖으로 나가는 것은 힘을 쓰지 않으면 안돼기 때문에 그는 내려왔던데로 계단을 타고 다시 올라가서 침소를 통해서 코볼트의 성을 빠져나왔다.
'일단 이곳에서 더 이상 얻을만한 정보는 없는것 같고... 상급 코볼트들도 대부분 전선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니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겠군'
코볼트들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장소였지만 그의 생각보다도 훨씬 엉성한 대비만 되어있었다. 이미 이곳에 있는 코볼트들은 적들이 절대 이곳까지 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상급 코볼트들을 비롯한 병사 코볼트들을 향해서 맹목적인 믿음만을 보내고 자신들은 방만하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즉, 지금 우리와 싸우고 있는 놈들이랑 곳곳에 흩어져있는 상급 코볼트들만 잡으면 우리의 확실한 승리라는 뜻이로군'
코볼트들이 보유하고 있는 거점의 수와 거점에 상주하고 있는 코볼트들의 수는 충분히 고블린들의 수배를 넘어 십수배에 달하기는 했지만 지금 고블린들이 가진 전력을 생각한다면 그들을 상대하는데 충분하다 못해 넘치다고 판단했다.
'최근 상급 코볼트들이 전선으로 내려가서 그곳에 있다고 하지만 우리도 대대적으로 나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루프스는 코볼트들의 생활상과 구역의 구분, 중요한 건물로 보이는 곳을 탐색하는 작업을 주로 행하긴 했지만 동시에 코볼트들이 나누는 대화들도 유심히 들었기 때문에 그들이 보유한 상급 코볼트들의 수에 대해서 알 수 있었으며 그가 직접 확인한 코볼트 왕은 분명한 약자라는 것까지 확인 할 수 있었다.
즉, 전선에 위치한 코볼트들 대다수를 잡을 수 있다면 이들과 고블린들의 전투는 고블린들의 승리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