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침투
문을 빠져나온 둘은 곧 각자의 길을 가며 헤어졌다.
'우선은 저 인간을 따라가 볼까'
루프스는 코볼트의 침실로 추정되는 장소를 이미 발견했었기 때문에 인간쪽을 따라가기를 결정했다.
이미 해가 지고 달이 떠올라 어둑어둑한 코볼트들의 도시를 지나는 인간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어두운 길목은 신체 자체가 검은빛인 루프스의 몸을 한층 더 쉽게 숨겨주고 있었다.
그가 쫓아가는 인간은 코볼트들의 마을을 나서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인간들과 합류했다. 인간들은 야영을 위해서인지 천막을 치고 모닥불을 지핀 상태였다. 모두 자신이 따라온 인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들은 그를 향해서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그래, 하~ 이 개자식 정말 말 많다니까. 이용가치만 없었어도 우리가 쓱삭 해버리는건데"
그가 따라온 인간이 참 성가셨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휘휘 저었다.
"저들의 왕이란 이는 그럴 수 있지만 다른 놈들은 제법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에게 대답하는 것은 제법 큰 덩치를 가진 과묵한 표정의 제법 늙은 인간이었다.
"쯧, 어떻게 저런 멍청한놈 밑에서 일하는지 모를 놈들이지. 뭐, 그래도 이놈들이 사라지는건 곤란한 일이지. 우리의 은신처도 돼주는 놈들이고 처치 곤란한 녀석들도 이곳으로 보내서 행방불명 처리 해버리면 되니 우리한테는 여러모로 이득이 되는 놈들이니"
그의 말에 과묵한이 옆에 있던 평범한 인상의 청년이 대답했다.
"하긴, 설마 이곳에서 우리가 몬스터들과 교류하고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 할 테니까요. 보통 교류하는 몬스터들 하면 국가를 설립한 놈들을 생각하지 이 야생에 풀려나있는 몬스터들을 생각하진 않으니까 말이죠"
그렇게 셋이 대화를 나누고 있자 다른 인간들은 잠을 자기위해서 천막의 안으로 들어가거나 불침번을 서기 위해서 모닥불의 근처에 주저 앉았다.
다른 인간들의 행동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셋은 따로 모여서는 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이번에 데리고 온 놈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청년이 물었다.
"잘 처리했다. 대금은 철광석으로 받기로 했고"
리더가 청년의 물음에 대답했다.
"철광석이라... 하긴 이녀석들 한테서 받을 대가로는 그게 최고지요. 우리같은 도적들에게 철광석을 가져다줄 상인들도 드문데 가져오는 놈들도 값을 후려쳐대니"
후우
청년은 대답하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그 녀석들도 불쌍하군요. 우리를 토벌하러 왔다지만 그 결말이 코볼트들의 노예가 되는거라니"
코볼트들에게 노예로 건네는 인간들을 생각했는지 혀를 차면서 늙은 인간이 말했다.
그 뒤로도 루프스는 한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세 인간은 그저 투덜거릴 뿐으로 더 이상 건저낼 정보가 없다고 판단한 루프스는 이번에는 코볼트 왕의 침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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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달이 중천에 걸리고도 살짝 넘어가려는 시기에 침실에 도착한 루프스는 안쪽에서 별다른 일은 없는지 먼저 귀를 문에 바짝대서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았다.
크어어어- 푸우- 크러러렁- 쿠우-
녀석은 이미 잠에 들었는지 코고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렇게 생각하고 문을 열려고 했지만 코고는 소리안에 희미하지만 다른 소리가 섞여 있음을 감지하고는 잠시 멈칫했다.
흑- 흐흡- 흑-
조심스레 다시 들은 소리는 억지로 참고 있는 듯이 억눌린 울음소리가 섞여서 들려오고 있었다. 안에 깨어있는 이가 있다는 것을 안 그는 더욱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서 안으로 들어왔다.
침실의 안으로 들어선 루프스는 이전에 들어왔던 풍경과는 판이하게 다른 침실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침실에는 비대한 코볼트가 눕고도 넓게 자리가 남는 큰 침대가 있었는데, 지금 그곳에는 예상대로 코볼트가 코를 골면서 잠들어 있었다. 다만 그곳에는 코볼트만이 아니라 알몸의 인간 여성들도 누워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이녀석... 인간들을 동경했다더니, 취향까지 이쪽이었나!'
코볼트와 함께 누워있는 여성들은 코볼트의 노예임을 쉽게 알아 볼 수 있었다. 팔다리가 움직이기 힘들게 족쇄가 걸려있었다. 족쇄의 끝은 어딘가에 걸 수 있도록 걸쇠가 달려 있었다.
그가 밖에서 느낀 흐느끼는 소리는 코볼트의 옆에 누워있는 인간들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코볼트는 이미 그녀들과 한바탕 치뤘는지 그녀들의 온몸에는 그가 흩뿌린것으로 보이는 희멀건 액체들이 묻어있었다.
코볼트의 옆에 눕혀져 있는 인간 여자는 둘이었는데 한 인간은 이미 모든것을 포기한듯이 텅 빈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쪽에 위치한 인간이 흐느끼고 있었는데 이 인간은 아직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몸을 묶고 있는 족쇄를 풀어내려 온몸으로 반항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반항을 한다고 해도 평범한 인간이 가진 힘으로 족쇄가 풀릴리가 없었다. 만일 그녀들이 상급 몬스터와 자웅을 겨룰 수 있을 정도였다면 저런 족쇄따위는 철로 만들어져있다고 해도 가볍게 풀어낼수 있었겠지만 그녀들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최하급 몬스터나 하급 몬스터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코볼트의 옆에 존재하는 인간들 말고도 아직 이 침실에 변한 풍경이 있었다. 벽에 걸려있는 박제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큰 동물, 곰으로 추정되는 동물의 가죽이 가리고 있던 자리에서 비켜나져 있었고 그 자리에는 뻥 뚫린 통로가 있었다.
통로에 가까이 다가선 루프스는 꼼꼼히 둘러보았지만 별다른 장치가 되어있지 않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안전을 확인한 그는 직접 통로에 진입했다. 직접 진입한 통로는 계단을 통해서 밑으로 내려가도록 되어있었다. 계단을 내려간 루프스는 그 길이가 제법 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예상으로는 약 삼층정도에 위치했던 침실에서 지하로 뚫고 들어갈 정도로 짐작되었다.
계단을 다 내려간 루프스는 식량창고에서 있었던 일 처럼 문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문을 발견한 그는 문을 향해서 다가갔다. 문은 두가지가 있었는데 한가지는 이곳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만든것인지 잠금장치가 밖에서 걸려있는 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다가간 문은 잠금장치가 밖으로 되어있어 문 안쪽에 있는 이들을 가둬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끼이익- 철컹
조심스레 다뤘습에도 잠금장치는 제법 큰 소리를 내면서 풀렸다. 생각보다 큰 소리에 잠시 움찔했던 그는 이내 주변에 별다른 반응이 없는것을 확인하고는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섰다.
직접 안으로 들어선 내부는 아무런 빛도 없는 시커먼 암흑이었다. 루프스는 이전 이런 장소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토대로 수월하게 볼 수 있었지만 이런 암흑을 경험해보지 못 한 이들, 그리고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시커먼 암흑이 눈을 감는것과 똑같을 것이다.
주변을 스윽 둘러본 그는 이내 놀란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안에도 식량창고에서 처럼 인간들이 수감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곳과 다른 점이라면 그곳에 있던 인간들은 감옥이라고 할 수 있는 그곳 내부라면 얼마든지 거동의 자유가 있었다. 비록 발목에 족쇄가 달려있기는 했지만 거동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움직이기조차 힘든 장소에 갇혀있었다. 매우 좁은 철창안에서 철창에 고정되어있는 족쇄를 찬 인간 여자들이 잔뜩 갇혀있었다. 이곳과 연결되어있는 왕의 침소를 생각하면 이들은 코볼트 왕의 개인적인 노예들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었다.
이곳을 찬찬히 살피던 그는 내부에서도 두곳이 격리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기왕 이곳까지 온것 얻어갈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얻어가고자 그는 두곳중 한곳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