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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77화 (77/374)

77화

침투

문을 연 루프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또다른 문이었다. 문은 방금 연 문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잠금장치를 달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루프스가 보는 방향에서 마음대로 잠금장치를 풀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즉, 안에서 열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는 이야기다.

문의 안쪽에서는 희미하게 무언가가 두들겨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호기심에 문을 열었더니 반대로 잠금장치가 달려있는 문을 발견한데다가 안쪽에서부터 울려서 들려오는 소리에 루프스는 조심히 잠금장치를 풀더니 문을 열었다.

최대한 소리내지 않고 잠금장치를 푼 루프스는 펼쳐진 능력들을 다시 점검하고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끼이이-

기름칠 되지 않은 문을 열때 나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약하게 울리면서 문이 열렸다. 그러자 루프스의 눈에 안쪽의 풍경이 들어왔다.

깡- 깡-

쉬익- 후욱- 쉬익- 후욱-

문의 안쪽은 밝은 빛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 밝게 빛나는 곳으로 들어와서 그런지 그의 눈이 잠시 적응하기 위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언뜻 수십에 달하는 인형이 보인다는 것만 알 수 있을뿐 구체적인 형상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건... 코볼트들이 아닌 것 같은데?'

언뜻 비치는 모습으로 안쪽에 제법 많은 수의 인형이 돌아다니는 것을 확인 했지만 동시에 그들이 코볼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희미한 모습에 수북한 털이나 개과 특유의 툭 튀어나온 입들이 실루엣으로라도 보이지 않으니 그것은 당연한 판단이었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자 루프스의 눈에 상대방들의 제대로 된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들은...'

루프스가 본 실루엣들은 다름아닌 인간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인간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이전에 한번 볼 수 있는 일까지 있었으니 충분히 알아 볼 수 있었다.

깡- 깡-

치이익-

그가 바라본 인간들은 대장일을 하고 있었다. 두터운 망치로 쇠를 두들기고 가열된 금속을 찬물에 급냉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화력을 보충하기 위해서인지 화로의 앞에서 공기를 주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장일을 하는 인간들을 바라보다가 그는 곧 그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인간들의 도주를 막기 위해서인지 발목에 철구가 달려 있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인간들이 만들고 있는 것들은 다양했다. 어디서 사용 할 것들인지는 몰라도 농기구를 만들고 있는 자들, 칼과 도끼와 같은 무구를 만들고 있는 자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용도를 알기 어려운 부품들을 만들고 있는 모습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루프스는 조심스레 그들을 향해서 다가갔다. 다가가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그들이 만들고 있는것은 다른것들 보다도 석궁으로 보이는 것들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블린들의 화살로부터 대항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활은 코볼트들이 배우려면 시간이 걸리고 궁술이 특기인 이들이 없다보니 석궁만 제작하는가 보군'

석궁의 존재를 확인한 루프스는 내부를 조금 더 둘러보고는 이곳에서 제작한 물건들을 저장한 창고를 발견 할 수 있었다. 그 외에는 별달리 건질것이 없다고 판단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다행히 문이 열려있었다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었고, 그는 무사히 그곳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문에서 나온 루프스는 다른 문들도 한번씩 둘러보았다. 다른 곳들도 모두 인간들이 있었다. 다만 그 모습들은 제각각 달랐다. 온몸이 포박되서 옴짝달싹 못하는 모습의 여성 인간들이 갇혀있는 곳이 있었다. 나이든 여자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곳이 있었다. 초췌한 모습의 남성들이 모여있는 곳도 있었다.

모두를 둘러보고 나서 그는 이곳이 코볼트들이 식량창고로 쓰면서 동시에 노예인 인간들을 가둬두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석궁들은 어떻게든 파기하고 싶은데...'

지금 당장은 안으로 들어가 몰래 물건에 수작을 부리기에는 식량에 수작 부린것과는 달리, 이곳에 침입자가 있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한 그는 일단 건물로부터 빠져나왔다.

'나중에 대부분의 이들이 잠에 들었을때 다시 찾아가 봐야겠군'

그리고 그는 아직 둘러보지 못한 중앙지역을 향해서 떠났다.

///

코볼트들의 본거지 중앙에 도착한 루프스는 제일 먼저 이곳에서 가장 큰 건물의 안으로 들어섰다. 그 건물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성으로 보이는 건물이었다.

'이게 코볼트들이 사는 곳이야 인간이 사는 곳이야'

이곳에 사는것이 코볼트가 아닌 인간이라고 해도 믿을정도로 인간들을 따라하는 듯한 느낌의 마을이었다. 아니 규모로 보면 도시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리라.

루프스는 도시같은 이곳에서 중앙에 위치한 여기서 가장 웅장한 건축물의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해가 져가고 있어서 그런지 안쪽에서는 별다른 인기척도 없었다. 인기척 없는 길을 걸어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더니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건물 내부를 관리하는 인력으로 보이는 코볼트들 다수가 한 방에 모여있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넓은 방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앉아있는 그들은 서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잡담을 엿듣다 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코볼트들은 자신들의 족장을 이곳에서는 '왕' 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코볼트들은 익숙치 않은 호칭으로 부르라고 하니 서로 투덜거리면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들러 보았던 식량과 인간 노예들이 갇혀있던 곳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곳은 이곳에서부터 퍼져나간 다양한 거점으로부터 식량을 일정비율씩 거둬들이고 있다고 한다. 마치 인간들이 세금을 내는 것과 닮은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가 보았던 인간 노예들은 정말로 인간들 사이에서 노예인 이들을 거둬들인 거라고 한다. 그들을 이용해서 코볼트들이 유용하게 사용하는 물품을 생산하고 건물을 건축하는데도 이용한다고 한다.

그들이 이렇게 인간처럼 세금을 걷거나 왕을 참칭하거나 인간들을 노예로 부리는 것에는 다름아닌 코볼트들의 왕이라고 칭하는 이가 황당하게도 인간들을 동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코볼트들이 인간들과 교류한지는 제법 되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들도 언제부터 인간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그들이 아니 지금의 왕이 태어나기 몇 세대 이전부터 교류해왔다고 한다.

지금의 코볼트의 왕이 인간들을 동경하게 된 계기는 인간들의 도시를 방문하고 난 뒤라고 한다. 코볼트가 몬스터니 그들의 도시를 방문하면 곧 공격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인류와 몬스터들로 분류가 되어있지만 그들끼리는 무조건 적인 적이 아니다. 당장 루프스가 이끄는 고블린들과 엘프처럼 그리고 이전에 쳐들어왔던 오크와 인간들처럼 서로 교류하고 있는게 그리 드문 일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공격받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공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때 당시 어렸던 코볼트의 왕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인간들이 사는 도시와 그들이 사는 부족은 척 보아도 확실한 문명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화려하고 커다란 인간들의 성곽도시를 본 코볼트는 그 순간 자신이 지내던 부족이 매우 초라하게 보였다.

그때부터 인간들을 동경하기 시작했던 그는 부족의 모습을 조금씩 바꿔가기 시작했다. 인간들과 닮은 건축물을 가지고 싶었던 그는 코볼트들에게 시켜보았지만 결과는 시원치않았다. 그런 건축물에 불만이 생긴 그는 코볼트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진행해 왔던 인간들에게 건축가 노예를 구할수 없는지 알아보았다.

그들과 교류하던 인간들은 코볼트에게는 다행이도 제대로 되먹은 이들이라고 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매우 큰 도적 조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 노예들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코볼트에게 노예들을 하나씩 전달해주기 시작했다. 코볼트는 그들에게 도착한 노예를 부려먹으면서 건축물을 짓기 시작했다.

코볼트는 부족에 지어진 건물들을 모두 인간들의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그들을 둘러싼 건물들은 모두 인간들의 건축양식을 이용한 건물들 뿐이었다. 오랜시간 유지되어온 그들의 문화는 그렇게 점점 사라져갔다. 그 때문에 코볼트들 중에서 오랜시간 살아온 이들은 불만을 표시헀지만 코볼트는 그들의 이야기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인간들을 이용해서 무구를 사용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코볼트들을 통치하고 있는거군. 게다가 코볼트들 중에서 다수는 그런 방식에 그리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있고'

어느새 불만의 토론장이 되어버린 자리에서 루프스는 떠났다. 그들에게서 얻은 정보는 매우 유용하지만 그렇다고 그곳에만 죽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가 있는 이곳이 코볼트의 왕이 거주하는 곳이라면 한번쯤은 꼭 그자를 확인하고자 했다.

자리를 떠난 그는 코볼트의 왕을 찾아 나섰고, 이 성에서 가장 거대한 문을 곧 발견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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