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이변
한밤중 코볼트들의 주둔지.
경계를 위한 보초를 제외한 코볼트들은 모두 잠이 든 시간이었다. 경계를 서는 코볼트들은 최근 고블린들을 파죽지세로 몰아치면서 그들의 속에 자신감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감과 자만심은 종이 한장 차이 라는 말이 있듯이 살짝 풀어진 분위기로 보초들끼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고블린 놈들,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는게 볼만하지 않았나? 컹컹컹"
"킁, 족장은 왜 그런 놈들을 상대하는데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모를정도로 한심한 모습이었지"
"그러고 보니 크룬님이 가지고 가셨던 무기, 언제쯤 우리가 들어 볼 수 있나?"
"그거, 우리가 못만든다던데 킁, 거래로만 받아온다더군"
"노예놈들 있잖아"
"그놈들이 가진 기술로는 만들기 어렵댄다"
"..."
"..."
처음엔 전방을 주시하면서 대화를 나누던 보초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긴장이 풀리고 서로 얼굴을 마주대면서 이야기 할 정도로 해이해졌다. 그렇게 집중이 풀렸을 무렵 그들의 거점의 땅이 흔들렸지만 그들이 그것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구구구구-
"어라? 컹, 땅이..."
콰가가가가가-!
푸화악-
그들이 땅의 울림에 이상을 느꼈을 때는 이미 그것이 땅을 뚫고 튀어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크허엉-!"
"캥-"
그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레 등장했다. 방금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소리 이외에는 고요하던 그들의 거점이 소란스러워 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소란스러워진 거점이 다시 조용해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조용해진 그들의 거점에서 나는 소리는 무언가가 코볼트들을 씹어먹는 소리만이 울렸다.
콰득- 콰직- 까드득-
///
루프스는 전령이 전달해온 소식을 들으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고블린들의 영역을 줄이면서까지 전선을 내린것이 확실히 효과가 있음이 입증 되었기 때문이다.
"엘라가 일을 잘 해주고 있나 보군. 그래서 놈들은 어떻게하고 있지?"
"키익, 우리쪽에 보초를 늘리고는 사라진 거점 근처로 순찰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끄덕 끄덕
"흠흠"
전령이 가지고 온 소식은 코볼트들의 거점이 하나씩 초토화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들의 거점이 하루에 적어도 하나 많을때는 세개까지 사라지자 코볼트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혹시 고블린들이 침투한것은 아닐까 그들의 영역 내부를 순찰 돌고 접경지역의 감시의 눈을 더 늘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을 감시하고 있는 것은 숲에서는 그 은밀함이 남다른 엘라와 그 부하들이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루프스는 그들의 거점을 그렇게 만든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들이 전선을 밑으로 내린것에는 놈의 존재가 이유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식귀라는 존재의 행동방식을 보면 한가지 특징이 보인다. 그가 이동하는 방향은 항상 그 쯔음 가장 많은 수의 생명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다. 즉, 코볼트들과의 전시가 아닌 평시상황이었다면 식귀는 그대로 부족을 향해서 남하했을 거라는 이야기 였다.
하지만 당시 가장 많은 생명체가 밀집한 장소는 고블린들과 코볼트들의 전투가 한창이던 이곳이었고 식귀도 이곳을 목적으로 북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위험지역을 벗어나서 이곳으로 내려온거지 크흐흐"
식귀는 근처에서 생명이 가장 많이 감지되는 곳을 향해서 이동한다. 그리고 가는 길에 위치한 다수의 생명을 감지한다면 그곳을 덮치고는 다시 목적지로 향한다. 때문에 그의 예상으로는 식귀는 이 근방을 한동안 벗어나지 않을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다는 듯이 식귀는 이곳에서 더 움직이지 않고, 여기저기 위치한 코볼트들의 거점을 가까운 순서로 습격하고 있었다.
"흐흐, 손도 안대고 코푸는 격이구만"
"?"
루프스는 바로 앞에 전령이 있는 것도 잊고 중얼거렸다.
그때 그의 움막으로 한 고블린이 더 들어왔다.
"족장"
"음? 아, 어서와라 스콘드. 너는 이만 가보거라"
그의 움막에 들어온것은 스콘드였다. 그가 움막에 들어오자 루프스는 전령을 밖으로 내보냈다.
"진행상황은 어떻지?"
"순조롭다. 조금만 더 있으면 준비가 끝난다"
"음, 너무 급하게 하지는 말거라, 놈을 언제까지나 풀어놓고 있을수는 없지만 아직 여유가 있으니 말이다"
"알고있다 족장, 그래도 준비는 미리 해두는게 좋다"
"확실하게 검토는 해놓고"
끄덕
잠시 그와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눈 뒤 스콘드는 작업을 위해서 밖으로 나섰다.
"자, 그럼 다음 단계로 나가 볼까?"
///
코볼트들의 거점이 무차별적으로 초토화되기 시작한지 벌써 한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코볼트들은 약 오십여개의 거점을 잃어버렸다. 하나하나의 거점이 고블린들에 비해서 두배에 가까운 수를 보유하고 있었다는걸 생각해보면 큰 피해였다. 게다가 습격을 저지하기 위해서 거점의 수를 줄이고 한 거점에 거주하는 수를 대폭 늘이는 방안까지 이용했다.
하지만 그들이 얻은 수확은 그들을 습격하는 놈의 외형과 가진 힘에 대한 것 뿐이었다. 한가지가 더 있다면 상대가 고블린들의 영역에서 날뛰었던 놈과 동일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아낸것 뿐이다.
그렇게 한 거점에 평소보다 많은 수가 거주하고 있었지만 그 어떤 거점도 녀석에게 유효한 피해를 내지 못했다. 그들도 이제는 거점을 초토화시키는 것이 고블린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을 감시하기위해 강화했던 전력을 뒤로 물려서 정체모를 적을 견제하려고 했지만 녀석은 그런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학살을 자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즈음 되자 고블린들도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전력이 줄어들자 전선의 양 끝에서부터 밀고 들어오기 시작한것이다. 처음에는 코볼트들도 고블린들 처럼 자신들의 전선을 뒤로 물리기 위해서 호응해줬다. 하지만 고블린들의 행동은 그들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크릉, 설마 이렇게 나올 줄이야"
고블린들은 코볼트들과의 전선을 밀어올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밀어 올렸지만 식귀가 출현하는 부근은 전선을 밀어올리면서 자연스럽게 포위진을 형성했다. 원래라면 어림도 없는 방법이었지만, 식귀에게 많은 피해를 입은 코볼트들은 그런 고블린들의 움직임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두 종족의 전선은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고블린들의 영역에 둥글게 포위한 전선과 그 위로 코볼트 부족과 맞닿아있는 전선까지 두개의 전선이 생겼다.
위쪽의 전선은 이전과 비슷한 양상이 벌어졌다. 코볼트들은 식귀에 의해서 전력이 줄어든데다가 고블린들의 포위진에 갇혀 포기한 병력으로 그들의 힘이 팍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들을 상대할 고블린들도 자신들의 영역에 만들어놓은 포위진을 유지하기 위해서 빠진 전력이 있었기에 전선의 상황은 규모만 줄어들었을 뿐 이전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
고블린들이 둥굴게 펼쳐놓은 포위진을 바라보면서 루프스는 긴장하고 있었다. 그동안은 잡아놓은 포로들과 스콘드의 시체들로 식귀의 움직임을 최대한 조절 했었다. 항상 성공하지는 않아 고블린들에게도 피해가 좀 있었지만 어떻게든 그들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스콘드"
"준비됐다. 족장이 명령만 내린다면 언제든지 시작 할 수 있다"
"엘라"
"코볼트들은 완전히 무력화 됐어요. 벌써 일주일째 제대로 된 음식을 섭취하지도 못해서 이제는 배고픔에 동족을 잡아먹기라도 할 기세던데요?"
"흠..."
잠시 생각에 잠겼던 루프스는 이내 고개를 들었다.
"시작하지"
나직이 흘러나오는 그의 말에 주변에 위치해있는 고블린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