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이변
촌장의 이야기가 끝나고 밖으로나온 루프스는 곧장 엘라와 함께 다시 부족으로 향했다. 둘은 부족에 도착할때까지 내내 한마디도 나누지 못하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이 짓고 있는 심각한 표정은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부족에 도착한 둘은 이내 부족 내부의 간부급 고블린들에게 그의 움막을 찾아오라고 지시해두었다. 원래라면 대부분의 간부급 고블린들은 전선에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메인 거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족을 무주공산으로 둘 수 없었던 루프스는 미리 몇몇 중급 고블린들에게 전선에 나서지 말고 이곳을 지키고 있으라고 지시해뒀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그 홀로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약한 조언이라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곧 그의 움막으로 고블린들이 찾아왔다. 루프스는 찾아온 고블린들에게 자신이 촌장에게서 듣고 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그렇게 되서 지금 상황은 기존에 생각하던것 보다 더 심각한 상태다. 일단 적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든 얻기는 했다. 하지만 녀석이 갑자기 부족 안에서 나타난다던지 어떻게 찾아내면서 발견할 경우 우리는 녀석과 싸워야만 한다. 그러니 어떻게 싸울 것인지 그에 대해서 너희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키이..."
"끄응"
루프스가 해준 이야기에 고블린들도 절로 얼굴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라면 자칫하다가는 코볼트들이 아니라 그 식귀라는 놈에게 부족이 전멸 할 상황이었다.
"그리고 너희가 오기 전에 다시 한번 전령이 왔었다. 전령의 말에 따르면 그 잠시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또다시 두개의 거점이 쑥대밭이 되고 생존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고 하더군"
그의 말에 움막에 모여있던 고블린들은 깜짝 놀랐다. 아직 여섯개의 거점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접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짧은 시간만에 또다시 두개의 거점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한 고블린들은 방금까지의 미약한 여유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조조조...조...족정! 어...어...어어떻...게 해야한다?!"
분명히 루프스는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모두와 이야기 하기 위해서 자리를 만들었을 텐데 겁에 질린 그들의 태도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것같은 모습이었다.
"후우... 그래서 이렇게 모여있는 거잖은가!"
그들의 실망스런 태도에 루프스는 저도 모르게 그들에게 호통을 쳤다. 호통을 친 루프스는 잠시 그들을 노려보면서 씩씩대더니 이내 심호흡으로 침착함을 되찾고는 그들에게 말했다.
꾹꾹
"그래서 너희들의 의견은 어떻지?"
골치아프다는 듯이 그리고 이제 그들에 대해서 전혀 기대하지 않을거라는 듯이 미간을 꾹꾹 누르면서 말했다.
"어... 힘으로 밀어붙이면 어떻게든 될거다!"
덩치 큰 고블린이 말했다.
"바보다! 그건 우리보다 크다! 그러니까 힘도 더 강할거다! 그러니 치고빠지면서 싸우면 된다!"
날렵해 보이는 고블린이 말했다.
"킷, 덩치가 크니 독을 먹이면 되지 않을까?"
입가를 천으로 가리고 있는 고블린이 말했다.
"불이다! 불로 태우면 아무리 강해도 잿더미가 되는걸 피할 수 없다!"
붉은 피부의 고블린이 말했다.
"으음..."
고블린들이 내는 의견들을 들으면서 루프스는 고심에 들어갔다. 지금의 사태는 지금까지 겪은 것과는 그 위험도가 다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그렇기에 부족을 만들면서 고블린들에게도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를 원해서 부족의 일은 조언 정도만 하고 나머지는 고블린들에게 맡기고 있었다. 그리고 매번 이런 중대한 일이 벌어지면 그들의 의견을 듣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시간 그저 먹고 자고 싸우고만 해온 시간이 유전자 단위로 박혀있는 것인지 그들이 내는 의견들은 대부분 이렇게 단편적이었다.
"그럼, 치고 빠지면서 녀석이 다른데 신경쓰지 못하게 하고 다른 능력들을 이용해서 치명타를 주는 방식이면 어떨까요?"
"음... 그게 가장 좋겠군. 다른 의견은 있나?"
혹시나 몰라 루프스가 고블린들에게 묻자 한 고블린이 말을 꺼냈다.
"족장! 함정을 이용하는건 어떤가?"
말을 꺼낸 고블린은 부족 내에서 가장 함정을 잘 만드는 고블린들 중에 하나였다.
"사용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당장 놈의 행적을 추적하는 것도 어려운 판이라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군... 그래도 한번 생각은 해보지"
"알았다. 족장"
"그럼 너희들은 언제든지 바로 전투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놈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 지금 당장 이곳에 나타날수도 있지. 녀석을 완전히 죽이기 전까지는 긴장을 풀지 말아라!"
루프스의 당부를 들은 고블린들은 그의 움막에서 부터 빠져나왔다.
"우리는 이제 놈을 어떻게 찾을지를 이야기를 해보지"
"그렇네요. 기껏 작전을 짜놓더라도 직접 만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니까요"
그녀의 말대로 일단 식귀를 상대 할 방침은 결정되었지만 식귀와 직접 대면하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고블린들에게는 어떻게든 하겠다고 이야기를 해두었지만 사실을 이야기 하자면 아직 구체적인 대안은 없는 상태였다.
"이번에 나타난 식귀는 그들 중에서도 약한 개체일 확률이 높다고 했지? 두더지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했던가"
"정확히는 두더지의 모습을 하고 두더지의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예요. 보통의 두더지들이 땅을 파는 이유는 지상에는 그들의 천적이 잔뜩있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땅속을 파고 다니는 거예요.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오는 지렁이나 곤충같은 걸 식량으로 삼고 있지요.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놈은 겉모습은 두더지지만 가진 힘은 두더지와는 비교가 되지를 않죠. 당연히 땅속을 파고다닐 이유도 없어요. 하지만 땅을 파고 다닌다는건 녀석이 아직 몸에 들어선지 얼마되지 않아 먹고있지 않을때는 몸의 습성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거지요. 즉, 자신의 몸을 제어할만한 의지가 아직 생기기 전이라는 뜻이예요"
"으음... 그럼 저게 더 성장한다면 나중에는 몸은 두더지라도 행동은 영 딴판이 될거라는 말인가?"
"그렇죠, 아마 그 시작이 밖에있는 생명체들을 찾아서 지상으로 튀어나오는 거겠죠. 원래 두더지는 지상으로는 잘 안나온다고 하잖아요?"
"즉 지상에 많은 생명의 존재를 감지한다면 밖으로 나올 수 도 있다는 이야기로군. 그럼 녀석은 어떻게 지상의 생명체들을 감지하는 거지?"
"떠오르는건 두가지 정도네요. 식귀들 특유의 생명감지 능력이 있을수도 있고, 단순히 걸으면서 저절로 나오는 땅울림을 감지했을수도 있겠죠"
"으음... 그러면 우리가 이용할수 있는것은 땅울림 뿐인가. 생명감지 능력이 있다면 무슨 수작을 부리기가 어렵겠지만 땅울림이라면 인위적으로 만들어낼수도 있을테니 말이야"
"일단은 그렇게 가정하고 행동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녀석들이 사라진지 너무 오랜시간이 지나서 제대로된 정보가 별로 없다는게 너무 아쉽네요"
"그래도 촌장이 어느정도 알고 있었으니 다행이지. 그 이외에 놈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드물테고 그 밖에 정보전달을 위한 매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것들이 대부분일게 분명하니 말이야. 그래도 녀석을 유인 할 가능성이 생겼다는건 좋은 일이군. 녀석을 함정에 빠트릴 수도 있으니 말이야 크크크"
일단 식귀를 어떻게 상대 할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마무리 되자 그날은 푹 쉬기로 했다. 지금 당장 나타나지 않는이상은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것도 사실이고, 녀석을 유인하고자 해도 여러가지로 준비할것들이 있었다. 게다가 유인한다고 끝이 아니라 식귀를 직접 상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전도 수립해야 한다. 일단 고블린들과의 이야기로 대략적인 방침은 정해졌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독을 사용할지 함정을 이용할지와 같은 방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가지만을 고집했다가는 큰 변수에 작전이 완전히 어그러질 수도 있다. 그렇기 떄문에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사용 할 수 있는 작전도 필요하니 당장 내일부터는 바빠질것이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