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코볼트
루프스가 합류하는 시기가 좋았는지 접경지역에 있는 코볼트들의 거점을 순차적으로 점령해 나갔다. 첫 거점 이후로는 중급 이상의 코볼트들이 위기감을 느꼈는지 항상 최소 둘 이상은 상주하고 있었지만 루프스가 나설 것도 없이 궁수대에 의해서 수월하게 상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점을 점점 점령하면서 동시에 루프스의 불안도 점점 늘어만 갔다. 거점에 남아있는 전력들이 충분히 코볼트들에게 있을법한 숫자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루프스를 습격하면서 줄어든 코볼트들이 제법 되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난 지금이라면 그 숫자가 접경지역에 충분히 보충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렇게 수월할리가 없는데"
루프스는 오히려 코볼트들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루프스를 습격한것처럼 새로운 수작을 부리고 있는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별일 아니면 좋겠지만, 그럴리는 없겠지"
지금까지 상대해온 몬스터들 중에서 코볼트는 특히나 영악한 녀석들이었다. 숫자가 모이면 바로 몰려가서 싸우는 랫맨들이나 영역 주변만을 어슬렁거릴 뿐인 트롤 그리고 자기 혈육도 못알아보는 오우거들과 비교하면 특히 그렇다. 그렇다면 지금 병력을 보충 할 수 있으면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밖에는 짐작되지 않는다.
루프스는 코볼트들에 대한 걱정이 앞서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그들을 내버려 둘수도 없다. 때문에 루프스 일행의 코볼트 거점 소탕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볼트들의 꿍꿍이 속을 알 수 있었다.
"뭐라고!"
루프스는 눈앞의 고블린이 하는 말에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호통이 절로 튀어나왔다.
"지금 영역 안의 비전투용 거점들이 공격받고 있다고?"
고블린이 가지고 온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전선을 잘 틀어막을뿐 아니라 코볼트들을 점점 밀어내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영역의 안에서 코볼트들이 튀어나왔다는 이야기니 충격을 안받을수가 없었다. 현재 전투를 이어가면서 고블린들은 거점을 전투용 거점과 비전투용 거점으로 구분했다. 적대종족과의 접경지역에 만들어진 거점이 전투거점 그 이외에 식량수급이나 부족 확장을 위해서 떨어져나가 생긴 거점들을 비전투용 거점으로 구분되고 있다. 즉 지금 코볼트들이 경계를 넘어서 영역의 내부에서 활개치고 다닌다는 뜻이었다.
"그것들이 어떻게!"
"그...그게 오우거 영역에서 튀어나왔다!"
"오우거 영역?"
"그...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다친녀석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건 생각 못했군..."
이전에 이야기했듯이 오우거들은 이 일대에서는 패자라고 할 정도로 월등한 강함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 때문인지 딱히 주변의 몬스터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마치 자신들이 딱히 식량이 필요치 않으면 일반 동물을 봐도 그대로 놓아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걸 이용해서 숨어들어갔던것이 아스드의 부족이었고, 이번에는 코볼트들이 그 점을 이용해서 쳐들어온 것이다.
"후우, 이제는 오우거 영역에도 거점을 지어놓아야 겠구만"
루프스는 점점 복잡해지는 상황에 절로 한숨이 나오고 손으로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래서 대처는 하고 있는건가?"
"대부분의 코볼트들을 감당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코볼트가 특출나게 강해서 곤란한 상황이다"
루프스는 특출난 코볼트라는 말에 그와 맞붙었던 상급 코볼트가 절로 떠올랐다. 그의 부상이 루프스보다 덜했기 때문에 이미 회복은 끝난 상황일 것이다. 확실히 그동안 거점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다른거점에 있는지 알았더니 영역 내부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끄응, 내가 직접 가봐야겠군"
지금의 고블린들로는 그 코볼트를 감당하기 어려움을 알고 있는 루프스는 자신이 직접 나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꺠달았다. 그에 지금까지 행동하던 고블린들 중 궁수대만을 데리고는 접경지역에서 떠났다. 지금까지 같이 다녔던 다른 고블린들은 이곳의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서 남겨두었다.
고블린들과 헤어져 궁수대와 함께 영역으로 돌아온 루프스는 먼저 습격받았다는 거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코볼트에 대한 단서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철저히도 파괴해놓고 갔군"
"족장, 여기서 뭐가 나오겠나?"
루프스들이 도착한 거점은 완전히 폐허로 변해 있었다. 영역 내부의 거점은 없는 시간을 짜내서라도 한번씩 들러봤던 루프스로서는 기억속 풍경의 흔적도 찾기 힘들정도로 처참히 파괴되어있었다.
"많이 바라진 않는다. 녀석들이 어디로 향했을지 짐작 할 수 있는 흔적만 찾을 수 있으면 된다"
고블린들은 루프스의 말이 끝나자 바로 흩어져서 흔적을 찾아나섰다. 이 거점에서 살던 고블린들의 시체들은 이미 다녀간 고블린들이 수습했기때문에 길거리에 시체가 널려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블린들이 무너진 움집의 내부에 있는 모든 시신을 수습하진 못했는지 잔해 사이로 살펴보면 그 시체들이 비교적 자주 눈에 띈다.
"이건..."
거점을 전체적으로 살펴본 결과 코볼트들이 모든 고블린들을 죽이겠다는 듯이 전투가 가능한 남성체 고블린은 물론 어린 고블린 여성 고블린 가릴 것 없이 모든 고블린들이 처참히 죽어있었다.
비전투용 거점이라고는 해도 전투가 불가능한 고블린들만 모여있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지키기 위한 일정한 수의 호위역의 고블린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영역 내부라고 해도 맹수나 떠돌이 몬스터들이 흘러들어오는 일이 없지는 않기 때문에 거점은 일정한 전투력을 갖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전투를 할 수 있는 고블린들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한듯 별다른 흔적도 없이 죽어있었다.
"족장! 저곳에서 대장이 무언갈 발견 했다고 한다!"
죽어있는 고블린들을 보며 순간 침통한 심정을 내보이던 루프스가 그 이야기에 소식을 전한 고블린을 얼른 따라갔다.
"프리트, 뭘 발견한 거지?"
"족장, 이걸 봐라!"
프리트가 가리킨것은 거점의 광장에 주저앉아 심장이 꿰뚫린채 죽어있는 고블린이었다. 그 고블린은 마치 고문이라도 당한 듯이 온몸이 난자당해 있었고 그 코와 귀는 어디로갔는지 잘려나간 단면만 보일뿐 온전한 형태를 남기지 못했다. 그리고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인지 다리도 절단 당했으며 안구도 적출되어 텅 빈 동공을 하고 있었다.
"큭, 코볼트 놈들 이런 짓을... 음?"
코볼트들이 잔인하게 괴롭히듯이 주인 고블린을 본 루프스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고 욕이 나올려 했지만 그때 프리트가 정확히 가리킨것이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최근 엘프들을 통해서 고블린 전체에 퍼지고 있는 문자였다. 이곳을 찾아올 다른 고블린들을 위해서 죽기 직전에 간신히 남긴듯이 구불구불한 형태의 문자는 '남쪽'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이 방위 또한 엘프들과의 접촉으로 같이 퍼진 여러 지식과 기술 중 하나로 이렇게 여러가지를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고블린은 부족에서 나와 거점에 자리잡은지 얼마 되지 않은 고블린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코볼트들은 고블린들이 문자를 쓸거라 생각하지는 못했는지 그저 한번 심장을 찌르고는 떠난듯이 문자를 지우려한 흔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놈들은 남쪽으로 갔다는거지... 이곳에서 남쪽은 거점 몇개만 더 지나면 우리 부족이랑 엘프 마을이 있는 곳인데... 그 놈들이 이녀석한테서 고문으로 정보를 빼냈나보군"
코볼트들이 노리는 것이 자신들의 주거점인 부족이라는 것을 확인한 루프스가 이를 까드득 갈더니 재빨리 다시 일어나서는 궁수대 고블린들을 이끌고는 부족이 있는 방향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하지만 부족에는 단체은닉으로 숨겨져 있으니 사실 코볼트들이 그곳을 찾기란 요원한 일이다. 그럼에도 루프스가 이렇게 급하게 달려가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우리 부족을 찾기는 어려울테니 그쪽은 걱정이 없지만 그 옆의 엘프들의 마을은 별다른 장치가 없으니 별 어려움 없이 찾을 수 있을 터, 우리가 얼른 가지 않으면 그들이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