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노예상인
"그렇다네"
루프스가 말을 건 엘프는 전체적으로 젊어보이는 엘프들 중에서 비교적 나이가 들어보이는 엘프였다. 나이가 들어보인다고는 해도 인간으로 치면 보통 20대 초반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다른 엘프들보다 많아보여 기껏해야 30대 정도로만 보일정도였지만 말이다.
루프스가 그녀에게 말을 걸은 것은 엘프들에게 제안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영역 안에서 마을을 세우는게 어떤가?"
"뭐라?"
루프스의 제안에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은 새로운 보금자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들을 잡아온 인간들이 떠나면서 그들의 마을이 있던 곳을 불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프스가 이들에게 제안하는 이유도 그들이 돌아갈 장소가 사라졌다는것을 두눈으로 확인했기에 그런것이다.
"왜 우리에게 그런 제안을 하는거지?"
마침 새로 마을을 세울 장소가 필요한 그들로서는 혹할수있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들을 도와주었다지만 몬스터와 교류한 적이 없는 그녀로서는 루프스를 의심 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상황을 살피건데 엘라들이 마을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막은이들로 추측된다. 그건 곧 그들이 인간을 막지 못했던 원인중 하나가 이들이라는 의미였다. 그런 그들을 일말의 의심없이 따른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요?"
"그렇다. 우리가 실행하는 실험은 다양한 식물들이 필요하다. 그걸 채집만으로 채우는건 힘든일이지. 그 일을 너희가 도와줬으면 해서말이야"
"우리는 살 장소를 제공받고 너희는 우리의 노동력을 받겠다는 건가?"
그 말에 루프스는 그녀의 말에 씨익 웃어보였다.
"그렇다고 봐도 좋겠지. 특히나 너희가 살던 곳의 나무들이 그렇게 빽빽히 자라게 된건 너희들의 작품이지? 그 능력을 이용해서 우리가 필요로하는 종류의 식물을 재배하게 해줬으면해서 말이야 식물을 직접 키운적이 없어서 그런지 잘 안된단 말이지. 식용이든 실험용이든"
"재배라니, 으음..."
그녀는 루프스의 말에 고심에 잠겼다. 일반 야생의 몬스터들은 모르겠지만 문명을 세운 몇몇 몬스터들은 직접 농사를 지어서 재배를 하기도 하니 그가 재배를 원하는것은 그리 놀랍지도 않은 사실이다.
"우리에게 원하는건 그것뿐인가?"
"뭐, 그것 외에도 이것 저것 알려준다면 좋겠지"
그가해주는 이야기에 잠시 고심에 잠긴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당신들의 영역에서라는건 우리를 지켜주기도 하는건가?"
그녀는 지금은 운이 좋게 구해질 수 있었지만 이렇게된 원인에는 마을내의 무력 부족했다는 것을 통감 하고있었다. 그녀는 상대가 인간이었다면 일말의 고려도 없이 거절했겠지만 그는 인간이 아닌 몬스터였다. 그리고 몬스터들은 대체로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대부분의 몬스터는 그럴 지능이 없고, 거짓말을 할 정도의 지능을 가진 몬스터들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 하지않는다는게 맞을것이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이야기에 거짓은 없다 생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한 것이다. 그리고 상대 인간들과 오크들을 수월하게 잡은 그들의 부족이 자신들을 지켜준다면 충분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만 하다는 계산하에 그에게 물었다.
"물론이지. 우리 영역에서는 우리가 허가하는 이들을 제외한 이들이 살아가게 용납하고 있지 않다"
"그럼 너의 제안을 받아 들이도록 하지"
그 말에 루프스는 흡족하게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이곳을 정리하면 우리를 따라와라"
그리고 루프스는 고블린들이 정리를 끝냈는지 확인했고 더 이상 살아있는 이도 없고 식량이나 무기로 보이는 물건들은 대충 분류해서는 그대로 마력차에 쑤셔넣었다.
고블린들은 엘프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 마력차를 움직이는 방법을 알아내서는 그것을 그대로 타고 부족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섰다.
///
루프스가 고블린들과 엘프들을 데리고 떠나고 그 다음날이 되자 전투흔적만 남아있는 자리의 한 천막의 밑에있는 흙이 들썩거리더니 그 흙을 뚫고 팔이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푸하-!"
흙을 뚫고 나온 팔은 곧이어 밑에 묻혀있는 몸을 끌고 올라오도록 했다. 그렇게 나타난 사람은 꾀죄죄한 몰골을 한 남성이었다.
"아오~씨! 이게 갑자기 무슨일이야? '잠복'이랑 '죽은척'이 아니었으면 죽을뻔했네"
잠복은 지형을 이용해서 숨는 상급 도둑계열 직업 '암영'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다. 그리고 죽은척은 외부에서 큰 충격이 오지 않는이상 깨어나지 않는 가사상태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공용기술이다.
"으- 이번 상행은 정말 대박이었는데, 갑자기 그런 대규모 습격이라니. 뭐, 하루는 숨어있었으니 이제 이 근방에는 없겠지"
그렇게 남성은 주변을 경계하듯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남아있는 적이 없는지 확인했다.
"아아, 직원들도 전부 죽어버렸고 무력만큼은 믿었던 오크들도 전멸해버렸으니 손해가 막심한데"
그는 푸념하면서 정말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큭큭, 그래도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운이 좋았어, 습격해온것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고블린인데 그것들 지금 위치 제보만으로 현상금이 얼마더라? 이거, 살아남은게 나밖에 없으니 현상금은 혼자 먹을 수 있는데 어쩌면 이게 더 행운일수도 있겠군. 정말 부직업으로 도둑계열을 가진건 좋은 선택이었어"
그렇게 홀로 웃고 있는 남성은 본래 이 노예상을 이끄는 책임자였다. 갑작스런 외부의 소란스러움에 이상함을 느끼고 천막에 숨어서 상황을 살피다가 승기가 없다고 판단하고 암영의 기술을 이용해서 땅속으로 숨어들어간 것이다.
"뭐, 정확히 어디에 살고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기서 출몰했다는것만 이야기해도 충분하겠지"
남성은 성장하지 못한 고블린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있어 이 근처에 서식해도 이상할 점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렇다면 그동안 발견되지 않은 점이 의아하다 생각했지만 별다른 의심없이 넘어가버렸다.
"자, 그럼 이제 그만 돌아가 볼까? 이제 나가기까지 하루거리에서 습격당하다니 운이 나쁜건지 좋은건지 모르겠구만"
그렇게 말하며 남성은 처참한 모습을 한 야영장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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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지에서 벗어나 부족으로 돌아간 루프스 일행은 추적했을 때와 비슷한 시간을 들여서 부족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길에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당연히 트롤의 영역을 지나치면서 많은 트롤들을 상대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오는길에 루프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는 경로에 마주치는 트롤들은 손쉽게 정리하면서 올 수 있었다.
부족에 돌아온 루프스는 일단 자신이 있는 부족의 근처에 엘프들이 살아갈 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그들은 풀려났지만 아직까지 잡혀간 충격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해 초췌한 표정으로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는데 집중했다. 동시에 고블린들에게서 식량의 종자를 가지고 가서 마을의 한편에다가 밭을 만들어 씨앗을 심고 있었다.
그렇게 근처에 엘프들의 마을이 생기자 잡혀왔던 이들도 상태가 안좋은 한명과 엘라를 제외한 두명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엘라의 경우는 아이를 낳으면서 다른 종족의 모습이지만 자신의 아이라는 점 때문에 모성이 생겼는지 부족에 남아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남아있던 두명 중 한명은 고블린들의 독을 다루는 기술이 늘어나 몸을 망치던 독을 해독하고 망쳐진 몸을 치료하면서 다른 포로로 잡혔던 엘프들 처럼 마을로 돌아갔다. 그리고 엘라는 아이를 키우면서 고블린 부족에 완전히 눌러 앉았지만 종종 엘프 마을을 찾아가 그들과 교류를 하였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다른 고블린들이 그녀를 따라 엘프 마을을 방문했고 점점 교류가 늘어났다.
엘프들도 대체로 숲에서 살아왔기에 기술이 발전했다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이제 막 원시의 때를 벗은듯한 고블린들과 비교해서는 월등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건 몰라도 부족의 주변에 퍼져있는 여러 거미나 섬유질의 식물을 이용해서 천을 만들어내는 기술만큼은 식물을 키워내는 기술만큼이나 그 어떤 종족도 따라오지 못 할 정도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술을 고블린들은 빠른 속도로 습득하고 있었다.
어느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고블린들과 엘프들은 서로를 대하는데 어색함이 완전히 사라졌고 하체에만 가죽을 두르는 수준이었던 고블린들의 복장도 변화되서 온전한 옷을 입은 모습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어느정도 원하던 식물들의 종자가 모여서 엘프들의 도움을 받아 독초와 약초를 키우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