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고블린
그는 피투성이의 고블린의 앞에 섰다. 그 고블린은 왼쪽팔은 오래전에 잘렸는지 상처가 아물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온 몸에 상처가 나있는 것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인상의 고블린이었다. 그리고 키가 좀 커지고 모습이 바뀌긴 했지만 그 고블린은 루프스가 익히 아는 상대였다.
"...아스드?"
"으음... 누구냐? 나를 아는거냐?"
"나다, 당신 무리에 속했었던 루프스다"
"루프스? 아아, 그 이름 기억에 있다. 너 랫맨과의 싸움 뒤로 새로 무리를 만든 녀석들 중 하나인가,"
상대는 한때 자신의 위에 서있던 고블린인 아스드였다. 그리고 그는 루프스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너도, 무리가 전멸했냐?"
"아니, 내 무리는 건재하다. 오히려 번성하고 있지"
"그런가..."
"무슨일이 있었던 건가?"
루프스가 그에게 묻자 그는 낮은 웃음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흐흐흐... 내가 알기로는 제대로 자리잡은 고블린은 없었다. 너희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게 무슨...?"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그가 겪은 그리고 그와 교류하던 고블린들이 겪은 그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곳에서 나와서 우리가 헤어질때까지는 기억하겠지?"
"그렇다"
"너는 곧바로 무리를 이끌고 갔으니 몰랐겠지만 우리는 둘에서 셋끼리 뭉쳐서 흩어졌었다. 그리고 각자 자리를 잡았지"
"교류했다는 이야기는?"
"부족을 세우고 퍼져서 정찰을 했다. 모두 생각보다 가까이 자리를 잡았었다. 예전처럼 한 부족이나 다름없이 지냈었다"
"그래서 왜 당신만 여기에 있는거지?"
"문제가 생겼었다. 주변 몬스터들이 불길한 움직임을 보인것이 시작이었다"
그것은 루프스도 감이 잡히는게 있었다. 느긋해 보였던 오크들은 모르겠지만 갑작스레 늑대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도 부족이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으음..."
"너도 걸리는게 있는가 보군"
"우리도 다른 몬스터가 어느순간 부족 근처로 점점 다가오더군"
"우리들도 시작은 그랬다. 우리들이 자리잡던 영역에 주된 몬스터들은 코볼트였지, 그리고 어느 순간 코볼트들이 부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열마리 정도가 공격해왔다. 그때는 수월히 막을 수 있었고, 랫맨들 같은 일이 있었으니 별일 아니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처럼 생활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점점 많은수가 공격해왔다. 우리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자 다른 부족들과 힘을 합쳤다. 하지만 다른 곳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힘을 합쳤지만 쳐들어오는 코볼트는 세배로 늘어나 있었다. 힘을 합친게 오히려 우릴 더 몰아세우는 일이 되버렸다.
결국 소수만 살아남아서 주변에서 가장 강한 녀석들이 살아가는 영역으로 넘어온 것이다. 그들을 두려워한 코볼트들이 우리를 공격하지 못할거라 생각한 거다. 하지만 결국 다시 쳐들어왔고 우리는 네가 아니었다면 전멸 할 뻔했다"
"아이들이 대부분인것도?"
"코볼트들과의 싸움에서 성체들은 대부분 전멸했다. 나는 팔이 잘리고 후방에 있다가 어떻게든 살아남은거다"
"오우거들이 잡아먹던 어린 고블린들은?"
"으음... 코볼트들이 오기 전에 먹을것을 찾으러 밖으로 나간 녀석들이군... 결국 그들에게 잡아먹힌건가..."
"음... 우리 부족으로 오겠는가?"
"키히히, 여기 어린놈들이나 데려가라. 나는 이미 틀렸다. 이번에 코볼트들을 막다가 얻은 상처가 좋지 않았는지 남은 손을 움직이지가 않는다. 그리고 다리 한쪽도 움직일 수 가 없다"
"당신이라면 강력한 전력이 될텐데..."
"키히히, 안돼는건 안돼는거다"
루프스는 한번의 축복을 더 받은것으로 추정되는 아스드를 데리고 가지 못하는 것에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안그래도 오우거의 영역에서 거동을 할 수 없는 부상자를 데리고 가는것은 큰 부담이라 그를 이곳에 두고 가기로 결정했다.
"고통없이 보내줄까?"
"그래, 그것도 좋겠다. 한번에 부탁한다"
그리고 그런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고블린들은 비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 자리에서 멀어져 둘만 있게 해줬다. 그들도 그동안 자신을 이끌어주던 그들의 족장이 한계가 가까워 졌고 이대로는 오우거들에게 잡아먹히든 아니면 다시 이곳에 찾아오는 코볼트들에게 죽임을 당하든 결국 죽는 길만이 남아있음을 이해한 것이다.
"남은 고블린들은 내가 잘 돌봐주마"
"그래, 고맙다"
그리고 아스드는 목을 앞으로 내밀었다. 루프스가 한번에 자르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
"잘가라, 그리고 예전 나를 무리에 받아줘서 고마웠다"
그렇게 말하고는 루프스는 곧바로 그의 목을 내리쳤다.
퍽-!
툭-
결국 그의 목은 그렇게 떨어졌다. 그리고 루프스는 그 자리에 서서 그동안 고생해온 그를 애도하고는 멀리 떨어져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고블린들을 향했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나와 함께 내 부족으로 돌아간다"
그 한마디만을 남기고 그는 앞장서서 동굴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고블린들을 이끌고 조심히 앞장섰다. 다행히 오우거들은 이 근처에 없는건지 오우거들의 영역인 숲속은 조용하기만 했다.
조용한 숲속에서 주변을 경계하면서 조심히 앞으로 나가는 루프스는 어느새 해가 다 떨어져 가는 사이에 영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영역을 빠져나온 그는 고블린들을 이끌고 곧장 자신의 부족으로 달려갔고, 부족에는 해가 완전히 떨어진 뒤에야 도착 할 수가 있었다.
별 문제없이 부족에 도착한 루프스는 부족의 고블린들에게 그들의 안내를 부탁하고는 자신의 움막으로 돌아갔다.
"으음... 코볼트들이라..."
움막으로 돌아온 루프스는 오랜만에 만난 아스드가 해 준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들을 공격해온 것은 코볼트들이었고 그들을 피해서 오우거의 영역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이 본래 자리잡은 장소가 이 근처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가까이 있는 오우거들의 영역에 있었다는 점과 코볼트들과 싸웠다는 점을 든다면 확장한 영역 내부에서 발견된 고블린들의 생활 흔적들이 그들의 부족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들을 치느라고 코볼트들이 움직였다면 가까이 있던 우리한테도 영향이 미쳤을 거고, 그게 늑대들이 우리 부족에 점점 가까워진것과 연관이 있는건가?"
당시 코볼트들이 고블린들을 치기 위해서 그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고블린들을 위협했지만 그것은 고블린들만이 아닌 가까이 있던 늑대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코볼트들과 가진 힘은 비슷하지만 그 수에서 밀리는 늑대들은 점점 원래의 영역에서 멀어졌고 그 멀어지는 방향이 하필이면 루프스의 부족이 있는 방향이었던 것이다.
"오크놈들은 그 때 소족장이라는 놈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영역을 확장하면서 우리랑 만나게 된거란건 알았지만 늑대들이 왜 움직였는지를 몰랐는데... 그게 코볼트들 때문이었나"
그렇게 고민하는 중에 루프스는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코볼트 놈들은 왜 아스드네 고블린들을 그렇게 공격한거지? 당시 그들의 수를 생각하면 그들에게 그렇게 위협이 되는 수가 아닐건데?"
그 때 이곳에 자리잡을 만한 고블린들의 수는 지금 자신들과 수가 비슷한 코볼트들과 비교할때 그렇게 많다고 볼 수 없었다.그들의 번식력도 뛰어나긴 하지만 그들도 마찬가지로 번식력이 뛰어난 랫맨들과 소모전으로 싸우느라 지금까지 수가 늘어나는 속도가 느려 당시에도 그 수는 지금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반도 안돼는 자신들보다 약한 고블린들에게 죽자사자 싸움을 건 것은 의문이 되기에 충분했다.
"혹시 그 이유가 밖의 고블린들이 멸종했다는 이야기랑 연관이 있는건가? 해가 뜨면 바로 그 녀석을 보러 가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