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오크

지금까지는 독이 작용해 힘이 다 빠진 오크들을 상대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럴 계획이었고 그렇게 되고 있었다. 하지만 오크 소족장의 외침과 함께 계획이 전부 어그러졌다.

갑작스러운 오크들의 돌변에 고블린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독으로 힘이 빠지고 죽어가던 오크들이 갑자기 회복한듯이 멀쩡한 모습으로 고블린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오크들의 힘을 온전히 받아내게 되니 고블린들은 오크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픽 픽 쓰러졌다.

실제로 오크들이 모든 독의 효과를 무시하게 된것은 아니다. 마비독을 맞은 오크의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몸이 굼떠지고 결국 못움직이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고통을 주거나 움직임에 지장을 주지않는 체내 이상을 일으키는 독의 경우는 무시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움직여대고 있다. 다만 이것들도 효과가 없지는 않은지 격렬히 움직이다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인다.

'격렬히 움직여서 독이 온몸으로 퍼져서 죽었나 보군. 그보다 축복을 못받은 고블린들로는 상대도 안되는데'

"치잇! 전부 뒤로 물러서라! 축복을 받은 녀석들만 나서서 싸워라!"

루프스의 지시에 오크들에게 대항도 제대로 못하고 있던 대부분의 고블린들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들의 빈자리를 오크들과 맞상대를 할 수 있는 하급 고블린들로 채웠다. 고블린들은 오크들을 상대하면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민첩성을 활용해 싸우기 시작했다. 오크들의 맷집은 기본적으로 고블린들이 한두번 피해를 주는 걸로는 티도 나지 않는 상대다. 그래서 고블린들은 오크들을 상대하는데 직접 죽이는 것보다는 몸속에 퍼져있는 독들이 오크들의 몸을 잠식해서 죽이는것을 노리는 것이다.

그렇게 고블린들이 오크들의 공격을 회피하며 상대하는 그 순간 루프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갑작스레 오크들이 변한 원인인 오크 소족장을 상대하러 나섰다. 오크는 외침을 내뱉은 뒤로는 그 자신도 다른 오크들과 마찬가지로 미친듯이 주변에 있는 고블린들을 공격했다.

고블린들을 뒤로 물렸음에도 그 잠깐 사이에 자신의 주변을 시체로 쌓아놓은 오크는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고블린들이 빠져 주위에 공백이 생긴 오크는 일순 멈칫하고 가까이있는 고블린을 찾아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루프스가 오크를 공격한 순간은 그때였다.

"흐압!"

갑작스레 들리는 소리에 오크가 뒤로 돌며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고 있는 도끼를 막아냈다. 하지만 도끼는 아무 저항 없이 막아낸 도끼를 통과하더니 공격해온 모습과 함께 사라졌다. 예상치못한 상황에 잠시 멈칫했고 그 순간 목을 향해 휘둘러진 도끼가 상처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역시 맷집이 강한 탓인지 루프스의 공격으로도 제대로된 피해를 주지는 못하고 목에 조금 깊은 생채기가 난 수준의 상처만으로 끝났다.

'크윽... 저릿하군. 오크의 몸은 뭘로 만들어진건지 바위를 친 느낌이군'

운 좋게 기회를 포착하고 곧 바로 공격한 것은 좋았지만 온힘을 다 한 공격에도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공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걸 보니 이녀석은 축복을 받은 적이 있는 오크인가보군. 중급에 올라섰는데도 저번보다 더 데미지를 주지 못한것 같으니...'

루프스는 전력을 다한 공격이 피해를 주지 못하자 단시간에 끝내려던 생각을 고쳐먹었다.

'별수없이 장기전으로 가야겠군. 그런데 저 무지막지한 놈이 장기전에 지치기는 할까?'

"쿠오오오오-!

부웅-

오크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 지 고민하는 사이에 오크는 자신에게 공격을 한 루프스를 죽이기 위해서 무기를 휘둘렀다. 오크의 공격을 루프스는 수월하게 막았다... 아니 수월하게 막을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크-헉-!"

분명히 공격을 제대로 받아쳤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허공을 날고 있었다. 오크의 힘이 너무 강해 무기로 막았음에도 그 힘을 감당치 못하고 온몸이 통째로 밀려나다 못해 날아가 버린것이다.

날아가던 몸이 바닥에 부딪히면서 루프스는 순간적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지 않고 호흡까지도 힘들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마력운용 스킬을 배우게 되면서 회복이 비교적 빠르게 되고 있다는 점이다.

완전히 날아가 쓰러져버린 루프스를 본 오크는 귀찮은 적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가까이갔다. 가까이 다가간 오크는 그대로 무기를 휘둘렀다. 온몸이 엉망진창인 루프스는 오크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온 힘을 다해서 굴렀다.

"크-흣!"

쾅!

"흡!"

쾅!

루프스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가지고 계속되는 오크의 공격을 피해냈다. 다행히 오크의 힘은 대적하기 힘들정도로 강했지만 그 움직임은 다른 오크들과 비교해서도 굼뜬 편이었다. 덕분에 충분히 오크의 공격을 피해 낼 수 있었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해내면서 어느새 온몸에 가해졌던 충격이 완화되고 날려지면서 난 상처들에서 출혈이 멈췄다.

몸이 어느정도 회복하자 그대로 오크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몸을 일으켰다.

오크의 힘에 큰 낭패를 본 루프스는 절대 오크의 공격을 정면으로 막아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크가 공격을 해오면 그 범위에서 재빨리 벗어나고 공격후의 빈틈이 드러난 오크를 향해 공격을 하는 전법을 취했다. 간혹 피하기 어려운 상태에서의 공격은 온 신경을 쏟아서 힘을 흘려보낼 수 있게 받아쳐냈다. 그렇게 한번씩 받아 쳐낼 때마다 팔에 큰 충격이 가해지는 문제가 있었지만 어떻게든 막아 낼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수십 차례 받아쳐내다 보니 반가운 메세지가 들렸다.

[부술이 3단계로 상승했습니다.]

상대의 공격을 정면으로 막을 수 없어 무리해서 흘려막다 보니 부술이 3단계로 올라섰다. 그렇게 되자 공격을 받아내는데 부담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흘러내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이어갈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 공격을 흘려낼때마다 받았던 충격들도 이제 부담되지 않는 미세한 충격만이 남게 되었다.

그렇게 상대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할수 있게 되자 상황은 바뀌었다. 이제는 굳이 큰 동작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할 필요가 없이 그저 받아쳐서 방어하는 걸로 충분해졌다. 그리고 부술의 능력이 늘어나면서 상대의 공격을 흘려내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빈틈을 충분히 찌를 수 있는 실력을 얻게 되었다. 거기에 공격을 할 때 능력을 더해서 사용하자 오크는 속수무책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상대를 밀어붙이는 것이 가능해지자 루프스는 거기에 자신의 능력을 추가해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크가 공격을 휘둘러오면 그대로 흘려서 방어하고 곧장 반격을 하는데 그 순간 능력을 사용해 자신의 공격 방향에 혼란을 주는 식으로 사용하였다. 거기에 공격을 당해 혼란해하는 오크의 주변에 분신들을 만들어내서 공격 대상에 혼란을 주고 분신을 공격한다면 한번 더 공격을 본체를 공격한다면 방금 상황의 반복이 되는 방식으로 싸워나갔다.

그렇게 되자 아무리 루프스에 비해서 강력한 힘에 단단한 맷집을 가지고 있는 오크라고 할 지라도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새 온몸에 공격을 받아 상처가 나지 않은 부분이 없고 처음에 빠르게 회복되던 상처들도 어느새 회복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더 이상 몸속으로 침투된 독을 버티지 못하게 된건지 비틀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었다. 독에 더이상 저항이 힘들어지는 모습을 보이자 루프스는 공격을 할 때 자신의 주변에 가지고 있던 독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공격해갔다.

"그어...어...어... 내...가 이렇...게 끝나...다니... 이럴 수....는...없...."

결국 온몸에 퍼진 상처와 주변에 퍼진 독으로 오크는 격전 끝에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오크와의 전투가 끝나고 루프스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오크의 공격을 막으면서 점점 쌓인 충격과 회피해내지 못해 생겨났던 상처가 나있었다. 거기에 이기기 위해서 자신의 주변에 독까지 풀어놓았다. 다행히 중급에 올라서면서 독에대한 저항도 올랐는지 독에 큰 피해를 입는 경우는 없었단 거다. 그리고 혹시 몰라 전투가 끝나고 최우선으로 만들어낸 독의 해독제를 먼저 마셔 독에의한 피해는 더이상 생기지 않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두머리끼리의 싸움이 일단락 되자 주변의 싸움도 정리가 되가고 있었다. 오크들이 특수한 효과에 의해서 온전한 힘을 발하고 있긴 했지만 독이 없어지진 않았기에 고블린들이 공격을 피하면서 시간을 벌자 하나 둘씩 쓰러졌고 그렇게 남아버린 고블린들은 주변의 고블린들을 도와서 오크들을 쓰러트려왔다. 그렇게 결국 최후의 오크도 쓰러트릴 수 있었다.

"드디어! 오크들을 물리쳤다! 이제 주변에서 우리에게 위협이되는건 전부 사라졌다!"

"캬아아아! 루!프!스! 루!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