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350화 (350/351)

350화.  < 카르멕의 속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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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을 완성한 반태수는 이면세계에서의 감각을 다시 되찾았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이 온몸에 꽉 채워졌다.

필라델피아에 만든 시스템의 범위는 제법 넓었다.

일단 미국 전역을 커버하는 건 당연했고, 브라질 북부와 캐나다 남부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범위에 걸쳐 영향력을 펼칠 수 있었다.

일단 시스템을 하나 완성하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지구 전역을 시스템 안에 넣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려면 달에도 시스템을 설치해야 한다.

반태수는 과연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가능하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번에 시스템을 하나 만들면서 또 한 번 벽을 넘었다.

게다가 새로운 지식도 받았다.

양은 많지 않지만 알짜 지식들이었다.

물론 영혼에 관한 지식은 없었다. 아무래도 그 지식은 끝까지 넘어오지 않을 모양이다.

반태수는 직감적으로 이제 남은 지식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 남은 지식 안에 영혼에 관한 지식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마 남은 지식은 속성 종족에 관한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카르멕이 속성 종족을 만들어냈는데, 그에 관한 지식이 거의 오지 않았다.

그러니 남은 지식은 뒷부분에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생각에 잠겨 있는 반태수를 빤히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아리아나였다.

그녀는 시스템을 완성한 뒤로 반태수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시간이야 아주 많았다.

회사를 몇 개 갖고 있긴 하지만 그녀가 없어도 알아서 잘 돌아가고, 꼭 결재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온라인으로 하면 된다.

그녀를 찾는 사람이 많았지만, 아쉬울 것이 없었기에 대부분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고.

오늘도 반태수 옆에서 눈을 반짝이며 또 무슨 일을 할지 기대하는 중이었다.

그녀가 이러는 것은 반태수를 만난 이후 벌써 벽을 두 번이나 넘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우연이라고 쳐도 두 번째는 결코 우연 따위가 아니었다.

시스템을 완성한 순간 벽을 넘었으니까.

다만, 그녀는 시스템을 같이 완성했는데, 그 힘을 쓸 수는 없었다.

이면세계의 트릴린드라에 있던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연산보조만 조금 쓸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연산보조는 누구든 쓸 수 있었다.

물론 반태수가 허락해서 시스템이 등록을 해야 하지만.

아무튼 그렇기에 아리아나는 시스템의 힘을 쓰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만들면서 얻는 경험치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것이 자신이 또 벽을 넘을 수 있게 해주는 열쇠라고 믿었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반태수가 상념을 접고 아리아나를 쳐다봤다.

“왜 그렇게 보는 거지?”

"다음 시스템은 언제 어디에 만들 건지 궁금해서요.”

"한국에 만들까 생각 중이야.”

자리가 넉넉한 경기도 어디쯤에 만들면 될 듯했다.

명목은 연구소 정도로 하고 디자인은 좀 고민을 해봐야 한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것과 똑같이 만들면 눈에 띄니까.

반태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아리아나를 보며 물었다.

“아, 너 코어가 왜 이렇게 커? 이젠 나보다 더 큰 것 같은데?”

“아아, 코어요. 처음에 무상으로 받았으니까요.”

"무상으로 받아?”

"계약 기념으로 코어를 만들어줬어요. 사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할 테니까 그랬던 거겠지만.”

"카르멕이 코어를 만들어줬다고? 어떻게?”

"그냥 되던데요? 갑자기 코어가 생겼고, 그걸 다룰 수 있게 되었어요. 바로 마법 지식이 넘어왔고.”

"잠깐 코어 좀 자세히 살펴도 되나?”

"그럼요. 얼마든지 하세요.”

아리아나는 그렇게 말하며 상의를 올려 배가 드러나게 했다.

그러면서 부끄러운 듯 살짝 얼굴을 붉혔는데, 그 모습이 또 굉장히 유혹적이었다.

타고난 건지, 아니면 일부러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반태수는 거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얼른 코어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반태수가 아리아나의 배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아리아나의 코어를 헤집으면서 내부를 확인했다.

‘역시.’

카르멕에게 코어를 받았다고 해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 코어의 중심부에 카르멕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카르멕이 의도를 가지고 흔적을 남긴 것 같지는 않고, 코어를 강제로 심어주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남은 흔적으로 보였다.

아리아나의 코어에는 카르멕이 남긴 영혼의 조각이 남아 있었다.

한데 그 흔적이 점점 사라지는 중이었다.

반태수는 자신이 왜 처음에 아리아나에게 아무런 욕망을 못 느꼈는지 이제야 이해했다.

이 영혼의 조각 때문이었다.

자신이 카르멕에게 가지는 반감이 욕망을 넘어설 정도로 컸기 때문이었다.

한데 카르멕의 힘이 자연스럽게 줄어들면서 욕망이 더 강해진 것이고.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아리아나 본연의 매력 때문에 반태수의 욕망이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아리아나는 반태수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다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뭔가 문제가 있나요?”

반태수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당장 문제가 있긴 한데, 그냥 내버려 두면 자연스럽게 없어질 문제야.”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 하지 않나요? 그냥 내버려 둬도 괜찮을까요?”

반태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코어에 카르멕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게 점점 사라지고 있으니까 기다리기만 하면 해결 돼. 찝찝하면 당장 없애줄 수는 있는데, 그럼 코어가 줄어들어.”

"아……."

아리아나는 고민에 빠졌다. 카르멕의 흔적이 코어에 남아 있는 건 싫었다. 하지만 그걸 없애면 코어가 줄어든다고 하니 고민이 되는 게 당연했다.

"코어가 얼마나 줄어드는데요?”

“10%쯤?”

"많네요.”

아리아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단호히 말했다.

"지워주세요.”

“정말? 괜찮겠어?”

"흔적을 잠시라도 남기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반태수는 이해하지 못했다. 반태수 입장에서는 그냥 기다리면 해결되는 일이라서 그녀의 선택이 합리적이지 않게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반태수는 바로 코어에서 카르멕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영혼의 감각을 얻지 못했으면 이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카르멕의 흔적 자체가 영혼과 관계된 것이었으니까.

반태수는 아주 세심하고 정교하게 카르멕의 흔적을 싹 지워버렸다.

예상보다 코어가 많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5% 정도 사라졌다. 마법사 입장에서는 굉장히 뼈아픈 양이었다.

아리아나는 카르멕의 흔적이 사라진 순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 해방감이 그녀에게 또 한 차례의 깨달음을 전해 주었다.

벽을 넘은 것이다.

5%의 투자로 더 큰 것을 얻어냈다.

아리아나는 그날, 내친 김에 마력회로까지 새겨달라고 했다.

반태수는 흔쾌히 마력회로를 심어 주었고, 자연스럽게 그녀와 마력을 섞었다.

진짜 마법사와 마력을 섞는 것은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마력이 섞이는 동안 두 개의 코어가 공명했다.

그 공명이 훨씬 더 큰 쾌락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나중에 확인했을 때, 마력 코어가 미세하게 성장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의미가 거의 없을 정도로 미세한 양이었지만, 이것이 반복되어서 계속 쌓이면 결국은 의미가 생기지 않겠는가.

그 뒤로 두 사람은 함께 세계를 돌아다니며 매일 밤 마력을 섞었다.

그러면서 세계 곳곳에 시스템을 만들어 나갔다.

이면세계에서처럼 다섯 개의 시스템으로 지구 전체를 커버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양한 시스템을 많이 도입해 효율도 높이고 성능도 높이는 방식을 택했다.

설사 중간에 시스템 몇 개가 망가지더라도 다른 연계를 통해 빈자리를 메울 수 있도록 설계했다.

카르멕이 설계한 시스템과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건 반태수가 전혀 예상치 못한 효과까지 불러왔다.

영혼의 성장이 훨씬 빠르고 깊어진 것이다.

그렇게 지구의 시스템이 점점 완성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

지구의 시스템이 완성된 순간, 반태수는 카르멕이 남긴 마지막 지식들을 받을 수 있었다.

역시나 영혼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마지막 지식은 속성 종족에 대한 것들이었다.

정확히는 속성 종족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지식이었다.

카르멕은 놀랍게도 마법을 이용해 유전자 조작을 했다. 강제로 돌연변이를 만들어내고 그 돌연변이가 유전되도록 조작을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속성을 유전 정보에 끼워넣어 속성 종족을 만들어냈다.

굉장히 비인도적인 과정을 통해 속성 종족을 만들어냈고, 다양한 방식으로 번식 시켰다.

속성에 따라 번식이 잘 되는 종족이 있고, 잘 안 되는 종족이 있었다.

그래서 희귀한 종족과 그렇지 않은 종족으로 나뉜 것이다.

그럼 카르멕은 대체 이 속성 종족들을 왜 만들었을까?

놀랍게도 속성력을 효과적으로 뽑아내기 위해서였다.

카르멕은 이들을 가축처럼 관리했다.

실제로 지식 안에 속성 종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뽑아낸 속성력을 이용해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 속성력들을 적절히 섞고 꼬아서 연구를 하다가 영혼과 관계된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이 카르멕이 준 모든 지식 중에 유일하게 영혼에 관해 언급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초록색 관에 들어가면서 속성 종족을 방치해서 지금 이 상황이 된 거구나.’

반태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속성 종족들은 왜 자신을 왕처럼 대하는 걸까?

속성 종족들이 과거에 카르멕을 왕처럼 대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극도로 공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래 가축들은 주인을 공경하지 않는다.

가축 취급을 하는데 카르멕을 공경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럼 속성 종족들이 만든 의자에 한 번 앉아도 되는 거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혼에 대한 지식과 깨달음이 많아지면서 카르멕이 뭘 노리고 있는 건지 어렴풋하게 감이 오기 시작했다.

이 모든 걸 확인하려면 이면세계에 한 번 다녀와야 한다.

가서 속성 종족의 의자도 확인하고, 카르멕도 만나고 말이다.

카르멕의 속셈은 그를 직접 만나면 아마 시원하게 해결될 것 같았다.

반태수는 일단 이면세계로 가기 전에 자신의 몸에 새롭게 설계한 마력회로를 촘촘하게 새기기로 했다.

이번엔 영혼의 힘까지 이용할 수 있는 굉장히 고차원적인 마력회로가 될 것이다.

어쩌면 한 번에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하면 될 때까지 무한히 반복하면 언젠가는 성공하지 않겠나.

반태수의 눈에 결연함이 맴돌았다.

이제 진짜 마무리를 지을 때가 되었다.

***

반태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면세계로 넘어갔다.

이제 굳이 포탈을 이용할 필요도 없었다.

포탈은 충분히 분석했고, 똑같이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니 굳이 포탈을 제작하지 않고 직접 마법을 써서 이면세계로 넘어가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공간이동에 이어 차원이동까지 섭렵한 것이다.

반태수는 카르멕과 속성 종족 중 누굴 먼저 만날 것이냐 잠시 고민하고 결정을 내렸다.

속성 종족을 먼저 만나기로.

이제 의자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그러니 그것부터 알아보고 그 다음 카르멕을 만나 속셈을 확인하면 끝난다.

카르멕을 만난 순간부터 영혼의 융합이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아마 그게 카르멕의 설계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반태수는 그 부분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걸 방비하기 위해 마력회로를 새로 새겼으니까.

반태수는 공간이동을 통해 속성 종족이 머무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속성 종족들이 놀란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는 그들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는 그냥 위로 올라갔다.

꼭대기 층에 있는 의자를 직접 보고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도 영역화를 통해 얼마든지 확인이 가능하지만 일말의 빈틈도 허용하고 싶지 않아 직접 보고 분석하기로 한 것이다.

건물에 남아 있던 속성 종족들은 평소와 좀 다른 반태수의 모습에 당황하며 얼른 뒤를 따랐다.

이내 반태수가 꼭대기 층에 도착해 의자 앞으로 다가갔다.

뒤따라온 속성 종족들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드디어 반태수가 의자에 앉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반태수는 그저 손바닥을 의자에 갖다 대고 분석만 했다.

당연히 의자에 앉을 생각 따위는 요만큼도 없었다.

의자를 분석하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영혼의 감각이 있으면 이 의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바로 파악이 가능할 정도로 실제 구조가 단순했다.

그저 단순한 마법사가 분석한다면 굉장히 복잡하고 난해하게 여겨질 것이다.

다양한 속성이 이리저리 복잡하게 꼬이고 얽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영혼의 힘을 쓰기 위한 발판이었다. 그 복잡함을 굳이 하나하나 뜯어서 파악할 필요가 없었다.

'하, 그런 거였구나.’

속성 종족들의 속셈을 확실히 알았다.

이 의자는 영혼을 단단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반태수의 영혼과 카르멕의 영혼이 융합했을 때, 이 의자에 앉으면 그 융합을 마치 하나의 영혼처럼 만들어 버린다는 뜻이다.

이들이 원하는 건, 카르멕이 다시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반태수의 영혼과 카르멕의 영혼이 완벽하게 융합해서 하나가 되면 카르멕이 다시는 등장할 수 없을 거라고 믿는 모양이다.

그러니 이런 의자를 만들었겠지.

반태수는 이 의자에 앉을 생각이 아예 없었다. 원래도 꺼림칙했는데, 이젠 절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누구 마음대로 자신의 영혼을 건드리려고 한단 말인가.

그런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의자를 분석하면서 카르멕의 속셈을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반태수가 뒤로 물러나자, 여기까지 따라온 속성 종족들이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반태수는 속성 종족들을 슥 둘러봤다.

저들이 자신을 왕처럼 대하는 이유도 알았다.

카르멕의 영혼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영혼이 반태수에게 융합되어 있으니 반태수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은 반태수가 자신들을 가축취급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왔다.

반태수는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히 가축 취급할 생각도 없었고.

반태수는 망설임 없이 그곳을 떠났다.

공간이동을 통해 트릴린드라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반태수가 떠나고 잠시 지나자, 그곳에 있던 의자가 갑자기 조각조각 찢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그곳에는 의자 대신 그 잔해만 남았다.

속성 종족들은 그 광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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