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343화 (343/351)

343화.  < 장로원의 방문 >

==========================

지상은 전후 정리가 한창이었다.

타노로스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 피해가 없는 도시는 혹시 있을지 모를 타노로스의 테러에 대비해 도시의 순찰을 강화했다.

피해를 입은 도시는 복구를 진행하면서 피해자 구제책을 준비했다.

5대 가문이 막대한 지원을 통해 복구에 도움을 주었고.

전쟁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에 대한 논공행상도 빠르게 처리 되었다.

그 과정에서 영웅을 만들어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5대 가문은 물론이고 가신 가문들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니 뭘 하든 빠르고 확실하게 처리 되었다.

반태수의 우주전함이 지상에 착륙한 것은 막 그 과정을 시작할 때였다.

우주전함이 지상에 착륙하고 일행이 모두 내리자, 바로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일행은 지상에 발을 디딘 후에도 한동안 몽롱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마치 꿈과 같은 시간이었다.

물론 위험하긴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충실하고 짜릿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을 경험할 수 있을까?

아마 어렵지 않을까?

타노로스와의 전쟁에서는 승리했다.

앞으로 한동안 타노로스는 활동을 중지하게 될 것이다.

"그나저나 타노로스를 완벽하게 박멸해야 하는데, 그걸 아직 못 한 게 아쉽군. 아마 이놈들 꽁꽁 숨어서 앞으로는 찾기가 거의 불가능해질 텐데 말이야.”

데드릭 벨크리스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일행 중에서 가장 표정이 좋은 사람이 바로 데드릭 벨크리스였다.

그는 이번 전쟁을 통해 타노로스에게 가졌던 트라우마를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예전에는 타노로스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얼굴에 어딘가 어두운 구석이 있었는데, 지금은 묘하게 후련한 표정이었다.

"전쟁이 끝났으니 한동안은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빨라봐야…… 50년?”

살라자 샤마쉬의 말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살짝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의 패턴을 보면 그렇겠지. 뭐…… 더 빨라질 수도 있고.”

"그래도 최소한 영감님이 다시 싸울 일은 없을 겁니다.”

"그야 그렇겠지. 나보다는 내 밑에 있는 놈들이 잘 해줘야지, 이제.”

살라자 샤마쉬가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니 영감님도 이제 좀 전부 내려놓으시고 인생을 즐기시죠. 남은 날도 얼마 안 되는데, 언제까지 그놈들 뒤꽁무니만 쫓아다닐 수는 없잖습니까. 좋은 경치도 보고, 유흥도 즐기면서 살아도 모자란 시간인데.”

데드릭 벨크리스가 히죽 웃었다.

"그렇지. 네가 이제 뭘 좀 아는구나.”

“그리고 혹시 압니까? 늘그막에 좋은 짝이 나타날지.”

데드릭 벨크리스가 인상을 팍 썼다.

"야, 그건 아니지.”

"아니긴요. 전 제법 기대 중입니다. 언젠가 영감님도 임자를 한 번 만나지 않겠습니까?”

"그거 욕이냐?”

살라자 샤마쉬는 대답하지 않았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발끈하려는데 반태수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전쟁 하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오늘은 각자 돌아가서 푹 쉬죠.”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우주에서 싸우면서 흥분하긴 했지만 그러면서 피로도 차곡차곡 쌓였다.

이제 당분간 푹 쉬면서 쌓인 피로를 쫙 풀어줘야 한다.

"따로 가고 싶은 곳 없으시면 제가 다들 집으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반태수의 말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난 너희 집으로 갈 건데?”

“예?"

"나도.”

살라자 샤마쉬도 손을 들었다.

반태수는 나머지 사람들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들은 굳이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데드릭 벨크리스나 살라자 샤마쉬는 크랙톤에 올 일이 반태수와의 일 아니면 거의 없었다.

그러니 따로 저택이나 별장이 있긴 하지만, 편안한 집이라고 여기기엔 거리가 멀었다.

그냥 여기 왔을 때, 머무를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반태수와 커피, 토스트가 있는 반태수의 저택이 훨씬 편안한 장소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크랙톤에 그럴듯한 근거지가 있으니 거기서 쉬는 것이 좀 더 마음이 편했고.

반태수는 일행을 슥 둘러본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러죠.”

지상에 있으면 시스템의 힘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어서 참으로 편리하다.

반태수는 다중 공간이동을 통해 모든 사람을 각자의 저택 건물 앞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와 함께 자신의 저택으로 이동했고.

이제 공간이동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어차피 우주에서 전투를 할 때, 몇 번이나 보여주기도 했고.

저택에 도착한 반태수는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씻었다.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각자의 방으로 가서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

다음 날, 다들 홀린 듯이 반태수의 저택으로 모였다.

반태수는 개운하게 일어나서 가볍게 씻고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었다.

한데 함께 우주에서 싸웠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온 것이다.

한데 다들 밥도 안 먹고 일어나자마자 바로 나온 모양이었다.

"아니, 뭐가 그리 급하다고 밥도 안 먹고 왔습니까?”

반태수가 오스윈 프리든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에게만 말한 것이 아니라 그와 나란히 서 있는 페일라 린치필드, 안드렐라 윌렉스도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그냥…… 왠지 일어나자마자 바로 이리로 와야 할 것 같았습니다.”

오스윈 프리든의 말에 페일라 린치필드와 안드렐라 윌렉스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도 마찬가지 이유라는 뜻이다.

반태수는 피식 웃으며 그 세 사람의 뒤쪽에 서 있는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를 쳐다봤다.

"우린 그냥 커피나 한 잔 얻어 마시려고.”

데드릭 벨크리스의 표정은 앞에 있는 세 사람과 똑같았지만, 말은 그렇게 했다.

아마 다들 그런 마음이 든 모양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전투 하면서 생긴 전우애 같은 건가?

아무튼 반태수는 일단 커피부터 한 잔씩 돌렸다.

한동안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제 뭐 할 거냐?”

타노로스도 잡았고, 셰딤은 그보다 먼저 잡았다.

거기에 부와 명성도 얻었다.

생각해보면 이제 더 할 것도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모험을 빙자한 여행 정도?

다들 대답이 궁금해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마법 연구해야죠. 공부할 게 얼마나 많은데.”

데드릭 벨크리스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마법에 목숨이라도 걸었어? 더 할 마법 연구가 있어?”

"마법의 세계는 무궁무진합니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은근한 표정으로 반태수에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나랑 장로원이나 털어보자.”

“예? 장로원을요?”

"그래. 장로원, 아무리 생각해도 뒤가 구려. 너 정도 실력의 마법사가 도와주면 아마 생각보다 수월하게 털 수 있을 거다."

반태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이 자리에서 장로원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다들 그동안 데드릭 벨크리스가 이것저것 떠드는 걸 듣는 바람에 장로원의 어두운 면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로원은 그저 꼭두각시일 뿐이다.

그 뒤에 이면세계의 왕인 카르멕이 있다.

녹색 액체가 가득 든 관에 잠겨 있는.

장로원의 정체를 이렇게 이미 다 알고 있는데 털긴 뭘 턴단 말인가.

“전 빠지겠습니다. 그리고 영감님도 이제 험한 일에 끼어들지 마시고 여생은 편안하게 지내세요. 여행도 하고 유흥도 하고, 또 좋은 여자도 만나고요.”

데드릭 벨크리스가 인상을 팍 썼다.

"너도 그 얘기냐? 그렇게 말 안 해도 알아서 잘 놀 거다. 그리고 여자는 안 만나."

반태수가 빙긋 웃었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에요.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좋은 선물 하나 할게요.”

"안 한다니까?”

반태수는 피식 웃고는 일행을 슥 둘러봤다.

다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여기 온 이유를 왠지 알 것만 같았다.

솔직히 자신도 비슷한 기분이었으니까.

우주에서 타노로스와 싸운 일은 아직도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 이상의 자극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다들 그 여운을 이렇게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반태수도 마찬가지고.

"전후 처리는 잘 되고 있답니까?”

반태수가 문득 떠올라서 물었다.

살라자 샤마쉬가 전후 처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역시 5대 가문이라고 할 정도로 깔끔하게 처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일단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 있으니 정리가 생각보다 빨리 끝날 것 같았다.

그들은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커피를 마셨다.

한 잔으로는 모자라서 추가로 몇 잔을 더 마시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굉장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주에서의 치열한 전투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대충 얘기가 마무리될 무렵, 살라자 샤마쉬가 말했다.

“난, 당분간, 그러니까 최소 보름 정도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예정일세. 어디 경치 좋은 곳에서 푹 쉴 거야. 아, 그 호수로 가면 되겠군."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근처에 퀴무르가 있어서 유흥도 문제없고. 나도 같이 갈까?”

"그러시죠.”

나머지 사람들도 다들 쉬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두 사람의 대화에 혹하는 표정이었다.

개척도시 아리크 근처에 있는 커다란 숲. 그 한가운데 있는 호수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리조트가 완공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이들에겐 비행선이 있으니까.

캠핑 용품을 들고 가서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너희도 같이 가고 싶으면 끼어. 우리야 상관없으니까.”

데드릭 벨크리스의 말에 오스윈 프리든이 먼저 냉큼 끼어들었다.

"저도 가겠습니다.”

나머지 두 사람, 페일라 린치필드와 안드렐라 윌렉스는 반태수의 눈치를 살폈다.

솔직히 자신들은 당분간 반태수와 함께 지내고 싶었다.

이렇게 여유롭게 반태수와 즐길 수 있는 타이밍이 앞으로 얼마나 오겠는가.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짐작했지만, 반태수는 당분간 혼자 있고 싶었다.

“전 따로 할 일이 있습니다.”

다들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있나, 할 일이 있다는데.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뭐. 나머지는 같이 갈 거지?”

데드릭 벨크리스가 두 여인을 보며 물었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한껏 미련이 남은 눈빛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는 두 사람의 시선을 슬그머니 외면했다.

지금은 당분간 쉬면서 그동안 미뤄왔던 일 한 가지에 몰두하고 싶었다.

***

반태수는 혼자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마력을 섞은 맥주에 관한 연구를 했다.

사실 커피를 연구해서 만들 때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렇게 해서 만든 것 자체가 당시에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반태수와 지금의 반태수는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차이가 났다.

그렇기에 연구 진행 속도도 말도 안 될 정도로 빨랐고.

“확실히 커피보다는 훨씬 까다롭네.”

일단 맥주는 발효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마력이 흩어지거나 변질될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맥주를 만드는 내내 발효 문제 때문에 매번 제동이 걸렸다.

커피를 만들 때는 드립커피에 마력을 담는 방식으로 했기에 중간에 마력이 변질되거나 흩어질 염려가 없었다.

한데 맥주는 그게 안 된다.

게다가 한 번 성공했다고 해서 다음에 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반태수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몽땅 투자한 끝에 해결책을 찾아냈다.

발효 과정을 일일이 따라가면서 상황에 따라 마력을 주입하는 방식을 개발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을 정확히 수행할 수 있는 마도구를 만들어냈다.

“이제 맥주 파티도 할 수 있겠네.”

반태수는 아리크의 호수에서 맥주 파티를 하는 상상을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그렇게 맥주 제조법을 완성하고 연구실에서 나온 반태수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

“오랜만입니다.”

반태수는 묘한 눈으로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인사부터 했다.

찾아온 손님은 데드릭 벨크리스의 큰형인 쿠오릭 벨크리스였다.

그리고 그의 동료로 보이는 노인 세 명이 함께 있었다.

"활약상은 잘 전해 듣고 있었네. 이번 전쟁에서도 아주 혁혁한 공을 세웠다지?”

반태수는 쿠오릭 벨크리스를 가만히 쳐다봤다.

이번 전쟁에서는 우주에 나가 싸운 것 말고는 한 일이 없었다.

아니, 몇 가지 일을 했지만, 그건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시스템의 힘을 이용해 도시 몇 군데를 도운 것이다.

그 자리에 반태수가 있었다면 모를까, 그저 마법만 썼기에 자신이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아차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뭐, 우연히 알게 됐네. 우주로 나가서 싸웠다지?”

반태수는 더 잡아 떼 봐야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게 됐습니다.”

두 사람은 별 거 아닌 대화를 조금 더 나누면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풀었다.

“아, 내 정신 좀 봐. 같이 온 분들을 소개해야 하는데.”

같이 온 노인들은 역시나 장로원이었다.

즉, 장로원에서 자신에게 뭔가 용건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장로원에서 절 찾은 이유가 뭡니까?”

쿠오릭 벨크리스는 어깨를 한 번 으쓱 하며 대답했다.

"딱히 용건이 있어서 온 건 아닐세.”

용건도 없다는 말에 반태수가 살짝 멍한 표정으로 쿠오릭 벨크리스를 쳐다봤다.

“진짜일세, 그저 가볍게 대화나 좀 나눌까, 해서 왔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저 말은 장로원에서 자신에게 전할 말이 있다는 뜻이다.

"좋습니다. 그럼 대화를 나누죠. 자, 먼저 말씀하시죠.”

반태수가 가볍게 멍석을 깔아주었다.

쿠오릭 벨크리스는 묘한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