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화. < 두 개의 전쟁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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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함장실의 침대에 누워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우주정거장은 이제 다 처리했다.
초반에는 정말 힘들었는데, 점점 수월해지더니 나중에는 별다른 저항도 없어서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
타노로스가 물량을 뽑아서 각 우주정거장으로 보내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제 남은 건 그 거대한 물류창고와 공장뿐이다.
달에 자원을 뽑아내는 기지도 있지만, 그건 시스템을 지키는 역할도 한다고 하니 내버려두기로 했다.
‘아니지. 그건 카르멕의 부탁인 건데, 굳이 내가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반태수는 그냥 달은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시스템 때문이라도 거기에 뭔가를 만들어야 할 상황인데, 그걸 타노로스가 보호해 주면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이익이다.
지금 우주전함은 물류창고를 향해 가는 중이다.
물류창고도 아주 멀리까지 옮겨뒀기에 가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사실 더 빨리 갈 수도 있지만, 휴식도 필요해서 나름 속도를 조절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우주정거장을 다 부쉈으니 지상에 추가 물량을 투입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이번 전쟁은 지상군을 싹 쓸어버리고, 우주에 있는 물류창고와 공장을 없애면 끝난다.
반태수는 눈을 감은 채 시스템을 이용해 지상의 전투 현황을 확인했다.
'하, 방심한 모양이구나.’
그러지 않았다면 저렇게 피해가 클 수 없다.
피해 없이 막은 도시도 상당히 많았지만, 큰 피해를 입은 도시도 제법 있었다.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저 정도면 선방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아마 반태수가 나서서 우주를 정리하지 않았다면 공격당한 도시들 중에 피해 없이 막아낸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반파된 도시들이 수두룩했을 것이고, 완전히 파괴되어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도 제법 많았겠지.
더불어 트릴린드라나 5대 가문이 직접 운영하는 도시에도 큰 피해가 있었을 테고.
그걸 막아냈으니 이번 전쟁은 이 정도면 됐다.
반태수는 적당히 쉰 다음 침대를 나섰다.
이제 슬슬 물류창고에 도착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물류창고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공장도 있었다.
함장실에서 나간 반태수는 함교로 향했다.
함교에는 나머지 일행이 전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주정거장들을 부수면서 일행들의 실력도 상당히 늘었다.
그리고 그들은 더 강한 자극을 원했다.
"이제 거의 도착한 거 같은데? 우리 언제 출격해?”
데드릭 벨크리스는 여전했다.
“이번에는 전함도 같이 싸울 겁니다. 더 가까이 접근한 다음 출격합니다.”
전함뿐 아니라, 격납고에서 보관 중인 인공지능 모듈을 탑재한 로봇과 전투기들도 참여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주정거장을 처리할 때는 전투기들을 투입했어도 로봇을 투입하지는 않았다.
전투기도 전부 투입한 적은 없었다. 가장 많이 투입한 것이 고작 일곱 대였으니까.
이번 전투에는 모든 전투기와 로봇을 출격시킬 계획이었다.
이내 거대한 물류창고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하지만 물류창고가 워낙 크기에 선명하게 보였다.
“와, 진짜 크긴 크네요.”
홀로그램이 물류창고까지의 거리를 표시해 주고 있기에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정도면 과장 좀 보태서 달이랑 비슷하다고 해도 되겠는데요?”
페일라 린치필드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오스윈 프리든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달은 무슨. 달이 얼마나 큰데. 저 정도면 달의 10%도 안 될걸?”
달의 10%는 작나? 그것도 굉장한 크기다.
이면세계의 달은 지구의 달보다 약간 크다. 이면세계도 지구보다 약간 크고.
그러니 달의 10%면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라고 할 수 있었다. 이건 소행성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든 구조물이니까.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크기인지 알 수 있었다.
"저걸 우리가 부술 수 있긴 할까?”
"표면이 저렇게 생기지 않았으면 작은 별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물류창고는 가장 안정적인 구조인 구 형태의 구조물이었다.
“저 쪽에 보이는 작은 구체가 공장인 모양이죠?”
다들 질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물류창고를 중심으로 작은 위성들이 공전하고 있었다.
"위성까지 있어. 타노로스 놈들 대체 뭘 만든 거야?”
반태수도 솔직히 좀 어이가 없긴 했다. 저런 걸 만들 수 있는데 전쟁에서 진다고?
그렇게 전함은 물류창고로 계속 다가갔다.
일행의 눈에 보이는 물류창고가 점점 커졌다.
이내 어느 정도 가까이 붙었을 때, 그 어마어마한 크기에 압도당했다.
“저걸…… 부술 수 있긴 할까요? 안까지 금속으로 꽉 차 있으면 아예 안 부서질 거 같은데.”
“그럴 리 없지. 안에는 물류를 보관하는 공간이 있을 테니까.”
아마 굉장히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저 거대한 구체의 내부에 창고 시설을 만들려면 그저 격자를 나누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굉장히 복잡한 설계를 통해 문제가 될 만한 다양한 것들을 대비해야 한다.
아무튼 그러니 거대한 금속 덩어리를 부수는 것과는 다르다.
"슬슬 출격해야겠네요.”
거대한 금속 구 형태의 물류창고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리기 시작했다.
격납고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 구멍을 통해 전투기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이대로 방치하면 저 전투기들이 전함을 공격할 것이다. 그 전에 먼저 나가서 맞이해야 한다.
"갑시다.”
반태수의 말에 다들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들의 몸이 공간을 뛰어넘어 격납고로 향했다.
로봇을 소환해 탑승했고, 격납고의 문이 열렸다.
일행의 로봇들이 우주로 뛰어들었다.
그 뒤를 이어 인공지능 모듈을 탑재한 다섯 대의 로봇이 우주로 나갔다.
그리고 열다섯 대의 전투기가 출격했다.
반태수는 로봇에 탄 채 텅 빈 격납고 안에 홀로 서 있었다.
- 공격 시작해.
반태수는 우주전함의 인공지능에게 명령을 내린 후, 우주로 뛰어들었다.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
우주전함의 함포가 움직였다. 함포는 물류창고의 격납고를 겨냥했다.
물류창고의 격납고는 여전히 열려 있었다.
내부에서 계속해서 전투기를 보충하고 그 전투기들이 다시 밖으로 출격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물류창고 근처가 무수한 전투기로 꽉 채워졌다.
우주전함의 함포는 이미 겨냥을 끝냈다. 전투기들에 가려 타겟이 보이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다 뚫어버리면 되니까.
두 개의 커다란 함포가 각각 하나씩의 격납고를 겨눴다.
함포의 포신 내부에 무수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수천 겹의 마법진이 포신을 따라 차곡차곡 겹쳐졌다.
우우우웅!
나직한 진동과 함께 마법진들이 순차적으로 발동했다.
마법진이 발동할 때마다 막대한 에너지가 함포 끝에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든 마법진의 에너지를 남김없이 흡수한 함포의 끝에서 거대한 빛줄기가 뿜어져 나갔다.
번쩍!
함포의 구경보다 수십 배 거대한 직경의 빛줄기였다.
수십 대의 전투기가 빛줄기에 휘말려 증발해 버렸다.
그리고 빛줄기는 정확히 격납고 입구에 작렬했다.
격납고 안으로 엄청난 에너지가 밀려들어갔다.
사방으로 퍼진 에너지가 격납고를 통해 물류창고 내부를 박살 냈다.
연이어 폭발이 일어났다.
우주전함의 함포는 쉬지 않고 두 번째 포격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아군 전투기가 빛줄기를 뿜어내며 적 전투기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날카롭고 민첩한 움직임으로 적 전투기들 사이를 파고들며 다채로운 공격을 퍼부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공백에 아군 로봇들이 끼어들었다.
확실히 인공지능 모듈의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타노로스 쪽도 인공지능이 조종하는 것일 텐데, 이쪽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성능이었다.
물론 전투기 자체의 성능도 좋지만, 인공지능의 수준이 높다는 것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치열한 싸움을 하는 동안 우주전함의 함포가 연이어 불을 뿜었다.
한 번 함포를 쏠 때마다 두 개의 격납고가 망가졌다. 또한 내부를 폭발시켜 피해를 크게 키웠고.
그러고 있을 때, 드디어 물류창고 쪽에서 반격이 들어왔다.
시작은 물류창고를 공전하는 위성들이었다.
위성의 공전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더니 물류창고를 몇 바퀴 돈 다음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우주전함을 향해 날아갔다.
마치 해머던지기를 하는 것처럼 위성을 날려 버린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우주전함을 향해 날아가는 위성은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아마 부딪히면 아무리 전함이 튼튼해도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게다가 위성은 폭발물을 싣고 있었다.
제대로 터지면 그냥 단순한 피해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함은 아주 단순하게 대처했다.
크기가 작은 보조 함포들을 이용한 것이다.
수십 발의 빛줄기가 날아오는 위성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내 위성이 대폭발을 일으켰다.
그 뒤로도 위성들이 연이어 날아왔다.
전함은 당연하다는 듯 보조 함포로 그것들을 전부 격추했고.
사방에서 쉴 새 없이 폭발이 일어났다.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강한 빛줄기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그 정신없는 전장의 뒤, 물류창고 곳곳에서 무언가가 툭툭 튀어나왔다.
워낙 거대한 몸체에서 튀어나왔는지라 얼핏 보면 바늘 같았다.
그건 레일건이었다.
수만 개의 레일건이 물류창고 표면에 툭툭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내 수만 발의 레일건 탄자가 우주공간을 가르며 쏘아져 나갔다.
레일건 탄자가 적아를 가리지 않고 전장을 휩쓸었다.
하지만 미리 신호를 받은 타노로스 측 전투기들은 적절히 회피기동을 했다.
아군 쪽도 당연히 모든 레일건을 싹 피했다.
하지만 애초에 레일건의 목표는 전투기나 로봇이 아니었다.
우주전함을 향해 레일건 탄자가 비처럼 쏟아졌다.
번쩍! 번쩍! 번쩍!
우주전함의 실드가 작동했고, 그 위에 레일건 탄자가 작렬했다.
실드에 부딪힐 때마다 탄자가 증발하며 빛을 뿜어냈다.
그 와중에도 전함의 함포는 꾸준히 물류창고를 노리고 빛줄기를 뿌려댔다.
반태수는 유려한 움직임과 마법으로 타노로스의 전투기를 격추하면서 전체적인 전황을 살폈다.
이대로 전투가 계속 이어지면 결국 이쪽이 지치면서 전황이 어려워질 것이다.
탑승형 로봇의 최대 단점은 탑승한 조종사의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면 전투력도 같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타노로스 쪽은 그렇게 전투기를 때려잡는데도 끊임없이 보충되었다.
하지만 반태수는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이렇게 계속 싸울 생각 자체가 없었다.
반태수가 세운 계획은 물류창고 내부로 들어가는 거였다.
그래서 함포 사격을 할 때도 굳이 격납고를 조준했고.
안으로 들어갈 길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물류센터 내부로 들어가는 건 자신 혼자여야만 한다.
다른 일행이 들어가기에 물류창고 내부는 너무 위험했다.
반태수는 기회를 보다가 전함의 함포에 맞은 격납고 앞으로 공간이동했다.
그리고 안으로 쑥 들어갔다.
격납고 안쪽이 폭발로 뻥 뚫려 있었다. 반태수는 그 구멍으로 들어갔다. 물류센터 내부에 발을 디딘 것이다.
물류센터는 놀랍게도 곳곳에 마력을 차단하는 장치가 있었다.
표면에서부터 마력을 차단하기에 물류센터 내부로 마력을 투사해 마법을 펼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내부에서 마법을 쓰려면 이렇게 직접 들어와야 한다.
반태수는 머릿속으로 물류창고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어디쯤 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하면서 이동했다.
‘일단 저기.’
반태수는 적당한 자리에 마법을 새겨 넣었다.
굉장히 크고 복잡한 마법이었는데, 로봇에 탄 채로 마법을 새기는 데도 빠르고 정확했다.
마법을 새긴 반태수는 신속하게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 또 마법을 새기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 또 마법을 새겼다.
그런 식으로 물류창고 내부 곳곳에 마법진을 심었다.
이렇게 마음껏 내부를 활보하는데도 누구하나 나타나 반태수를 저지하지 않았다.
반태수는 목표로 한 마법진을 모두 설치한 다음 밖으로 향했다.
설치한 마법진은 에너지를 응집한 다음 시너지가 날 만한 다양한 마법과 함께 터트려 버리는 것이었다.
아마 이 모든 마법진이 동시에 터진다면 아무리 거대한 물류창고라지만 박살이 나고 말 것이다.
반태수는 빠르게 물류창고를 벗어났다.
그리고 곧장 마법진을 작동했다.
물류창고 내에 새긴 마법진들이 일제히 마력을 쏟아냈다.
이내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물류창고가 들썩일 정도였는데, 그 와중에도 물류창고의 겉은 멀쩡했다.
하지만 안이 다 부서져서 더 이상 이 물류창고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반태수는 전함을 다음 타겟인 공장 쪽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자신 역시 전함을 따라갔고.
무수한 전투기들이 달라붙었지만, 그때마다 그저 격추되어 우주의 먼지로 사라질 뿐이었다.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공장도 물류창고와 비슷한 방식으로 부서졌다.
그렇게 우주에서의 전쟁이 끝났다.
지상의 전쟁이 끝난 것과 거의 비슷한 타이밍이었다.
이내 반태수와 일행을 태운 전함이 다시 지상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