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 두 개의 전쟁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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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내부는 흥분으로 가득했다.
다들 첫 번째 전투의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지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극도로 짜릿한 경험이었다.
목숨을 내걸고 로봇을 조종해 우주정거장을 부쉈다.
우주정거장에서 쏘는 레일건과 포는 잠시라도 방심하면 당할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맞서 싸운 우주선은 또 어떠한가.
기동성은 좀 떨어지지만 다양한 무기와 깜짝 놀랄 정도의 의외성으로 이쪽을 당황하게 했다.
물론 그 정도로는 로봇을 막을 수 없었다.
로봇의 위력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이제 뭘 하면 되지? 우리 또 싸우는 건가? 아니면 오늘은 여기까지?”
데드릭 벨크리스가 한껏 흥분한 어조로 반태수에게 물었다.
반태수는 흥분한 일행을 슥 둘러보고는 말없이 커피를 한 잔씩 준비해 주었다.
커피가 몇 모금 들어가고 나니 서서히 흥분이 가라앉는지 진정 국면으로 들어섰다.
"전투 후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의 맛이 정말 끝내주는군.”
살라자 샤마쉬의 말에 다들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보통 때보다 훨씬 각별한 맛이 있었다.
흥분이 좀 가라앉고 나자, 반태수가 말했다.
“다음 목표도 우주정거장입니다. 이걸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지상으로 떨어지는 타노로스의 무기가 더 많아진다고 보면 됩니다.”
그건 안 되지. 다들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다 무엇 때문이겠는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타노로스의 무기를 줄이기 위함이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튼 타노로스 놈들 우주까지 진출하고, 대단해. 지독해. 그나저나 대체 이렇게 몇 개나 부숴야 하는 거야?”
“제가 파악한 우주정거장의 수는 총 23개입니다.”
원래는 더 적었는데 최근 수가 늘어났다. 아무래도 전쟁에 대비해 물자를 더 생산한 모양이었다.
“23개?”
다들 깜짝 놀란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설마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하나 처리하는 것도 그리 만만치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았지만.
아무튼 그런데 23개라니. 이거 다 처리하려면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릴 듯하다.
"우주정거장만 그렇고, 그보다 규모가 작은 수송선들도 있습니다. 거의 함선에 준하는 크기이고, 무장도 상당해서 아마 싸우기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수송선까지 있어? 우주선으로 수송하는 거 아니었나?”
“우주선이 수송을 겸하고 있긴 하지만, 정확한 역할은 수송보다는 순찰과 위험물 제거에 더 가깝습니다. 자잘한 운석이나 망가진 위성의 잔해들로부터 우주정거장을 보호하는 거죠.”
"대단하네. 타노로스 놈들이 이러는 동안 우리는 대체 뭘 한 거지?”
“5대 가문 쪽도 비축한 힘이 만만치 않다고 들었는데, 아닙니까? 최소한 우주를 향해 공격할 수단이 몇 개 있지 않습니까?”
"뭐, 그거야 그렇긴 하지. 정확한 건 나도 잘 모르지만.”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살라자 샤마쉬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그런 정보는 자신보다는 살라자 샤마쉬가 훨씬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당연히 우주 쪽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온 것은 사실일세. 그러니 위성도 그렇게 많이 보유한 것이고.”
살라자 샤마쉬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말을 이었다.
"달에도 이미 다녀왔네. 슬슬 우주로 진출할 준비를 하는 중이지. 한데 좀 소극적인 편일세. 돌다리를 너무 많이 두드려. 어쩌면...... 가문 수뇌부에서는 우주에 타노로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그게 아니라면 우주 쪽으로 무언가를 계획할 때마다 이렇게까지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워할 이유가 없으니까.
반태수는 그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5대 가문에는 장로원이 있다. 그리고 장로원은 카르멕의 지시를 받는다.
카르멕은 타노로스의 주인이기도 하고.
당연히 5대 가문과 타노로스가 우주에서 부딪치지 않도록 조치했을 것이다.
대충 5대 가문에 관한 얘기가 마무리 되자, 데드릭 벨크리스가 나섰다.
"그나저나 우주정거장만 23개라……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리겠군.”
"시간만 오래 걸리는 게 아니라 갈수록 위험해질 겁니다.”
"하긴.”
타노로스도 전투가 이어지면 나름대로 대응책을 내놓을 것이다.
첫 번째 우주정거장은 비교적 쉽게 부쉈지만, 두 번째는 좀 더 까다로워질 것이다.
어쩌면 타노로스가 작정하고 두 번째 우주정거장에 전력을 집중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정말 위험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정말 긴장해야 합니다. 방심하는 순간 크게 당할 수도 있습니다.”
반태수의 말에 다들 경각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반태수가 고개를 돌려 전함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쳐다봤다.
강화된 반태수의 시야에 까마득하게 먼 곳에 있는 우주정거장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우주정거장 근처에 무수히 많은 전투기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로봇은 없네.’
아직 타노로스도 로봇까지는 못 만들어낸 걸까?
아니, 어쩌면 우주에서의 전투에 굳이 로봇 같은 걸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생각하면 전투에 효과적으로 디자인한 전투기들이 더 잘 싸울 수도 있으니까.
우주에서의 전투는 기동성과 강력한 공격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데, 사실 로봇 형태보다는 더욱 단순한 형태가 더 효율적인 건 당연하지 않겠나.
‘그래도 로봇이지.’
반태수는 물론이고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자, 다음 전투 준비하죠. 이번엔 저놈들도 작정한 것 같으니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다들 흥분으로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두 번째 전투가 시작되었다.
***
세계 곳곳에 있는 도시 근처, 하늘에서 무언가가 우수수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다양한 병기들이었다.
대부분이 탱크, 장갑차, 전투기였고, 간간이 다른 것들도 섞여 있었다.
제법 많은 수의 안드로이드가 쏟아지는 병기에 섞여 있었고, 무기가 가득 든 컨테이너 박스도 간간히 떨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하늘에서 병기가 쏟아지는 위치를 5대 가문에서는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
전쟁이 벌어진다는 정보를 얻은 뒤로 우주를 끊임없이 감시해왔다.
5대 가문의 감시망은 상당히 촘촘했고, 모든 전쟁 지역을 파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전장을 미리 예측했으니 당연히 준비도 철저히 했다.
미리 전장이 될 도시 근처에 병력을 준비해 두었다.
전쟁에 참여한 5대 가문 사람들은 자신만만했다.
이번 전쟁에서 이기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얼마나 피해를 줄이느냐에 초점을 맞췄다.
쏟아지는 타노로스의 병기들을 보고 나니, 더더욱 승리에 대한 확신이 강해졌다.
이미 트릴린드라에서 겪었던 병기들과 큰 차이가 안 보였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쏟아진 탱크와 장갑차들이 진격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중구난방으로 움직였는데, 이동하는 동안 진형을 갖췄다.
그들이 향하는 도시는 서메롯, 크랙톤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이곳을 무난히 박살 내면 다음 목표는 크랙톤이었다.
하지만 서메롯에는 5대 가문에서 미리 준비한 병력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타노로스가 뛰어난 기술력을 무기로 한다면, 5대 가문은 유물에 깃든 신비한 마법이 무기였다.
지금 서메롯 외곽에 있는 높은 벽 위에 5대 가문에서 나온 몇몇 사람들이 전투복을 입은 채 다가오는 타노로스의 병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휘유, 많이도 몰려오는군.”
"트릴린드라에 보낸 것보다는 훨씬 적은 것 같은데?”
"그때는 많아도 너무 많았지.”
그런 얘기를 하는 그들의 표정에는 일말의 긴장감도 보이지 않았다.
“전투기도 제법 많은데?”
“그건 신경 쓰지 마. 다른 쪽에서 해결하기로 했잖아. 아무리 자신 있어도 방심은 금물이야. 집중해야지.”
"그거야 당연하지.”
"자, 슬슬 준비해야겠는데?”
"그러게. 제법 가까이 왔네.”
그들은 미리 준비한 유물을 아공간에서 꺼냈다.
유물은 제법 컸다. 바닥에 세우니 높이가 허리까지 왔다.
작은 탑 모양의 유물이었는데, 꼭대기에는 투명한 수정구슬이 붙어 있었다.
그들이 서 있는 벽은 전쟁을 대비해 최근에 지은 구조물이었다.
콘크리트로 만든 간단한 벽이었지만, 거기에 마법이 깃들어 있었다.
무수한 마법진이 벽 곳곳에, 심지어 내부에도 새겨져 있었다.
이 벽은 물리적 내성이 상당히 높았다.
또한 강력한 실드가 내장되어 있어서 도시로 오는 포격을 막아줄 것이다.
그런 벽이 여러 개 있었다. 각 벽마다 5대 가문에서 나온 사람들이 대여섯 명씩 올라가 있었고.
벽 위에 있는 사람들이 유물을 작동하기 시작했다.
투명한 수정구에서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자, 내가 먼저 쏜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정구에서 눈부신 빛줄기가 쭉 뻗어나갔다.
타노로스의 탱크와 장갑차들을 향해 날아간 빛줄기는 정확히 그것들 앞에서 폭발하듯 사방으로 빛줄기를 쏟아냈다.
꽈과과과과과과광!
빛줄기에 닿는 모든 것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탱크와 장갑차가 폭발과 함께 허공으로 휙휙 날아갔다.
그걸 본 5대 가문 사람들은 피식 웃었다.
"뭐, 고작 저 정도로군.”
"그럼 이번엔 내 차례인가?”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유물을 작동했다.
수정구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고, 이내 강력한 빛줄기를 쏘았다.
다들 빛줄기의 색이 달랐다.
붉은 색도 있고 파란 색도 있고 노란 색도 있었다.
모양은 같은 유물이었지만 내장된 기능은 조금씩 달랐다.
붉은 빛이 전장의 절반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리고 파란 빛이 나머지 절반을 꽁꽁 얼려 버렸고.
노란 빛은 그 위를 전격으로 뒤덮었다.
꽈르르르르릉!
우레 소리가 전장을 가득 채웠다.
타노르스의 병기를 비롯해 안드로이드까지 전부 전격이 뒤덮어 버렸다.
전격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무언가 타는 냄새가 자욱하게 퍼져 나갔다.
당연히 그 냄새와 연기는 도시를 막은 방벽 위에도 도달했다.
"끝났나?”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방벽에서도 한창 유물을 이용한 공격 중이었다.
이쪽은 지상군과 싸웠다면 저쪽은 전투기와 싸운다는 것이 달랐다.
아무튼 이쪽은 끝난 모양이었다.
연기가 너무 자욱해서 금방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저 정도 연기야 날려버리면 그만이다.
누군가가 유물을 작동했다.
강렬한 빛줄기가 쭉 뿜어져 나갔다. 투명한 색에 가까운 흰색이었다.
빛줄기가 폭발하더니 강렬한 바람을 만들어냈다.
그냥 바람이 아니라 태풍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었다.
흙먼지와 연기가 싹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은 사방에 널브러진 탱크와 장갑차들이었다.
다들 씨익 웃었다. 정말로 끝난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마음을 놨다. 방심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정말로 싸움이 끝났다고 여겼으니까.
한데 그 순간, 멀리서 엄청난 에너지 유동이 일어났다.
다들 화들짝 놀라 그쪽을 바라봤다.
거대한 빛줄기가 이쪽으로 쭉 쏘아졌다.
꽈아아아아앙!
방벽에 미리 설치해 둔 마법진이 수백 겹의 실드를 펼쳤다. 빛줄기는 거기에 정확히 직격했고.
쩌어어엉!
수백 겹의 실드가 단숨에 박살 났다.
그 틈을 타서 5대 가문 사람들이 유물을 발동했다. 강력한 실드를 만드는 유물이었다.
꽈아아앙!
그 실드들도 박살이 났다. 하지만 그래도 빛줄기를 끝까지 막아내긴 했다.
하지만 이런 공격이 몇 번 더 날아오면 끝장이다.
방벽의 마법진에서 열기가 이글이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당장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어어! 저, 저것 봐!”
누군가 경악한 목소리로 외치며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사방에 널브러져 있던 타노로스의 병기들이 꿈틀거리더니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진격을 시작했다.
꽈앙! 꽈앙! 꽈앙!
탱크들이 포격을 시작했다.
방벽의 실드가 포격을 막아냈다.
5대 가문 사람들은 허둥지둥 다시 유물을 작동했다.
강렬한 빛줄기가 번쩍번쩍 하면서 쏘아져 나갔다.
이번엔 위력을 집중해서 쏘았다. 아까처럼 모든 병력을 뒤덮을 정도로 범위를 넓히면 공격이 소용없을 것 같아서였다.
꽈아아앙!
강력한 폭발이 연이어 일어났다.
범위를 좁히니 폭발에 휘말리는 것은 탱크나 장갑차는 고작 두세 대가 전부였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이번엔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녹아내리거나 박살이 났으니까.
쉴 새 없이 유물을 작동시켰다.
하지만 적의 진격 속도가 너무 빨랐다.
이내 탱크들이 근처에 도착해 이동을 중지했다.
반면 장갑차들은 그냥 계속 달렸다.
아무래도 도시 내부로 들어가고자 하는 모양이었다.
"막아!”
누군가 외쳤다.
물론 이미 도시 내부로 들어올지 모를 적에 대한 대비도 충분히 되어 있었다.
장갑차가 도시로 들어오려면 방벽을 피해서 와야 한다.
그렇게 방벽을 빗겨 난 순간 도시 내부에 있던 군대가 공격을 시작했다.
꽈과과과광!
그 강력한 유물로도 한 번에 몇 대 못 처리하는 단단한 장갑차를 도시의 군대가 단숨에 날려 버렸다.
마법이 걸린 포탄이었다.
강력한 바람과 충격파가 장갑차를 도시 밖으로 날려 버린 것이다.
도시 내부의 군대는 장갑차를 부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도시에 못 들어오게 막는 것이 진짜 목표였다.
그렇게 내보내면 5대 가문에서 가져온 유물이 결국은 전부 처리할 테니까.
그때부터 전투는 좀 더 치열해졌다. 상황 자체는 지루해졌고.
단순한 반복이 계속되는 전투였다.
유물로 장갑차를 부수고, 탱크의 공격을 방벽의 실드로 막아내고, 도시로 진입하려는 장갑차를 도시 밖으로 날려 보내고.
그와 비슷한 전투가 전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어떤 곳은 굉장히 잘 막았고, 또 어떤 곳은 이곳 서메롯처럼 평범했다. 그리고 어떤 곳은 제대로 막아내지 못해 큰 피해를 입었다.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만일 우주에서 반태수 일행이 우주정거장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지상에서의 전투가 훨씬 힘들었을 거라는 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