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 두 개의 전쟁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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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함교에 서서 드넓게 펼쳐진 우주를 보고 있었다.
그 뒤쪽에서 일행들이 신기한 눈으로 함교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주전함의 함교는 사방이 투명했다.
그래서 한가운데 서 있으면 마치 우주공간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함교에는 우주전함을 컨트롤할 수 있는 각종 컨트롤박스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이걸 제대로 운용하려면 최소 20명은 필요한 듯했다.
"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냐?”
데드릭 벨크리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우주정거장부터 갑니다.”
“그게 어디쯤인데?”
"이대로 가면 15분쯤 후에 도착합니다.”
상당한 속도로 가고 있는데도 15분이나 걸린다면 제법 먼 거리인 모양이었다.
"지금까지도 제법 온 것 같은데 15분이나 더 필요한 걸 보면 정말 멀리 있는 모양이구나.”
"달 궤도 바깥쪽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놈들이 우리가 움직인 걸 눈치채고 빠진 거 같습니다.”
"하긴, 그렇게 요란하게 날았으니 알아차렸을 수도 있지.”
아까 우주전함이 출발할 때 마치 태양을 거기에 놓고 온 것처럼 강한 빛을 뿜어냈다.
그 빛은 우주까지 쭉 이어졌다.
그러니 타노로스에서 그걸 관측했을 가능성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반태수는 미리 마킹을 찍어뒀던 우주정거장들의 위치를 다시 파악해 봤다.
모든 우주정거장이 달의 공전궤도 밖으로 나가 버렸다.
시스템의 힘이 미치지 않는 범위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도 얼마든지 지상으로 물량을 쏟아낼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우주정거장 중 하나가 지상으로 컨테이너 박스 하나를 투하했고, 그것이 무사히 지상에 안착하는 것을 봤다.
그 컨테이너 박스를 받은 것은 타노로스의 조직원 중 한 명이었다.
반태수는 바로 연락을 해 5대 가문을 움직였다.
벨크리스 가문의 연락망을 이용할 수 있기에 대처가 가능했다.
물론 그냥 힘으로 눌러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반태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스템의 힘을 자주 이용하는 것이 왠지 좀 꺼림칙해서였다.
시스템을 완벽하게 얻으면서 함께 받은 지식들은 지금 대부분 다시 소화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만으로 뭔가 꺼림칙하던 느낌이 상당부분 해소되었다.
하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시스템의 힘을 쓸 때마다 굉장히 신경을 썼다.
지금도 그렇다. 시스템의 힘을 쓰면 이면세계 전체를 감시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딱 필요할 때만 쓰고 있었다.
5대 가문에서 파견한 능력자와 마법사들이 타노로스 조직원을 잡고, 컨테이너 박스를 확보하는 것까지 확인하고 시스템의 힘을 껐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니 일단 우주에서의 전투에 집중하고 그래도 여력이 남으면 지상으로 눈을 돌리기로 했다.
"야, 그럼 시간이 좀 남는데 그동안 전함 구경 좀 해도 되냐?”
데드릭 벨크리스가 마치 어린아이 같은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반태수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데드릭 벨크리스 말고 다른 사람들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피식 웃은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다들 간단히 구경만 하고 오세요. 어차피 어디에 있건 출격은 바로 할 수 있으니까.”
다들 신나서 우르르 몰려갔다.
길을 헤맬 일은 없었다. 어딜 가든 홀로그램 표지판이 확실히 안내를 할 테니까.
반태수는 문득, 자신도 아직 전함 내부를 제대로 구경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어떤 구조인지는 다 알지만.
반태수는 우르르 몰려가는 일행의 뒤에 슬쩍 따라붙었다.
***
전함 내부는 상당히 훌륭했다.
일단 승무원들이 생활하는 숙소가 굉장히 깔끔하고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똑같은 모양의 방이 쭉 이어져 있었는데, 방 내부를 자기 취향에 맞게 꾸밀 수 있었다.
단순히 환상 마법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부 구조를 바꿀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함장의 방은 따로 있었는데, 크고 화려했다. 당연히 함장의 방도 마음대로 꾸밀 수 있었다.
심지어 가구도 마음대로 고를 수 있었다.
전함 내부에는 식당이나 휴식시설, 오락시설까지 있었다.
심지어 파티장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운동 시설이야 당연했고, 모의 전투 수련장까지 존재했다.
의무실이나 장기 수면실도 있었는데, 그 모든 시설이 무인으로 운영되었다.
그 모든 시설을 관리하는 인공지능이 존재했고, 그 휘하에 작은 인공지능들이 있어서 각 시설을 따로 관리하는 구조였다.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건 반태수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여기 관련된 지식은 없는데.’
우주전함에 관한 지식은 아직 오지 않았다.
조립할 때 부품을 분석해서 똑같이 재현할 수는 있지만, 그건 진짜 전함에 대해 잘 알아서 만드는 게 아니라 그저 조립만 할 뿐이었다.
그나마 전투기는 이제 조립만이 아닌 진짜 근본적인 원리를 파악하고 있기에, 거기서 더 발전시킬 수도, 또 효율적으로 최적화 할 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대체 모든 지식을 다 받는 건 언제쯤 가능할까?’
반태수는 문득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을 전부 받는다는 건, 영혼의 융합이 끝났다는 뜻이다.
영혼의 융합이 끝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니 최대한 늦춰야 한다.
적어도 영혼이 완벽하게 융합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는 알아야 판단을 할 것 아닌가.
한데 그걸 늦추면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지금 반태수의 지식은 뭔가 아슬아슬하게 선 앞에서 멈춘 느낌이었다.
그리고 영혼의 융합도 마찬가지였다. 아슬아슬한 선 앞에 멈춘 느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뭔가 변화가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전함 내부를 둘러보고 있을 때, 우주정거장을 발견했다는 신호가 왔다.
"드디어 첫 번째 타겟에 도착했습니다.”
반태수의 말에 다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로봇은 어디서 꺼내면 되지? 격납고로 가면 되나?”
데드릭 벨크리스의 물음에 반태수가 천장 쪽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천장 쪽에서 홀로그램 스크린이 쭉 내려왔다. 반태수의 눈짓에 따라 스크린 안의 내용이 이리저리 바뀌었다.
그리고 일행이 전부 그대로 사라졌다.
반태수는 모든 일행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스크린을 쳐다봤다.
스크린 속에 격납고의 모습이 나타났다
격납고에는 사라진 일행이 전부 있었다. 다른 적잖게 놀란 표정이었다.
반태수는 거기까지 확인하고는 공간이동을 써서 격납고로 갔다.
***
격납고는 상당히 넓고 높았다.
제법 거대한 로봇이나 전투기라도 무리 없이 여러 대 보관이 가능해 보였다.
격납고에는 반태수가 미리 조립해 놓은 열다섯 대의 전투기와 다섯 대의 로봇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전부 인공지능 모듈을 장착한 원격조종형 로봇과 전투기였다.
"뭐 하고 있습니까? 다들 로봇 안 꺼냅니까?”
반태수의 말에 다들 허겁지겁 아공간에서 로봇을 소환했다.
다섯 대의 탑승형 로봇이 군데군데 나타났다.
다들 거기에 탑승했다.
반태수도 그걸 확인하고는 로봇을 소환해 탑승했다.
전함은 걱정할 필요 없다. 인공지능이 알아서 조종할 테니까.
굳이 지금 전함을 쓸 필요는 없었다.
전함은 나중에 물류창고를 공격할 때 쓰면 된다.
물류창고는 정말로 거대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많은 우주정거장에 물자를 보급하는 창고다.
그러니 규모가 얼마나 커야 하겠는가. 그 정도 규모의 적을 공격할 때나 전함의 힘이 유용할 것이다.
고작 우주정거장 정도에 전함의 힘을 쓰는 건 낭비다.
반태수까지 로봇에 탑승하자, 격납고 문이 열렸다.
다들 쿵쿵쿵 달려가 우주에 몸을 던졌다.
반태수는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피식 웃었다.
전쟁의 긴장감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얼마나 신났는지 뒷모습과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긴, 자신도 이렇게 두근거리는데 오죽하겠나.
반태수도 일행을 따라 우주로 몸을 던졌다.
***
여섯 대의 로봇이 거대한 우주정거장을 향해 날아갔다.
반태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우주에서 처음 움직이는 거라서 좀 헤매긴 했지만, 생각보다 금방 적응했다.
그리고 적응을 느리게 하기에는 로봇의 성능이 지나칠 정도로 뛰어났다.
- 장난 아니네. 뭐 저리 커?
데드릭 벨크리스의 말에 다들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타노로스의 우주정거장은 정말로 거대했다.
하긴 우주정거장 역시 일종의 물류창고 역할까지 하고 있었으니 규모가 작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을 여러 개 격자 모양으로 엮어 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각 원통의 끝에 우주선이 정박할 수 있도록 도킹 스테이션이 마련되어 있었다.
우주정거장 하나에 수십 대의 우주선이 정박 가능했다.
여러 대의 우주선이 우주정거장 근처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몇 대는 순찰 중이었고, 나머지는 우주의 시설물들 사이를 오가는 우주선들이었다.
다른 우주정거 장에서 온 우주선, 물류창고에서 온 우주선, 공장에서 온 우주선 등 다양했다.
우주선들의 디자인은 대부분 비슷했고, 그저 물자를 나르는 우주선이라도 무장 상태는 제법 충실했다.
우주정거장 자체에도 무장이 달려 있었다.
여러 대의 레일건과 수십 개의 포문이 보였다,
이제 저기에 뛰어들어 싸워야 한다.
수십, 아니, 어쩌면 백 대가 넘을지도 모를 우주선과 강력한 무장을 한 우주정거장을 상대로 말이다.
어쩌면 로봇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우주정거장을 향해 날아가는 일행은 다들 그런 생각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어느새 적이 이쪽을 발견했는지 우주선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달라졌다.
- 온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그렇게 외치며 속도를 확 높여 앞으로 쭉 치고 나갔다.
우주정거장에서 레일건을 쏘기 시작했다.
수십 발의 탄자가 여섯 로봇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물론 거리가 멀기에 충분히 대응이 가능했다.
데드릭 벨크리스의 로봇에서 무수한 빛 덩어리가 투두둑 튀어나왔다.
번쩍! 번쩍! 번쩍!
강렬한 빛과 함께 레일건 탄자들이 증발해 버렸다.
확실히 매뉴얼을 만드느라 로봇을 열심히 타고 연구해서 그런지 데드릭 벨크리스의 조종 실력이 가장 뛰어났다.
그 순간, 우주정거장의 포문에서 빛줄기가 튀어나왔다.
번쩍!
거대한 빛기둥이 아군 로봇들이 있는 곳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 공격에 당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다들 회피기동을 해서 빛기둥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는 전혀 줄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이쪽으로 날아오는 우주선들과 접촉했다.
아군 로봇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빠르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수한 마법을 토해냈다. 그러면서 우주선에 바짝 붙어 에너지 소드를 찔러 넣기도 했다.
탑승형 로봇의 주 무기는 마법과 에너지 소드였다.
주먹을 쥐고 작동하면 빛으로 이루어진 에너지 소드가 나타나는데, 위력이 상당했다.
우주선들이 마구 터져 나갔다.
소리가 들릴 리 없는 우주공간이었지만, 마치 폭발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화려하게 부서졌다.
일행이 그렇게 우주선들을 상대하는 사이, 반태수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우주정거장으로 날아갔다.
우주정거장의 무기들이 반태수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
하지만 반태수는 마법을 적절하게 쓰며 그 모든 공격을 피하고 흘려냈다.
어느새 우주정거장에 바짝붙은 반태수의 로봇이 에너지 소드를 외벽에 쿡 찔러 넣었다.
그리고 출력을 강화하자 에너지 소드의 길이가 확 늘어났다.
반태수는 그렇게 에너지 소드를 깊이 꽂은 채로 쭉 이동했다.
우주정거장의 원통이 길게 찢어졌다.
우주선들이 반태수 쪽으로 몰려왔다. 더 공격을 허용하면 우주정거장이 부서질 거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좋은 수가 아니었다.
우주선들의 공격이 반태수에게 집중되니, 나머지 일행이 훨씬 여유로워진 것이다.
그들은 여유가 생겼다고 진짜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당연히 훨씬 빡세게 움직여 자신들에게 붙은 우주선들을 빠르게 박살 내고 우주 정거장에 달라붙었다.
일단 달라붙고 나면, 우주정거장이 갖춘 대부분의 무기가 무용지물이 된다.
대부분의 무기가 레일건이나 포 같은 원거리용이었으니까.
일행들도 반태수처럼 에너지 소드를 벽에 박아 넣고 출력을 높인 다음 빠르게 움직여서 외벽을 죽죽 찢어 버렸다.
순식간에 우주정거장이 너덜너덜해졌다 .
곳곳이 부서지고 떨어져 나갔다. 그러자 서서히 우주정거장의 기능이 정지되기 시작했다.
반태수를 공격하던 우주선들도 더 이상 가망이 안 보인다 싶었던지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물론 반태수는 그걸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빠르게 움직여 도망치는 우주선들을 전부 잡았다.
우주공간에서 이리저리 공간이동을 통해 움직이니 그야말로 신출귀몰하다는 말이 딱 맞았다.
그렇게 전투가 끝났다.
일행은 다시 전함으로 돌아갔다.
첫 번째 타겟을 완벽하게 처리했으니 이제 두 번째 타겟으로 향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