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 두 개의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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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렐라 윌렉스가 준비한 파티는 그야말로 끝내줬다.
다들 광란의 밤을 보냈다.
특히 데드릭 벨크리스는 끝내줬다는 말을 수십 번이나 반복할 정도로 즐겼다.
안드렐라 윌렉스는 아예 작정을 하고 파티를 열었다.
준비 단계에서부터 참석자 중에 글락 그룹 회장과 5대 가문에서도 특별히 높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공개했다.
참석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철저히 걸러내야 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전 세계의 모든 미남미녀 중에서 잘 놀 줄 아는 사람들로만 엄선해서 뽑을 수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홍보를 했는지 고작 반나절 만에 파티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쫙 퍼졌다.
심지어 아네스와 케트라 브리저, 키에라 나서스까지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달려왔을 정도였다.
그렇게 광란의 밤을 보내고, 그에 준하는 낮을 보내고 또 광란의 밤을 보내는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3일이나 계속된 파티가 끝났다.
반태수는 거대한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 침대는 안드렐라 윌렉스가 특별 주문한 침대였다.
열 명이 대자로 누워서 자도 공간이 넉넉할 정도로 컸다.
반태수는 몸을 일으켜 침대 곳곳에 쓰러져 잠든 여인들을 슥 둘러봤다.
파티 첫 날부터 경쟁적으로 달려들어서 상대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마력회로를 새겨두지 않았다면 아마 결코 버티지 못했으리라.
반태수가 침대에 앉은 채 가만히 있자, 다섯 여인들이 한 명씩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들은 굉장히 민망하고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젯밤에야 다들 욕망에 미쳐서 할 짓 못할 짓 다 했지만, 이렇게 술도 깨고 정신도 좀 차리고 하니 서로 얼굴을 마주하기 어려울 정도로 민망했다.
지난 3일 내내 이랬다.
이제 좀 적응할 법도 한데, 아마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모양이다.
안드렐라 윌렉스와 페일라 린치필드도 둘만 있을 때는 좀 나았는데, 이렇게 셋이 더 추가되니 견디기 어려운 듯했다.
아무튼 그건 저들이 알아서 할 문제고, 조만간 적응이 될 것이다.
아마 안드렐라 윌렉스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이 어색함을 깨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준비 중이라는 걸 반태수에게만 넌지시 얘기해 주었다.
자기만 믿으라고 하니 그냥 믿기로 했다.
반태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대충 옷을 걸치고는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오늘은 토스트에 커피다.
반태수가 토스트를 굽기 시작하자, 침대에서 이불을 끌어안고 있던 다섯 여인의 입가에 일제히 행복한 미소가 맺혔다.
***
“아무래도 시작한 거 같다.”
데드릭 벨크리스의 말에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반태수는 좀 떨어진 곳에 앉아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이곳은 크랙톤 변두리에 있는 작은 건물 안이었다.
이 근처에는 아무도 없다. 오기 전에 미리 확인해서 일부러 이런 곳을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은 이쪽으로 사람들이 올 리도 없다.
반태수가 마법으로 미리 조치했으니까.
여기 모인 사람은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 그리고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 안드렐라 윌렉스였다.
공통점은 다들 탑승형 로봇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고.
아무튼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자 다들 침묵을 지켰다.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오스윈 프리든이 먼저 침묵을 깼다.
"타노르스와의 전쟁입니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장로원으로부터 나온 정보다.”
그렇게 말한 데드릭 벨크리스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장로원이 타노로스와 내통해 일부러 전쟁을 일으키고자 한다고 믿기에 나온 반응이었다.
그걸 본 반태수가 나섰다.
"영감님, 아직 정확히 확인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미리 단정하지 마시죠.”
데드릭 벨크리스는 고개를 들어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의 표정을 본 데드릭 벨크리스의 눈에 묘한 빛이 어렸다.
왠지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느낌 아닌가.
하지만 지금 그 얘기를 할 필요는 없다. 이런 건 나중에 알아도 된다. 지금은 전쟁이 훨씬 급하다.
역사적으로 타노로스와 전쟁을 한 번 하고 나면 무수한 도시가 큰 피해로 주저앉았다.
게다가 5대 가문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걸 복구하는 데만해도 수십 년이 걸릴 정도였다.
"아무튼 장로원에서 정보가 나왔고, 나도 나름대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데드릭 벨크리스의 말을 살라자 샤마쉬가 이어받았다.
"확실히 수상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긴 한데, 실체를 명확히 잡을 수는 없더군.”
“그게 문제야. 전쟁이 벌어지면 도시 내에 숨어 있던 타노로스 조직원들이 활개를 치고 다닐 텐데, 그 때문에 도시의 피해가 아주 막심해지거든.”
두 사람은 전쟁 기록을 열심히 뒤져서 타노로스가 어떤 방식으로 전쟁을 벌이는지 확인했었다.
하지만 타노로스는 매 전쟁마다 다른 방식을 들고 왔다는 것만 확인했다.
그러니 이번 전쟁은 어떤 식으로 할지 예측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5대 가문 쪽은 어쩌고 있습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살라자 샤마쉬가 대답했다.
"통상적인 수준으로 준비 중이지. 다들 힘은 착실히 키워 왔으니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코웃음을 쳤다.
"흥. 아주 그냥 한 번 된통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지금 그놈들 아주 신나서 난리가 났다. 특히 젊은 것들은 전쟁을 무슨 게임처럼 여기고 있으니, 원.”
"그래서 걱정입니다. 타노로스가 결코 만만한 놈들이 아닌데, 피해가 정말 커질 겁니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또 이를 으득 갈았다.
"그게 장로원이 노리는 거지. 하여간 멍청하게 놀아나기나 하고. 쯧.”
“지난 번 트릴린드라 습격 때문입니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타노로스가 쏟아낸 전투기와 자주포, 장갑차 등을 보고 5대 가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타노로스, 물량만 많고 생각보다 별 거 아닌데?
그렇게 여기지 않았을까?
직접 타노로스와 맞붙어 본 사람이라면 결코 그런 얘기를 못할 것이다.
타노로스의 말단 조직원조차도 만만치 않은 놈들뿐이니까.
하지만 타노로스와 거의 접점이 없거나, 그동안 큰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그것만으로 타노로스를 얕볼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 그런 분위기가 5대 가문의 젊은 층 사이에서 퍼져 나가는 중이었고.
그 뒤로도 타노로스와 5대 가문에 관한 얘기가 쭉 이어졌다.
피해가 굉장히 커질 거라고 짐작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만으로 그걸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타노로스와의 전쟁은 어디에서 하자고 약속을 잡고 모든 전력이 달려들어 결판 짓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전 세계 모든 도시에 타노로스가 동시에 쳐들어갈 수도 있었다.
어디서 시작될지, 또 얼마나 많은 곳에서 시작할지 모르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반태수가 입을 열었다.
"이번 전쟁에서 타노로스가 병력을 어떻게 이동할 거 같습니까?”
반태수가 그렇게 물으며 좌중을 둘러봤다.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뜨리나?”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어떤 방식인지 짐작하시겠습니까?”
"글쎄. 우주에서 보내는 건가? 인공위성 같은 걸 이용해서?”
"정확히는 우주정거장입니다.”
"우주정거장?”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주정거장이라니. 타노로스 놈들은 그런 것까지 만들었단 말인가?
"타노로스는 이미 우주에 진출했습니다. 우주정거장도 여러 개 있고, 우주에 물류창고까지 만들어 뒀습니다. 그리고 달 기지에서 자원도 마구 뽑아내는 중이고.”
다들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봤다.
“그렇게 해서 뽑아낸 물량은 곧장 지상으로 보낼 수 있는 기술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어떤 장소든 막대한 물량을 쏟아 점령할 수 있을 겁니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지난 번 트릴린드라를 기습할 때도 그 물량을 우주에서 쏟아낸 거라고?”
"맞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내려앉았다.
반태수는 일행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가장 먼저 눈을 번득이며 말을 꺼낸 사람은 페일라 린치필드였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거였군요!”
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우린 우주에서 싸울 수 있는 로봇을 갖고 있잖아요!”
그 말에 다들 눈을 크게 뜨고 반태수와 페일라 린치필드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렇지. 우리한테는 로봇이 있지. 한데 그걸로 타노로스와 싸울 수 있으려나? 우주에도 전투기가 있을 거 아냐. 아니, 그놈들이라면 로봇을 만들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반태수를 바라봤다.
"그래서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그놈들이랑 싸우면, 승산이 있을까?”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합니다.”
그 말에 좌중이 흥분으로 끓어올랐다.
자그마치 우주에서 로봇을 타고 싸우는 일이다. 아무리 전쟁이라지만, 이걸 눈앞에 두고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럼 우주에는 어떻게 가죠? 그리고 우주에서 소통은요? 우리끼리 통신은 가능한 건가요?”
아직 통신은 해본 적 없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다 로봇에 대한 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들 열정적으로 대화에 참여해 의견을 나눴다.
반태수는 그 광경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혼자서 차분히 앞으로 있을 타노로스와의 전쟁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
다들 입을 헤 벌리고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거대한 전함이 허공에 둥둥 떠 있으니 얼마나 감탄스럽겠는가.
너무나 거대해서 저렇게 허공에 떠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다.
진짜 배처럼 생기진 않았다. 하지만 훨씬 멋진 외관이었다.
검은색 유선형 몸체를 가졌고, 거대한 두 개의 포와 그보다 작은 십여 개의 포가 보였다.
전투기나 로봇을 보관하는 격납고 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안이 보였는데, 그 안에 전투기 십여 대와 다섯 대의 로봇이 질서정연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구경하던 일행의 시선이 하나둘 반태수에게로 옮겨갔다.
"이게 뭐냐? 이거 진짜 우주전함이야?”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우주에서 싸워야 하니까요.”
데드릭 벨크리스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탑승형 로봇도 그렇지만 이 우주전함은 가슴을 끓어오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걸 타고 우주로 나가자고?”
"꼭 전쟁을 타노로스가 먼저 시작하라는 법은 없잖습니까.”
그 말에 다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적이 어디 있는지 알면, 굳이 적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싸울 필요가 어디 있겠나.
먼저 가서 치는 게 훨씬 효과적이고 이쪽의 피해도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는데.
반태수는 일행을 슥 둘러봤다.
데드릭 벨크리스, 살라자 샤마쉬, 오스윈 프리든, 페일라 린치필드, 안드렐라 윌렉스.
다섯 명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명령을 기다리는 병사들처럼.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우주정거장입니다. 그걸 전부 없애면 타노로스가 지상에 병력을 쏟아내기 어려워질 겁니다."
다들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목표는 물류창고입니다. 말이 창고지 크기는 웬만한 소행성만 하니까 각오 단단히 해야 할 겁니다. 거길 부수면 추가 물량을 동결시켜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전쟁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규모를 확 줄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니 우주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냥 5대 가문에 맡기면 된다.
아마 그래도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행동이 전쟁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겁니다.”
반태수의 말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어차피 할 전쟁, 빨리 끝내버리는 게 낫지. 그리고 5대 가문 쪽에 내가 잘 얘기해뒀으니 알아서 할 거야. 넌 걱정할 거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반태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든든하네요.”
사실 마음만 먹으면 지상에서 벌어지는 전쟁에도 얼마든지 개입할 수 있었다.
시스템의 힘을 모두 얻었으니까.
하지만 반태수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우주를 휩쓸어 피해를 줄여주는 것까지만 하면 충분하다.
5대 가문도 한 번쯤 정신을 바짝 차릴 때가 되었다는 데드릭 벨크리스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대신 다른 도시들은 좀 도와주기로 했다.
두뇌 몇 개를 할당해 상황이 심각해질 것 같은 도시는 시스템의 힘으로 적절히 대처해 줄 계획이었다.
반태수는 일행을 보며 말했다.
"그럼 가죠. 한바탕 하러.”
전함 앞부분에 문이 생겨나더니 활짝 열렸다. 웬만한 비행기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문이었다.
문에 마력이 일어나더니 바닥에 있던 일행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로봇에 탑승하며 많이 겪어본 일이기에 아무도 당황하지 않았다.
이내 모두 전함에 탑승했고, 문이 닫혔다.
우우우웅!
전함 곳곳에 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빛이 아래쪽으로 쏟아졌다.
마치 빛으로 추진력을 얻기라도 하듯 전함이 위로 쑥 떠올랐다.
떠오르며 앞부분이 점점 위로 솟았다.
적당한 각도로 치솟은 전함의 뒤쪽에서 거대한 빛이 일어났다.
번쩍!
전함은 마치 태양 같은 빛을 남기고 우주를 향해 쭉 쏘아져나갔다.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그야 말로 순식간에 우주 공간으로 뛰어든 전함이 이내 자세를 제어했다.
그리고 방향을 조절하더니 첫 번째 목표가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