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 타노로스의 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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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공간이동을 통해 스태플레톤에 도착했다.
엄대협의 말을 듣자마자 이동한 건 아니고, 남은 지식을 충분히 정리한 다음에 움직였다.
추가로 정리할 때, 열흘의 시간이 더 걸렸다.
그럼에도 완벽하게 소화한 것은 아니고, 그저 정리를 잘 해서 꾸준히 소화가 가능한 상태로 만든 것뿐이었다.
지금은 두뇌 여러 개를 할당해 계속해서 소화해 나가는 중이었다.
또한 그와 비슷한 수의 두뇌를 마력회로에도 할당했다.
마법 실력이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력회로를 발전시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니까.
아무튼 반태수가 도착한 곳은 스태플레톤에서 속성 종족들이 쓰는 건물의 옥상이었다.
시스템의 영역 안에 있기에 위치를 잡는 것도 간단했다. 마법을 쓰는 것도 굉장히 편했고.
도착과 동시에 영역화를 쫙 펼쳐서 주변 상황부터 확인했다.
예전에 왔을 때와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낮에 와서 그런지 다들 일하러 가서 남은 사람도 몇 되지 않았다.
반태수는 이왕 온 김에 케인 메르사이어를 만나기로 했다.
그에게 타노로스의 조직원이나 중간상인이 혹시 스태플레톤에 오면 파악해 두라고 지시했었다.
혹시 그동안 뭔가 성과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케인 메르사이어는 자신의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뭘 연구하는지 몰라도 아마 보통 연구는 아닐 것이다.
도시를 감시할 수 있는 벌레를 만들기도 하지 않았나.
아마 그걸 개량하고 있거나, 또 다른 기괴한 연구를 하고 있으리라.
반태수는 즉시 공간이동을 통해 케인 메르사이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케인 메르사이어는 갑자기 연구실 안에 생긴 기척에 놀라 고개를 돌려 확인했는데, 반태수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공간이동입니까!”
케인 메르사이어의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그 광채 안에는 분명한 광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반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케인 메르사이어가 반태수 바로 앞에 바짝 다가왔다.
"공간이동이라니! 저도 그걸 배울 수 있겠습니까!”
반태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쳐 주는 거야 어렵지 않다. 아마 가르쳐줘도 그걸 제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마법을 쓰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올리지 않으면 제대로 된 마법을 쓸 수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나.
"제발!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티끌만 한 거라도 좋습니다. 공간이동이라니!”
"가르쳐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걸 쓸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 곤란한데.”
케인 메르사이어가 당치 않다는 듯 웃으며 손을 휙 내저었다.
"에이, 제가 무슨 날도둑놈입니까? 마법을 배운다고 그걸 바로 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마법사입니다. 그 정도야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케인 메르사이어는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대체 어디서 공간이동을 해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설마 크랙톤에서 바로 오신 겁니까?”
반태수는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지?”
"역시 대단하십니다. 혹시 이거 비밀입니까?”
생각해보니 아직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 공개하면 귀찮아질 것 같았는데, 사실 이제는 공개하든 말든 별 의미가 없지 않나 싶었다.
"비밀이었는데, 이제부터는 공개해도 괜찮을 거 같네."
케인 메르사이어가 빙긋 웃었다.
"그래도 전 비밀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마법사님께서도 굳이 공개하지 마시고 그냥 편안히 쓰시다가 누가 물어보면 대답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반태수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게 낫겠네. 그나저나 타노로스 조직원은 좀 찾았나?”
케인 메르사이어가 음흉하게 웃었다.
"제가 누굽니까? 스태플레톤에 있는 모든 타노로스 조직원을 찾아서 정리해 뒀습니다. 그리고 방문한 중간상인들도 열심히 추적했습니다.”
케인 메르사이어는 반태수의 반응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이곳에 있던 타노로스의 거점이 박살 나는 바람에 타노로스 쪽에서 조사차 여러 명 다녀갔습니다. 일단 추적은 했는데, 도시 밖으로 나간 놈들 중에 끝까지 추적한 건 한 놈뿐입니다.”
"도시 밖으로 나간 놈들도 추적이 가능한가? 거리 제한은 없고?”
"거리 제한이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위성으로 해결했습니다. 뭐 제가 만든 벌레는 생명력도 질기고 검색에도 잘 안 걸려드니까요.”
반태수는 솔직히 좀 감탄했다.
케인 메르사이어, 진짜 제작 쪽으로는 천재 마법사 아닐까?
“제가 전에 드렸던 지도 갖고 계십니까?”
“물론이지.”
반태수는 아공간에서 태블릿을 꺼내 내밀었다.
"바로 업데이트 해드리겠습니다.”
케인 메르사이어는 태블릿을 받아 몇 가지 조작을 한 다음 지도를 업데이트했다.
화면에 스태플레톤의 지도가 나타나며 곳곳에 붉은 점이 찍혔다.
“이 붉은 점이 타노로스와 관계된 것들입니다.”
반태수는 태블릿을 받아 붉은 점을 손가락으로 쿡쿡 터치했다.
그 때마다 그곳에 있는 타노로스와 관계된 사람과 장비의 정보가 화면에 떠올랐다.
상당히 자세한 정보였다. 또한 실시간 감시 화면까지 있었다.
"벌레를 좀 더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벌레에 초소형 카메라를 삽입해 촬영이 가능하도록 바꾼 것이다.
보아하니 그 초소형 카메라도 케인 메르사이어가 개발한 모양이었다.
이건 어디로 가져가든 쓸모가 있을 듯했다.
“카메라는 전기로 작동하는 것과 마력으로 작동하는 것, 두 가지 모델이 있습니다. 상황에 맞춰서 종류를 골라 투입하면 안정성이 높아지죠.”
그래도 상대가 타노로스인데 이런 장비를 달면 들키지 않을까?
"아무리 타노로스 놈들이라고 해도 이 카메라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벌레 몸속에 있고, 눈알이 렌즈 역할을 하거든요. 어떤 종류의 탐색을 해도 그냥 벌레일 뿐입니다.”
정말 대단하다. 반태수는 또 감탄을 했다.
그러면서 영역화를 도시 전체에 뿌려 벌레를 감지해봤다.
‘예전의 영역화였다면 아마 그냥 지나쳤을지도. 벌레를 목표로 하면 발견했을 테고.’
상당히 훌륭한 은폐였다. 타노로스도 웬만큼 신경 쓰지 않는 한, 찾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아무튼 또 좋은 정보를 모았으니 한 번 청소도 하고 정보도 얻고 해야겠다.
무엇보다 거점이 박살 나서 조사차 왔다던 그 자를 잡으면 타노로스의 도시에 대해서 뭔가 힌트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반태수는 기대감과 존경심이 뒤범벅된 케인 메르사이어의 눈빛을 보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그냥 가는 건 어려울 듯했다.
반태수는 공간이동 마법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케인 메르사이어의 눈빛에 충성심과 존경심의 비중이 늘어났다.
***
반태수는 이번 기회에 시스템의 힘을 테스트해봤다.
케인 메르사이어의 연구실에서 도시의 모든 타노로스 관련자들을 잡아보기로 한 것이다.
아마 시스템의 힘을 이용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가능할지 모른다.
해보지는 않았지만 도시 전체를 영역화에 두고 필요한 곳을 타게팅해서 점혈을 통해 잡으면 아슬아슬하지만 어쨌든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튼 이번에는 시스템의 힘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점혈도 쓰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타노로스 조직원들을 잡기로 했다.
반태수는 영역화를 펼쳤다. 시스템의 힘을 이용했더니 스태플레톤은 물론이고 도시 바깥쪽까지 엄청난 범위를 영역화가 덮었다. 지도를 확인하면서 영역화를 썼는데, 이유는 지도가 도시 밖까지 연결되어 있어서였다.
타노로스의 조사단 중 한 명이 도시 밖 먼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른 도시에 들어가지도 않고 거기에 있다는 건, 나중에 다시 다른 조사단이나 아니면 거점을 만들 거점주가 오면 합류하기 위함일 것이다.
조사를 바탕으로 조력해줄 수 있을 테니까.
반태수는 모든 타노로스 조직원들을 타겟팅했다. 그리고 마법을 썼다.
좀 섬세한 마법을 골랐다. 그래야 시스템의 힘을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테니까.
위력을 한없이 높이는 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니 섬세하고 복잡한 마법을 시스템을 통해 쓰는 것이 오히려 더 테스트에 적합하다.
파지직!
각 조직원들의 머리 위에 전격의 구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격의 구에서 여러 줄기 전격이 뻗어 나갔다.
순식간에 전격으로 이루어진 새장이 만들어졌다.
단순한 전격이 아니었다. 굉장히 복잡한 속성이 깃든 전격이었다.
타노로스 조직원들은 갑자기 나타난 전격의 새장을 보며 크게 당황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당황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갑자기 새장 째로 허공에 떠올랐으니까.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반태수는 각 조직원들의 정확한 역량을 파악해 딱 그들이 벗어날 수 없을 정도의 힘만 썼다.
전격의 새장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보험일 뿐이었다. 물론 보험 치고는 과하게 힘이 들어간 마법이긴 했지만.
수십 개나 되는 전격의 새장이 하늘 높이 올라가 빠르게 날아 도시 밖 어딘가로 향했다.
반태수가 마법을 쓴 지 1분도 안 되어 상황이 끝났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케인 메르사이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마법을 쓰신 겁니까?”
"봤으면 알잖아.”
“아니…… 모르겠어서 여쭤보는 겁니다. 마력 유동이 아예 안 느껴져서……."
마력 유동이 안 느껴졌을 수는 있다. 시스템의 힘을 이용했고, 혹시 미리 알아차리는 놈들이 있을까봐 마력 유동을 살짝 감췄으니까.
하지만 그건 타겟팅한 대상이 있던 곳에서나 그렇지 여기선 굳이 그런 걸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력 유동이 느껴지지 않았다니.
반태수는 살짝 의아한 생각이 들어 몇 가지 간단한 마법을 써봤다.
주위에 불꽃과 물방울이 나타나고 전격의 뱀이 나타나 그것들을 타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여전한가?”
반태수의 물음에 케인 메르사이어가 입을 헤 벌린 채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예. 아무것도 안 느껴집니다.”
반태수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현상이 벌어져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마력, 그리고 마법을 관조했다.
반태수는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시스템의 기능 중 하나였다.
마법을 쓸 때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간섭하면서 그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건…… 좀 문제가 있는데?’
아무래도 방법을 찾아야 할 듯했다. 이대로 가다간 자신이 시스템을 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스템에 휘둘리게 생겼다.
당장은 어쩌기 힘들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마지막 시스템을 손에 넣으면 더 어려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반태수는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에 두뇌 여러 개를 할당했다.
대부분 빠듯하게 돌아가고 있었기에 마법 쪽과 마력회로 쪽에서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반태수가 딴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케인 메르사이어는 추종자의 눈빛으로 반태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보여주니 이 사람이 바로 마법의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공간이동 마법도 배웠으니 이제 자신이 그걸 어디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 확인하고 그걸 연구에 어떻게 적용할지 공부할 차례다.
케인 메르사이어는 새로운 기대감으로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기분 좋은 미소로 가만히 느꼈다.
반태수는 그런 케인 메르사이어를 보고는 흠칫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물러났다.
"그럼 난 이만 가봐야겠군. 나중에 다시 들르지.”
케인 메르사이어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언제든 오셔서 노예처럼 부려주십시오.”
반태수는 얼른 연구실에서 나갔다. 가끔 저러는 케인 메르사이어가 적응이 안 될 때가 있다.
지금처럼.
***
반태수는 속성 종족들이 머무는 건물로 들어갔다.
안에는 열 명 정도의 속성 종족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반태수를 보자마자 하던 일을 내던지고 득달같이 달려갔다.
다들 일제히 허리를 꾸벅 숙였다.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태수는 속성 종족들이 이렇게 인사를 할 때마다 자신이 왠지 아주 높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카르멕을 만난 이후라서 더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날 만나자고 한 사람은?”
"아직 퇴근 전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돌아올 겁니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적당한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러고 있으니 속성 종족들이 왠지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라.”
반태수의 말에도 속성 종족들은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반태수가 계속 빤히 쳐다보니,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반 마법사님을 위해 준비한 의자에 앉은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 앉으시면 그 모습을 저희끼리만 보게 되어서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부디 나중에 동료들이 전부 돌아오면 의자에 꼭 앉아주셨으면 합니다.”
의자라는 말에 반태수가 반사적으로 영역화를 펼쳤다.
시스템의 힘까지 써서 밀도 깊은 영역화를 이용해 꼭대기 층에 있는 의자를 확인했다.
‘와, 뭐가 이리 복잡해?’
의자에 얽혀 있는 힘이 굉장히 복잡했다.
그저 마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카르멕과의 만남에서 겪었던 그 특수한 힘도 얼기설기 엮여 있었다.
그렇게 잠시 살피고 있는데, 속성 종족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반태수를 보고 깜짝 놀라 다가와 인사부터 했다.
그리고 몸이 마치 희고 검은 연기로 꽉 차 있는 듯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보기만 해도 혼란스러운 사람이었다.
한데 품은 마력은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이게 혼돈 속성 마력이로구나.’
혼돈 속성 종족이었다.
그는 반태수 앞에 서서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타노로스의 도시가 어디 있는지 제가 알고 있습니다.”
반태수의 눈이 커다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