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화. < 시스템을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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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이름을 지은 건 살라자 샤마쉬였다.
살라자 샤마쉬는 이면세계 곳곳을 여행 삼아 돌아다니면서 인상 깊은 곳은 반드시 위치를 기록해두었다.
세계수는 그 중 하나였다.
한데 설마 저 세계수가 카르멕이 만든 시스템 중 하나일 줄이야.
"경치는 진짜 끝내주네.”
세계수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 거대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숲이 펼쳐져 있었다.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초록색 바다에 거대한 나무가 자라난 듯한 광경이었다.
예전 세계수에 대해 비행선의 승무원들이 얘기하길 포근한 느낌이라고 했다.
한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직접 보니까 알 수 있었다.
정말로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포근함은 세계수 안에 있는 시스템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로 저 거대한 나무가 시스템이었다.
물론 진짜 시스템은 나무 내부에 있을 것이다. 저 나무는 트릴린드라의 탑과 마찬가지로 시스템을 감싼 껍질일 뿐이고.
지금 반태수는 하늘 높은 곳에 떠 있었다.
그래야 세계수와 주변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으니까.
한참 동안 세계수를 보던 반태수는 문득 속성 종족들이 떠올랐다.
대체 왜 뜬금없이 떠올랐는지 생각해보니 세계수로부터 오는 느낌이 속성 종족들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아! 이것도 물어봤어야 하는데.”
속성 종족이 떠오르니 카르멕을 만났을 때, 속성 종족에 대해 물어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왜 속성 종족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그냥 안 떠올랐을 수도 있다. 반태수가 보통 사람이었다면 말이다.
한데 반태수는 마법사였다. 게다가 마력회로까지 가지고 있다. 그런 중요한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해 봐야 한다.
분명히 카르멕이 또 뭔가 손을 쓴 것이다.
속성 종족에 대한 질문 자체를 막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막았을까?
하여튼 카르멕 그놈만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다. 뭐 이리 복잡하단 말인가.
반태수는 속성 종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고 있었다. 혹시 그 종족들을 카르멕이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전혀 새로운 종족을 창조한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다. 생명체를 창조했다는 건 그 존재가 곧 신이라는 뜻 아닐까?
한데 반태수가 본 카르멕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어 보였다.
그 정도 존재가 왜 굳이 지구를 노려서 그런 꼴이 되었을까? 그냥 여기서 만족하고 왕처럼 살면 충분히 좋을 것 같은데.
아무튼 속성 종족을 떠올리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들이 만든 의자도 신경이 쓰이고.
속성 종족들을 모아오겠다고 비행선을 빌려줬었는데, 그건 돌려받았다.
그러면서 속성 종족들이 반태수에게 남긴 메시지가 있었다. 조만간 스태플레톤에 들러줬으면 좋겠다고.
아무래도 그게 그 의자 문제인 것 같은데, 카르멕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흔쾌히 방문했겠지만, 지금은 좀 꺼림칙했다.
그러니 무언가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는 방문 일정을 최대한 뒤로 미루기로 했다.
반태수는 고개를 휘휘 저어서 상념을 털어냈다.
지금은 시스템에 집중해야 한다.
반태수는 자신의 감각을 일단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시스템은 반드시 얻어야 한다. 그게 반태수의 직감이었다.
반태수는 세계수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공간이동을 세계수 근처로 하지 않고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한 이유가 있었다.
저 안쪽으로는 공간이동이 불가능했다.
하늘을 날아서 세계수로 다가가는데,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영역화를 펼쳤다.
아래에 쫙 펼쳐진 숲을 확인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숲 전체에 마법이 걸려 있었다.
그러니까 숲 전체의 지형을 이용해 거대한 마법진 여러 개를 구축해서 마법을 건 것이다.
공간이동을 막는 마법이었다. 그리고 거대한 결계를 구축하는 마법이기도 했다.
결계는 숲을 보호하고, 세계수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함부로 숲에 들어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마법도 깔려 있었다. 그것 역시 결계의 역할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하늘에는 마법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았다.
반태수는 별다른 저항감을 느끼지 못했고, 아마 살라자 샤마쉬도 그랬을 것이다.
'왜 하늘은 열어둔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 세계수로 다가가는 걸 막는 것이 아니라 숲 자체를 막았다는 건가?
그렇다는 건, 숲에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반태수는 나중을 기약하고 일단 세계수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그게 시스템인 건 확실하니까.
세계수 꼭대기에 도착하니 제법 넓은 공간이 있었다.
나뭇가지 몇 개가 겹쳐지고, 윗부분이 절묘하게 깎여 나가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주위는 거대한 나뭇잎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좀 떨어진 곳에서 보면 마치 둥지 같은 모양이었다.
"자, 일단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곳곳에 흔적이 조금씩 남아 있었다. 아마 살라자 샤마쉬가 세계수에 오면 여기 머무는 모양이다.
하긴, 여기 말고는 마땅히 머무를 만한 곳이나 비행선을 착륙할 만한 곳도 없었다.
아무튼 시스템 중 하나인 세계수에 오긴 했는데,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해야 시스템을 얻을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트릴린드라에서는 상부 도시에 있는 장치를 통해 사용자 등록을 했다.
그것만으로 시스템을 얻은 건 아니고, 시스템에 뛰어든 이후부터 시스템을 얻은 셈이었다.
그러니 여기도 비슷하지 않을까?
반태수는 지그시 눈을 감고 바닥에 집중했다.
영역화를 펼쳤다.
연산 보조를 쓸 수 있지만 영역화는 역시 시스템의 범위를 벗어나서 그런지 본래의 위력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충분하다.
반태수는 정확히 세계수에 영역화를 집중했다.
세계수 자체가 굉장히 거대해서 트릴린드라의 탑보다 훨씬 넓은 범위로 영역화를 써야만 했다.
트릴린드라의 탑에 썼을 때보다 영역화의 능력이 감소했지만, 사실 그건 큰 상관이 없었다.
세계수의 내부 구조는 탑과는 달랐다.
탑은 얇고 투명한 판이 층층이 쌓인 구조였는데, 세계수는 내부에 무수한 길이 나 있었다.
수액이 흐르는 길이었는데, 길을 따라 흐르는 수액에 마력이 가득했다.
내부 구조는 진짜 나무와 똑같았다.
세계수의 시스템은 수액이 흐르는 길에 있었다.
그 길에 마법진을 촘촘하게 새겨 놓았다.
수액을 따라 흐르는 마력이 마법진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다양한 현상을 만들어냈다.
그 현상이 주위에 간섭하면서 새로운 마법진을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모든 것이 어우러져 시스템을 이루는 것이다.
반태수는 더욱 집중했다.
영역화가 나무뿌리까지 파고들었다. 그 순간, 반태수의 표정이 확 굳었다.
나무뿌리가 너무 먼 곳까지 뻗어 있었다.
그걸 따라가다 보니 나무뿌리에서 위로 뚫고 나와 새로운 나무가 자라난 것을 확인했다.
반태수는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집중이 흩어질 뻔했다.
세계수는 지금 반태수가 서 있는 나무 하나가 아니었다.
이 큰 나무를 둘러싼 숲 전체가 세계수였다.
중앙의 거대한 나무를 감싼 작은 나무들이 전부 세계수와 뿌리를 공유하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다.
심지어 그 모든 뿌리와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도 세계수와 똑같이 수액이 흐르는 길에 마법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고, 세계수와 마찬가지의 작용을 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전부 시스템이었다.
반태수는 혀를 내둘렀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정말 신이라도 되는 걸까?
세계수가 이 정도인데 과연 벼락숲은 어떤 방식일까? 상상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달에도 시스템이 있다고 하니, 놀랄 지경이다.
어쨌든 아직 안 끝났다. 이걸 얻어야 한다.
반태수는 더욱 집중했다. 그리고 이내 고도의 집중상태에 들어섰다.
그 순간, 예전 트릴린드라에서 했던 것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마법진의 바다에 빠진 것이다.
한데 이번엔 느낌 자체가 아예 달랐다. 트릴린드라에 있던 바다보다 세계수의 바다가 월등히 깊고 넓었다.
반태수는 마법진의 바다에서 아주 깊이 잠수했다.
작은 마법진들이 똘똘 뭉쳐서 반태수를 스치고 지나갔다.
반태수는 다가오는 마법진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리고 안에서 소화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시스템의 핵심이 되는 마법진들이 그런 식으로 반태수의 것이 되었다.
그 시간이 마치 무한하게 계속 될 것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
반태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여전히 아까 서 있던 그 자리였다. 하지만 아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세계수에 있는 시스템의 힘을 얻은 것이다.
반태수는 영역화부터 펼쳤다.
영역화가 정확히 시스템의 영역을 덮었다.
세계수와 그 주변 모든 숲을 덮은 영역화가 막대한 양의 정보를 뽑아내 반태수에게 전달했다.
왜 숲에만 못 들어가게 막았는지 알아냈다.
저 숲은 시스템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이 시스템을 보호하는 결계의 역할도 한다.
시스템을 얻기 전에는 숲의 역할이 아무나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거라고 여겼다.
한데 막상 시스템을 얻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주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는 생명체만 걸러내는 결계였다.
그 조건에 인간은 들어가지 않는다. 마수나 짐승도 들어가지 않는다.
조건이 아주 까다로웠는데, 반태수가 해석한 조건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속성 종족에 맞아 떨어진다.
즉, 속성 종족을 숲에 들이지 못하게 하는 결계였다.
반태수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대체 왜?
속성 종족은 카르멕이 만들어낸 존재 아니었나? 그런데 왜 저런 조건을 걸어서 속성 종족을 배재했을까?
‘혹시 내 가정이 틀렸나?’
속성 종족을 카르멕이 만든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가 사라졌다.
아무튼 세계수에 깃든 시스템을 얻었다.
세계수의 시스템은 성능 자체가 달랐다.
활동 범위가 무지막지할 정도로 넓었다. 하지만 쓰임새나 위력은 트릴린드라의 탑과 다르지 않았다.
한데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연산보조의 성능이 훨씬 좋아진 것이다.
두 배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좋아졌다.
아마 다른 시스템을 얻어도 이런 식으로 성능이 올라갈 것이다.
만일 나머지 시스템을 전부 얻으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다.
반태수는 바닥에 누웠다.
몸은 멀쩡했다. 다만 좀 쉬고 싶었다.
이제 벼락숲과 타노로스의 도시, 그리고 달이 남았다.
또 어떤 기상천외한 일을 겪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과 기대가 생긴다.
반태수는 그렇게 한 시간쯤 누워 있다가 일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
벼락숲의 시스템도 얻었다.
여기를 얻는 건 세계수보다 좀 더 어려웠다.
하지만 얻고 나니 그동안 갖고 있었던 의문 하나가 살짝 풀렸다.
트릴린드라의 탑과 세계수를 얻었을 때, 시스템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확인했다.
한데 솔직히 그 정도 범위로는 고작 다섯 개의 시스템만으로 이면세계 전부를 커버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 의문이 벼락숲에 와서야 풀렸다.
벼락숲은 전달자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벼락숲에서 생성되는 무수한 벼락이 이면세계 곳곳으로 시스템의 힘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또한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의 힘을 이어주는 역할까지 했다.
실제로 벼락숲의 시스템을 얻은 뒤부터 반태수가 시스템의 힘을 투사할 수 있는 영역이 대폭 늘어났다.
거의 이면세계의 70% 정도를 영역으로 확보했다고 보면 된다.
나머지 30%를 마저 확보하려면 남은 시스템을 얻어야 한다.
이제 남은 곳은 타노로스의 도시와 달, 두 군데였다.
반태수의 선택은 달이었다.
어쩔 수 없다. 아직 타노로스의 도시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까.
그래서 좀 짜증이 났다.
이런 건 카르멕이 알아서 미리미리 장소를 알려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혹시 개고생 좀 해보라는 뜻인가?
***
반태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 높이 떠 있는 달이 오늘따라 밝았다.
본의 아니게 로봇의 우주 활동 테스트를 하게 생겼다.
이 로봇이 과연 우주로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어차피 우주도 공간이동으로 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로봇의 성능을 생각하면 자력으로 날아서 우주까지 갈 수 있을 거라 판단한다.
그래도 이번엔 공간이동을 쓸 계획이었다.
공간이동으로 로봇처럼 거대한 물건을 달까지 보내는 건 좀 어렵다.
하지만 방법이야 많다.
오늘 반태수가 사용하려는 방법은 아공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공간을 직접 쓰게 되면서 정말로 좋아진 점 하나는 입구를 자유자재로 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굉장히 복잡한 술식을 짜야 한다. 하지만 어디든 입구를 여는 것이 가능했다.
당연히 그렇게 입구를 연 아공간에서 물건을 뺄 수도 있다.
반태수는 그걸 이용해 달 근처에 아공간을 열어 로봇을 꺼낸 후, 로봇의 조종석으로 공간이동 하는 방법을 계획했다.
사실 이건 나중에 위성을 띄울 때도 써먹을까 생각했던 방법이기도 했다.
반태수는 일단 몸에 각종 보호마법을 걸었다. 겹겹이 떡칠을 했는데, 혹시 로봇이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물론 마력회로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겠지만.
"후우. 간다.”
반태수는 즉시 아공간을 열고 로봇을 꺼냈다. 그리고 곧장 공간이동을 했다.
눈앞에 조종석이 보였다. 반태수는 즉시 로봇을 가동했다. 가동과 동시에 조종석 내부에 훈훈한 온기가 감돌았다. 공기도 생성되었고. 성공이다.
반태수는 바로 작동한 조종석의 스크린을 통해 달을 보고 있었다.
이제 저기에 있는 시스템을 찾으면 된다.
반태수를 태운 로봇이 달 주위를 천천히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