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333화 (333/351)

333화.  < 욕망과 지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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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지금 거대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양 팔을 옆으로 활짝 펼친 채.

그리고 그의 팔을 벤 채 그를 향해 옆으로 누운 여인 두 명이 각각 양 옆에 있었다.

‘졌어.’

욕망에 졌다.

어제 일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쫙 펼쳐졌다.

처음에는 정말 별 일 없었다.

차분하게 왜 그런 차이가 났는지 설명해 주었다.

당연히 소외된 느낌을 받던 세 사람은 마력회로를 새기겠다고 나섰고.

오스윈 프리든에게 마력회로를 새겨줄 때까지는 별 일 없었다.

워낙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테스트 삼아 자신의 몸에 마력회로를 새긴 경험도 많았다.

게다가 실전도 여러 번 겪어서 그야말로 눈 감고도 멋들어진 마력회로를 새길 정도로 능숙해진 상태였으니까.

마력회로를 새기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따로 방을 잡았다.

공연장 아래에 있는 빌딩이 대부분 숙박시설이었는데, 그 중 가장 훌륭한 객실이 반태수를 비롯한 일행들에게 배정되었다.

그러니 따로 자리를 마련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스윈 프리든을 자신의 객실로 데려가 마력회로를 새겨주었다.

정말로 감격해서 연신 감사를 표하는 오스윈 프리든을 애써 말리며 밖으로 내보냈다.

그 뒤로 페일라 린치필드와 안드렐라 윌렉스가 차례대로 방에 들어와 마력회로 시술을 받았다.

그냥 오스윈 프리든에게 했던 것처럼 새겼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한데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니, 지금 생각하면 욕망에 잡아 먹혔던 게 분명하다.

반태수는 직접 몸에 손을 대고 마력회로를 새겨주었다.

그렇게 페일라 린치필드에게 마력회로를 심은 다음 그녀를 내보냈다.

나가기 싫어하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안드렐라 윌렉스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다시 찾아오라는 말을 하고 그녀를 내보낸 다음, 안드렐라 윌렉스를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같은 과정이 반복되었다.

안드렐라 윌렉스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페일라 린치필드가 안으로 들어왔고, 문이 채 닫히기 전에 그것을 꽉 잡은 안드렐라 윌렉스도 같이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두 사람의 눈빛은 마치 반태수를 잡아먹기라도 하듯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고.

결론은 지금 이 상황이다.

어제 어찌나 격렬하게 마력을 섞었는지, 지금도 좀 멍하다.

육체적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마력회로의 힘이었다.

반태수는 눈을 몇 차례 깜빡였다. 머릿속이 맑아졌다.

이 역시 마력회로의 힘이었다.

굳이 발동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작동하는 마력회로가 있다. 예를 들면 정력 강화 같은.

지금 작용하는 육체 컨디션을 최상으로 맞춰준다거나 머리를 맑게 유지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능력이다.

어제의 폭풍 같은 시간이 떠오르니 자연스럽게 몸에서 반응이 왔다.

마침 양 옆의 두 여인이 눈을 떴다.

격렬한 시간이 다시 시작되었다.

***

반태수는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이건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다.

확실히 영혼의 융합 때문에 나타난 반응이다.

그 증거로, 지금 반태수의 머릿속에 무지막지한 양의 지식이 떠오르고 있었다.

역시 카르멕과의 만남 자체가 영혼의 융합을 가속시킨 것이 분명했다.

반태수는 어제 카르멕을 만났던 때의 일을 차분히 떠올려봤다.

그리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차분히 생각해봤다.

카르멕의 목적은 거의 확실해졌다.

그놈이 바라는 건 반태수의 육체였다.

‘내가 발전하길 바란다고 했지?’

남은 시스템의 위치까지 알려줬다. 모든 시스템을 손에 넣으면 그 힘을 이면세계 어디에서건 쓸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다.

카르멕이 아직 뭔가 감추고 있다는 건 눈치챘다. 한데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른다.

‘영혼과 관계된 무언가야.’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거다.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그 무언가를 획책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게 뭔지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당하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반태수는 그 답이 마력회로에 있다고 봤다.

카르멕과 자신을 비교하면 그 어떤 것이든 카르멕이 월등히 위에 있다.

그가 자신의 모든 지식을 반태수에게 영혼과 함께 넘겼다고 하지만, 아직 그걸 전부 받아들이지 못했다.

게다가 카르멕은 수천 년이나 살아온 존재다. 그동안 쌓인 경험이 또 얼마나 많겠는가.

어떤 면을 보더라도 반태수가 이길 수 있는 구석이 없었다.

단 하나, 마력회로만이 카르멕이 계획한 범위를 넘어선 곳에 위치한다.

그러니 그것이 유일한 답이 될 것이다.

반태수가 깊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밤을 함께 보낸 두 여인이 바로 앞에 앉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예전 반태수를 함께 만난 이후부터 조금씩 친분을 쌓아왔기에 지금에 와서는 제법 친해진 사이였다.

하지만 어젯밤의 일을 기점으로 훨씬 친해졌다.

처음에는 부끄럽고 민망해서 얼굴을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한데 그 순간을 넘기고 나니 이젠 깊은 친밀감이 생겼다.

반태수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두 여인을 쳐다봤다.

“왜? 할 말이라도 있나?”

어젯밤 이후, 두 여인에게도 말을 편히 하기로 했다. 당연히 두 여인의 요청 때문이었다.

반태수가 아네스를 비롯한 여인들을 대하는 걸 보고 부러웠던 모양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요.”

반태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했지.”

두 여인이 눈을 반짝였다.

"어떻게 하실 건데요?”

반태수는 그 질문을 받고 흠칫 놀랐다.

왠지 자신이 말한 어떻게와 저 두 여인이 말한 어떻게의 의미가 다른 것 같았다.

반태수는 얼른 말을 돌렸다.

"행사 일정은 이제 끝난 거지?”

반태수의 물음에 페일라 린치필드가 대답했다.

“아직 안 끝났어요. 제일 중요한 건 어제 끝났지만, 이후 일정이 좀 남았어요.”

"남았다고?”

"대단한 건 아니에요. 연회라거나, 회합도 몇 차례 있고요.”

"회합?”

"이런 행사는 수십 년 만에 한 번 열리는 거잖아요. 이렇게 한데 모이기가 쉽지 않거든요. 기회 왔을 때, 중요한 사안들을 논의하고 처리하는 거죠.”

반태수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랑은 별로 관계없는 일정이네.”

"예? 관계가 왜 없어요. 행사에 주역으로 참여하셨잖아요.”

“그런데?”

"행사의 주역이라는 건 향후 세계를 이끌어갈 인재 중 한 명이라는 뜻이에요. 당연히 모든 회합에 참여해야죠.”

귀찮은 일이 남았다는 뜻이라 반태수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참석 꼭 해야 하나?”

"싫으시면 안 해도 돼요. 그래도 참석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사실 얼굴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게다가 반태수가 참석하면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가 근처에 있을 것 아닌가.

아마 이목이 모일 것이다.

반태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카르멕과의 일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모른다.

그러니 자신의 영향력을 5대 가문 내에 제대로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자신의 영혼에 일부 섞여 있는 카르멕의 영혼 덕분에 5대 가문 사람들과는 만나면 만날수록 점점 호감도가 높아진다.

일단 행사나 후계자 승인 작업에 한 번이라도 참여한 사람은 평생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이번에 연 행사는 굉장히 당겨서 연 게 확실하네.’

케트라 브리저가 어렸을 때 행사에 참석한 기억을 갖고 있으니 아무리 오래 되었어도 10년 좀 넘은 정도일 것이다.

그랬으면 다음 행사는 그때 참석한 어린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자식을 낳고 좀 키웠을 무렵에 했어야 한다.

최소 20년은 훌쩍 넘겨야 그런 시기가 온다.

아마 그보다 더 고려할 사항을 추가하면 30년이 지나고 열어도 무방하리라.

그러니 최소 절반 이상 시간을 당긴 것이다.

당시 반태수가 확인한 에너지 소모를 보면 무리한 게 확실하다.

다른 에너지는 몰라도 그 특수한 에너지, 분명히 영혼과 관계되었을 그 에너지는 채우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 같으니까.

“잘 생각하셨어요. 아마 다들 기대하고 있을 거예요.”

“기대?”

"최근 가장 두각을 나타내셨잖아요. 들어보니까 타노로스의 기습도 거의 혼자서 다 막아내셨다면서요? 거기에 글락 그룹의 주인이시기도 하고.”

여러모로 관심이 갈만한 포인트가 많다는 뜻이다.

아마 반태수가 나서서 적당히 대화만 해줘도 그 관심이 전부 호감으로 발전할 것이다.

페일라 린치필드는 회합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반태수 옆에서 차근차근 필요한 것을 챙겨줬다.

그리고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에게 반태수를 좀 잘 도와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그 얘기를 할 때, 두 사람은 굉장히 묘한 시선으로 반태수와 페일라 린치필드를 번갈아 바라봤다.

하지만 반응 자체는 대단치 않았다. 마치 올 것이 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문제는 다른 여자들이었다.

아네스, 케트라 브리저, 키에라 나서스도 나서서 반태수를 돕겠다고 달라붙었다.

한 발 떨어져 있는 건 안드렐라 윌렉스뿐이었다.

한데 그녀도 그냥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잘 하는 걸로 반태수의 유명세를 키웠다.

SNS에 반태수와의 연애를 공개해 버린 것이다.

물론 허락은 받았다. 반태수의 외모는 비록 이면세계로 오면서 바꾸긴 했지만 상당한 미남이었다.

안드렐라 윌렉스가 SNS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상당했다. 그 영향력을 타고 반태수의 모습이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아무튼 반태수는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약간 피곤한 표정으로 회합에 참여했다.

반태수의 표정을 본 데드릭 벨크리스가 놀리듯 낄낄 웃었다.

그 웃음에 반태수는 한숨을 쉬었고.

***

회합에서는 별 일 없었다.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가 작정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니 대부분의 이목이 반태수에게 집중되었다.

반태수는 가벼운 대화를 통해 그들의 호감을 이끌어냈고.

그 뒤에 이어진 연회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다른 점은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뿐이었다.

아무튼 반태수는 행사의 모든 과정에 끝까지 집중했다.

앞으로 뭐든 허투루 해선 안 된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카르멕에게 먹힐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5대 가문 일원들의 막대한 호의를 얻으며 반태수의 행사 일정이 끝났다.

***

"뭐? 또 혼자 간다고?”

데드릭 벨크리스가 못마땅한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아직도 유적을 더 돌아야 하는 거야? 보아하니 웬만한 유적은 다 턴 것 같던데.”

"아직 멀었습니다. 그리고 꼭 유적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럼 뭔데? 우리가 도우면 더 빨리 더 잘 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하라고.”

반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여러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을 해주시면 됩니다. 우리가 뭘 앞뒀는지는 다들 아시죠?"

반태수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앞에 늘어서 있는 사람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다들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수긍한다는 듯한 눈빛으로 반태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만만하게 보면 안 됩니다. 타노로스, 보통 놈들이 아니니까요.”

"그놈들 대단한 거야 나도 잘 알지. 그래도 이 정도면 할 만한 거 아니냐?”

우리한테는 로봇도 있으니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표정으로 그렇게 덧붙이며 어깨를 한껏 올렸다.

"만일 타노로스 쪽에도 같은 무기가 있으면요?”

"응?"

데드릭 벨크리스는 생각도 못했다는 듯 놀란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만일 그런 무기가 있다면 왜 지금까지 안 쓰고 감춰뒀겠는가.

지난 번 기습에 썼다면 이쪽은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수도 있는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자고요. 그러니 영감님은 얼른 매뉴얼부터 만들어서 배포하세요. 전 로봇 몇 기 더 만들어 볼 테니까.”

만들기만 하면 쓸 사람이야 얼마든지 있다.

물론 모든 로봇을 탑승형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어쩌면 인공지능이 훨씬 더 잘 싸울지도 모른다. 아니, 보통은 그럴 것이다.

‘전투 인공지능이 정말 장난 아니었지.’

그러니 고작 전투기 한 대로 타노로스의 전투기들을 압도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나.

문제는 타노로스에도 인공지능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습격 당시 타노로스가 쏟아낸 모든 전투기는 전부 무인이었다.

그게 인공지능을 쓴 건지 아니면 원격조종을 한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많은 전투기를 전부 원격조종으로 움직였을 가능성보다는 인공지능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겠는가.

어쩌면 타노로스와의 전쟁은 우주에서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무튼 전 믿고 다녀올 테니, 나머지는 부탁합니다.”

반태수의 말에 모두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럼 다녀오세요. 저희는 각자의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아네스가 가장 먼저 나서서 말했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도 경쟁하듯 비슷한 말을 하며 인사를 했다.

"그런데 비행선은요?”

"이번에는 비행선 없이 다녀오려고.”

"예? 아무리 그래도 비행선이 편하실 텐데……."

그리고 일정이 길어진다면 오히려 더 빠르고 말이다.

하지만 반태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보다 훨씬 빠른 이동 방법이 있으니까.

지금은 시간을 아껴야 할 시점이다.

타노로스가 언제 전쟁을 시작할지 모르니 말이다.

물론 카르멕이 알아서 조절을 하겠지만, 그래도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서두르는 편이 좋다.

반태수는 얼른 손을 흔들어 일행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길을 나섰다.

빠르게 걸어 시야에서 벗어난 순간, 왜곡을 걸고 공간을 뛰어넘었다.

반태수가 다시 나타난 곳은 거대한 나무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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