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332화 (332/351)

332화.  < 카르멕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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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하늘에 균열이 갔다.

그리고 잔디로 덮인 땅에도 거미줄 같은 금이 쩍쩍 갔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땅이 흔들린다거나 하늘이 무너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모양만 그렇게 바뀌었을 뿐이다.

반태수는 마력회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해봤다.

모든 기능이 막힘없이 돌아가는 중이었다.

‘대비해놓길 잘했네.’

반태수는 이번에 행사에 참여하기 전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서 몸에 새로운 마력회로를 깔았다.

그동안 얻은 모든 노하우와 마력회로를 집대성해서 새로 설계한 마력회로였다.

일단 패트릭의 통찰력, 제인의 과거 확인 능력, 그리고 엘리스의 미래예지를 엮어서 하나의 마력회로에 담았다.

하나하나가 보통 능력이 아니었던지라 그걸 하나로 모으니 아홉 겹의 원으로 이루어진 마력회로가 되어 버렸다.

그 외에 다른 다양한 능력들을 또 쌓아서 아홉 겹의 원으로 이루어진 마력회로를 만들었다.

그런 식으로 각각 아홉 겹의 마력회로 일곱 개를 몸 곳곳에 새겼다.

그 중에는 정신력을 강화한다거나 외부에서 오는 영향력을 차단하는 능력도 있었다.

능력이 막힘없이 작동한다는 걸 확인한 다음, 방금 있었던 카르멕과의 대화를 차분히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카르멕의 표정, 행동, 풍기는 분위기, 말투, 그리고 거기 담긴 내용까지 모든 것을 떠올렸다.

반태수는 피식 웃었다.

확실히 자신이 방심하긴 했다. 거짓말을 안 하긴 뭘 안 할 것 같단 말인가.

역시 통찰과 예지의 시너지가 장난 아니었다.

"지루하긴 뭐가 지루해? 너, 시간이 얼마 안 남았구나?”

반태수가 툭 던진 말에 카르멕의 표정이 처음으로 사라졌다. 지금까지는 시종일관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 은은한 미소가 왠지 비웃음처럼 보여서 반태수는 그걸 보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었다. 한데 이렇게 미소가 사라지니 그 미소가 반태수에게로 붙어 버렸다.

"이번에는 무리한 거 맞네. 원래는 좀 더 시간을 뒀어야 하는 거지?”

카르멕이 헛웃음을 지었다.

"하! 이건 또 뭐지? 너 마력회로도 심었구나? 내가 그걸 왜 못 찾은 거지?”

카르멕은 그 부분이 이상했다. 아까 분명히 반태수의 몸을 차근차근 확인했다.

그리고 간접적으로 반태수의 영혼에 갖다 붙인 자신의 영혼을 통해 그동안 있었던 일도 확인했다.

한데 마력회로에 대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자신이 전해준 지식 중에 마력회로에 관한 것도 있었으니까.

지구의 고대인으로부터 기원한 마력회로를 보고서 원리를 파악해 만든 정력 강화의 마력회로 말이다.

사실 마력회로에 대해서 카르멕이 쓸모 있다고 여긴 것은 딱 그 정도였다.

그래서 지식 역시 그 정도에 불과했고.

실제로 위력 자체만 놓고 보면 마법이 마력회로보다 월등히 강력했다.

마력회로로 할 수 있는 건 마법으로도 얼마든지 구현이 가능했고.

한데 지금 보니 마력회로가 종 다른 역할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다른 역할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그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역시 마력회로는 너도 잘 모르는 모양이네.”

반태수는 자신의 마력회로를 감추기 위해 또 마력회로를 썼다.

일종의 보조 마력회로였는데, 거기에 정력 강화도 포함되어 있었다.

카르멕의 표정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는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머금었다.

"마력회로? 그거 하나 새긴다고 뭐가 달라지지?”

"많이.”

"뭐?"

"많이 달라진다고. 일단 네가 나한테 가지는 호의가 전혀 없다는 건 확실히 알겠네.”

"그럴 리가. 기본적으로 호의가 없었다면 아무리 영혼의 일부를 제공했다고 해도 내가 모든 지식을 너한테 넘겨줬을까?”

반태수가 손가락으로 카르멕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모든 지식. 조금씩 제공하도록 네가 조절했다고 했지?”

"그래. 그랬지. 갑자기 과도한 지식이 넘어가면 네 머리가 터져 버릴 테니까. 수준에 맞게 넘겨주도록 조절했지.”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웃기고 있네. 네가 조절하긴 뭘 조절해? 영혼이 융합될 때마다 지식이 저절로 제공되는 거잖아.”

카르멕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

"그걸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아니라고 우길 수도 없었다. 저렇게 확신어린 표정으로 말을 하는데 아니라고 우겨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후계자 승인, 영혼에 복속시키는 거였군. 행사도 마찬가지고. 나한테 네 영혼이 섞여 있어서 나한테도 적용되는 거였고."

반태수는 그동안 5대 가문과 엮이면서 있었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가 지나칠 정도로 친밀감을 표했던 것부터 시작해서 데드릭 벨크리스나 살라자 샤마쉬가 갈수록 호감을 표한 것, 그 외에 5대 가문과 얽힌 다양한 상황들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그 모든 것이 후계자 승인이나 행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영혼에 복속시켰기 때문이다.

"이거, 되돌릴 방법도 없네?”

반태수가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지금 이 심상공간이 깨져서 원래대로 돌아가고 나면, 카르멕이 장로원을 움직여 반태수를 적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제대로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카르멕은 당황하지 않았다.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반태수를 가만히 확인했다.

“쯧. 내 심상공간이 아니라서 아무래도 한계가 있군. 그 마력회로는 확인하기가 너무 어려워.”

카르멕은 잠시 투덜거리다가 다시 반태수를 바라봤다.

"내가 너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적대하는 건 아니야. 넌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니까. 이제 그 부분에 관한 얘기를 좀 해볼까?”

반태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통찰과 예지를 통해 얻는 정보의 양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카르멕이 뭔가 조치를 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100% 완벽하게 틀어막은 것은 아니니까.

희미하지만 분명히 마력회로의 능력을 통해 사실 확인을 할 수 있었다.

일단은 그거면 충분했다.

"내가 원하는 건 네가 더 성장하는 거야. 그리고 지구에 시스템을 구축해 줬으면 좋겠어. 그건 너한테도 좋은 거잖아. 안 그래?”

'진심.’

반태수는 방금 카르멕이 한 말이 진심이라는 걸 확인했다.

"너 지구에 갈 방법이 따로 있구나?”

카르멕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없다.”

이것 또한 진심이었다.

"그럼 영혼을 계속 섞어서 결국 나와 하나가 되겠다, 뭐 그런 건가?”

"글쎄.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서 뭐라고 딱부러지게 대답해줄 수가 없군.”

놀랍게도 이것 역시 진심이었다.

하지만 영혼이 뒤섞이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리 있나. 분명히 어떤 부작용이 있을 것이다.

반태수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카르멕을 똑바로 노려봤다.

"너, 설마…… 네 남은 영혼을 계속 잘라서 나한테 보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카르멕이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희미하게 남은 통찰의 힘으로 그렇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네가 가져간 내 영혼, 어떻게 했지?”

"그거야 당연히 내 영혼을 잘라내 모자라게 된 부분에 갖다붙였지.”

그리고 거기에 남은 기억을 통해 지구에 대한 정보를 추가로 습득했고.

반태수는 그 말을 듣고 갑자기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설마 너, 내 영혼이랑 네 영혼을 뒤바꾸려는 속셈이야?”

카르멕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그건 안 되더라고.”

반태수는 어이없는 눈으로 카르멕을 쳐다봤다. 만일 그게 가능했다면 그렇게 했을 거란 뜻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반태수는 초록색 액체에 담긴 시체 꼴이 될 테고.

그야말로 섬뜩한 말이었다.

그나마 방금 대답한 말이 진심이라는 것이 다행이다.

물론 카르멕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테지만.

"타노로스 놈들 우주에서 난리치는데, 그거 전부 부수지는 말고 달에 있는 것들은 남겨둬. 달에도 시스템이 하나 있는데, 그놈들 그걸 지키는 역할도 하니까.”

카르멕이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시스템이 있는 다른 위치도 알고 싶겠지? 일단 타노로스의 비밀도시에 하나 있고, 살라자 샤마쉬가 세계수라고 이름 붙인 그 나무, 그것도 시스템이야. 그리고 벼락숲에도 시스템이 하나 있고.”

트릴린드라의 시스템과 달에 있다는 시스템까지 더하면 총 다섯 개의 시스템이 존재하는 셈이다.

"다섯 개의 시스템을 모두 얻으면 어디에서건 시스템의 힘을 막힘없이 쓸 수 있지. 진짜 왕이 되는 거야.”

카르멕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꼭 왕의 힘을 얻었으면 좋겠군.”

"내가 시스템을 모두 얻으면, 영혼이 더 많이 섞이나?”

"꼭 그런 건 아니고, 네가 성장을 하겠지? 내가 원하는 건 그거야. 그래야 너와 내가 더 가까워질 테니까.”

저 가까워진다는 말이 영혼의 뒤섞임을 뜻한다는 건 그냥 알 수 있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마. 불쾌해 하지도 말고. 영혼이 뒤섞인다고 해서 네 자아가 사라지는 건 아니야. 어쩌면 더 단단해질 수도 있지.”

"거기에 네 자아도 섞이고?”

“그렇지. 위화감은 전혀 없을 거라고 장담해.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테니까.”

반태수는 그 순간, 카르멕이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리고 슬슬 카르멕과의 시간이 끝나간다는 예감이 찾아왔다. 이건 아무래도 마력회로의 능력 중 하나인 예지로부터 오는 느낌인 듯 했다.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카르멕이 굉장히 아쉬운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내가 알아서 장로원을 움직여 볼 테니까, 조만간 또 한 번 만나자고.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타노로스 잘 정리하고 시스템도 잘 챙겨. 지구에 시스템 구축하는 거 잊지 말고.”

카르멕의 말투에는 어차피 넌 그렇게 하게 될 거라는 강한 믿음이 깃들어 있었다.

반태수는 순간 무언가가 떠올라 얼른 물었다.

"네 영혼을 쪼개 넣은 다른 사람, 누구지? 어디 있고, 그놈이 뭘 했지?”

카르멕은 담담히 대답했다.

"누군지는 의미 없어. 어차피 그놈의 영혼은 내 쪼개진 영혼이 장악해서 존재의 의미가 사라졌으니까.”

“그게 무슨 뜻이지? 죽었다는 건가?”

"그건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몰라.”

"뭐?”

"필요한 만큼 쓰고 버렸거든.”

반태수는 그 대답에서도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버리고 싶어서 버린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버린 건가?”

카르멕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도 할 건 건 다 했으니까.”

"그래서 아쉽진 않다 이거네?”

"이쪽으로 넘어오는 포탈을 무작위로 뿌리는 게 목표였는데, 아주 잘 해결했으니까.”

저 말에도 모든 정보가 담기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시간이 지났군. 더 있으면 내 존재에 문제가 생겨서.”

카르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상이 다시 새까맣게 변했다.

***

반태수는 확 되돌아오는 시야에 적응하기 위해 마력회로를 한 바퀴 돌렸다.

무대 중앙에 있는 초록색 관이 보였다.

더 이상 특별한 힘이 나오지는 않았다. 초록색 액체에 담긴 힘은 여전했다. 하지만 처음과는 분명히 달라졌다.

‘상당한 힘이 소모되었어.’

아마 아까 심상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소모한 모양이었다.

반태수의 힘을 쓰게 하지 않고 저 액체의 힘을 쓴 건 좀 의외였다.

카르멕 정도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 역시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카르멕은 반태수의 몸을 빼앗으려던 놈이다. 절대 믿어선 안 된다.

그래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과연 남은 시스템을 다 얻어도 될까?

그리고 뭐? 지구에 시스템을 구축해?

자신이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지구에서는 굳이 시스템이 없어도 자신을 막을 그 무엇도 없는데.

한데 그 순간, 카르멕이 자신보다 먼저 영혼을 쪼개서 주었다던 사람이 떠올랐다.

'어쩔 수 없이 버렸다고? 버렸다는 의미가 뭐지?’

반태수가 깊이 고민하는 사이 행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어느새 초록색 관은 다시 무대 밖으로 나갔고, 진행 요원들이 무대에 선 후계자들과 반태수를 챙겨서 퇴장을 도왔다.

반태수는 계속 고민하면서 다시 대기실로 돌아갔다.

***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이 반태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여자들이 바짝 다가와서 멋있었다며 꺅꺅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가 쓴웃음을 지으며 바라봤다.

그리고 오스윈 프리든이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고.

그때 케트라 브리저와 아네스가 갑자기 말했다.

"그런데 아까 무대에 나왔던 거요. 정말로 초록색 관이던데요?”

"맞아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두 사람의 말에 반태수는 반사적으로 나머지 사람들을 확인했다.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 그리고 안드렐라 윌렉스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반면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는 그렇지 않았다. 표정이 좀 굳어 있었다.

"두 분도 초록색 관으로 보였던 모양이네요. 나머지 분들은 황금상으로 보였고.”

반태수는 빠르게 두 무리의 차이점을 파악했다.

‘마력회로네.’

마력회로를 새긴 사람은 진실을 꿰뚫어 본 것이다.

아마 마력회로가 어떤 작용을 해서 카르멕이 초록색 관에 해놓은 무언가가 통하지 않은 모양이다.

단순한 마법이 아닌 훨씬 고차원적인 수법으로 가린 것 같은데, 그걸 깨뜨렸으니 마력회로의 능력도 정말 보통이 아니다.

"왜 우리만 그걸 못 보는 걸까요?”

페일라 린치필드가 아쉬움과 부러움, 서운함이 뒤섞인 눈빛으로 반태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답을 알고 있으니 대답해주면 된다. 마력회로도 새겨주면 되고.

한데 답을 원하는 페일라 린치필드와 안드렐라 윌렉스를 보고 있으니 슬그머니 욕망이 일어났다.

‘아, 이거 카르멕한테 물어봤어야 하는데. 너 때문에 이러는 거냐고.’

이 욕망을 그냥 풀어버릴지, 아니면 꾹 눌러 참을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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