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331화 (331/351)

331화.  < 카르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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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사방이 새까만 어둠으로 꽉 차 있는 공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초록색 액체가 꽉 찬 관을 본 순간 세상이 암전되더니 이렇게 되어 버렸다.

반태수는 초록색 액체 속에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다.

초록색 액체 안에 사람이 있었다.

액체의 색이 너무 짙어서 다른 사람들은 못 본 모양이지만, 반태수는 분명히 봤다.

그리고 너무 순간적이라서 영역화로 많은 정보를 뽑아내지는 못했지만 투명한 관 안을 꽉 채운 그 초록색 액체도 보통 물질이 아니었다.

안에 특별한 힘을 담고 있었다.

일단 무지막지한 마력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생명력도 마력만큼이나 많이 섞여 있었다.

한데 그것 말고도 다른 힘이 혼재되어 있었다.

그 다른 힘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정말로 처음 보는 형태의 힘이었다.

아니,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나 모호했다. 과연 정말로 그런 힘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착각을 한 건지 명확하지가 않았다.

‘아니, 착각이 아니야.’

마지막 세상이 암전되기 전에 공연장을 쫘악 훑었던 그 무언가가 바로 그 처음 보는 형태의 힘이 분명했다.

반태수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일단 여기가 어디인지, 그리고 정확히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파악하는 게 먼저다.

몸을 관조하는 건 금방 끝났다. 몸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

자신의 코어도 멀쩡했고, 피부를 따라 휘도는 이면세계의 마력도 그대로였다.

따로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는 두뇌들도 전부 멀쩡했다.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깜깜한 세상으로 왔다는 것 말고는.

반태수는 차분히 주위를 확인하며 영역화를 펼쳤다.

그런데 영역화가 전혀 먹히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영역화가 먹히지 않는 게 아니라, 영역화가 엉뚱한 곳을 훑고 있었다.

영역화를 통해 막대한 정보가 들어왔다. 시스템까지 이용하고 있기에 범위는 넓었고, 정보를 습득하는 간격은 촘촘했다.

‘공연장인데?’

반태수는 깜짝 놀랐다. 공연장의 정보가 들어왔다. 그럼 여기가 공연장이란 말인가?

상황파악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여긴 반태수의 심상 공간 비슷한 곳이었다.

그러니까 반태수는 현재 공연장에 있는 무대 위에 서 있었다. 또한 영역화로 들어오는 정보를 보아하니 시간이 거의 멈춘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이 정도면 두뇌를 엄청나게 혹사하고 있는 셈이다.

반태수는 일단 영역화를 거둬들였다. 지금 이 상태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정확히 그 순간, 어둠이 싹 몰려갔다.

새파란 하늘이 쫙 펼쳐졌다. 바닥은 파릇파릇한 잔디가 쫙 깔린 들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꽉 채운 기운과 분위기는 굉장히 따스하고 포근했다.

반태수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이곳 역시 심상 공간이었다.

영역화만 잠깐 돌려봐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공연장 안에 있었으니까.

그러고 있을 때,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젊은 사내였는데, 굉장한 미남이었다.

그리고 어딘가 반태수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반태수는 그를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자신의 마법과 관계된 사람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위화감과 친밀감이 동시에 드는 사람이었다.

반태수는 그가 먼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 자리를 만든 것이 바로 저 사람이리라. 궁금한 게 많았지만 굳이 먼저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시간 구애를 안 받아도 되니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침묵이 계속 이어졌다.

나타난 사내는 반태수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살폈다.

마치 머릿속이나 폐부를 꿰뚫어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속을 다 읽히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반태수를 그렇게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제법 잘 키웠는데? 기대 이상이야.”

반태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 내 소개를 먼저 해야 하나? 내 이름은 카르멕이라고 해. 혹시 들어본 적 없나? 아니면 머릿속에서 그냥 떠오른 적이 있다거나.”

반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없는데?”

카르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억에 있다면 얘기가 좀 편해질 텐데 아쉽군.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카르멕이 반태수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잘 기억하라는 듯이.

“난 5대 가문의 주인이야.”

반태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장로원?”

카르멕이 씨익 웃었다.

"거기까지 유추했어? 똑똑하군. 맞아 지금은 장로원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다스리고 있지."

"다스린다고?”

카르멕이 환한 표정으로 양 팔을 살짝 아래로 늘어뜨린 채 벌렸다.

"맞아. 다스리지. 예전에는 직접 다스렸고. 내가 바로 이 세상의 왕이야.”

반태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지? 뭔가 반응이 있어야 말을 하지. 못 믿겠어? 표정을 보니까 이미 믿고 있다는 건 알겠고…… 나에 대한 반감은 왜 가졌는지 모르겠군. 내 덕분에 마법사가 되었는데 말이야.”

"네가 조절해서 이 행사를 열고 날 초대한 건가?”

"조절? 아아, 후계자 숫자 맞춘 거 말하는 거로군. 그건 아니야. 할 때가 돼서 한 것뿐이지. 인위적으로 타이밍을 조절한 건 맞는데, 그게 너 때문은 아니야. 넌 그냥 끼워 넣은 거지.”

"끼워 넣어?”

“슬슬 나도 한계거든. 너무 시간을 오래 끌었어. 지루하고 지겨워.”

반태수는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경각심을 끌어올렸다.

카르멕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마침 있는 행사를 이용한 거지. 근데 보아하니…… 굳이 이렇게까지 안 했어도 조만간 만나긴 했겠네. 안 그래? 네가 직접 방법을 찾고 있었잖아.”

반태수는 굳은 표정으로 카르멕을 쳐다봤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초록색 액체를 담은 관을 꼭 한 번 보고 싶었으니까.

아마 그걸 봤으면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 되었겠지.

카르멕은 그런 반태수를 보고는 신 나서 떠들었다.

“5대 가문을 비롯해서 세상의 중요한 위치에 있거나 곧 그렇게 될 예정인 녀석들은 말을 잘 듣게 해줄 필요가 있거든. 쓸데없는 일을 파고들면 골치 아프잖아.”

"그게 행사인가?”

"그렇지. 이런 행사를 열어주면 어린 자식들도 전부 데리고 오거든. 아주 효과적이지.”

특히 장로원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재능 있는 사람을 미리 파악해 길을 정해주는 것도 아주 간단히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카르멕은 양 팔을 활짝 펼쳤다.

“넌 궁금한 거 없어? 뭐든 물어봐. 전부 대답해줄 테니까. 그동안 궁금한 게 쌓였을 것 같은데, 아니야? 고작 행사를 왜 열었느냐, 이런 건 솔직히 너도 다 예상했잖아.”

그 말에 반태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놈의 의도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물어보는 것에 거짓으로 대답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아까 내가 마법을 배운 것이 네 덕분이라고 했지?”

카르멕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내 덕분이지.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마법지식이 떠올랐지? 때가 되면 그렇게 되도록 조치한 것이 나야.”

"그 대가로 난 17세까지의 기억을 전부 잃었지.”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최소한의 대가는 있어야 하니까.”

반태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내 기억을 대가로 마법을 줬다 이건가? 네 멋대로?”

카르멕이 고개를 저었다.

“착각을 하고 있구나. 고작 기억으로 그런 대단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네게 심어준 건 내가 가진 모든 마법 지식이야. 한데 그걸 고작 17살짜리 꼬맹이의 기억과 맞바꾸겠어? 너 같으면 그렇게 할 거야?"

반태수의 표정이 확 굳었다.

"그럼 대체 내가 뭘 대가로 준 거지?”

카르멕이 씨익 웃었다.

"영혼.”

"뭐?”

“17세까지의 기억을 포함한 영혼의 일부를 대가로 받았다고.”

반태수가 인상을 팍 썼다.

"누구 맘대로?”

"네 맘대로?”

반태수는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기억이 없으니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과연 자신은 그럴 사람인가? 아무리 일부라고 해도 영혼과 기억을 대가로 마법을 받았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다. 지금 보여주는 마법에 대한 엄청난 집착을 보면 말이다.

"내가 그런 선택을 했다고?”

"그래. 뭐, 믿기 싫으면 믿지 마. 어차피 다 끝난 일, 내가 그런 걸로 거짓을 말할 이유가 있나?”

반태수는 일단 넘어갔다. 확인할 방법이 당장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구로 가면 방법이 생긴다.

나중에 확인하면 될 일로 굳이 시간을 끌 이유가 있나.

"지구하고 여기 이면세계를 이어주는 포탈, 네가 만든 건가?”

"그래. 내가 만들었다.”

“왜?"

"지구에 가고 싶었으니까?”

반태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면세계 사람들은 포탈을 이용하지 못한다. 설마 카르멕은 예외인가?

"넌 이면세계 사람이 아닌 건가?”

"그럴 리가. 난 분명히 여기 사람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왔지.”

"그런데도 포탈로 지구에 갈 수 있다고?”

"그건 안 되지. 아주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서 아무리 나라도 불가능해.”

벌써 모순이 생겼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지구로 간단 말인가.

"자, 다음 질문. 그건 나중에 차츰 알려줄 테니까.”

질문을 할 때마다 의문이 하나씩 생기니 좀 황당하긴 했다. 그래도 계속 질문을 하다보면 답에 다가가지 않겠는가.

"타노로스. 네가 만든 조직인가? 그리고 셰딤도.”

카르멕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내가 말했잖아. 이 세상의 왕이라고. 당연히 그 둘 모두 내가 만들었지. 타노로스를 먼저 만들고, 그놈들을 좀 보조하라고 셰딤을 만들었지.”

반태수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타노로스도 그렇고 셰딤도 그렇고 처음 만들어진 지 천 년이 훨씬 넘는다.

그럼 대체 카르멕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왔단 말인가. 그동안 어떤 지식을 얻었으며 어떤 힘을 얼마나 얻었을까.

"그것들은 대체 왜 만든 거지?”

"처음엔 그냥, 그러다가 나중에 역할을 주었지. 5대 가문이 독주하면 문제가 생길 테니까.”

"네가 있는데도?”

카르멕이 피식 웃었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을 것 같아? 5대 가문이 시작할 때쯤일 것 같아?”

"그럼 더 오래되었다고?”

“5대 가문을 만든 게 나야. 그 이전에 5대 가문이 지금까지 지낸 역사보다 더한 시간을 보냈고.”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대체 어떤 삶을 산 걸까?

“그때도 이미 난 이 세상의 왕이었어.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할 수 있었거든.”

“시스템.”

반태수의 말에 카르멕이 히죽 웃었다.

"잘 아네. 맞아. 시스템을 완성한 순간부터 난 이 세상의 왕이었어. 그런데 왜 굳이 5대 가문을 만들었을까?”

반태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대체 왜 굳이 5대 가문을 만들었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부작용이 심해질 텐데.

"그때 지구를 발견했거든.”

그 말에 반태수의 표정이 확 굳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별이었지. 게다가 사람들도 많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도시들까지. 한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관찰뿐이었어. 진짜로 뭔가를 해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지.”

카르멕은 지구로 갈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려면 연구에 몰두할 시간이 필요했고, 그동안 자신을 대신해서 세상을 다스릴 사람들이 있어야만 했다.

그게 5대 가문이었다.

그렇게 세상을 5대 가문에 맡긴 채 연구에 몰두해서 결국 방법을 찾아냈다.

지구로 통하는 포탈을 만든 것이다.

포탈은 굉장히 불안정했다. 게다가 이쪽 사람들은 아예 보지도 못하고 통과도 하지 못했다.

"그때 내가 얼마나 실망했는지 아나? 이쪽 사람들은 지구로 아예 갈 수가 없다는 걸 그때 알았지. 차원의 격이 다른 거야. 지구에서 이쪽으로는 흘러오는데, 지구로 가는 건 안 되더라고.”

그리고 또 문제가 있었다. 지구와 이쪽의 시간 흐름이 너무나 달랐다.

지구에서는 잠깐의 시간이 이쪽에서는 수십 배로 늘어났다.

"그때 지구의 모습을 보고 만든 조직이 타노로스였지. 과학이라는 걸 진지하게 연구하고 싶었거든.”

그 뒤로는 미친 듯이 연구에 몰두했다. 꼭 차원이동만이 아니라 다양한 연구를 동시에 진행했다.

“알지? 두뇌를 여러 개 나눌 수 있는 거. 난 몇 개나 가능했을 것 같아?”

카르멕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시간이 계속 흘렀고, 카르멕의 연구는 슬슬 결실을 맺어갔다.

이쪽에서 지구로 무언가를 보낼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게 바로 영혼이었다.

반태수는 거기까지 설명을 듣고는 질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영혼까지 건드려가면서 지구에 가려고 한 이유가 뭐지? 솔직히 들여다볼 수 있으면 충분한 거 아닌가?”

카르멕이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연히 지구의 왕이 되기 위해서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답이었기에 반태수는 순간 멍해졌다.

"왕이 되려고 했다고?”

"내가 지구로 가면 왕이 못 될 것 같아?”

반태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굉장한 피가 흐르게 되리라.

로봇에 인공지능에 우주전함까지 있다. 거기에 시스템까지 구축하면 과연 누가 카르멕을 당해내겠는가.

물론 지구도 만만치 않다. 지구의 기술도 상당한 수준이고 변수가 될 만한 기공술사들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차근차근 성장했으면 얼마나 좋아? 그냥 주어진 걸 잘 받아먹기만 했어도 조만간 네가 지구의 왕이 되었을 텐데.”

카르멕의 말에 반태수가 정색했다.

"난 전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반태수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물었다.

"그럼 내게서 가져간 영혼은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 설마 내게 남은 영혼에 네 영혼을 갖다 붙인 건 아니겠지?”

"왜 아니겠어. 그게 아니면 어떻게 너한테 마법 지식을 전수해?”

반태수는 그제야 자신이 그동안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하고 행동을 했던 것이 카르멕의 영혼 때문이라는 걸 확신했다.

카르멕이 큭큭 웃었다.

"내가 영혼을 쪼개 넣은 사람이 너 하나라고 생각해?”

반태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뭐?"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지구에 포탈을 만들었잖아. 그걸 누가 만들었겠어? 내가 여기서 만들었을까?”

반태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이미 영혼은 뒤섞이고 있어.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고.”

반태수는 그 순간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반발심이 생겼다.

그 순간, 반태수의 몸에 새겨진 마력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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