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화. < 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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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앙!
키가 50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마수의 주먹을 로봇이 팔뚝으로 막아냈다.
로봇의 키는 기껏해야 15미터. 체급 차이가 엄청나게 나는 주먹을 맞았으니 나가 떨어져야 정상이다.
한데 똑바로 선 채 한 발도 밀리지 않고 그것을 막아냈다.
주먹을 막아낸 로봇의 팔뚝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떠 있었다. 그 마법진이 마수의 주먹을 막아낸 것이다.
마수의 모습은 인간과 비슷했지만 팔이 네 개나 달려 있었다.
네 개의 주먹이 연달아 로봇에게 쏟아졌다.
꽈과과과광!
로봇은 그 모든 공격을 팔뚝으로 흘려내듯 막았다.
그때마다 거대한 마법진이 연이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로봇이 방어를 하다가 어느 순간 공격을 회피했다.
후웅! 후웅!
바람을 찢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하지만 로봇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안으로 파고들어가 주먹을 비스듬하게 위로 내질렀다.
꽈득!
그저 허공에 주먹을 내질렀을 뿐인데 마수의 아랫배가 움푹 들어갔다.
쿠웨에엑!
마수가 괴로운 신음과 함께 입에서 검붉은 피를 와락 쏟아냈다.
그때부터 로봇의 반격이 시작됐다.
마수에게 바짝 달라붙어 무차별적으로 주먹과 발을 쏟아냈다.
꽈득! 꽈득! 꽈득! 꽈득!
공격이 적중할 때마다 마수의 몸이 움푹 움푹 들어갔다. 그리고 내부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끔찍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다리를 모조리 망가뜨린 로봇이 훌쩍 날아올라 마수의 상체를 공격했다.
마수는 더 이상 공격할 여력이 없는 지 비틀거리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로봇이 마수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뻐어어어엉!
머리가 터지며 거대한 마수가 뒤로 힘없이 넘어갔다.
쿠웅!
격렬했던 싸움이 끝나고 먼지와 함께 고요함이 자욱하게 내려앉았다.
***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크게 감탄했다.
지금 저 거대 마수는 무려 6레벨이었다.
그걸 갖고 놀듯이 해치운 것이다.
- 으하하하하!
로봇에 탄 데드릭 벨크리스의 통쾌한 웃음이 공기를 뒤흔들었다.
저 소리가 또 다른 마수를 부를 수도 있지만 다들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감탄스러운 눈으로 로봇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비행선의 승무원들과 조종사들은 동경이 가득한 눈으로 로봇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특히 조종사들은 로봇을 꼭 한 번 조종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리라.
데드릭 벨크리스나 되니까 저런 로봇을 탈 수 있는 것이지 자신들이 어떻게 저걸 타겠는가.
그들의 시선이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가 있는 쪽으로 살짝 움직였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저 가신 가문의 후계자들도 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마당 아닌가.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는 똑같은 눈빛으로 로봇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에 담긴 것은 짙은 갈망과 동경이었다.
저런 걸 봤는데 어떻게 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꼭 갖고 싶었다.
쿵! 쿵! 쿵! 쿵!
로봇이 쿵쿵 소리를 내며 다가와 일행 근처에 섰다.
등이 활짝 열렸고, 그 안에서 데드릭 벨크리스가 내렸다.
탈 때와는 다르게 로봇의 힘을 이용했다. 허공에 뜬 채 천천히 바닥에 내려서는 데드릭 벨크리스의 모습이 왠지 더 멋져 보였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누가 빼앗아갈 새라 로봇을 아공간에 넣었다.
제법 큰 아공간인데도 로봇을 넣으니 다른 물자를 더 넣기 곤란해질 정도로 꽉 차버렸다.
"전용 아공간을 하나 마련해야겠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데드릭 벨크리스의 모습을,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가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거 타노로스 놈들을 때려잡을 날이 기대되는구나.”
반태수는 피식 웃었다.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간 모습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건 그렇고 어땠습니까? 성능 제법 괜찮죠?”
"아, 그걸 말이라고 해? 봤으면 알잖아. 6레벨 거대 마수를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거 못 봤어?”
“내가 보기에는 로봇의 힘이 그게 다가 아닐 겁니다. 아직 더 끌어낼 수 있는 여력이 있어요. 기능도 훨씬 많을 거고. 영감님이 잘 조사하고 연구해서 정리 좀 해줘요. 나도 알아야 하니까.”
데드릭 벨크리스의 눈에서 번쩍하고 광채가 일어났다.
"너, 설마 한 대 더 있는 거야? 그런 거야?”
반태수는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돌려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를 쳐다봤다.
“두 분은 어땠습니까? 재미있게 봤습니까?”
두 사람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재미라기보다는…… 압도당했어요. 정말 굉장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 탑승형 로봇이라니.”
반태수가 두 사람의 반응에 빙긋 웃었다.
"아마 우주에도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태수는 데드릭 벨크리스를 보며 말을 이었다.
"모든 테스트는 우리 데드릭 벨크리스님께서 다 해주실 테니 우린 결과를 기다려 보자고요.”
데드릭 벨크리스가 알통을 자랑하듯 팔을 굽혀 힘을 꽉 주며 대답했다.
"나한테 맡겨둬! 내가 성능의 밑바닥까지 싹싹 훑어서 전부 알아낼 테니까.”
"영감님만 믿겠습니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쫙 펴고 고개를 끄덕였다.
반태수는 로봇 몇 대를 더 조립해서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에게 줄 계획이었지만, 굳이 그 얘기를 여기서 꺼내진 않았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로봇에 대해 연구해 주겠다고 하니 등을 열심히 떠밀어 줘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일단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의 애절한 눈빛은 잠시 외면했다.
"그럼 슬슬 돌아갈까요?”
***
한동안 또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반태수는 5대 가문에서 온 네 명의 연구원과 매일 시간을 정해서 시스템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얻어가는 것이 훨씬 많았지만 차츰 반태수도 그 과정에서 얻는 것이 생겨났다.
일단 그동안 5대 가문이 연구한 체계를 차근차근 알아가면서 그 중 쓸 만한 것들을 추려냈다.
확실히 지금의 반태수에게도 도움이 되는 지식들이었다.
그렇게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하는 시간은 하루에 두 시간이었다.
아침 일찍 그렇게 두 시간을 보낸 다음부터는 유적을 돌아다니면서 빠르게 부품을 모았다.
목표는 우주전함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인공지능 모듈에 대한 분석과 연구를 병행했다.
앞으로 원격조종 전투기와 로봇을 대량생산할 계획이 있는데, 그건 인공지능 모듈이 없으면 거의 쓸모가 없다. 인공지능 모듈은 로봇이나 전투기에 비해 훨씬 복잡했다.
반태수는 인공지능 모듈 안에서 시스템의 일부를 엿봤다.
아무튼 그렇게 하루의 대부분을 부품 수급에 투자했다.
그리고 한밤중이 되면 탑승형 로봇을 조립했다.
예전처럼 단숨에 뚝딱 조립할 수는 없고, 시간을 쪼개서 하는 일인지라 한 대 조립하는 데에도 며칠이나 걸렸다.
몇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다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래도 잠을 줄여가며 일을 한 덕분에 하나씩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일단 총 다섯 대의 로봇을 추가로 제작할 수 있었다.
재료 수급에 좀 문제가 있었는데, 그 부분은 살라자 샤마쉬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었다.
다섯 군데의 광산 도시에서 5대 가문이 직접 운영하는 회사로부터 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다음으로, 시스템에 대한 연구 역시 5대 가문의 연구원들이 원하는 수준만큼 충분히 지식을 전달해줬다.
이제부터는 지식 전달보다는 자체적으로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으로 들어갔는지라 반태수의 도움이 거의 필요 없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이 지나고 나면 다시 반태수의 도움이 절실해지겠지만.
이제 남은 건 우주전함의 부품을 모으는 것과 인공지능 모듈을 분석하는 것뿐이었다.
둘 다 진행이 굉장히 느렸다. 하지만 꾸준히 착실하게 전진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이럴 때는 그냥 꾹 참고 걷고 또 걷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렇게 정답을 향해 걷고 있을 때, 5대 가문의 연구원들이 갑자기 반태수를 찾았다.
행사 날짜가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고.
***
“따로 가자고?"
데드릭 벨크리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다.
"아시다시피 할일이 좀 많아서요.”
"그럼 그 할일을 내가 도와주고 같이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혼자가 빠릅니다.”
데드릭 벨크리스의 눈썹이 또 꿈틀거렸다. 역시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다.
"날짜 2주밖에 안 남았어. 생각보다 시간 별로 없는 거 알지?”
"압니다. 늦지 않을 테니 염려 마시죠.”
"염려는 누가 염려를 해? 그리고 나도 할일 많거든?”
그건 맞는 말이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반태수에게 로봇을 받은 후부터 로봇의 기능을 하나하나 알아내고 성능을 테스트했다.
거기에 푹 빠져서 다른 일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중이었다.
"이번에 비행 성능 테스트 겸, 로봇 타고 날아서 이동할 계획이야.”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거리 이동에 대한 성능을 테스트하기 좋은 기회이긴 하다.
로봇의 속도는 웬만한 비행기보다 훨씬 빠르다.
물론 반태수가 작정하고 날아가는 속도보다는 느리지만.
"나중에 우주에서도 테스트하실 거죠?”
"당연하지!”
데드릭 벨크리스는 기분이 좋은지 히죽히죽 웃었다.
지상에서 할 수 있는 테스트를 전부 끝내면 바로 우주로 날아갈 것이다.
그게 가능한지부터 확인하고 안 되면 이 로봇을 우주로 날릴 방법을 찾아야겠지.
"그럼 나 먼저 간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는 거 알지? 잡고 싶으면 지금 잡아야 돼. 나 바로 출발할 거거든."
반태수는 얼른 가시라는 듯 두 손을 공손하게 옆으로 내밀었다.
"트릴린드라에서 뵙죠. 이번에 가면 상부 도시에 저택이라도 하나 마련할까 고민 중입니다.”
“오오, 좋은 생각이야. 내가 알아봐줄까?”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데드릭 벨크리스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나만 믿어! 아주 끝내주는 저택을 찾아줄 테니까.”
데드릭 벨크리스는 신이 나서 바로 로봇을 소환한 다음 타고 떠났다.
반태수는 데드릭 벨크리스를 떨어뜨리는 데 성공하자 빙긋 웃었다.
"행사 시작 전에 우주전함 꼭 만들고야 만다.”
오늘부터 오직 우주전함을 위해 집중하리라.
그리고 상당한 수의 두뇌를 인공지능 모듈에 할당했다. 우주전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공지능도 완성해야 한다.
트릴린드라로 가는 건 공간이동을 쓰기로 했다. 그렇기에 데드릭 벨크리스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아직 공간이동에 대해서는 공개하기 이르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혼자 이동하는 거라면 모를까 게이트를 열어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건 아직 좀 부족했다.
아무튼 이제부터는 더 바빠질 것이다.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반태수는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이, 이게……!"
오스윈 프리든은 눈앞에 있는 거대한 로봇을 바라보며 크게 당황했다.
그건 페일라 린치필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두 사람 앞에는 두 대의 로봇이 서 있었다.
"선물입니다. 일단 써보시고, 자세한 메뉴얼은 영감님이 만들고 있으니까 나중에 받아서 확인해 보고요."
반태수의 담담한 말에 두 사람은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 로봇과 반태수를 번갈아 바라보기만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내 두 사람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공간은 있으시죠?”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용 아공간을 구할 거예요.”
“저도 그럴 겁니다.”
반태수가 빙긋 웃었다.
"연습 많이 해두세요. 나중에 써먹을 일이 있을 테니까.”
타노로스와의 전쟁이 벌어지면 아마 이 두 사람이 굉장한 활약을 해줄 것이다.
반태수는 두 사람이 로봇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잠시 지켜보다 그곳을 떠났다.
***
반태수는 공간이동을 통해 트릴린드라 하부 도시에 있는 작은 숲에 도착했다.
시간을 막바지의 막바지까지 싹싹 긁어 쓴 다음에야 여기로 온 것이다.
여기 오기 직전까지 유적에 있었다.
기어코 유적을 끝까지 클리어 한 다음 부품을 얻고 나서야 공간이동을 쓴 것이다.
반태수는 숲에서 나가 데드릭 벨크리스에게 연락했다.
"영감님, 저 도착했습니다.”
- 그래? 어딘데?
"하부 도시 서쪽에 있는 숲 근처예요.”
- 뭐? 하부 도시? 왜 하부 도시로 갔어? 바로 상부 도시로 와야지.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 거기서 딱 기다려 내가 데리러 간다.
전화를 끊은 지 정확히 13분 후에 데드릭 벨크리스의 비행선이 나타났다.
반태수는 그 비행선을 타고 상부 도시로 이동했다.
분위기가 예전에 왔을 때와 많이 달라졌다.
뭔가 북적북적하는 느낌이었다
"예전보다 활기가 넘치네요?”
“당연하지. 행사잖냐. 이게 대체 몇 년 만인지. 상부 도시에서 행사라는 건 곧 축제나 다름없어.”
그도 그럴 것이 상부 도시의 삶에는 자극이 굉장히 부족하다.
이런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사람들이 새로운 자극을 기대하며 술렁거리는 것이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우리가 머무를 곳은 저기야.”
반태수의 눈이 살짝 커졌다.
예전에 왔을 때는 없던 구조물이 보였다.
길쭉하고 높은 기둥 위에 거대한 원반이 붙어 있는 모양의 구조물이었다.
자세히 보니 길쭉한 기둥은 빌딩이었다. 빌딩 옥상에 거대한 원반을 붙여 놓은 것이다.
원반도 건물의 일부였다. 내부가 비어 있고, 가장자리에 무수한 창문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 있었다.
한데 그 구조물의 크기가 어찌나 큰지 아마 저 원반 안에 수만 명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알 수 있었다.
저 원 반 안에서 행사를 할 모양이다.
바로 오늘, 행사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