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 5대 가문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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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권 발급은 바로 이뤄졌다.
그 빌딩 내에 시민권을 관리하는 부서가 있었다.
거기에 방문해서 데드릭 벨크리스가 몇 마디 하니까 바로 상부 도시 시민권이 발급되었다.
시민권이라고 해서 신분증처럼 카드 형태로 된 것이 아니라 등록 절차만 밟으면 마력 지문을 통해 구분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다.
앞으로는 상부 도시에 주택도 구입할 수 있고, 상부 도시에서 사업도 벌일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간단하네요.”
반태수의 말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히죽 웃었다.
“우리가 처리한 건 간단하지만 남은 일은 만만치 않을 걸?”
살라자 샤마쉬도 고개를 끄덕였다.
“상부 도시에서 뭐든 등록을 한다는 건 시스템을 건드려야 한다는 뜻일세. 그러니 서류야 단순해도 남은 절차는 단순하지 않지.”
“시스템에 등록을 하는 겁니까?”
“정확히는 시스템을 이용하는 장치에 등록을 하는 거지.”
“여긴 뭐든 시스템으로 돌아가는군요.”
“상부 도시의 특징이지. 아직도 시스템에 대해 다 알지 못해서 연구가 여전히 활발하다네.”
왠지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이자 데드릭 벨크리스가 나서서 흐름을 끊어버렸다.
“자자. 일단 돌아가자고. 가서 눈요기나 좀 하다가 슬슬 딴 도시로 가야지. 여긴 지루해서 더 못 있겠다.”
데드릭 벨크리스의 주장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유흥에 뒤떨어진 도시가 바로 트릴린드라의 상부 도시였다.
그리고 그 다음이 트릴린드라 하부 도시고.
데드릭 벨크리스의 재촉에 반태수와 살라자 샤마쉬는 피식 웃으며 빌딩을 나섰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것도 비행선을 타니 금방이었다.
세 사람은 곧장 호텔 옥상으로 향했다.
어제 그렇게 큰 전투가 있었는데도 여긴 변함없는 광경을 자랑했다.
어디서 이렇게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모였는지 놀랄 지경이었다.
이면세계는 지구에 비해 평균적인 외모가 확연히 떨어진다. 그러니 이 정도 숫자의 미남 미녀가 모였다는 건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반태수는 선베드에 누워 여유를 만끽했다.
따로따로 열심히 돌아가던 두뇌들도 지금은 전부 잠시 멈춰둔 상태였다.
뇌가 쉴 필요가 있다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시스템을 이용한 반작용이 뇌로 온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쉬기 시작하니 급격히 상태가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 한 시간만 쉬어도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반태수의 양옆에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가 누웠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눈요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살라자 샤마쉬는 저 멀리 펼쳐진 풍경을 구경했다.
반태수는 그냥 눈을 감고 쉬었다.
따스한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았다.
정말 평화롭고 여유로웠다.
그렇게 잠시 쉬던 반태수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혹시 80년쯤 전에 타노로스랑 전쟁한 적 있습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의 표정이 확 굳었다.
“그건 어떻게 알았나?”
“지나가다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시스템을 이용한 영역화를 유지하고 있다가 아까 그 노인들이 한 대화를 들었다.
살라자 샤마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타노로스와의 전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네. 80년 전에도 전쟁을 했지만, 그 이전 200년쯤 전에도 전쟁을 했었지."
데드릭 벨크리스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새끼들은 내가 싹 다 없애버린다. 그래서 더 이상 전쟁 따위가 일어나는 일이 없게 할 거다.”
그동안 타노로스에게 집착하던 이유가 아마 전쟁이었던 모양이다.
“지나가다 듣긴 했는데…… 그 말을 한 사람들이 전쟁을 대하는 태도가 좀 마음에 걸렸습니다.”
“태도가 마음에 걸려? 그건 또 무슨 말이지?”
“마치 전쟁이 일어나는 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곧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도 말하고.”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또 전쟁이 일어난다고?”
“그거 대체 어떤 놈들이 한 얘기야?”
반태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해 버렸다.
“아까 만났던 분들이 한 얘깁니다.”
“아까 만났던? 설마 도시 관리 위원회? 그 영감들이 그따위 얘기를 했다고?”
데드릭 벨크리스가 잔뜩 흥분해 길길이 날뛰었다.
반면 살라자 샤마쉬는 차분했다.
“자네는 그 얘기를 어떻게 들은 건가?”
반태수는 어깨를 한 번 으쓱 한 다음 대답했다.
“시스템이죠.”
“시스템? 그 탐지 마법을 말하는 건가?”
“비슷합니다. 시스템의 감각을 유지해보려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스템과 연결해서 이런 저런 마법을 테스트 했거든요.”
그리고 영역화를 다시 펼쳐 온 도시를 다시 손아귀에 넣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빌딩 최상층에 있던 노인들의 대화도 들었고.
“정확히 무슨 얘기를 했나?”
반태수는 살라자 샤마쉬의 질문에 자신이 들은 얘기를 차근차근 풀어서 전달했다.
그걸 모두 들은 두 사람의 표정이 묘해졌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여전히 분노가 두뇌를 지배하는 모양인데, 그 와중에도 대화 내용을 곱씹는 중이었다.
“이거 대화 내용만 보면…… 꼭 우리 5대 가문의 힘이 넘칠 때마다 타노로스와 전쟁을 벌였다는 것 같은데, 내가 제대로 해석한 게 맞나?”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얘기를 꺼낸 거고요.”
“뭔가 감춰진 얘기가 있다는 뜻인데…… 장로원에서는 그걸 알고 있는 듯하고?”
“맞습니다. 그리고 이번 타노로스의 습격 자체에 장로원의 입김이 들어간 게 분명합니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점점 흥분해서 씩씩거렸다.
“그러니까, 이 개 같은 것들이…… 티노로스랑 붙어먹으면서 전쟁을 조장했단 말이지?”
“아직 정확한 건 모르죠. 그 사람들 말이 진실인지도 알 수 없고.”
데드릭 벨크리스가 버럭 역정을 냈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가서 박살 내면 안 된다는 거야!”
반태수가 단호히 말했다.
“안 됩니다. 더 조사하고 확인해야죠. 충분히 알아본 다음에 움직여야 합니다.”
“에잉. 성질에 안 맞아.”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렇게 투덜거리고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썬베드에 그냥 누워 버렸다.
살라자 샤마쉬와 반태수는 몸을 일으킨 채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이번 일은 조사가 만만치 않겠어.”
“확실히 5대 가문 쪽의 수뇌부를 조사하는 건 쉽지 않겠죠.”
“그것도 그런데 장로원은 차원이 다른 곳이야.”
“장로원이 대체 뭐 하는 곳입니까?”
“뭐 하는 곳인지는 아무도 몰라. 심지어 장로원에 소속된 사람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더군.”
“굉장히 수상한 조직이로군요.”
“하지만 5대 가문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이기도 하지. 일단 장로원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면 그건 그냥 따라야 하네. 절대적이지.”
반태수는 좀 어이가 없었다.
“그럼 장로원은 마치 왕 같은 존재네요?”
“꼭 그렇지는 않네. 장로원이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
“그래도 좀 이해가 안 가네요. 그걸 다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도 그렇고.”
살라자 샤마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걸 이해 못하는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정말 별 거 아닌 일인데 왜 그렇게 크게 받아들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 그냥 장로원은 그런 존재일세. 왕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지금까지 누워서 눈을 감고 있던 데드릭 벨크리스가 툭 끼어들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 끝날 일을 왜 귀찮게 파고들려고 해? 장로원은 그냥 장로원이야.”
그래서 반태수는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걸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고? 그러니까 나도 그냥 받아들이라고?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나.
하지만 반태수는 더 이상 장로원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더 얘기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표정도 열심히 관리했다. 마치 아무 관심도 없는 것처럼.
그제야 자연스럽게 화제가 넘어갔다.
“아무튼 장로원 쪽은 조사가 어려우니 일단 넘어가고 도시 관리 위원회부터 뒤져봐야겠군.”
살라자 샤마쉬는 그렇게 말한 후, 깊이 생각에 잠겼다.
도시 관리 위원회는 단순한 5대 가문의 수뇌부가 아니다. 그들은 수뇌부의 수뇌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들의 뒤를 캐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살라자 샤마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만치 않겠군.”
부릴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건 외부에서나 그렇다.
정작 이곳 트릴린드라에서, 그것도 상부 도시에서 부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도시 관리 위원회의 그 노인들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부릴 수 있는 사람의 수 자체가 다르다.
아마 무슨 일을 하든 그들의 더듬이에 걸려들 테고, 결국 이쪽이 오히려 당하는 그림이 만들어질 것이다.
“시스템을 이용하면 되잖습니까.”
반태수의 말에 살라자 샤마쉬가 피식 웃었다.
“그거야 자네 같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거고, 난 아마 어려울 걸세. 게다가 난 마법사도 아니지 않나.”
“마법 장비를 만들어서 쓰면 되죠.”
살라자 샤마쉬가 쓴웃음을 지었다.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라고? 그건 여기 상부 도시에 있는 시스템 연구소에서도 잘 못 하는 건데, 그걸 내가 어떻게 하겠나.”
반태수가 담담히 말했다.
“내가 시스템을 다루는 것처럼 하지는 못해도 노인 일곱 명 정도 감시하는 데 충분한 장비는 어찌어찌 만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살라자 샤마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인가?”
하긴 없던 정력이 샘솟게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반태수 아닌가.
“가능하다면 만들어주게. 필요한 건 내가 전부 제공할 테니."
옆에 누워 있던 데드릭 벨크리스가 벌떡 일어나 반태수를 바라봤다.
“정말로 시스템을 이용한 장비를 만들 수 있어? 그거 진짜로 정말이야?”
“아직 안 해봐서 모르죠. 그냥 시도나 한 번 해보는 거죠, 뭐.”
데드릭 벨크리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좀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
“수상하긴 뭐가 수상합니까. 아무튼 난 이만 방으로 가보겠습니다.”
반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시스템을 이용한 장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객실로 내려갔다.
살라자 샤마쉬와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런 반태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방금 저 녀석이 한 말, 어떻게 생각해?”
“없는 말을 꾸미는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그렇지? 그럼 진짜로 그런 말을 했다고 봐야겠지?”
“그렇겠죠.”
“네 생각에 전쟁이 정말 일어날 것 같으냐?”
“일어나지 못하게 막아야죠.”
데드릭 벨크리스가 그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막아야지. 무조건.”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그 침묵을 깬 건 데드릭 벨크리스였다.
“그나저나 저 녀석, 요즘 들어 묘하게 듬직해.”
“저도 요즘 계속 그 생각 했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는 멀어져가는 반태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들의 눈빛에 신뢰가 가득했다.
***
객실로 내려온 반태수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잠시 멈춰뒀던 두뇌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멈춰서 푹 쉬던 두뇌의 움직임이 점점 맹렬해졌다.
두뇌를 곧바로 예전처럼 쓸 수는 없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때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하지만 모든 두뇌가 결국은 원래대도 돌아가 각자의 일을 열심히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자리를 찾은 뒤, 반태수는 두뇌 몇 개를 할당해 시스템과 연결된 장비를 어떻게 제작할지 계획도 세우고 술식도 구성해봤다.
장비를 만들 재료는 아공간에 얼마든지 있었다.
반태수는 일단 넓적한 금속판을 아공간에서 꺼냈다.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
이 금속판을 시스템과 연결시켜 원하는 효과를 낼 생각이었다.
일단 시스템을 불러왔다.
순식간에 시스템과 연결되었고, 형언할 수 없는 고양감이 찾아왔다.
시스템을 이용한 장비란 것이 무엇일까?
반태수는 간단히 정리했다. 시스템을 연결한 것이 그런 장비라고.
금속판 일곱 개를 나란히 놓고 하나하나 시스템과 연결했다.
당연히 그냥 연결되지는 않았다. 적절한 마법이 필요했다. 금속판에 새긴 마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순식간에 일곱 개의 금속판에 마법이 새겨졌고, 그 상태로 시스템과 연결되었다.
여기까지가 1차 공정이고, 이제 이렇게 연결한 시스템을 통해 어떤 마법을 이용할 것인지 설계해야 한다.
반태수는 금속판에 마법으로 색깔을 입혔다.
아까 노인들이 입었던 로브와 같은 색깔로 맞췄다.
그 다음, 시스템과의 연결 속에서 영역화를 단순하게 간추린 마법을 새겼다.
우우우웅!
나직한 진동음과 함께 장치를 사용할 준비가 되었다.
반태수는 그걸 여섯 번 더 반복해서 총 일곱 개의 장비를 제작했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살라자 샤마쉬와 데드릭 벨크리스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