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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319화 (319/351)

319화.  < 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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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이다. 지금부터는 숨소리도 내지 마.”

“예?”

반태수는 데드릭 벨크리스의 말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손가락을 입에 대고 저런 말을 하는데 어이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아니, 괜찮다며. 자격은 차고 넘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이렇게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움직여야 한단 말인가.

“영감님,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야, 조용히 하라니까? 숨소리도 내지 말랬잖아!”

“영감님이 더 시끄럽거든요?”

“하여튼! 조용히 따라오기만 해.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손가락을 입에 몇 번이나 갖다 댄 다음 돌아서서 다시 살금살금 걸었다.

반태수는 어이가 없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 돌아갈 수는 없어서 그냥 따라갔다. 살금살금.

지금 두 사람이 걷는 곳은 벽과 천장, 바닥이 전무 새까만 금속으로 이루어진 복도였다.

아마 이 아래에 탑이 있을 것 같았다. 아까 호텔에서 이동할 때, 도시의 중심부로 향했으니까.

그런데 시스템에 마력지문을 등록하는 거랑 여기랑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시스템에 등록하려면 시스템으로 가야 하는데, 여긴 엄밀히 따지면 시스템이 아니지 않나.

‘혹시 탑이 있는 곳으로 가서 뛰어내리나?’

반태수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지금 데드릭 벨크리스가 하는 모양새를 보면 그러고도 남았으니까.

하지만 데드릭 벨크리스가 안내한 곳은 반태수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정상적인 곳이었다.

바닥이 뚫린 곳으로 가서 탑으로 뛰어내릴 줄 알았는데, 사방이 막힌 방으로 온 것이다.

방 역시 복도와 마찬가지로 벽과 천장 바닥이 전부 새까만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때? 좀 특이한 곳이지?”

“특이하긴 하네요. 이거 무슨 금속이죠? 철은 아니죠? 이거 평범한 금속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금속인지는 나도 몰라. 이거 탑을 구성하는 금속이랑 같은 거야.”

“탑이 이런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고요?”

“그래. 그리고 이 방이랑 방금 지나온 복도도 전부 탑이 처음 생길 때 같이 생긴 것들이야.”

“그러니까 탑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네요.”

“그런 셈이지. 탑이랑은 좀 떨어져 있지만.”

반태수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여기,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 곳이겠네요.”

“맞아. 그냥 단순히 영향을 받는 것만은 아니고 상호작용을 하고 있지. 여기서 마력지문을 등록할 수 있어.”

“마력지문을 등록하는 방법 중 하나인 거죠? 원래는 다른 방식으로 등록하는 거 아닙니까?”

“눈치는 빨라서. 맞아.”

“그리고 이거 불법이죠?”

데드릭 벨크리스가 발끈했다.

“불법이라니! 이거 불법은 아니야! 절대! 그냥…… 알려지지 않은 방법일 뿐이지.”

“알려지지 않은 방법이라고요?”

데드릭 벨크리스가 히죽 웃었다.

“여긴 원래 시스템에 깊이 접속하는 곳이거든. 시스템의 힘을 크게 이용하거나 아니면 자격에 차등을 두거나 할 때 쓰고.”

“중요한 곳이네요? 그런데……."

“가치에 비해 경계가 너무 허술하지? 당연해. 여긴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

반태수가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보자 데드릭 벨크리스가 신 나서 설명을 이어갔다.

“여길 제대로 쓰려면 아까 말했던 그 열쇠가 필요해. 그게 없으면 여긴 그냥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금속 방일 뿐이지.”

“아아, 그렇군요. 확실히……."

반태수는 수긍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리 영역화를 집중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긴 마력도 전자장비도 없는 곳이었다.

그냥 특이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불과했다.

적어도 지금 반태수가 보기에는 그랬다.

한데 여기서 마력지문을 등록할 수 있다고? 반태수는 흥미로운 눈으로 데드릭 벨크리스를 쳐다봤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씨익 웃으며 방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섰다.

그리고 바닥에 손바닥을 대고 이리저리 몸을 비틀면서 용을 썼다.

대체 뭘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는데,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바닥에서 손바닥 두 개만 한 사각 기둥이 불쑥 솟아오른 것이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손바닥을 댔던 바로 그 위치였다.

“이게 바로 이 방의 숨겨진 기능이지. 내가 알아낸 거다. 나 말고는 아무도 몰라.”

다만 이걸로 할 수 있는 건 마력지문 등록뿐이었다.

그동안 별의 별 짓을 다 해봤는데, 정말로 딱 그거만 할 수 있었다.

한데 아직 한 번도 써먹어 보지 못했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이미 마력지문을 등록했고, 등록 안 한 사람을 데려오기도 좀 곤란했다. 이 비밀이 알려질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러니 반태수가 딱이었다.

생색도 좀 내고 말이다.

“자, 이리 와서 여기에 손바닥을 대. 너도 뭘 하면 되는지 그냥 알 수 있을 거다.”

반태수는 얼른 가서 사각기둥의 꼭대기 평평한 곳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손바닥을 댄 순간, 그곳에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진한 마력이 느껴졌다.

영역화를 통해서도 느끼지 못한 마력이 바로 여기에 차고 넘칠 정도로 존재했다.

그냥 마력이 아니었다. 굉장히 고차원적인 술식에 의해 구축된 마력, 즉 마법진이었다.

그 마법진이 기둥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갑자기 마법진이 발동하더니 반태수의 마력에 간섭을 시도했다.

반태수는 일단 막았다.

마법사의 본능 같은 거였다. 누가 자신의 마력에 간섭을 시도하는데 그냥 내버려두는 마법사가 어디 있겠나.

‘어라? 이놈 봐라?’

마력이 패턴을 바꿔 간섭을 계속 시도했다.

반태수도 패턴을 바꿔 간섭을 막아냈다.

더 복잡한 패턴이 접근했다. 그것 역시 더 복잡한 패턴으로 막아냈다.

반태수와 기둥의 마력이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갔다.

옆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던 데드릭 벨크리스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사실 이걸로 마력지문을 등록하는 시도 자체가 처음인지라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도 알지 못했다.

“바로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데드릭 벨크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태수를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는 사이에도 반태수의 싸움은 계속 이어졌다.

패턴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이 추가되었다.

위상 중첩을 이용하는 건 예사였다. 심지어 수십 겹을 겹쳐서 패턴 파악이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반태수도 가끔 미처 패턴을 완벽하게 분석하지 못해서 당할 뻔하는 순간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임기응변, 그리고 몇 개의 두뇌를 추가로 동원해 막아냈다.

반태수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게다가 하다 보니, 실력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일단 마력을 움직여 패턴을 짜는 속도와 정교함이 늘어났다.

그리고 술식 계산 속도와 응용력도 늘어났다.

싸움을 한창 이어가고 있을 때, 문득 이 기둥이 자신의 사정을 봐주면서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수준을 점점 높여간다는 게 말이 되나. 몇 번 하다가 안 되면 최고 수준을 보여줘서 단숨에 잡아먹어야지.

하지만 마치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주듯 차츰차츰 수준을 높였다.

심지어 아등바등 노력해야 간신히 해결할 수 있도록 난이도까지 조절하면서.

아무튼 뭐가 되었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렇게 재미도 있으면서 실력도 향상되는 일석이조의 상황인데.

그렇게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마력 패턴 싸움도 결국 끝에 도달했다.

마치 기둥이 반태수를 인정했다는 듯이 부드러운 마력이 주변을 감쌌다.

그리고 반태수의 마력을 살짝 끌어 당겼다. 마치 조금만 떼어 달라는 듯이.

반태수는 흔쾌히 자신의 마력을 약간 떼어서 넘겼다.

기둥이 은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둥에서 손을 떼고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기둥은 여전히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깜짝 놀라 기둥과 반태수를 번갈아 바라봤다.

“어떻게 된 거야? 끝난 거야? 등록 했어? 저 빛은 뭐고?”

“그걸 영감님이 모르면 누가 압니까?”

“나도 잘 모르지. 처음 해보는 거라니까?”

“잘 모르는 거에 날 밀어 넣은 겁니까?”

“에이, 그래도 확신이 있었으니까 데려온 거지. 괜찮잖아? 아니야? 어디 이상 있어?”

“그건 아니죠.”

“그럼 뭐가 문제야? 그나저나 넌 뭐 아는 거 없어? 저 기둥 왜 저래?”

반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네요.”

빛이 점점 밝아졌다. 그리고 갑자기 반태수를 향해 굵은 빛줄기가 쭉 뻗어 나왔다.

반태수의 몸을 휘감은 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둥도 더 이상 빛을 내뿜지 않았고.

“어? 뭐지? 어떻게 된 거야?”

데드릭 벨크리스가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는 자신이 시스템과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런 감각이로구나.”

마치 거대한 마력 덩어리와 빈틈없이 연결된 느낌이었다.

그 감각이 자신이 이 연결을 통해 뭘 할 수 있는지 알게 해주었다.

이건 직감의 영역이었다.

직감과 시스템이 연결되었다고 보면 된다.

따로 집중해서 시스템을 쓰고 이런 방식이 아니었다.

그냥 직감적으로 필요한 부분에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적용할 수 있었다.

“이건 좀 놀랍네요.”

반태수의 말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안달을 했다.

“그래서 뭔데? 뭐가 어떻게 됐는데?”

“시스템이랑 연결 되었어요. 그런데 이거 거리에 제한 있는 거 맞습니까?”

“그럴걸? 여기서 제일 가까운 도시에만 가도 시스템을 못 쓴다고들 하니까.”

반태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리 제한이 있다고? 아닌 거 같은데?

연결 방식 자체가 거리랑은 상관없는 것 같은데, 왜 저렇게 여기는 걸까?

아니, 왜 못 하는 걸까?

‘난 등록을 여기에서 했기 때문에 제약이 없는 건가?’

아무튼 무사히 마력지문 등록을 했다.

어느새 기둥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끝났으면 가자.”

데드릭 벨크리스의 말에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돌아가는 내내 시스템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맴돌았다.

***

반태수는 호텔로 돌아와 시스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일단 모두가 범용적으로 쓴다는 기능, 연산 보조를 테스트해봤다.

쉬운 마법들은 연산을 보조할 필요조차 없다. 마법을 쓰려고 마음먹은 순간 거의 바로 술식 계산이 끝나니까.

그러니 복잡하고 어려운 마법에 써봐야 한다.

현재 반태수가 쓰는 마법 중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마법은 단연 아공간과 공간이동이다.

그리고 두 마법의 핵심 요소들을 뽑아 결합해서 만들 예정인 게이트 마법이 있다.

반태수가 선택한 것이 바로 그 게이트 마법이었다.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마법이었기에 연산 보조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지 더 명확히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반태수는 일단 술식부터 계산했다. 정확한 술식을 뽑아내는 것이 먼저다.

굳이 마법을 펼칠 필요 없이 술식만으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기에 술식 계산만 반복해서 정확한 마법을 만들어내기로 했다. 연산 보조 시스템을 이용해 게이트 마법의 술식을 만들어봤다.

“이거…… 대단한데?”

시스템이 지원하는 술식 보조의 효능은 굉장했다.

곁에서 복잡한 계산을 도와주는데, 마치 이것이 자신의 실력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 정도로 위화감 없이 계산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다.

반태수는 이 연산 보조가 마법을 펼치는 것에도 큰 도움이 되지만, 진짜 제대로 써먹으려면 분석에 이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걸 바로 파악했다.

이거라면 포탈도 분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튼 시스템의 보조를 받아 게이트 마법의 술식을 정확히 뽑아냈다.

이제 이 술식으로 마법진을 구축하면 바로 게이트를 열 수 있다.

게이트와 게이트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 무지막지한 마력이 필요하지만, 제대로 작동하는지 테스트만 하면 되기에 호텔방 안에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마력의 실을 뽑아서 마법진을 만들고 그것을 막 발동하려는 순간, 거대한 마력이 그곳을 싸악 훑고 지나갔다.

반태수는 반사적으로 마력이 자신을 훑기 직전 마법을 취소했다.

마력이 허무하게 흩어져 허공에 녹아들었다.

아슬아슬하게 거대한 마력이 마법진을 훑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반태수는 특유의 예민한 감각과 시스템의 보조까지 더해서 방금 여기를 훑고 지나간 거대한 마력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파악해냈다.

상부 도시 중심부였다.

거기에 뭐가 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주 높은 빌딩이 서 있었다.

그냥 높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규모 자체가 상당해서 마치 탑이나 성을 보는 듯한 빌딩이었다.

아까 그걸 볼 때도 딱 그런 생각을 했었다.

방금 그건 그 빌딩에서 시작된 마력이었다.

또한 시스템의 보조를 받아서 만들어진 마력이기도 했다.

단순한 마력이 아니라 감지 속성을 가진 마력이었다.

추측컨대, 상부 도시 안에서 마법을 쓰면 그 거대한 마력이 감지하는 듯했다.

‘마법진만 만들었는데도 감지하고 여길 스캔한 건가? 아니면 그냥 우연인가?’

아무래도 우연은 아닌 듯했다. 그 거대한 마력은 명확히 이곳을 훑고 지나갔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마력이 또 몰려왔다.

반태수가 있는 호텔 전체를 휩쓸고 지나간 마력은 몇 차례나 다시 나타났다.

마치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반태수는 게이트 마법 테스트를 깔끔하게 포기했다.

아무래도 도시 안에서 마법 사용이 금지된 것 같은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도시를 벗어난 후에도 얼마든지 테스트를 할 수 있다.

이미 마법은 완성되어 반태수의 머릿속에 저장되었으니까.

반태수는 마법 쪽은 아예 포기하고 이번엔 시스템 자체를 확인해봤다.

과연 정말로 연산 보조 말고는 못 하는지, 그리고 등급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과연 자신이 어디까지 시스템을 써먹을 수 있을지, 너무 궁금했다.

그렇게 시스템을 조심스럽게 확인하는데, 뭔가 느낌이 좀 묘했다.

확인하면 확인할수록 시스템 자체가 자신에게 굉장히 호의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스템은 그냥 시스템일 뿐인데, 호의라는 감정을 느낀다니 좀 이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확신이 깊어질수록 시스템에 대한 권한이 점점 더 커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반태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스템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고, 어느새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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