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 타노로스의 습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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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블릭은 건물 옥상에 서서 저 멀리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거대한 탑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옥상에 착륙시켜 놓은 소형 비행선을 바라봤다.
마력이라고는 하나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기술력으로만 만든 비행선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비행선은 현재 타노로스가 아니면 만들지 못한다.
세상 전부가 마력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카블릭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탑, 그리고 탑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원반을 올려다봤다.
일명 상부 도시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리고 저곳에 5대 가문 사람들이 산다.
5대 가문이 전부 저기에 모여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저곳이 5대 가문의 본진이라 할 수 있다.
5대 가문과 관련된 행사는 전부 저기에서 열리고, 회합도 전부 저곳에서 열린다.
그리고 5대 가문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것이 저곳에 있다.
솔직히 카블릭은 이번에 조직, 타노로스에서 이번 작전을 하달했을 때, 정말 놀랐다.
그동안 타노로스는 굉장히 은밀히 활동해왔다.
5대 가문과 연관된 곳에 테러를 저지르긴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5대 가문 자체를 공격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건 처음이었다.
물론 5대 가문 소속 요인들의 암살을 기도할 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철저히 가려낸 인선을 통한다.
5대 가문에서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내놓은 자들을 대상으로만 한다.
타노로스의 목표는 5대 가문을 뒤엎고 세상의 새로운 주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카블릭은 이제 그 목표를 믿지 않는다.
그가 본 타노로스는 5대 가문을 피해 몰래 숨어 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가진 바 힘은 끊임없이 성장 중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카블릭에게 와 닿는 것은 없었다.
당연했다. 카블릭은 타노로스가 가진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거의 모르고 있으니까.
우주정거장이 여러 대 있고, 우주에 물류센터를 세울 정도로 대단하다는 건 아예 모르고 있었다.
그건 간부 중에서도 아는 사람이 드문 정보였다.
아무튼 그랬는데, 5대 가문 습격 작전의 책임자 중 한 명이 된 것이다.
카블릭은 이번 작전을 계기로 타노로스가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
5대 가문을 직접 타격하는 작전이다.
심지어 공격 대상이 이곳, 트릴린드라였다.
트릴린드라.
상부, 하부 도시로 나뉘어 있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시스템이 보관된 탑이 있는 도시.
이번 공격의 목표는 탑이다.
5대 가문의 시스템을 몇 초라도 멈추면 성공인 작전.
이번 작전에 참여한 자들은 전부 목숨을 걸었다.
이미 도시 내부에 백 명이나 되는 조직원이 숨어들었다.
그들은 작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도시 곳곳에서 테러를 저질러 시선을 돌릴 것이다.
결코 미리 움직여선 안 된다.
폭탄이나 그에 준하는 장치를 설치해서도 안 된다.
사전에 무언가를 하는 순간 무조건 걸릴 수밖에 없다.
카블릭은 다시 탑을 바라봤다.
저 탑이 있는 한, 이곳 트릴린드라에서 무언가를 도모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무기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조직원들은 모든 걸 현지 조달해야 한다.
가장 간단한 건 칼이다. 칼을 구해 무차별로 주변을 공격하다가 도시에서 병력을 동원하면 무기를 탈취해 또 싸운다.
이번에 도시에 잠입한 조직원들은 그 정도는 가능한 실력을 가졌다.
고르고 골라서 뽑은 자들이었다.
그들이 다 죽는 것만으로 타노로스의 하부 세력이 확 쪼그라들 정도로 뛰어난 자들이었다.
또한, 육체 개조도 한껏 받았다. 아마 웬만한 능력자로는 그들을 막을 수 없으리라.
그런 자들을 다 갈아 넣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다. 성공할 수만 있다면.
아무튼 그러는 사이 도시 외부에서 공격을 가할 것이다.
자주포와 장갑차가 준비되어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카블릭은 조직이 어떻게 그 장비들을 준비했는지, 또 어디에 보관하는지 모른다.
그저 한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또한 전투기도 동원할 것이다.
그 모든 공격의 최종 목표가 바로 탑이었다.
단 몇 초 동안 시스템을 멈추기 위해 하는 공격이었다.
모두 전멸을 각오했다.
그리고 카블릭을 비롯한 그의 두 동료가 맡은 역할은 딱 그때부터였다.
시스템이 다운된 그 몇 초 동안 시스템에 잠입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진짜 목표였다.
5대 가문의 최소 절반에 해당한다고 일컬어지는 것이 바로 저 탑이었다. 아니, 탑이 보호하고 있는 시스템이었다.
아마 경계도 심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화력을 집중해도 탑을 건드리지도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도 한다.
‘그나저나…… 이 묘한 위화감은 대체 뭐지?’
이 작전의 책임자 중 하나로 임명되었을 때부터 계속해서 뭔가 묘한 위화감이 떠나지 않았다.
무언가 굉장히 거슬리는 듯한 감각이 머릿속 어딘가를 계속 긁었다.
이 위화감의 정체가 뭘까?
모든 것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뤄졌다. 그리고 이제 그걸 하면 된다.
그런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너무 순조로워.’
마치 누군가가 깔아놓은 레일 위를 그냥 달리는 것처럼.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카블릭은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이렇게 딴 생각에 빠질 때가 아니다.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작전의 효과가 최대한 좋을 시기를 파악해야 한다.
카블릭은 결연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탑을 바라봤다.
그리고 옥상에서 내려갔다.
***
반태수는 비행선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목적지는 트릴린드라. 5대 가문의 도시였다.
5대 가문이 직접 다스리는 도시는 여러 개였다.
하지만 트릴린드라는 5대 가문이 연합해서 다스리는 도시이자, 5대 가문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다.
예전 키에라 나서스가 후계자 승인을 받은 곳도 트릴린드라였다.
또한 조만간 열린다던 행사 역시 트릴린드라에서 열린다.
지금 그곳을 향해 반태수뿐 아니라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도 각각의 비행선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상당히 먼 곳에 있기에 며칠은 가야 한다.
가는 도중에 종종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가 반태수의 비행선으로 넘어오곤 했다.
이곳에 오면 맛있는 커피와 쿠키, 그리고 토스트를 즐길 수 있으니까.
지금도 두 사람이 건너와서 기분 좋은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영감님, 그 정보 확실한 겁니까?”
“뭐가. 그놈들이 열흘 안에 습격한다는 정보 말이냐?”
반태수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데드릭 벨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마지막으로 잡아온 중간상인한테 얻은 정보니까 아마 확실할 거다. 정확한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모양이더라.”
“날짜도 정해지지 않았다고요?”
솔직히 좀 이해할 수 없었다.
무려 5대 가문을 직접 공격하겠다는 작전인데, 실행일도 정하지 않았다고?
그 중요한 일을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한다고?
“대신 조직원들은 다들 잠입해서 준비 중인 모양이던데? 결행일은 분위기를 보고 직접 그놈들이 정한다더라.”
“좀 이해가 안 가네요.”
데드릭 벨크리스가 피식 웃었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 생각보다 타노로스 놈들 이상해. 가끔은 생각이 없는 놈들이 모여서 만든 조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니까?”
타노로스를 가장 많이 겪어본 사람이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보 관리도 잘 안 하는 거 같지 않아요?”
그런 중요한 작전이 있다면 철저하게 정보를 은폐하는 것이 정상이다.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그 정보를 처음 얻은 건 거점주로부터였으니까.
한데 그 뒤에 잡은 중간상인들을 심문하다보니 그 작전을 모르는 중간상인이 없었다.
처음에는 거점주 정도나 되어야 하는 정보였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보가 퍼져 나간 것이다.
어쩌면 이제 일반 조직원 중에도 그 정보를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게. 이거 혹시 함정 아닌가?”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살라자 샤마쉬를 바라봤다.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눈빛을 가득 담아서.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한데…… 그렇다고 정보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잖습니까.”
살라자 샤마쉬의 말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점혈에 당한 놈들이 뱉은 정보가 틀린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맞는다고 봐야겠지?”
“제 생각에 이건 꼭…… 우리가 이럴 테니까 한 번 막아보든가. 뭐,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거 같습니다.”
데드릭 벨크리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 이 건방진 놈들. 이것들을 어떻게 조져야 속이 풀릴까?”
반태수는 살라자 샤마쉬의 말을 들으며 무언가 섬광 같은 것이 머리를 꿰뚫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굉장히 묘한 위화감이 생겼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는데, 그 위화감의 정체가 바로 저거였다.
이런 생각을 하면 자의식과잉일 수도 있는데, 이 모든 판이 자신을 위해서 벌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또 좀 이상하다.
타노로스가 아쉬울 게 뭐가 있어서 자신을 위해 판을 깔아준단 말인가.
심지어 이번 판에서 반태수가 활약하면 그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는데.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신경을 써서 활동했는데, 타노로스 놈들이 반태수를 특정해서 일을 벌이겠나.
말도 안 되는 억측이다.
그런데 왠지 그 억측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뇌리를 지배했다.
“야, 넌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표정이 심각해?”
반태수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별 거 아닙니다. 그놈들이 왜 이럴지 좀 고민해봤는데, 뭐, 원래 이상한 놈들이라면서요?”
“그래. 그냥 그런 놈들이라고 받아들이면 편해.”
반태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왕 여기 오신 김에 두 분, 그냥 자고 내일 가시죠. 내일 아침에 토스트나 구울까 하는데.”
토스트라는 말에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럼, 그럴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히죽히죽 웃는 걸 보니 갑자기 내일 토스트 양을 제한해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금방 치워버렸다.
후환을 생각하면 먹을 걸로 장난질 치면 안 된다.
뭐, 요즘에는 정력 때문에 살짝 성질을 죽이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나저나 5대 가문 쪽에서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코웃음을 쳤다.
“흥. 그놈들이 노리는 곳이 트릴린드라인데 준비는 무슨 준비. 거긴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는 곳이야.”
“상주하는 군대 규모가 제법 큰 모양이군요.”
“군대도 군대지만, 무기가 보통이 아니지. 탱크나 전투기는 물론이고 전투형 비행선도 잔뜩 있으니까.”
전투기라는 말에 반태수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 아공간에 인공지능 모듈을 장착한 전투기가 있다.
과연 그 전투기와 5대 가문의 전투기를 비교하면 얼마나 차이가 날까?
반태수의 전투기가 더 강한 건 확실하다. 이건 유물이니까.
한데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직접 비교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전투기까지 있습니까?”
“흥. 가서 실제로 보면 기절할 거다. 그 전투기들을 보관하는 거대 비행선도 있어. 말 그대로 항공모함이지.”
바다에 띄우는 항공모함도 아니고 하늘에 띄우는 항공모함이라니.
우주로 날릴 수 있으면 그게 우주전함 아니겠나.
확실히 5대 가문은 5대 가문이다.
아마 데드릭 벨크리스가 모르는 또 다른 힘도 잔뜩 숨겨져 있을 것이다.
“타노로스 놈들이 어떤 준비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성공 가능성은 제로야.”
“그럼 굳이 우리가 갈 필요도 없는 거 아닙니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이럴 때 가서 생색을 팍팍 낼 수 있어야지. 어쨌든 정보 제공자가 우리잖아. 그런데 우릴 빼놓고 싸운다고? 말도 안 되지. 그렇게 하면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겠다는 뜻인데.”
“그건 그렇겠네요.”
데드릭 벨크리스가 히죽 웃었다.
“어쨌든 이번 일에서 가장 큰 공은 우리가 이미 세웠어. 전투는 그걸 좀 거드는 것뿐이지. 그러니까 기대해라. 알지? 우리 5대 가문이 상에 진심인 거.”
반태수는 그 말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상으로 글락 그룹까지 받았다. 여기서 더 뭘 받겠나.
심지어 예전에 받았던 인공위성 제작 기술은 아직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다.
뭐, 그래서 기술 자체를 글락 그룹에 넘겨 버리긴 했지만.
글락 그룹에도 인공위성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에 좀 더 업그레이드 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지만 말이다.
“뭐야. 왜 심드렁해? 상 받기 싫어? 그럼 내가 다 먹는다?”
“토스트 먹기 싫으면 그렇게 하시든가요.”
“와, 뭐야. 이제 먹는 걸로 협박까지 하는 거야?”
반태수가 데드릭 벨크리스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게 정력으로 협박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데드릭 벨크리스가 바로 입을 다물고 쭈그러졌다.
“에이, 무슨 농담을 그렇게 살벌하게 해? 난 이제 이거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어.”
반태수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에이, 진짜. 알았어, 알았어. 잘 할게. 잘 하면 되잖아.”
그걸 본 살라자 샤마쉬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발끈했다.
“넌 정력 필요 없어? 며칠 전에 보니까 아주 절실할 거 같던데?”
살라자 샤마쉬가 헛기침을 했다.
“큼, 큼. 누가 뭐라고 했습니까? 왜 영감님 혼자서 묻고 답하고 알아서 다 하시면서 결정을 내리십니까. 전 지금도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안 그런가?”
살라자 샤마쉬가 반태수를 보며 묻자, 반태수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분이시죠.”
살라자 샤마쉬가 어깨를 슥 올리며 데드릭 벨크리스를 바라봤다.
“그렇다는군요."
데드릭 벨크리스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잉, 밤도 늦었는데 잠이나 자러 가자. 얼른 자야 빨리 일어나지.”
토스트 생각에 입에 침이 고였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자러 가버리자, 살라자 샤마쉬도 곧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반태수는 홀로 남아 아까 떠오른 생각을 한동안 이어갔다.
‘타노로스라…….'
정말 특이하고 신기한 조직이긴 하다.
마력이 넘치는 세상에서 마력을 전혀 쓰지 않고 발전을 이뤄낸 조직이라니.
밤이 깊어갈수록 반태수의 생각도 점점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