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화. < 새로운 정보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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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점주의 심문에서 얻은 것들을 가만히 곱씹어보던 반태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데드릭 벨크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영감님, 저놈 너무 강한 거 같지 않습니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강하더라. 중간상인까지는 내가 어떻게 해보겠는데, 그놈은 도저히 답이 안 나오더라.”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에요. 중간상인은 그래도 장비를 이용해서 싸우는데, 거점주라는 놈은 장비도 거의 안 쓰고 맨몸으로 싸웠잖아요.”
그런데도 압도적으로 강했다.
괴물 같은 육체와 말도 안 되는 회복력까지.
물론 우주정거장에서 거점주에게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굉장한 강자였다.
만일 거기에 장비까지 쓴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한 놈이 될 것이다.
아마 중간상인들이 여럿 모여서 덤벼도 순식간에 박살 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데드릭 벨크리스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아까의 싸움이 떠오른 것이다.
한 방에 나가떨어진 것도 짜증나고 자신을 살려주겠다고 힘 조절을 한 것도 짜증난다.
“아무래도 영감님을 조심하는 거 같죠? 타노로스 놈들.”
“뭘 물어? 아까 심문하면서 다 얘기했잖아.”
거점주가 데드릭 벨크리스를 살려주려고 한 이유는 5대 가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럼 모순이 생긴다.
조만간 타노로스에서 5대 가문을 직접 타격하는 작전을 펼칠 계획이라고 했으니까.
타노로스는 5대 가문을 굳이 직접적으로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가신 가문은 건드려도 5대 가문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5대 가문에 타격을 주는 건 자주 한다.
“이놈들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요?”
“나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하나도 모르고 있었어. 하! 우주정거장이라니. 위성도 아니고."
심지어 우주정거장이 끝이 아니다. 우주에 물류창고를 지어놓은 것 아닌가.
이러다가 로봇이 튀어나와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을 것 같다.
로봇 생각을 하니 저택 지하 창고에 보관 중인 로봇과 부품들이 떠올랐다.
로봇을 조종했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그때 참 좋았었는데.
생각해보니 아직 부품을 다 모으지 못했다.
부품 중에는 분명히 로봇의 것이 아닌 다른 것들이 많이 섞여 있었다.
유적을 돌아다니면서 설계도도 새로 구하고 부품도 더 구해야 하는데, 그동안 너무 바빠서 미처 하지 못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슬슬 유적도 빠르게 훑어야겠다.
어쨌든 5대 가문을 공격한다니 그건 막아야 하지 않겠나.
‘뭐, 5대 가문이 당할 것 같지는 않지만.’
타노로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고 능력도 뛰어난 것 같지만, 그래도 5대 가문을 능가할 정도는 결코 아니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휘두르는 힘은 5대 가문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5대 가문이 진짜 마음먹고 나서면 아무리 타노로스라도 함부로 덤비지 못할 것이다.
“그나저나 타노로스, 이놈들 정말 철저하네요.”
“그러게 말이다. 그러니 그렇게 오랫동안 우릴 상대로 버텼지.”
“타노로스가 오래됐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그래. 우리 가문보다야 못하지만 셰딤 보다는 오래됐을 거다.”
“셰딤은 천 년이 넘는다고 했는데, 그보다 오래됐다고요?”
솔직히 좀 놀라웠다.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은 있어야 마력을 쓰지 않은 기술을 이 정도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초창기에는 어떤 기술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아마 별 거 없지 않았을까?
만일 처음부터 뛰어난 기술력을 가졌다면, 그들이 5대 가문을 밀어내지 못했을 이유가 없으니까.
5대 가문의 힘도 세월을 쌓아 만들어냈을 것 아닌가.
오랫동안 모은 유물과 마도구, 마법과 능력에 대한 지식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5대 가문을 이루었을 테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해가 안 가긴 하네요.”
“뭐가?”
“5대 가문이랑 타노로스의 대립이 너무 오래된 거 같지 않아요? 천 년이 넘게 이어졌으면, 그 사이 뭔가 일이 생겨도 천 번은 생겼을 거 같은데,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역사가. 이어진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그게 뭐. 그냥 박멸의 의지가 없었던 것뿐이겠지. 전부 없애버리겠다고 나설 정도로 거슬리지 않았던 거 아닐까?”
“그럼 타노로스가 눈치를 잘 살핀 거겠네요?”
“그렇지 않을까?”
“그럼 이렇게 직접적으로 5대 가문을 공격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글쎄?”
데드릭 벨크리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표정이 확 바뀌었다.
이제야 반태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차린 것이다.
“그놈들이 이제 한 번 해볼 만하다고 판단한 거로구나. 우릴 우습게 여기고 있어. 안 그러냐?”
“모르죠. 그런데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하죠.”
“하! 이 건방진 것들이, 감히!”
반태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릿속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일까요?”
“응?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천 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잘 조절해 왔으면서 왜 갑자기 싸우려고 하는 걸까요?”
“아까 얘기했잖아. 할 만하니까 하는 거지.”
“언제부터 할 만하다고 판단했을까요?”
“응? 글쎄?”
“우주정거장이 몇 개 있는지도 모르고 우주에 거대한 물류창고를 만든 놈들이에요. 설마 그 물자를 지구에서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데드릭 벨크리스의 표정이 확 굳었다.
확실히 그건 좀 이상하다.
“그럼……."
“우주에 제조 공장을 세웠을 겁니다. 자원도 우주에서 채취하고. 이제 그놈들이 어느 정도 수준일지 좀 짐작이 됩니까?”
반태수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최소 수십 년, 아니, 어쩌면 백 년이 넘게 걸렸을 수도 있죠.”
그렇다면 굳이 지금이 아니라 몇 년 전에도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았을까?
아니, 십 년 전에도 충분히 할 만하지 않았을까?
“뭐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해? 그때는 확신이 없었겠지.”
그렇게 여기면 상황은 단순명료하다. 한데 반태수는 왠지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계속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솔직히 그냥 받아들이면 편하다.
상황은 단순하다. 타노로스가 드디어 5대 가문에 제대로 된 싸움을 걸고자 하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나는 왜 여기에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반태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여전히 마력회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이 느낌, 통찰력 때문이 아닐까?
인지를 초월하는 통찰력을 발휘해서 이번 일에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 아닐까?
그리고 드러난 상황을 보면 타노로스의 힘이 정말로 만만치 않다.
거점주가 얼마나 강했는지 보면 안다.
원래 강한 자가 아니라 기술로 강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자가 고작 한 명뿐일까? 고작 거점주들만 그렇게 만들었을까?
절대 아닐 것이다.
제약이 있어서 다수의 강화인간을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꾸준히 오랫동안 만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숫자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소극적으로 활동한다고?’
자신이 타노로스의 지배자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 훨씬 다양한 상황을 만들고 상황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타노로스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체 왜일까?
“야, 그만 고민해. 고민한다고 뭐가 달라져? 그리고 다른 이유가 있으면 뭐? 그럼 타노로스랑 안 싸우려고?”
“그건 아니죠.”
“그럼 고민하지 말고 준비를 해. 타노로스 놈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고 했잖아. 그럼 준비를 더 철저히 해야지. 안 그래?”
“영감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그럼 준비하죠.”
반태수는 데드릭 벨크리스에게 마력회로를 심어주기로 결심했다. 바로 지금.
***
“하…… 엄대협 이 새끼. 이런 좋은 걸 몸에 달고 있었던 거야?”
만일 이럴 줄 알았다면 더 열심히 졸랐을 것이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흐뭇한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마력회로라는 것, 정말 대단했다.
“야, 이거 혹시 양산은 안 돼?”
“안 됩니다. 그리고 아무한테나 새겨줄 생각도 없습니다. 설득하려고 하지 마세요.”
“설득은 누가 설득한다고 그래? 난 그냥 고마워서 그러지. 그런데 이거 정력도 확실한 거지?”
반태수가 데드릭 벨크리스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영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확실한 거 같아요?”
“어…… 내 생각은 그런데? 뭐랄까…… 자신감이 쭉쭉 차오르는 기분이야.”
“알면서 왜 확인한 겁니까? 날 못 믿겠다, 그런 거 아니죠?”
데드릭 벨크리스가 맹렬히 손사래를 쳤다.
“어이구,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널 안 믿으면 누굴 믿겠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우리 큰형님보다 널 더 믿는다니까?”
데드릭 벨크리스는 반태수가 마력회로를 회수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엄대협이 그 때문에 몇 번이나 반태수의 말에 긴장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순간, 정력 때문에 반태수에게 숙이고 들어가는 상황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걸 자승자박이라고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승자박이라니. 정력뿐 아니라 강력한 능력까지 받았는데 이게 무슨 자승자박인가.
그냥 평소대로 하면 된다. 아주 조금만 더 조심하고.
“그럼 누구한테 새겨줄 거야? 살라자 샤마쉬한테는 안 해줄 거지?”
“예?”
반태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데드릭 벨크리스를 쳐다봤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뻔뻔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놈은 정력 따위 필요 없잖아. 그리고 나서서 싸우는 타입도 아니고. 아니, 그딴 거 다 치우고, 일단 내가 자랑 좀 해서 속 좀 뒤집어 놓자. 그 다음에 새기든 말든 마음대로 해.”
그러니까 자기가 살라자 샤마쉬에게 자랑할 시간을 달라는 거였다.
하여튼 어린애 같은 영감이다.
“지금 가서 해줄 겁니다.”
반태수는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펄쩍 뛰었다.
“야, 야! 멈춰! 가지 마! 기다려 보라니까!”
물론 반태수로부터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날, 살라자 샤마쉬도 마력 회로를 갖게 되었다.
육체 강화와 전투에 관련된 다양한 능력을 새긴 데드릭 벨크리스와는 다른 스타일의 마력회로였다.
살라자 샤마쉬의 마력회로는 통찰력과 예지력 쪽의 비중을 훨씬 높였다. 정력도 당연히 포함시켰고.
어쨌든 반태수가 새기는 마력회로의 기본은 언제나 안전이었다.
반태수는 살라자 샤마쉬 이후, 오스윈 프리든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몸에도 마력회로를 새겼다.
이로써 다들 훨씬 안전해졌다.
반태수가 이렇게 급히 나서서 마력회로를 새긴 이유는 타노로스 놈들이 기습할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반태수는 그렇게 나름의 준비를 시작했다.
***
반태수는 크랙톤에 한 번 다녀와서 다시 스태플레톤에 머물렀다.
일단 속성 종족 대표들이 타고 간 비행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두뇌를 집중해 막바지에 다다른 연구들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래도 새로 마력회로를 새겨야 할 사람이 전부 크랙톤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무튼 여기서 연구를 하다가 비행선이 오면 그때부터 퍼즐 유적을 찾아다닐 계획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품을 싹 모아서 새로운 무언가를 조립하는 것이 타노로스를 상대로 어설프게 깔짝거리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나.
반태수는 연구에 집중했다.
이번에 확실히 끝내기로 마음먹은 연구는 바로 아공간이었다.
꼭 필요해서 절대 뺄 수 없는 두뇌들을 제외한 모든 두뇌를 동원했다.
어차피 거의 다 왔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성공이니까.
한데 그 한 걸음이 참으로 어려웠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다. 그 한 걸음을 10년 이상 못 걷는 사람도 수두룩하니까.
아무튼 반태수는 숙소에 틀어 박혀서 아공간 연구를 진행했다.
아공간 연구에도 자연스럽게 회로에 대한 지식이 스며들었다.
무수한 마법진을 각기 다른 위상에 만들고 그걸 중첩시키는 방식으로 술식을 구축했다.
그리고 결국 아공간을 완성했다.
반태수는 이번에도 마력회로의 덕을 봤다.
마력회로에 대한 지식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아공간을 완성하자 공간이동을 완성하는 길이 자연스럽게 보였다.
반태수는 내친 김에 공간이동까지 완성했다.
그렇게 두 가지 마법을 완성한 순간, 거짓말처럼 비행선이 돌아왔다.
***
반태수는 묘한 눈으로 비행선에서 내리는 속성 종족들을 쳐다봤다.
스태플레톤에 있던 모든 속성 종족의 대표들이 함께 갔기에 비행선에서 내리는 속성 종족의 수가 상당히 많았다.
일단 여기서 갔던 여섯 명에 바람, 전격, 나무 속성 종족이 내렸다.
여기까지가 세상에 알려진 모든 속성 종족들이었다.
한데 중요한 건 그 뒤에 나오는 자들이었다.
보석, 독, 혼돈의 속성 종족들이 조용히 따라 내렸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재하는 속성 종족들이었다.
이로써 모든 속성 종족의 대표들이 스태플레톤에 모였다.
그들은 반태수를 보자마자 경건하게 허리를 숙였다.
반태수는 속성 종족들이 저럴 때마다 자신이 왕이나 신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들의 진심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빛 속성 종족의 대표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다음에 오실 때는 완성해 놓겠습니다. 부디 나중에 꼭 한 번 들러주십시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완성해 놓겠다는 것은 그 의자이리라.
뭔가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위화감이 사라졌다.
반태수는 다음에 꼭 다시 와서 완성된 의자에 앉아보기로 했다.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반태수를 태운 비행선이 드디어 스태플레톤을 벗어났다.
멀어지는 비행선을 케인 메르사이어가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는 임무를 맡았다.
스태플레톤에 촘촘한 정보망을 깔아서 이곳에 오는 중간상인이나 타노로스의 조직원들을 찾는 임무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바로바로 반태수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다.
내친 김에 스태플레톤에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중간상인의 거점도 새로 찾아보기로 했고.
케인 메르사이어는 비행선이 보이지 않자, 연구실로 달려갔다.
이제 벌레를 더 업그레이드할 시간이다.
조만간 스태플레톤은 자신의 벌레로 가득 채워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