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화. < 타노로스 사냥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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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셨습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디 칩을 이식한 거 맞아. 크랙톤에 있는 놈한테도 확인했는데, 칩 이식했다고 이실직고 했다.”
“그래서 칩이 어디에 있답니까?”
“모른대.”
“예?”
반태수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칩을 이식했는데, 이식한 장본인이 어디에 이식했는지 모른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게 궁금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여기로 날아왔는데, 저런 얘기나 듣고 있어야 하다니.
반태수의 표정을 본 데드릭 벨크리스가 얼른 부연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그 아이디 칩이라는 게 액체 형태로 주사기에 들어 있다고 하네? 이렇게.”
데드릭 벨크리스가 품에서 주사기 하나를 꺼냈다.
어른 손가락만 한 주사기였는데, 안에는 초록색 액체가 담겨 있었다.
“이게 아이디 칩이라고요?”
“그렇대. 주사를 놓는 장소는 상관없고, 일단 체내에 들어가면 자리를 잡는다는데, 자기들도 칩이 어디 있는지 모른대. 솔직히 알 필요도 없고.”
어차피 제거하지 않을 테니까.
“이런 정체불명의 액체를 자신의 몸에 주사하는 데도 아무 거리낌이 없는 모양이네요.”
“그놈들 기술력에 대한 믿음이 아주 확고하잖아.”
누구보다 타노로스를 오랫동안 쫓아온 데드릭 벨크리스가 하는 말이니 아마 맞을 것이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반태수를 보며 물었다.
“어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해보지 않으면 모르죠. 일단 존재를 인지했으니 시도는 해볼 수 있겠네요.”
반태수는 그렇게 대답하며 주사기 안에 든 초록색 액체를 유심히 살폈다.
그냥 눈으로 봐서는 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액체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아이디 칩이라고 했으니 그 역할을 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들어있을 것이다.
나노머신도 원래는 눈으로 안 보이는데 한데 뭉쳐서 다니니 보라색 연기처럼 보이는 것 아니겠나.
실제로 중간상인들이 주변에 흩뿌려 놓는 나노머신들은 눈에 안 보인다.
반태수는 영역화를 주사기에 집중했다.
뭐 하나 사소한 거라도 알아내야 한다. 그래야 체내에 들어간 이 액체를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또한 그렇게 해야 이걸 따로 분석하고 연구해서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타노로스가 까다로워.’
셰딤을 상대할 때는 오히려 좀 더 편안했다.
마력 차단 물질이나 마력 동결 물질이 등장했을 때는 좀 까다로웠지만, 그래도 어쨌든 그것들은 전부 마력에 기반을 둔 것들이었다.
반태수는 마법사, 그러니 마력에 기반을 둔 것이 훨씬 분석하기 편했다.
재현하기도 수월했고.
한데 타노로스는 마력 자체를 아예 안 쓰니 특별한 기술력이나 지식이 없으면 파악하거나 판단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중간상인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다. 일단 기존의 점혈이 안 통해서 점혈을 개량하기까지 했다.
반태수는 그동안 꾸준히 과학 쪽 공부도 해왔다. 기술에 대한 분석도 병행했고.
타노로스가 기술력만 쓴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계속 파고들었다.
문제는 타노로스의 기술력이 너무 수준이 높다는 데에 있었다.
이걸 따라잡으려면 웬만한 시간과 노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다보면 무언가 얻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반태수는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초록색 액체를 분석했다.
영역화의 분석력은 이제 상당한 수준이라서 분자 단위의 분석도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 나노머신도 분석하고 그러는 것 아니겠나.
이 초록색 액체도 거의 그 수준이었다.
반태수는 결국 이 액체의 본질을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액체 전체가 칩이었어. 믿을 수가 없군.’
칩으로 이루어진 액체였다. 아마 나노머신을 볼 때도 이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각 칩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걸 찾아낼 수는 있게 되었다.
체내에 들어간 나노머신도 뽑아내는데 고작 이 정도도 못 뽑아낼 리 없지 않은가.
반태수는 데드릭 벨크리스에게 주사기를 던졌다.
그걸 받은 데드릭 벨크리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끝난 거야? 분석은? 성공했어?”
“그냥 잡아내는 수준이죠. 진짜 분석은 영감님 가문에서 하는 게 더 나을 겁니다. 나노머신도 분석하고 있죠? 그 정도 장비는 있어야 분석이 가능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게 뭔데?”
“그건 영감님이 분석해서 저한테 알려줘야죠. 일단 그 액체, 전체가 다 칩이에요. 나노머신 비슷한 거예요. 칩이 모여서 액체를 이루고 있는 거죠."
“이해가 안 가네.”
“솔직히 나도 완벽하게 이해한 건 아니에요. 그냥 어느 정도는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였어요.”
데드릭 벨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겠다. 그럼 이건 내가 맡아서 분석하마. 그럼 이놈들 몸에 들어간 칩은 어떻게 할 거냐? 뽑아낼 수 있나?”
“뽑아낼 수야 있죠. 뽑을까요?”
“그래야 하지 않을까? 이거 방치하면 위치추적 같은 거 들어오지 않나?”
“그럼 뽑죠, 뭐.”
반태수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마력을 일으켰다.
타겟은 중간상인 한 놈과 그놈과 아이디 칩을 서로 이식한 조직원 한 놈이다.
반태수는 마력의 실을 뽑아 일단 술식부터 계산했다.
나노머신을 제거할 때는 영역화로 계속 확인하면서 마력의 실을 몸에 넣어 하나하나 뽑아냈다.
나노머신이 세포와 결합한 경우가 있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나노머신을 육체에서 뽑아내는 것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좀 더 효과적으로 나노머신을 세포와 분리하고 그것을 체외로 유도하는 마법을 만들어냈다.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술식을 여러 개 상황에 맞게 결합해야 하는 마법이었다.
반태수는 그 마법을 응용해 조직원의 몸에 있는 아이디 칩을 찾았다.
‘이거로구나.’
마법을 쓰자마자 아이디 칩의 존재가 제법 선명하게 잡혔다.
확실히 나노머신보다는 다루기 편했다.
세포에 결합한 것도 아니고 그냥 단순히 뼈나 근육, 장기에 붙어 있었다.
다만 숫자가 여러 개라서 어설프게 대응하면 안 될 듯했다.
아무래도 이놈들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상호작용을 하는 것 같았으니까.
하나를 건드리면 신호를 보내 나머지가 어떤 식으로든 대응할 것이다.
소멸하거나 아니면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해 숙주를 죽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건드리고 있는 존재를 공격하거나.
반태수는 영역화를 통해 조직원의 몸에 있는 모든 칩을 인지했다.
그게 시작이다.
복잡한 술식으로 구성된 마법진이 허공에 나타났다.
반태수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마법을 발동했다.
황금빛 장막이 나타나 조직원의 몸을 스캔하듯 관통했다.
조직원의 몸을 투과해서 나온 황금빛 장막에 초록색 액체가 점점이 묻어 있었다.
체내에 있던 모든 칩을 외부로 뽑아낸 것이다.
반태수는 미리 준비한 유리병에 초록빛 액체를 모두 담았다.
그러자 황금빛 장막이 이번엔 중간상인을 덮쳤다.
황금빛 장막이 그의 아이디 칩도 모조리 몸에서 걸러냈다.
그렇게 두 명분의 아이디 칩을 각각 다른 유리병에 담은 반태수는 그것을 아공간에 넣었다.
이건 자신이 가져가 연구해볼 생각이었다.
“심문으로 뭐 알아낸 건 없습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없어. 중간상인이라는 놈들은 아는 게 다 똑같아.”
반태수는 그 말을 듣고 거점을 갖고 있는 중간상인을 쳐다봤다.
“그럼 슬슬 거점을 칠까요?”
반태수의 말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돼? 좀 더 버티면서 중간상인을 더 잡는 게 낫지 않겠어?”
“어차피 여기 거점을 만든 놈들이 최소 한 번은 올 겁니다. 정보망 가동해서 그놈들이 올 때 그냥 잡으면 됩니다.”
그리고 거점이 없더라고 스태플레톤의 거점주를 이용하는 중간상인들도 최소 한 번쯤은 찾아올 테고.
“언제 올 줄 알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영감님은 슬슬 싸울 준비나 하시죠.”
데드릭 벨크리스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럼 그럴까? 내가 싸워도 되는 거지? 죽이면 곤란하겠지? 힘 조절을 좀 해야 하나?”
반태수가 그걸 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영감님, 뭐 장비라도 업그레이드 했어요? 너무 자신만만하신데?”
“뭐 평소처럼 싸우면 되지. 내 실력 어디 가나.”
“저번에 중간상인이랑 싸우는 거 보니까 좀 밀리는 것 같던데, 아닙니까? 그래서 엄대협도 끼어든 거고요.”
“밀리긴 누가 밀려! 그리고 엄대협은 그냥 그놈이 알아서 깔짝깔짝 도와준 것뿐이야!”
“뭐, 알아서 하세요. 죽이지 말고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그 두 가지만 신경 쓰시면 됩니다. 혹시 도저히 못 당하겠다 싶으면 말하고요. 근처에서 기다릴 테니까.”
“그럴 일 없다. 이번에 내 실력을 단단히 보여주지.”
반태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말 나온 김에 지금 치러 갈까요?”
“그거 좋지. 그럼 비행선으로 갈까?”
데드릭 벨크리스는 도시 밖 비행선 생활을 얼른 끝내고 싶었다.
일단 도시 안으로 들어가야 어떤 방식의 유흥을 즐길 수 있는지 알아볼 거 아닌가.
반태수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어차피 거점주 치고 나면 영감님이 드러나도 상관없으니까요. 그런데 얼마나 도시에서 머무를 수 있는 겁니까?”
“양심상 오래는 못 있고, 대충…… 그놈 친 다음에 나흘 정도 후에는 나와야지.”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투덜거렸다.
“대체 그따위 규정은 왜 만든 건지 모르겠다니까.”
다들 규정을 지키면서도 왜 만든 건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만, 이 규정은 굉장히 오래 전에 아주 높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갑자기 음흉하게 히죽 웃었다.
“그러니 각오해라. 고작 나흘이니 아주 몸이 흐물흐물 녹을 때까지 놀 거니까.”
반태수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스태플레톤에서까지 그러고 싶습니까? 그리고 이 도시에 유흥을 할 만한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진심으로?”
"이놈이 뭘 모르네. 야, 원래 위험한 곳이 진짜야.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걷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는 게 뭔지 알아? 술, 여자, 약, 도박.”
데드릭 벨크리스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유흥의 전부라 할 수 있는 것들이지.”
반태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튼 대단한 영감이다.
“그건 모르겠고. 일단 가죠. 가서 거점부터 박살 냅시다.”
“그래. 가자. 아주 기대되는구나.”
잠시 후, 데드릭 벨크리스의 비행선이 훌쩍 날아올랐다.
***
타노로스의 거점은 스태플레톤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 있었다.
어차피 물자를 거점에 보관하는 것도 아니기에 가장 살기 좋은 곳에 거점을 만든 것이다.
거점주가 부리는 노예 세 명은 잡일을 하고 건물 관리를 빡세게 하는 것이 일이었다.
그들은 타노로스와 관계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곳은 제법 번화한 곳이기에 그래도 건물들이 다들 말끔했다.
나름 관리를 하는 것이다.
거점으로 쓰는 건물은 5층이었다. 이 근처 다른 건물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건물이었는데, 그래도 관리를 워낙 잘해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깨끗했다.
세 명의 건장한 노예가 몸을 갈아가며 건물을 관리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세 명의 노예는 두뇌와 육체를 개조한 상태였다.
두뇌를 개조해 진짜 노예로 만들었고, 육체를 개조해 웬만해서는 지치지 않고 힘도 아주 셌다.
그리고 그들은 유사시에 써먹을 수 있는 인간폭탄이기도 했다.
물론 자신들의 몸에 생체폭탄이 융합되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다.
그들이 몸에 심은 생체폭탄의 위력은 건물 하나를 날려 버릴 정도였다.
게다가 생체폭탄은 그 자체로 인체에 유해한 독이다. 몸에 닿기만 해도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일단 터지면 이 일대가 지옥으로 변하는 것이다.
거점주는 건물 앞 공터에 의자를 놓고 앉아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조만간 중간상인들이 자주 올 것이다. 한 달쯤 후에 대대적인 작전을 펼칠 테니까.
거점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느낌이 안 좋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저 멀리에서 비행선 한 대가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비행선을 보니 더더욱 불안해졌다.
“갑자기 웬 비행선이지? 저거 좀 낯익은데?”
왜 낯익은지 확 떠올랐다. 저 비행선, 데드릭 벨크리스의 것이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스태플레톤 안에 들어왔다는 건, 이 안에 타노로스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날아오는 방향이 이쪽인 걸 보면 데드릭 벨크리스의 목표는 자신이었다.
무언가 대비를 할 틈도 없었다.
어느새 비행선이 머리 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가 훌쩍 뛰어내렸다.
쿠웅!
거점주 바로 앞에 내려선 자는 바로 데드릭 벨크리스였다.
데드릭 벨크리스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맺혔다.
“자, 얼른 얼른 끝내자!”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거점주를 향해 한 걸음 크게 내디뎠다.
꽈득!
데드릭 벨크리스가 내지른 손을 거점주가 팔뚝으로 막아냈다.
그의 팔뚝은 마치 강철 같았다.
거점주가 데드릭 벨크리스를 향해 훅 달려들며 어깨로 가슴을 노렸다.
꽈앙!
데드릭 벨크리스도 그것을 팔뚝으로 막았는데, 몸이 뒤로 쭉 밀려났다.
거점주의 일격은 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했다.
그렇게 데드릭 벨크리스를 제법 멀리까지 밀어낸 거점주는 곧장 뒤돌아서 달렸다.
잠깐 손을 섞어보니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 뭐하나. 적은 데드릭 벨크리스 혼자가 아닐 텐데.
일단 여기서는 튀는 것이 상책이다.
거점주가 달려가자, 세 명의 노예가 곧장 데드릭 벨크리스를 향해 돌진했다.
그들은 도망칠 시간을 벌 미끼였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 도망? 네놈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달려드는 세 명의 노예를 피해 위로 훌쩍 뛰었다.
그들을 가볍게 뛰어넘는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꽈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