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화. < 타노로스 사냥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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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산이네.’
오늘 마킹을 붙인 포인트 중, 쓰레기가 산처럼 쌓인 공터에 사람이 나타났다.
사실 그곳에 쓰레기를 버리러 사람들이 갈 수도 있다.
그런데도 반태수가 굳이 나타난 사람에게 신경을 쓴 이유는 그가 다양한 장비를 보유하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승합차를 끌고 왔는데, 좌석을 대부분 없애고 짐차처럼 개조한 승합차였다.
승합차에서 내린 사람은 창백한 얼굴에 비쩍 마른 몸이었는데, 그 와중에 키는 커서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몸 곳곳에 특이한 장비를 착용했는데, 무슨 역할을 하는 지는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불과 얼마 전에 중간상인을 잡았지 않나. 그 중간상인이 착용하고 있던 장비와 겹치는 것들이 좀 있었다.
일단 나타났으니 마킹부터 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또 다른 사람이 터벅터벅 걸어서 나타났다.
탄탄한 체격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확인해보니 육체 개조를 한 사람이었다.
뼈나 근육이 인간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래도 인공적으로 만든 것 같은데, 성능이 정말 대단했다.
아마 웬만한 능력자도 저 사람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것이다.
‘저 사람이 거점의 주인인가?’
아니면 거점을 운영하는 조직원 중 한 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반태수는 그가 거점의 주인 같았다.
한데 중간상인에게 물건을 판매하러 온 사람이 아무 짐도 없이 나타났다.
중간상인이 짐차로 개조한 승합차를 몰고 온 것을 보면 물건을 받아가려는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타노로스 놈들은 마법을 아예 안 쓰니 아공간도 못 쓸 텐데 말이다.
아니면 기술적으로 아공간을 쓸 수 있는 건가? 설마 과학으로 거기까지 가능하게 된 걸까?
만일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아공간은 아직 반태수도 완벽하게 다루지 못하는 마법인데 말이다.
뭐, 이제 슬슬 답이 보이긴 한다.
아마 아공간이 완성되면 그와 동시에 공간이동도 어느 정도 완성될 것이다.
아무튼 반태수는 상황에 집중했다.
일단 새로 나타난 놈에게도 마킹을 하나 붙였다.
이내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섰다.
“오랜만이네? 그 얘기는 일을 잘 안 한다는 뜻인데…… 안 그래?”
빈손으로 온 사내가 살짝 비꼬듯 말하자, 중간상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일하는 데 꼭 물건을 써야 하는 건 아니잖아.”
중간상인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이걸 잘 쓰면 굳이 물건이나 돈을 안 쓰고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거든.”
“그래? 그거 흥미롭군. 그래서 무슨 일을 했는데?”
중간상인이 피식 웃었다.
“내가 그걸 너한테 보고할 의무가 있나?”
사내가 입을 다물었다. 그럴 의무는 당연히 없다.
거점은 철저히 중간상인을 서포트 하는 존재다. 중간상인을 다스리고 부리는 입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암묵적으로 중간상인들이 그런 식의 대우를 해주었다.
점주가 꼬장 한 번 부리기 시작하면 굉장히 귀찮으니까.
한데 가끔 이렇게 엇나가는 놈들이 있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일만 딱 하고 헤어지는 수밖에.
중간상인이 말했다.
“주문서는 미리 보냈는데, 확인했겠지?”
“확인했다.”
“포인트는?”
“그것도 확인했다. 생각보다…… 포인트가 많더군.”
“그렇지? 이걸 잘 써야 한다니까?”
중간상인이 또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사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왠지 기분 나쁜 놈이다.
그래도 내색할 필요는 없다. 중간상인은 타노로스에서 가장 중요한 층이다.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원들과 타노로스라는 조직을 이어주는 끈과 같은 존재다.
“참, 혹시 크랙톤 쪽에서 일어난 테러, 알고 있나?”
중간상인이 물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임무를 열람하고 조사하는 건 항상 하는 일이니까.”
“그럼 그쪽이 싹 토벌당한 것도 알겠네?”
사내의 표정이 굳었다.
그 정보는 아직 듣지 못했다.
당연하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바보도 아니고 그들을 잡은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렸을 리 없다.
타노로스가 대응책을 준비하지 않도록 연막을 열심히 쳤다.
그런데도 이 중간상인이 그걸 알아차린 것이다.
사내가 쉽게 입을 열지 않자, 중간상인이 말을 이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놈들을 담당하던 중간상인에 대해서 빨리 알아보는 게 좋을 거야.”
“그건 무슨 뜻이지?”
“당한거 같아서.”
“당했다고? 어떻게?”
“어떻게는 무슨. 조직원이 잡히고 심문에 굴복해서 중간상인에 대해 불면 중간상인도 잡히는 거지."
“그건 말이 안 된다.”
“근데 그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사실 그 중간상인이 나랑 친분이 좀 있거든."
그 말에 사내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었다.
“중간상인들끼리의 교류는 금지되어 있을 텐데?”
“아이, 진짜.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나만 그러는 거 같아? 다들 알음알음 잘 지내고 있다고. 그런 것도 없으면 숨 막혀서 어떻게 이 일을 해?”
“그래도 규정은 규정이다.”
“알았으니까 알아보라고. 이거, 심각한 일 아닌가?”
“가능성은 없지만, 그렇게까지 말하니 한 번 알아보지.”
“좋아. 그거면 됐어. 자, 그럼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고 빨리 끝내자고.”
“알았어. 얼른 끝내자. 알아봐야 할 것도 생겼으니.”
사내가 품에서 리모컨 하나를 꺼내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위에서 무언가가 훅 떨어졌다.
두 사람 입장에서는 갑자기 머리 위에서 난데없이 무언가가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킹을 통해 확인하는 반태수는 그것이 하늘 높은 곳, 그러니까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쿠웅!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치고는 충격이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바닥에 떨어지기 전, 적당한 높이에서부터 속도를 급격히 줄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닥에 닿기 전에는 충격파까지 내뿜어 속도를 더 죽였다.
그것은 커다란 박스였다.
사람 몇 명은 담을 수 있을 정도 크기의 은색 박스였다. 모양은 관 비슷했고.
“여전하네.”
중간상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몇 번이나 겪은 일이지만, 겪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이건 어쩔 수가 없었다.
사내가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각종 장비와 물건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맞는지 확인해. 바로 차에 실을 테니까.”
“잠시만.”
중간상인은 태블릿을 꺼내 목록을 띄우고 태블릿의 스캐너 기능을 이용해 빠르게 물건을 확인했다.
스캐너가 물건을 훑으면 목록에 자동으로 체크가 되는 형식이었다.
“정확하다.”
중간상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관이 살짝 떠서 승합차가 있는 곳까지 슥 미끄러졌다.
중간상인이 승합차의 문을 열자, 관 바닥이 올라가더니 안에 있던 물건을 그대로 들어 승합차 안으로 쭉 밀어 넣었다.
관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고, 뚜껑도 저절로 닫혔다.
사내가 관 어딘가를 꾹 누르니, 관이 착착 접히더니 이내 커다란 가방처럼 변했다.
사내는 그것을 들고 뒤로 물러났다.
“그럼 오늘 거래는 여기까지로군. 다음에는 좀 일찍 연락해주면 좋겠어. 나도 나름대로 중간에서 조율하고 관리하는 입장인지라.”
중간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아까 내가 말한 건 꼭 확인해 보고.”
“알았다. 돌아가면 바로 확인하지.”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중간상인도 승합차에 타고 그곳을 떠났다.
두 사람이 떠난 쓰레기 산에는 다시 적막이 내려앉았다.
***
반태수는 비행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다시 돌아서야 했다.
일단 중간상인부터 잡기로 했다.
보아하니 타노로스는 되도록 조직원 사이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듯했다.
거점이 털리더라도 그 거점과 연결된 중간상인이 싹 털리면 곤란하니 거점에 중간상인의 정보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을 좀 들이더라도 계속 지켜보면서 이렇게 중간상인을 잘라먹는 것이 나을까?
일단 지금은 중간상인을 잡는 게 우선이다.
다음 일은 좀 고민을 해봐야겠다.
반태수는 왜곡을 걸고 하늘로 훌쩍 날아올랐다.
그리고 중간상인에게 붙인 마킹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중간상인과 거점의 조직원이 만났던 쓰레기 산은 반태수의 조직에서 제법 먼 곳에 있었다.
한데 그 중간상인은 더 먼 곳으로 이동 중이었다.
반태수는 빠르게 중간상인을 따라잡았다.
아마 저 중간상인이 이곳 거점을 이용하더라도 실제 활동하는 영역은 여기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곳 스태플레톤과 다른 도시 사이를 이동할 방법이 따로 마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 방법은 보통 비행선일 테고.
타노로스의 비행선은 정말로 마법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기술력으로만 제작했다.
현재 데드릭 벨크리스가 한 대 확보 중이다.
지난번에 잡은 중간상인이 갖고 있던 비행선을 확보한 것이다.
그 비행선을 벨크리스 가문의 연구실에서 조각조각 해체해 분석 중이었다.
물론 성과가 나오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튼 반태수는 중간상인의 승합차를 따라잡아 지붕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승합차에는 그 어떤 특수한 장치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아니, 평범에도 못 미치는 승합차였다.
그러니 이렇게 앉아 있어도 들킬 염려는 없었다.
승합차가 향하는 곳은 제법 건물이 많은 지역이었다.
스태플레톤은 건물이 많은 지역이라고 해도 다른 도시의 도심지 같은 걸 기대하면 안 된다.
크랙톤의 변두리 정도를 생각하면 적당하다.
건물이 많다고 해서 그 건물들이 전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반쯤 무너진 건물이 중간에 섞여 있기도 하고, 폐건물에 가까운 것들도 가끔 눈에 띈다.
그런 폐건물이라고 해도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런 건물에 들어가 대충 치우고 사는 자들도 제법 많다.
최근 도시가 안정되면서 그런 건물을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긴 하다.
그래도 지금 이 승합차가 들어선 이 거리는 아직 그런 움직임이 닿지 않은 지역이었다.
아직 환한 대낮인데도 어딘가 음울하고 어두운 느낌이 거리에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거리에는 허리춤에 총을 찬 자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개중에는 소총을 든 자들도 있었다.
낡은 승합차가 달려가니 그들의 시선이 모였다.
하지만 잠깐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별로 관심 없다는 듯.
보아하니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이곳에 사는 주민이라는 걸 알고 신경을 끈 것이다.
승합차는 낡은 건물로 들어갔는데, 나름 쓸 만한 건물이었다.
심지어 건물 1층에는 식당과 술집까지 있었다.
중간상인은 이 거리와 상관없었지만, 이 승합차의 주인이 이 거리에서 사는 자였다.
그리고 그 사람 역시 타노로스의 말단 조직원이었고.
이런 식으로 중간상인 중에는 스태플레톤에 작은 거점을 하나씩 마련해 놓는 사람이 많았다.
편리하니까.
승합차가 들어간 곳은 건물 지하 주차장이었다.
지하라고 해봐야 한 층뿐이었고, 그 안에 차량이라고는 지금 들어간 이 승합차 외에는 없었다.
중간상인은 승합차를 벽에 바짝 세웠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태블릿을 조작했다.
그러자 벽이 천천히 열렸다.
열린 벽 안쪽으로 또 다른 공간이 있었고, 그 공간에 비행선이 놓여 있었다.
명백히 건물 바깥쪽에 만들어 둔 공간이었다. 그리고 천장을 개폐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거기까지 확인한 반태수는 슬슬 끝내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비행선까지 찾았으니 이제 중간상인을 잡고, 적당히 정보를 뽑아낸 다음, 데드릭 벨크리스에게 인계하면 된다.
반태수는 굳이 왜곡을 풀지 않았다.
CCTV도 없고, 영역화를 통해 이 안에 별다른 전자장비가 없다는 걸 확인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나.
반태수는 중간상인에게 다가갔다.
중간상인은 승합차에 실은 물건들을 비행선으로 옮기기 위해 비행선에 있는 커다란 보관함을 꺼내는 중이었다.
비행선은 그리 크지 않았다. 반태수의 비행선에 비하면 절반 정도였는데, 이건 얼마 전 잡은 중간상인의 비행선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양산형인 듯했다. 모양과 구조가 아주 똑같은 걸 보면.
반태수는 중간상인이 비행선에 짐을 다 실을 때까지 기다렸다.
아마 여기서 대기하다가 밤이 되고 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지면 바로 출발할 것이 분명하다.
중간상인은 이내 비행선에 짐을 다 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작은 리모컨을 하나 꺼냈다. 버튼이 딱 하나 달려 있는 리모컨이었는데, 중간상인은 꺼내자마자 바로 버튼을 꾹 눌렀다.
그 순간, 지하 주차장을 화염이 휩쓸고 지나갔다.
화르르르륵!
중간상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행선으로 달려갔다.
그의 뒤로 보라색 연기가 확 일어나더니 쫙 흩어졌다.
화염을 뚫고 반태수가 달려왔다. 여전히 왜곡을 쓴 상태인지라 그저 화염이 확 열렸다가 닫히는 것만 보였다.
중간상인은 아슬아슬하게 비행선에 탈 수 있었다.
반태수에게 나노머신들이 달라붙었지만, 반태수는 마력으로 그걸 차단하고 전부 잡아 버렸다.
비행선의 문이 닫히고 있었다.
그럼에도 반태수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저 차분히 마법을 썼다.
끼기긱!
닫히던 비행선 문이 덜컥 멈추더니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닫으려는 모터의 힘 때문에 문짝에서 괴로운 소리가 났다. 하지만 아무리 모터의 힘이 강해도 반태수의 마법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꽈앙!
결국 문짝이 떨어졌다.
중간상인이 놀란 눈으로 반태수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거기 누군가가 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비상 시스템을 가동한 것도 거기 누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기에 저지른 것이고.
그렇게 했는데도 반태수에게는 티끌만 한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어느새 반태수는 중간상인의 비행선에 올라탔다.
그리고 가볍게 점혈로 중간상인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막아 버렸다.
“이 비행선은 내가 가져야지.”
반태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비행선에서 중간상인을 끌어내렸다.
그리고 비행선을 아공간에 담아 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문짝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반태수는 중간상인의 목덜미를 쥐고 번쩍 들었다. 그리고 꼼꼼하게 왜곡을 걸었다.
“아는 게 많았으면 좋겠네.”
반태수의 중얼거림에 중간상인의 몸에서 식은땀이 비처럼 줄줄 흘렀다.
방금 벌어진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따라온 것이며, 자신이 타노로스의 중간상인이라는 건 어떻게 알아냈을까?
자신에 대한 정보는 스태플레톤 거점의 주인도 모르는데 말이다.
중간상인의 눈빛이 혼란으로 흔들렸다.
반태수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역시 내가 먼저 찾았네.”
케인 메르사이어보다 먼저 한 놈 잡아서 다행이다. 반태수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이제 데드릭 벨크리스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