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 타노로스 사냥 >
=========================
반태수는 자신의 비행선을 아리크로 불러서 그걸 타고 이동했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스태플레톤에 당장 들어갈 수 없으니 자신의 비행선을 타고 가서 근처에 머물기로 했고.
엄대협은 반태수의 비행선에 타고 함께 움직였다.
“저기, 그런데 내가 굳이 꼭 같이 가야 하나?”
스태플레톤은 위험한 도시다. 그 도시가 어떤 곳인지 아주 잘 아는 엄대협은 거기서 과연 버틸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눈먼 총알에 맞으면 한 방에 죽을 수도 있지 않나.
스태플레톤은 그런 걸 걱정해야 하는 도시였다.
“스태플레톤에 글락 그룹 지사 하나 세울 예정이야. 그러니까 가서 거기서부터 일을 시작해.”
“뭐? 스태플레톤에 회사를 세운다고? 그게 가능해?”
“건물은 이미 준비되어 있어. 조력자들도 많고. 그러니 안 될 건 없지.”
엄대협이 입을 쩍 벌린 채 반태수를 바라봤다.
하지만 반태수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스태플레톤의 소식은 중간중간 연락을 통해 들었다.
그곳에는 속성 종족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반태수가 그곳을 떠난 지 제법 됐는데, 그 사이에 속성 종족을 비롯한 반태수 휘하의 조직들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스태플레톤의 관광사업도 다시 활성화가 되었고.
큰 싸움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스태플레톤의 흑막들이 전부 사라졌고, 그 자리를 반태수의 사람들이 채웠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스태플레톤은 역사상 가장 안정적인 시기로 돌입했다.
이건 스태플레톤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스태플레톤에 지사를 세우면 거기서 뭘 할 수 있는데?”
“여러 가지?”
“예를 들면?”
“무기도 팔아먹을 수 있고, 마도구도 팔아먹을 수 있고, 포션도 팔아먹을 수 있고. 많잖아.”
“아니……."
“그리고 스태플레톤에는 전투 인력이 남아돌아. 너 그런 거 잘 하잖아. 필요한 사람 이어주는 거.”
그게 브로커 아닌가.
“지금 나보고 스태플레톤에서 브로커 일을 하라는 거야?”
“겸사 겸사지. 그 일도 하고 지사도 세우고, 지사가 완벽하게 자리 잡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엄대협의 입이 점점 더 커졌다. 자신이 그런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다 할 수 있어. 넌 이제 예전의 엄대협이 아니라니까? 뭐든 할 수 있어.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
“수, 수련을 엳심히……."
“그렇지. 잘 알고 있네. 여기 일도 수련이라고 생각해. 이 정도 일은 처리해야 조율과 감사를 병행할 수 있지 않겠어?”
그러니까 그 조율과 감사는 굳이 맡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 시켜주면 안 될까?
엄대협은 살짝 애처로움을 담아 반태수를 바라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비행선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동한다. 게다가 반태수의 비행선은 각종 개조 덕분에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
원래는 데드릭 벨크리스의 비행선이 훨씬 빨랐는데, 지금은 반태수의 비행선이 50%정도 더 빨라졌다.
아직 데드릭 벨크리스는 반태수의 비행선이 이 정도로 빨라졌는지 모른다.
아마 알게 된 순간, 자신의 비행선을 개조해 달라고 매달릴 것이다. 정력을 달라고 매달리는 것처럼.
그래서 최대한 말하지 않고 감추는 중이었다.
비행선의 승무원들과 조종사들도 데드릭 벨크리스나 살라자 샤마쉬가 관련된 질문을 콕 집어서 하지 않는 한, 입을 다물기로 약속했다.
데드릭 벨크리스와는 애초에 같은 방향으로 날아온 게 아니라 약간 선회해서 이동했기에 처음부터 서로의 비행선이 날아가는 걸 보기가 어려웠다.
아무튼 그렇게 이동하다보니 어느새 스태플레톤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할 일은 엄대협에게 이쪽에 있는 반태수의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글락 그룹 지사를 세우는 일을 지켜보는 것과, 중간상인들의 거점을 찾아내는 일, 두 가지였다.
반태수의 비행선은 스태플레톤 상공을 날아 속성 종족들이 사는 곳으로 향했다.
예전 스태플레톤에 왔을 때, 도시에서 첫 손에 꼽히는 조직들을 무너뜨리고 흡수해서 거대한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조직을 드룸윈드가 관리 중이었고.
드룸윈드는 프리든 가에서 스태플레톤에 파견 보낸 자였는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반태수의 사람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반태수는 제법 큼직큼직한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 근처에 있는 넓은 공터에 비행선을 착륙시켰다.
반태수의 비행선이 나타난 순간부터 건물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나왔다.
그리고 비행선이 착륙하자 다들 그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비행선에서 반태수와 엄대협이 내렸다.
반태수는 가장 앞에서 다가오는 두 사람을 확인했다.
한 명은 그룸윈드였고, 다른 한 명은 마법사, 케인 메르사이어였다.
케인 메르사이어가 그룸윈드보다 한 발 앞에 있었다. 그는 반태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원래 셰딤의 연구 마법사였지만, 반태수의 고문에 완벽하게 굴복해 반태수 아래로 들어간 자였다.
케인 메르사이어는 정중히 인사한 후, 반태수에게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셰딤을 처리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절 데려가 주시겠다고 하셨었는데……."
예전 셰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며, 셰딤이 무너지는 역사적인 현장을 공유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건 좀 미안하게 됐네. 일이 너무 급격히 흘러가는 바람에 따로 뭘 할 여유가 없었어.”
“이해합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습니다. 다음에 또 그런 기회가 있으면 절 꼭 데려가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노력해보지.”
“그거면 충분합니다. 절 노예처럼 부려주십시오.”
케인 마르사이어는 여전했다. 그는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뒤로 살짝 물러났다.
그 자리를 그룸윈드가 차지했다.
“오랜만입니다.”
그룸윈드 역시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별 일은 없죠? 그래 보이긴 한데……."
반태수는 이미 영역화를 크게 펼쳐 주변 정보를 확인했다.
“인원이 많이 늘었네요.”
“도시가 제법 안정되어서 인원 수급이 좀 편해졌습니다. 그래서 가문에서도 제법 도움을 많이 줄 수 있게 되었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리든 가문이 이 조직을 먹어치우려고 한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이곳의 조직이 반태수의 소유라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무기 조달이라거나 하는 부분은 여전히 어려움이 있습니다.”
반태수가 씨익 웃으며 뒤에 서 있는 엄대협을 앞으로 끌어왔다.
“앞으로 그런 부분은 이 친구가 담당할 겁니다.”
엄대협은 얼른 그룸윈드와 케인 메르사이어에게 인사했다.
“엄대협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룸윈드입니다.”
그룸윈드가 엄대협을 반가운 표정으로 맞아주었다.
반면 케인 메르사이어는 엄대협에게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반태수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케인 메르사이어의 물음에 반태수가 대답했다.
“찾을 게 있어서.”
“뭡니까? 제가 분명히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케인 메르사이어의 표정은 음흉함과 자신감이 뒤섞여 있었다.
“우리 조직의 정보력은 도시에서 최고입니다. 다른 모든 조직을 다 합해도 우리한테 안됩니다.”
그 자부심 가득한 말에 반태수가 그를 가만히 쳐다봤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지. 오늘은 좀 쉬고 처리할 일이 있으니까.”
“언제든 필요하면 말씀하십시오.”
케인 메르사이어는 그렇게 말하고는 여전히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가 스태플레톤에 머무는 동안 잠시도 떨어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는 사이, 그룸윈드와 엄대협의 대화가 대충 끝났다.
두 사람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가벼운 논의를 했다.
글락 그룹 지사를 세워야 하고, 그걸 안정적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그 뒤로 다양한 사업을 벌여야 하고.
아마 대부분의 직원을 조직 내에서 충당해야 할 것이다.
조직의 재정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이었기에 그룸윈드도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얘기는 다 끝났어?”
반태수의 물음에 엄대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만할 거 같아. 지사 규모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
그 질문에 반태수가 그룸윈드를 쳐다봤다.
그룸윈드에게 글락 그룹 지사로 쓸 빌딩을 지어 놓으라고 아주 오래전에 지시를 내려뒀다.
반태수가 지구로 돌아가기 전에 내린 지시였고, 얼마 전 완공했다는 연락까지 받았다.
“따라오십시오.”
그룸윈드가 걸음을 옮겼다.
차를 타고 가야 할 정도로 멀지는 않고 걸어서 20분쯤 가니 상당히 멋진 빌딩 한 채가 서 있었다.
그걸 본 엄대협이 눈을 크게 떴다.
지금까지 스태플레톤 안에서 본 모든 빌딩 중에서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리고 반짝반짝 빛이 났다.
“저것이 지사 빌딩이고, 말씀하셨던 공장들도 지금 짓는 중입니다. 다만 공장에 들어갈 장비는 아직 조달하지 못했습니다.”
반태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조만간 글락 그룹에서 장비랑 기술자 싣고 올 겁니다. 그 사람들이랑 잘 조율해서 설비를 갖추면 됩니다.”
엄대협이 놀란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사실 자신에게 글락 그룹의 일을 맡긴다고 할 때, 즉흥적으로 그냥 한 얘기라고 여겼다.
그래서 과연 그걸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또, 비행선을 타고 오면서 스태플레톤에 글락 그룹 지사를 세우고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도 비슷하게 여겼다.
자신이 일에 익숙해지게 하기 위해 시도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한데 아니었다.
벌써 오래전부터 준비는 다 끝나 있었다. 아마 자신을 끼워 넣는 것도 그때부터 계획해 뒀으리라.
반태수가 엄대협을 보며 말했다.
“자신 있지?”
엄대협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둬. 무조건 해낼 테니까.”
“좋아. 그럼 여긴 앞으로 너한테 다 맡긴다. 나, 할 일 많은 거 알지?”
“알지.”
데드릭 벨크리스와 며칠을 같이 있었는데 그걸 모르겠나. 반태수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
"그럼 이만돌아가죠.”
반태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옮겼다.
돌아가는 길은 분위기가 좀 무거웠다. 각자 생각할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
조직의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가니, 아까와 달라진 광경이 일행을 기다렸다.
무수히 많은 속성 종족들이 나와서 반태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빛 속성 종족의 대표가 앞으로 나서서 반태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마법사님을 뵙습니다.”
어조고 태도고 어찌나 정중한지 반태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홈칫 놀랄 정도였다.
특히 그룸윈드는 더더욱 놀랐다.
그동안 속성 종족들과 인간들 사이를 조율한 건 전부 그룸윈드였다.
한데 그가 겪은 속성 종족은 결코 인간에게 저렇게 정중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들 인간에 비해 뛰어난 특성을 갖고 있으니 그냥 원래 그런가보다 하고 이해했다.
한데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게다가 반태수는 그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좀 혼란스러웠다.
사실 예전에 속성 종족과 반태수를 처음 만났을 때도 좀 그런 느낌을 받긴 했다.
한데 지금 보는 모습은 그때와 많이 달랐다. 그때보다 훨씬 정중해졌다.
반태수는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전 이분들과 얘기를 좀 더 하다가 알아서 쉴 테니 다들 일 보시죠.”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흩어졌다.
방금 한 반태수의 말에는 왠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힘이 깃들어 있었다.
반태수는 일행이 전부 흩어지고 나자, 다시 빛 속성 종족의 대표를 쳐다봤다.
“그동안 잘 지냈나?”
“예. 염려해주신 덕분에 아주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인원이 좀 늘어난 것 같은데?”
“소식을 여기저기 전파했습니다. 그래서 흩어져 있던 동족들이 제법 많이 찾아와 합류했습니다.”
안 그래도 아까 반태수는 영역화를 통해 속성 종족의 인원이 늘어났다는 것을 파악했다.
원래 여기에 함께 온 속성 종족은 물, 불, 빛, 어용의 4개 종족뿐이었다.
한데 다른 종류의 속성 종족이 섞여 있었다.
빛 속성 종족 대표가 뒤를 돌아보고 손짓을 하자, 무리에 섞여 있던 자들 중 몇몇이 앞으로 나왔다.
새로 합류한 다른 속성 종족들이었다.
금속과 암석 속성을 가진 속성 종족이었다.
육체에 금속과 돌이 아주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척 보기에도 강력한 물리력을 가졌을 것 같았다.
그들 역시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마법사님을 뵙습니다."
빛 속성 종족 대표가 설명을 해주었다.
“금속과 암석 속성 종족이 새로 합류했습니다. 각각 300명 정도뿐이지만 조만간 추가로 합류할 예정입니다. 이들은 각 속성 종족의 대표입니다.”
보아하니 작정하고 속성 종족들을 모으는 모양이다.
“나무와 바람, 전격 속성을 가진 종족들도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알려진 모든 속성 종족이 여기 스태플레톤에 모이는 셈이다.
그때, 머릿속에 속성 종족에 대한 지식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알려지지 않은 속성 종족이 더 있었다. 그리고 각 속성 종족의 특성이 지식으로 머릿속에 새겨졌다.
그들의 약점과 장점, 그리고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까지.
지식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속성 종족의 핵심을 꿰뚫었다.
“이쪽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빛 속성 종족 대표의 말에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반태수를 그들이 머무는 건물로 데려갔다.
건물의 최상층으로 올라갔는데, 그곳은 기둥 외에 아무것도 없이 통으로 쓰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외 중심에 예전에 봤던 그 의자가 있었다.
각 속성을 표현한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그 의자 말이다.
그때는 네 개 속성의 마력이 깃들어 있었는데, 이젠 거기에 두 개가 더 추가되었다.
반태수는 그들의 안내에 따라 의자에 앉았다.
따라 들어온 속성 종족들이 더없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반태수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반태수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낯설지가 않아.’
아무튼 이 기묘한 의식을 마지막으로 스태플레톤에 온 첫 날의 일정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