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 지구에서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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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에는 총 다섯 개의 건물이 있었다.
반태수는 가까운 건물로 들어갔다.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곳곳에 보였다.
건물 전체에 다양한 크기의 연구실이 배치되어 있었고, 각 연구실마다 연구원들이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연구원들이 하는 연구는 전부 마도구에 관한 것들이었다.
마도구를 이용해 다양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수치를 기록했다.
이들의 목표는 저 마도구를 제작하는 것이리라.
보아하니 초기 단계였다. 연구소를 설립한 지 얼마 안 됐고, 지금은 막대한 투자를 통해 기초를 다지는 과정인 듯했다.
연구원 대여섯 명이 마도구 하나를 두고 테스트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팀을 짜서 마도구를 연구했다.
마도구의 수가 상당히 많았다.
팀 대영을 보면 마도구 하나 구하기가 정말 어려워 보이던데, 여긴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저렇게나 많은 마도구를 보유하고 있는 걸 보니.
'뭐, 오늘부로 보유한 마도구의 수가 0이 되겠지만.’
이 건물에도 마력 EMP를 하나 터트릴 계획이었다.
아마 건물 안에 있던 모든 마도구가 마력을 잃을 것이다. 또한 술식이 망가져 복구도 쉽지 않을 테고.
반태수는 건물 내부를 샅샅이 살펴본 다음 중심에서 EMP를 터트렸다.
두웅!
은은한 파동이 퍼지며 건물의 모든 전등이 꺼졌다.
소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나중에 올 폭풍은 지금의 소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마도구가 전부 망가졌다는 걸 알게 되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반태수는 씨익 웃으며 건물에서 나갔다.
다음 건물은 바로 옆에 나란히 있었는데, 여기도 마도구를 테스트하는 연구실로 가득했다.
이 건물에 있는 연구실의 특징은, 테스트 과정에서 사람을 쓴다는 점이었다.
즉, 일종의 생체실험을 하는 것이다.
마도구로 일으킬 수 있는 각종 마법을 직접 인체에 적용시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들의 목표는 마도구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게 나중에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보는 듯했다.
이곳에서 테스트 당하는 사람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짐승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테스트를 통해 고통 받고 있었다.
그럼 테스트를 못하게 하면 된다.
반태수는 망설이지 않고 EMP를 터트렸다.
두웅!
모든 마도구가 망가졌고, 전기도 나가 버렸다.
반태수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비명과 괴성을 들으며 유유히 건물에서 나갔다.
그런 식으로 나머지 건물들도 확인하고 EMP를 터트려 마도구를 전부 지워버렸다.
마지막 남은 건물은 이곳에서 가장 작은 건물이었다.
고작 3층짜리였고, 넓이도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반태수는 건물 앞에 서자마자 이 건물에 있는 사람이 이 연구소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건물 모양부터 달랐다.
그리고 건물 내부 곳곳에 포진한 자들의 실력도 뛰어났다. 물론 그래봐야 지구의 능력자들 수준을 벗어날 수 없지만.
지구의 능력자는 마력이 너무 적다. 아마 저들이 이면세계로 넘어가면 상당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사실 지구의 능력자들도 마력의 양을 키울 수 있다.
마력을 키우는 수련을 하면 된다. 그리고 마력을 자주 쓰면 자연스럽게 마력이 늘어나고.
하지만 그걸 가로막는 벽이 있으니, 그게 바로 이면세계였다.
이면세계를 왕복하다보면 마력이 늘어났다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마력의 양이 고정되어 버린다.
육체가 원래 가진 마력을 제외한 나머지 마력을 쏟아내 버리는 것이다. 일종의 습관과도 비슷했다.
그걸 극복하는 방법도 물론 있다.
반태수는 과연 지구에 그걸 극복한 능력자가 있을지 궁금해 하며 건물로 들어갔다.
영역화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건물에 있는 마도구의 양이 가장 많았다.
더구나 여기서는 마도구로 연구를 하는 게 아니라, 단지 보관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모든 건물에 지급한 마도구도 원래는 이 건물에 있었으리라.
뭔가 작정하고 세운 연구소라는 느낌이 강했다.
지금 몸이 안 보이는 상태이기에 거리낌 없이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마도구는 전부 3층에 있었다.
1층과 2층에는 무장한 능력자들과 서류 업무를 보는 일반인들밖에 없었다.
연구소에 관련된 업무는 전부 여기에서 처리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지하에 거대한 서버가 있었다.
이따가 EMP가 터지면 서버도 싹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쓰지 못할 정도로 망가질 테고.
반태수는 곧장 3층까지 올라갔다.
3층에는 방 두 개가 이어져 있었다. 첫 번째 방을 지나가야 두 번째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첫 번째 방에 비서들이 있었고, 두 번째 방에는 한 사람만 있었다.
그 사람이 아마 이 연구소의 총 책임자인 연구소장이리라.
반태수는 문을 열고 첫 번째 방으로 슥 들어갔다.
문이 열리는 모습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당연히 CCTV에도 찍히지 않았다. 이미 마법으로 막아뒀다.
EMP가 터지면 CCTV로 찍은 영상도 모두 날아가겠지만, 혹시 몰라서 철저히 막았다.
비서들이 있는 방을 지나 연구소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연구소장은 30살쯤 된 젊은 사내였다. 능력자도 아니었다.
그의 표정과 자세에는 오만함이 가득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이 지배자라는 것을 온몸으로 주장하고 있었다.
마도구는 사내의 자리 뒤쪽에 있는 거대한 금고 안에 있었다.
사내는 마침 전화를 받고 있었다.
"정보팀, 역량이 그것밖에 안 됩니까? 작전을 제대로 시작했는지도 모르고, 왜 이따위 상황이 됐는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 죄송합니다. 지금 정보팀을 풀가동해서 알아보고 있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답을 찾아내겠습니다.
"그 카페 사장인지 하는 놈의 행적은 확인했습니까?”
- 그것도 확인 중입니다. 애초에 카페에 거의 출근하지 않는지라…….
"제대로 합시다. 회장님이 굉장히 기대하고 계시는 거, 아시죠?”
연구소장은 그 뒤로도 몇 마디 잔소리를 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
반태수는 일단 연구소장에게 마킹부터 붙였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을 확률이 가장 높은 놈이다.
연구소 구경은 이제 끝났다.
나머지는 마킹한 자들을 감시하면서 차츰 알아내면 된다.
반태수는 바로 EMP를 터트렸다.
두웅!
모든 전자장비가 작동을 멈췄다. 전등도 나갔고, 연구소장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도 먹통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금고 안에 있던 모든 마도구들이 망가졌다.
"무슨 일이야! 이거 어떻게 된 건지 빨리 알아봐!”
연구소장이 비서들이 있는 곳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
반태수는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비서들 사이로 유유히 지나갔다.
건물 밖으로 나가면서 아까 마킹해둔 전투부대를 확인했다.
그들은 여전히 이동 중이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자, 그럼 이쪽은 대충 정리가 됐으니 저쪽을 쫓아가 볼까?
***
연구소가 있는 곳은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넘어가는 곳 근처였다.
전투부대를 태운 승합차의 목적지는 아무래도 서울인 듯했다.
반태수가 연구소에서 머문 시간이 생각보다 짧았기에 승합차는 여전히 이동 중이었다.
반태수는 빠르게 날아서 승합차를 쫓아갔다.
위치도 알겠다, 날아서 가니 도로 사정도 상관없겠다, 반태수는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승합차를 따라잡았다.
이들은 또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다.
반태수는 승합차 지붕에 앉았다. 그리고 아까 EMP를 심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꼼꼼하게 하나씩 EMP를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가고 있는데, 전투부대의 대장에게 전화가 왔다.
- 카페 위자드 근처에 가서 대기해.
"네.”
대장은 그렇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여전히 승합차 안의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통화 내용을 들은 반태수는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빠르네.’
실패했다는 걸 파악하자마자 바로 다음 수를 실행한 것이다.
반태수는 이들을 여기서 처리하기로 했다.
자신을 치러 온다는 걸 아는데 굳이 내버려둘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여기서 처리하면 반태수를 의심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들은 그저 교통사고를 당한 것뿐이니까.
물론 단순한 사고로 능력자들이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태수는 이들이 능력자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반태수의 코어에서 마력의 실이 쭉쭉 뽑혀 나왔다.
그리고 정확히 사람 수만큼의 마법진이 완성됐다.
동시에 마법이 펼쳐졌고, 그 결과 승합차를 타고 있던 모든 능력자들의 마력이 일시적으로 싹 증발했다.
반태수가 펼친 마법은, 상극이 되는 성질의 마력을 침투시켜 몸의 마력을 단숨에 날려 버리는 것이었다.
마력이 날아갔다고 해서 영원히 그 상태가 유지되는 건 아니다. 마력은 결국 다시 채워지기 마련이었다. 딱 있던 만큼만.
하지만 이렇게 순간적으로 모든 마력이 사라지면 몸에 무리가 온다. 아니, 무리를 넘어서 타격이 온다.
세 대의 승합차가 비틀거리다가 가드레일을 들이박았다.
가드레일이 부서지면서 세 대의 승합차는 도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도로 옆은 강이었는데, 세 대의 승합차는 강가까지 데굴데굴 굴러갔다.
마력이 모두 사라져 몸이 한껏 약해진 상태에서 저런 큰 충격을 받았으니 멀쩡할 리가 없었다.
반태수는 그래도 영역화를 통해 그들의 상태를 파악했다.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다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럼 내가 친절하게 경찰에 연락을 해줘야지.”
반태수는 승합차로 다가갔다.
다들 정신을 잃고 있었기에 딱히 조심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왜곡을 걸어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반태수는 대장의 스마트폰을 집었다. 그리고 그걸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 큰 사고가 났으니 얼른 출동 좀 해달라고.
그리고 사고 난 차량들이 좀 이상하니 얼른 확인해 달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금 총기와 수류탄을 보유 중이다.
아마 경찰이 이걸 발견하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뭐, 힘 있는 놈들이니 어떻게든 막겠지만.’
반태수는 좀 떨어진 곳에서 사고 현장을 지켜봤다.
혹시 여기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 마법으로 다가오는 자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도록 조치했다.
잠시 후, 경찰이 도착했다. 그리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당당하게 총기와 수류탄을 소지한 자들이 승합차마다 한가득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기자들까지 왔다.
기자들은 신이 나서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경찰들이 말렸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반태수는 거기까지 확인하고 자리를 떴다.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카페에 있는 드립커피머신과 쿠키 제조기도 손을 봐야 한다.
살짝 허공으로 날아오른 반태수는 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
꽝!
커다란 주먹이 테이블을 세차게 내리쳤다.
깔끔한 인상의 중년인이 테이블에 주먹을 꽉 붙인 채 부들부들 떨었다.
"지금 그 보고…… 전부 사실인가?”
비서실장이 딱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사실입니다.”
사실 비서실장도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보고를 올릴 때마다 심장에 무리가 온다.
지금까지 저 사람을 모시면서 심장에 무리가 올 정도의 보고를 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다 합해도 오늘의 보고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 쪽에는 손을 썼나?”
"예. 경찰 쪽은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기자 쪽도 발 빠르게 움직여서 기사가 올라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다만......."
"다만, 뭐?”
"현장에 있던 일반 시민들이 영상과 사진을 찍었는데, 그걸 전부 막기가 어렵습니다.”
중년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걸 본 비서실장이 얼른 첨언했다.
"하지만 워낙 거리가 멀어서 명확하게 찍힌 사진은 없습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군.”
문제의 소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명확하진 않아도 총으로 보이는 것이 사진에 찍히긴 했으니까.
그래도 그 정도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애들 상태는?”
"회생이 어렵다는 결론입니다.”
"그놈들 키우는 데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화도 나고 허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건 괜찮다. 두 번째 보고에 비하면.
"연구소,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비서실장은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이번에 연구소에서 일어난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마도구가 싹 망가진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건 돈이 있다고 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그 멍청한 자식! 하필이면!”
연구소장 자리를 받아내기 위해 얼마나 애썼던가.
이제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만 하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리게 되어 있었다.
한데 이런 사고를 내다니.
"일단 마도구부터 구해야지.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기존 마도구의 수만큼 맞춰야 돼. 알아들었나?”
"예. 최대한 맞춰보겠습니다.”
비서실장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 많은 마도구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참, 그 카페인지 뭔지는 어떻게 됐나?”
"작전을 시행하지도 못하고 사고가 나는 바람에 아직 방치 상태입니다.”
"의심스러운 도구가 있다고 했지?”
"예. 커피머신하고 쿠키 제조기가 의심스럽습니다.”
"일단 그것부터 가져와.”
"그럼 카페 주인에 대한 작전은 당분간 중지하겠습니다.”
"정보팀 붙여. 최대한 알아내. 그놈이 문을 확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지?”
"예. 정보팀에서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정보팀에 똑바로 전해. 제대로 하라고. 이번 일, 정보팀에서 충분히 막을 수 있었어야지!”
"예. 전달하겠습니다.”
비서실장은 피곤해져서 점점 충혈 되는 눈을 비비고 싶었다.
"이만 나가 봐. 진행사항 수시로 보고하고.”
비서실장은 고개를 숙인 다음 물러갔다.
중년인은 홀로 남자 나직이 중얼거렸다.
"촉이 와. 이거…… 아주 큰 건이 분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