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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301화 (297/351)

301화.  < 타노로스의 중간상인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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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릭 벨크리스는 인상을 쓰며 몸을 날렸다.

가짜 중간상인이 데드릭 벨크리스의 손아귀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

“아오! 저 쥐새끼가 진짜!”

정말 재빨랐다. 게다가 항상 아슬아슬하게 잡힐 듯 말 듯해서 계속 도전하게 된다.

한 마디로 저 가짜 중간상인은 데드릭 벨크리스를 상대로 시간을 끄는 중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 보면 결국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줄 거라는 믿음 말이다.

살짝 떨어진 곳, 그러니까 바닥에 쌓인 물건들 앞에 서 있던 엄대협은 데드릭 벨크리스와 가짜 중간상인의 술래잡기를 보면서 연신 몸을 움찔거렸다.

왠지 자신이 끼어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건, 데드릭 벨크리스 때문이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데드릭 벨크리스가 화라도 내면 그걸 자신이 어떻게 감당하겠나.

‘아우, 심장이 쓰리네. 우리 마법사님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끝나도 벌써 끝났을 거 같은데. 혹시 그쪽에 병력이 좀 많나?’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상대는 정체를 제대로 알 수 없는 타노로스니까.

그놈들이 어떤 전력을 감추고 있는지 모르니, 어쩌면 반태수도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반태수가 당할 거라는 생각은 요만큼도 하지 않았다.

엄대협이 보는 반태수는 그냥 단순한 마법사가 아니다.

그는 뭐든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남자의 자존심을 찾아다 준 사람인데, 못 할 게 뭐가 있겠나.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데드릭 벨크리스를 보고 있는데, 데드릭 벨크리스가 엄대협을 힐끗 쳐다봤다.

마치 넌 거기 가만히 서서 뭐 하고 있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니, 그럼 시작부터 말을 제대로 하든가.’

엄대협은 투덜거리면서 기회를 살폈다.

그러는 엄대협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그리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동안 자신은 능력자였지만, 사실상 능력자라고 하기 어려웠다.

마력에 특별한 속성이 깃든 것도 아니고, 마력에 대한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마력량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한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마력회로가 엄대협의 인생을 바꿔버렸다.

단순히 육체적 능력이 올라가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건 중요치 않다.

공격 능력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동안 틈 날 때마다 공격 능력을 어떻게 쓸지 열심히 연구하고 연습했다.

이제 그걸 써먹을 차례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또 한 차례 헛손질을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단순한 헛손질이 아니었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손에 낀 장갑이 쭉 날아가며 가짜 중간상인의 턱을 노렸다.

가짜 중간상인은 평소와 똑같이 피하려다가 기겁해서 몸을 뒤틀었다.

날아온 장갑 공격을 피했지만, 필연적으로 빈틈이 드러났다.

꽈앙!

가짜 중간상인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리고 입에서 피를 뿜었다.

“쿠웨엑!”

엄대협이 손을 쭉 뻗은 채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방금 마력회로의 공격 능력 중 하나인 원거리 충격파를 써먹었고, 보기 좋게 성공했다.

중간 과정 없이 미리 입력한 좌표에 충격파를 터트리는 공격이었는데, 저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 상태라면 피하기가 정말 까다로운 공격이었다.

“크하하하! 잘했다! 조루 너도 할 땐 하는구나! 크하하하!”

데드릭 벨크리스가 크게 웃으며 가짜 중간상인의 뒤를 잡았다.

그리고 목을 꽉 틀어쥐었다.

꽈드득!

데드릭 벨크리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목을 쥔 손을 타고 올라오는 감각이 심상치 않았다.

“이놈 무슨 목 근육이 이래?”

데드릭 벨크리스는 더욱 힘을 강하게 주었다. 하지만 가짜 중간상인은 목을 휙 흔들어 데드릭 벨크리스의 손을 뿌리쳤다.

그렇게 빠져나가나 싶었는데, 이번엔 머리 위에서 충격파가 터졌다.

꽈앙!

“쿠웨엑!”

가짜 중간상인은 머리가 흔들렸는지 눈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역시나 또 피를 토했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기특한 표정으로 주먹질을 했다.

콰콰콰콰콰콰!

가짜 중간상인의 몸 곳곳에 인정사정 봐주지 않은 데드릭 벨크리스의 주먹이 소나기처럼 작렬했다.

“어라? 이놈 봐라?”

데드릭 벨크리스는 주먹질을 하면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주먹질이 제대로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걸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보아하니 저 전투복이 충격을 모조리 흡수하거나 흘려버리고 있었다.

전투복이 온몸을 꽉 조이고 있었는데, 가짜 중간상인은 몸의 근육을 슬쩍슬쩍 비트는 방식으로 데드릭 벨크리스의 주먹질을 흘리고 견뎌냈다.

정말 까다로운 놈이었다.

그냥 맞고만 있는 것도 아니다. 순간 그놈의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오더니 레이저가 쭉 뻗어 나왔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초인적인 감각으로 고개를 틀지 않았다면 아마 미간에 맞았을 것이다.

물론 레이저 한 방 맞는다고 뚫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제법 다칠 가능성이 높았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전투복의 출력을 더욱 높였다. 그리고 전투복 일부를 분해해 외부로 쏟아냈다.

날카로운 칼날처럼 변한 전투복의 잔해가 빠르게 가짜 중간상인의 몸에 틀어 박혔다.

하지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이거 뭐 이리 까다로워?’

데드릭 벨크리스가 속으로 중얼거린 순간, 가짜 중간상인의 몸에 박힌 칼날들 사이에서 전격이 휘몰아쳤다.

꽈르르르르릉!

타격이 분명히 들어가고 있긴 한데, 그리 강하진 않다.

그걸 알아차린 데드릭 벨크리스가 외쳤다.

“뭐 하고 있어! 너도 얼른 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엄대협이 미리 준비한 공격을 쏟아냈다.

엄대협은 추가로 전격을 쏟아냈다. 그리고 거기에 보조 능력을 가미했다.

꽈르르르릉!

강력한 벼락 한 줄기가 엄대협에게서 쏘아져 나가 가짜 중간상인의 가슴에 작렬했다.

한데 이 벼락은 데드릭 벨크리스의 전격 공격과는 좀 달랐다.

외부에서 막히지 않고 안으로 꿰뚫고 들어간 것이다. 물론 아주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데드릭 벨크리스의 전격이 그걸 타고 따라 들어갔으니까.

빠지지지지지직!

“커어억!”

가짜 중간상인이 눈을 까뒤집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하지만 그의 몸 곳곳에서 연기가 푸쉭 푸쉭 하면서 뿜어져 나오더니 망가진 체내 세포들이 치유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낀 데드릭 벨크리스가 다시 달려들었다.

그는 아공간에서 길쭉한 꼬챙이를 꺼내 그의 옆구리에 푹 찔러 넣었다.

아까 이렇게 했으면 아마 안 통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저놈도 반쯤 정신을 잃은 상태였기에 전투복을 뚫고 꼬챙이를 몸속 깊숙하게 찔러 넣을 수 있었다.

빠지지지지지직!

꼬챙이 끝에서 강력한 전격이 사방으로 튀었다.

가짜 중간상인은 이내 온몸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며 정신을 잃었다.

"후아. 진짜 빡세네. 이런 놈이 있을 줄이야."

데드릭 벨크리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놈의 육체적 능력은 자신보다 더 위에 있었다.

아마 엄대협이 적절히 서포트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잡아내지 못했으리라.

“이제 어쩔까요?”

“어쩌긴 꼼짝 못하게 온몸을 꽁꽁 묶어야지. 관절에 이것들 좀 꽂아놓고. 뭐,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데드릭 벨크리스가 작은 꼬챙이들을 우수수 쏟아냈다.

엄대협은 그걸 쥐고 열심히 가짜 중간상인의 관절에 꼬챙이를 꽂았다.

그냥 단순한 꼬챙이가 아니었다. 안에 마력을 품고 있는 마도구였다.

아니, 어쩌면 유물인지도 모른다.

엄대협은 모든 꼬챙이를 꼼꼼하게 꽂은 다음 줄을 꺼내 온몸을 칭칭 감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아까 싸우던 모습을 떠올리고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도 모자란다.

엄대협은 더욱 세게 가짜 중간상인의 몸을 묶었다.

***

반태수가 허공에 중간상인을 둥둥 띄운 채 데드릭 벨크리스와 엄대협이 있는 곳에 나타났다.

이미 저 위에서 데드릭 벨크리스와 엄대협이 가짜 중간상인과 싸우는 모습을 대충 지켜봤다.

“영감님, 애 좀 쓰시던데, 괜찮아요?”

“괜찮아. 하, 이놈 진짜 질기긴 하더라. 넌 어땠냐? 그놈도 만만치 않았지?”

“별로 어렵지는 않았는데 이놈들 점혈이 안 먹히네요.”

“뭐? 그럼 큰일 아니야?”

데드릭 벨크리스는 점혈이 안 통한다는 말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점혈을 이용해서 얼마나 꿀을 빨았던가.

사실 사람을 심문한다는 건 굉장히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그리고 고문에 버티는 놈들도 제법 많다.

가진 바 능력을 이용해 고통을 차단하는 자들도 있고, 그런 장비를 몸에 심는 경우도 있다.

특히 타노로스 놈들은 더욱 심하다. 이놈들은 나노머신을 이용하기 때문에 몸에 들어간 나노머신을 제거하지 않으면 고통을 주기 어렵다.

한데 나노머신을 무슨 수로 제거하겠나.

그래서 데드릭 벨크리스는 점혈에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점혈이 실패한 적이 없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는데 그게 안 된다니.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단 말인가.

“통하게 만들어야죠. 이놈들 육체 개조도 하고 몸에 기계도 심고, 아주 장난이 아니에요. 몸에 나노머신도 제법 들어가 있는 것 같고.”

“통하게 만들 수는 있는 거지?”

데드릭 벨크리스의 간절한 표정에 반태수는 피식 웃었다.

이 영감이 이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본다. 그만큼 이번 기회가 타노로스를 제대로 공략하기 위한 중요한 지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해봐야죠. 장담은 못하겠네요. 위에서 좀 시도해 봤는데 만만치 않아요.”

“꼭 성공해야 한다. 이놈들한테 들어야 할 말이 정말 많아. 이놈들을 통해서 타노로스의 수뇌부를 찾아내야 한단 말이다.”

“보챈다고 안 되는 일이 되지는 않아요. 아무튼 기다려 봐요. 일단 영감님은 여기나 정리하시죠. 저 물건들도 다 챙기고 트레일러도 챙기고.”

“알았다. 그런 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얼른 점혈이나 걸어.”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두 중간상인을 띄워서 어딘가로 데려갔다.

그 뒷모습을 데드릭 벨크리스와 엄대협이 유심히 바라봤다.

“야, 잘 되겠지?”

“우리 반 마법사님이 각 잡고 나섰는데, 잘 되지 않겠습니까?”

엄대협의 말에는 깊은 믿음이 담겨 있었다.

뭘 하든 반태수가 실패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래야 할 텐데.”

데드릭 벨크리스는 멀어져가는 반태수의 모습을 한참동안 더 지켜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엄대협에게 말했다.

“뭐 하고 있어? 얼른 저거 정리해야지.”

“제가요?”

“그럼 내가 해?”

“아닙니다. 제가 해야지요.”

엄대협은 얼른 움직여서 바닥에 쌓인 물건들을 다시 트레일러에 실었다.

이 트레일러도 보통 물건은 아닌 듯했다.

"운전수가 사람이 아니네요?”

운전석 문을 연 엄대협은 깜짝 놀랐다. 아까 운전수가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확인하니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사람 모양의 인형이었다.

모양은 굉장히 투박했다. 문을 열기 전에는 그럴듯했는데, 막상 문을 열고 확인하니 사람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한데 그 인형이 갑자기 고개를 슥 돌려 엄대협을 바라봤다.

엄대협은 순간 등줄기가 싸해지는 느낌이 들어 얼른 옆으로 몸을 날렸다.

지잉!

인형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와 방금 엄대협이 있던 곳을 훑고 지나갔다.

부르릉!

인형이 트레일러에 시동을 걸었다.

트레일러에 짐을 다시 실었는데, 이놈이 이대로 도망치면 큰일이다.

“어르신! 이놈이 도망칩니다!”

엄대협은 그렇게 외치며 운전석으로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또 레이저가 나왔다.

지잉!

엄대협은 또 몸을 움츠려 레이저를 피했다.

그리고 그 순간 트레일러가 출발했다.

부우우웅!

엄대협은 당황하며 트레일러를 쫓아가려고 했다. 어느새 운전석 문은 다시 닫혔고, 트레일러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그때, 하늘에서 한 줄기 섬광이 내리꽂혔다.

꽈앙!

그 섬광은 트레일러의 앞부분에 떨어졌는데, 그 한 방에 트레일러의 앞부분, 그러니까 운전석이 있는 부분이 깔끔하게 지워졌다.

엄대협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대체 저건 또 뭐란 말인가.

고개를 돌려 데드릭 벨크리스를 바라봤다. 혹시 그가 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데드릭 벨크리스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박살 난 트레일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대협은 시선을 돌려 반태수가 간 쪽을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춘 반태수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좀 잘 하자.”

엄대협은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일어난 일을 통해 새삼스럽게 반태수가 얼마나 대단한 마법사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엄대협은 박살 난 트레일러를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저건 이제 어떻게 들고 가지?”

운전석이 아예 사라져 버렸으니 짐칸만 남은 셈이다. 저걸 가져가려면 아무래도 견인차를 불러야 할 듯하다. 힘세고 큰 견인차로.

엄대협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데드릭 벨크리스가 다가와서 입맛을 다셨다.

“아깝네, 아까 그 운전석에 있던 인형도 얻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르신께서 앞을 막았으면 굳이 저렇게 안 해도 되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나보고 저 트레일러의 앞을 막았어야 한다는 뜻이냐? 그러는 넌 왜 안 했는데? 할 기회를 한 번 만들어 줘?”

엄대협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럴 리가요. 그냥 아쉬워서 그랬습니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엄대협의 어깨를 꽉 감쌌다.

“그나저나 그날은 어땠어? 애인이랑 재미 좀 봤냐?”

엄대협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였다.

그러자 어깨를 감싼 데드릭 벨크리스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솔직히 말해. 너 뭔가 받았지? 하, 나 이 새끼 진짜. 혼자 정력 먹으니까 좋냐?”

엄대협이 울상을 지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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