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 타노로스의 중간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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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데드릭 벨크리스가 나서는 모습을 보며 근처 빌딩 옥상으로 올라갔다.
지금 이곳은 변두리 깊숙한 곳이었다.
애초에 그쪽에서 지정한 약속장소가 이곳이었다.
크랙톤은 여러모로 타노로스에서 이런 식의 거래를 하기 적당한 도시였다.
물론 스태플레톤보다는 못하지만, 그쪽은 워낙 인프라가 바닥인지라 여러모로 불편했다.
그래서 굳이 활동을 크랙톤에서 하지 않는 타노로스의 요원들도 중간상인과의 거래는 크랙톤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역시 전부 이번에 사로잡은 여섯 명의 테러범들로부터 얻은 정보였다.
이번에 잡은 테러범 중에 웨이퍼라는 이름을 가진 근육남은 생각보다 아는 것이 많았다.
그리고 이번 테러에 참여한 타노로스의 요원은 반태수가 사로잡은 여섯 명이 전부였다.
나머지 여섯 명, 그러니까 테러 후, 혹은 테러와 동시에 자폭한 자들은 타노로스가 아니라, 타노로스에 이용당한 능력자들이었다.
애초에 자폭하도록 설정되어 있던 자들이었다.
아무튼 웨이퍼로부터 중간상인에 대한 정보를 제법 많이 얻었다.
그리고 그걸 토대로 몇 가지 가정을 유추해낼 수 있었고.
그 가정 중 하나가 거래를 하러 올 때 나타나는 중간상인이 진짜가 아니라 가짜일 가능성이었다.
진짜는 멀리서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혹시라도 일어날지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말이다.
이번에 반태수가 맡은 일이 바로 그 혹시 있을지 모를 진짜 중간상인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저 가짜 중간상인을 그냥 놔줄 수 없으니 데드릭 벨크리스가 출동했고.
반태수는 영역화를 통해 이 근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중간상인으로 의심되는 자들을 추려내고 각각의 사람들에게 영역화를 좀 더 집중해 정보 흡수를 강화했다.
반태수는 그 모든 과정을 거쳐 진짜 중간상인을 찾아냈다.
거래 현장이 잘 보이는 건물 최상층에 자리 잡고 앉아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면서 구경 중이었다.
그의 앞에는 태블릿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태블릿 화면에는 거래 현장 근처를 찍은 듯한 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영상을 보아하니 초소형 드론을 이용해 촬영한 모양이다.
반태수는 왜곡으로 모습을 감춘 후, 그쪽으로 날아갔다.
방심하지 않았다. 타노로스 놈들은 어떤 기상천외한 기술을 들고 나올지 모르니 방심하다간 다 잡은 놈들을 또 놓칠 수도 있다.
그런 경험은 예전 발드릭을 놓쳤던 것 한 번으로 족하다.
아마 발드릭이 이번에 잡은 웨이퍼보다 아는 게 더 많았을 것 같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저 중간상인은 발드릭보다 아는 것이 더 많을 테니, 아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반태수는 아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도착하기 전에 거래를 진행 중인 중간상인이 갑자기 나타나는 광경을 봤다.
그건 분명히 투명화 기술이었다.
아마 반태수가 쓰는 왜곡과 비슷한 기술인 것 같았다.
‘그래도 왜곡에 비할 바는 아니지.’
저건 빛을 굴절, 혹은 반사해 모습을 감추고, 필요에 따라서는 뒤쪽 영상을 촬영해 앞으로 재생하는 방식으로 눈을 속이는 장비였다.
당연히 기척을 감추지는 못한다. 보아하니 소리는 어느 정도 흡수해서 잡은 것 같지만.
아무튼 그 정도 장비라 하더라도 보통은 쉽게 구하기 어렵다. 5대 가문에서도 아직 제대로 그런 식의 장비를 구현하지 못한 걸 보면 말이다.
그러니 위험한 다른 장비를 장착했을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둬야 한다.
더구나 지금 반태수가 보러 가는 놈은 앞에 내세운 가짜도 아니고 뒤에 숨은 진짜 중간상인 아닌가.
훨씬 더 좋은 장비로 무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느새 반태수는 중간상인이 있는 건물의 최고층에 도착했다.
굳이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밖에서 창문을 통해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 데드릭 벨크리스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놈도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놈이 인상을 찡그리더니 신경질적으로 태블릿을 툭툭 조작했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여기서 왜 나와? 저 놈들 테러 하나 성공했다고 방심했군.”
중간상인은 태블릿을 몇 차례 더 조작하더니 엄대협의 얼굴을 확대해서 화면에 띄웠다.
“본인확인에 뜬 정보는 웨이퍼 맞는데? 그럼 웨이퍼가 배신한 건가? 이해가 안 가는데?”
중간상인은 인상을 쓴 채 투덜거렸다.
“하여간 사람이 너무 많아도 문제야. 일일이 이런 식으로밖에 확인이 안 되니 바로바로 대응을 할 수가 없잖아.”
그렇게 투덜거리며 세부정보로 들어간 중간상인의 표정이 확 굳었다.
전혀 다른 사진이 나왔기 때문이다.
“뭐지? 생체정보를 조작했다고? 그게 가능해?”
애초에 생체정보를 통해서 본인을 확인하기에 잘못될 일이 없었다.
한데 그 생체정보를 저런 식으로 조작할 수 있다면 인증 절차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그리고 그건 자신이 죽기 전에 이 상황을 보고해야 가능하다.
중간상인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 데이터를 전송했다.
“뭐야, 전송불가지역이라고? 말이 돼?”
타노로스는 일반 회선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독자적인 통신망을 갖추고 5대 가문이 깔아놓은 통신망에 그걸 얹어서 이용한다.
그렇기에 타노로스의 통신망이 먹통이 되려면 5대 가문의 통신망과 타노로스의 통신망이 들 다 먹통이 되어야 한다.
양측 통신망이 워낙 단단하기에 두 가지 모두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도 하고.
한데 통신이 안 된다면 과연 이유가 무엇이겠나.
대충 눈치를 챈 중간상인이 허탈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봤다.
멀리 데드릭 벨크리스가 난리 치는 광경이 보였다.
“여기도 이미 알아차린 건가? 내가 너무 방심했군.”
반태수는 여전히 창밖에 있었다. 거기서 차근차근 영역화를 통해 중간상인을 조사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장비를 몸에 잔뜩 지니고 있었다.
입은 옷도 장비의 일종이었고, 신발과 손에 낀 장갑까지도 전부 전자장치를 내장한 장비였다.
재질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중간상인은 마력을 가진 능력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일반인도 아니었다.
그는 몸 내부에 기계장치를 내장한 일종의 강화인간이었다.
기계장치만으로 강해진 것이 아니라 육체 자체를 특수한 약물이나 수술 등의 방법으로 개조한 사람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30대 중반쯤 되는 남자인데, 속은 사람이라고 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인간에서 너무 멀리 갔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슬슬 나오는 게 어때? 피차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잖아? 안 그래도 바쁜데 얼른얼른 끝내자고.”
중간상인은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철컥! 철컥!
손목 어림에서 기계로 이루어진 것들이 나와 주먹을 꽉 감쌌다.
그렇게 중간상인의 양 주먹이 기계로 이루어진 손이 되었다.
철컥! 철컥! 철컥!
그런 과정이 온몸에 걸쳐서 일어났다.
모든 육체가 기계로 변한 건 아니었지만, 절반 이상이 기계로 덮여 이제 겉모습도 인간에서 멀어졌다.
중간상인은 태블릿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누굴 더 데리고 왔고, 몇 명이나 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쉽게 잡혀줄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발버둥을 칠 것이다.
그러다가 통신 방해지역을 벗어나면 바로 데이터를 전송할 계획이었다.
중간상인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고자 했다.
한데 그럴 수가 없었다.
와장창!
창이 깨지면서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분명히 창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데 창을 깨고 들어온 것이다.
모습을 감추는 도구를 가졌거나, 아니면 아주 먼 곳에서 날아온 것이리라.
중간상인은 들어온 사람의 모습을 보고 그가 누군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반?”
이번에 신임 글락 그룹 회장이 된 반태수가 나타날 거라고는 중간상인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설마 너 혼자 온 건가?”
“그럼 너 같은 조무래기 하나 잡는데 한 명이면 되지, 몇 명이나 와서 인력낭비 할 줄 알았어?”
중간상인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에는 살짝 분노가 어렸다.
“날 상대하는 일이 인력낭비라고? 고작 너 하나로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중간상인은 무릎을 살짝 굽혔다. 그리고 반태수를 향해 비스듬하게 몸을 기울이더니 그대로 바닥을 박찼다.
꽈드득!
바닥이 부서지고 금이 쩍쩍 갔다.
그리고 중간상인이 반태수 바로 앞에 나타났다.
목표는 반태수를 사로잡는 것. 중간상인은 모든 역량을 다해 한 번 시도하고, 실패하면 그대로 도주할 계획이었다.
지금 돌진한 것 자체가 도주를 위한 포석이기도 했다.
반태수 앞에 나타난 중간상인의 가슴이 덜컥 열리더니 그 안에서 금속으로 짠 그물이 튀어나가며 쫙 펼쳐졌다.
웬만해서는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다.
이 정도 속도에서 그물을 던져 펼치는 것도 타노로스의 기술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물이 반태수를 덮쳤다.
“어?”
중간상인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물이 반태수를 그냥 관통해서 바닥에 떨어졌다.
반태수는 여전히 멀쩡하게 서 있는데 말이다.
중간상인의 눈동자에 빛이 어렸다. 그의 망막에 문자열이 나타난 것이다.
중간상인은 망막에 비치는 정보를 통해 눈앞에 있는 반태수는 실체가 없는 홀로그램 영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뭐가 저리 선명해?’
망막 스크린이 구분해주지 않으면 결코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았다.
눈앞에 서 있는 반태수에 대한 정보가 망막에 수시로 갱신되었다.
실체가 생겼다가 사라졌다가 아주 정신이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홀로그램 영상에 수시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모양이다.
한데 그걸 왜 자신은 볼 수가 없단 말인가".
심지어 망막 스크린에도 그에 관한 정보는 없었다.
망막 스크린을 이용하기 위해 주변에 나노머신을 잔뜩 깔아두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정보를 수집 중이겠는가.
한데 그 무수한 나노머신들조차 반태수의 움직임을 아예 파악하지 못했다.
이게 과연 말이 되는 일일까?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반태수의 모습이 계속 실체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중간상인은 눈을 번득였다.
원래는 아까 실패했으니 바로 도망쳐야 하지만,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못 도망쳤다.
그러니 처음 계획을 다시 실행한다. 이번에야말로 반태수를 잡을 것이다.
중간상인은 이를 악물고 바닥을 힘껏 밀었다.
꽈드득!
바닥이 뭉개졌고, 중간상인은 그 대가로 빠르게 쏘아져나갔다.
그의 몸에서 작은 알갱이들이 쏟아져 나갔다. 그 알갱이들은 텅 빈 사무실 바닥에 쫙 퍼져나갔다.
빠지지지직!
알갱이들이 강력한 전류를 내뿜었다.
주변이 순식간에 전격의 그물로 뒤덮였다.
그 순간, 중간상인이 반태수 앞에 도달했고, 다시 그물을 발사했다.
마지막 남은 그물이었다.
그물이 쫙 펼쳐지고 반태수를 덮쳤다.
“됐어!”
중간상인이 주먹을 꽉 움켜쥐고 기쁜 목소리로 그렇게 외쳤다.
드디어 반태수를 그물로 잡은 것이다.
그물을 뒤집어 쓴 반태수는 가만히 선 채 중간상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중간상인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반태수의 코앞에 서서 씨익 웃었다.
“방심하셨군. 아무리 기발한 능력을 가졌으면 뭐하나, 방심하다 이렇게 잡히면 끝인데."
그물 속 반태수가 무표정하게 중간상인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뭐가 웃기지?”
“네가 한 말. 방심하다 이렇게 잡혔다는 말이 웃겨서.”
중간상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왜 웃긴단 말인가.
그런 중간상인을 보며 반태수가 담담히 말했다.
“과연 지금은 누가 방심하고 있지?”
“뭐?”
그 순간, 중간상인의 몸 곳곳에 마력의 띠가 감겼다.
마력을 어떻게 해서 만들었는지, 도저히 풀 수도 끊을 수도 없었다.
머리에 하나, 목에 하나, 그리고 어깨를 감싸며 하나, 상박을 감싸며 하나, 팔꿈치에 하나, 하박에 하나, 손에 하나.
상체에만 일곱 개의 마력 띠가 감겼다.
하체는 허벅지와 종아리, 그리고 발목까지 세 군데를 마력 띠가 감았고.
중간상인은 정말로 당황했다.
저 그물이 그냥 그물인 것 같지만, 사실 상당한 기술력이 들어간 그물이었다.
저 그물에 갇히면 마력을 쓸 수 없다. 또한 몸의 체력을 끊임없이 빼앗고 근육을 약화시킨다.
혈액순환도 방해하고, 수시로 자극을 줘서 신경세포가 원활히 일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가 자신에게 마력을 쓴 것이다. 이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방심 얘기를 한 거였구나!’
반태수 혼자 있다고 단정해 버렸다. 당연히 혼자 왔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
중간상인은 마력의 띠에 갇힌 채, 그물 속 반태수를 노려봤다.
그 순간, 반태수를 덮고 있던 그물이 갑자기 아래로 뚝 떨어졌다.
반태수를 통과해 버린 것이다.
중간상인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리고 홀로 서 있던 반태수의 홀로그램도 사라졌다.
중간상인이 어버버 하고 있을 때, 그의 뒤쪽에서 반태수가 천천히 걸어 앞으로 나왔다.
“귀찮은 장비가 많은 거 같아서 살짝 속임수 좀 써봤어.”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중간상인의 몸에 걸친 장비들을 하나하나 해체했다.
해체할 수 있는 것보다 불가능한 것이 훨씬 많았지만, 그래도 뺄 수 있는 건 빼야 하지 않겠나.
“가만있자…… 영감님은 잘 하고 있나?”
반태수는 창문을 통해 데드릭 벨크리스와 엄대협을 잠깐 확인했다.
별다른 일은 없어 보였다.
시간을 좀 끄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저 왜소한 남자를 놓칠 것 같지는 않았다.
주변에 드론들을 쫙 깔았기 때문에 설사 도망치더라도 금방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남는 시간에 점혈 좀 해볼까?”
반태수가 점혈을 쓸 때 손가락으로 찌르는 건 그냥 퍼포먼스였다.
실제로 점혈을 할 때 굳이 손가락으로 찌르는 과정을 넣을 필요는 없었다.
즉, 아까 마력의 띠로 중간상인을 가두기 전에 이미 점혈을 시도해 봤다는 뜻이다.
한데 잘 되지 않았다.
육체를 개조해서 그런 건지 내부에 전자와 기계 부품이 들어가서 그런 건지는 모른다.
아무튼 점혈이 먹히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했다.
앞으로 이런 놈들을 더 자주 상대하게 될 텐데, 점혈이라는 큰 무기를 봉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이놈을 통해서 점혈을 또 한 차례 개선해야 한다.
반태수는 기대감에 찬 미소를 지으며 중간상인에게 다가갔다.
중간상인은 반태수의 미소를 보며 왠지 모를 오한이 들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