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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299화 (295/351)

299화.  < 이면세계는 좀 다르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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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번쩍 눈을 떴다.

낯익은 천장이 보인다.

‘아, 어제 집에 와서 잤지. 영감님은…….'

데드릭 벨크리스는 세 명의 여자와 함께 사라졌었다. 아마 오늘 느지막하게 돌아오겠지.

어제의 데드릭 벨크리스를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고개가 좌우로 움직였다.

하여간 대단한 영감이다.

‘그러면서 정력은 무슨.’

거기서 정력이 더 강해질 필요가 있을까?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반태수가 보기에 데드릭 벨크리스는 지금이 딱 좋다.

뭐, 아무리 그래도 정력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여유롭게 커피를 한 잔 내리고 밖에 보이는 유리벽 앞에 놓인 티테이블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셨다.

이 저택이 그리 크진 않지만, 그래도 몇 군데 포인트가 있었다.

지금 이 자리도 그렇다.

아침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기 딱 좋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인기척이 났다.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엄대협이다.

엄대협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거실에 들어섰다.

“나도…… 나도 커피 한 잔만……."

다 죽어가는 얼굴이었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걸 보니 어젯밤에 제법 힘들었던 모양이다. 잠도 제대로 못 잔 듯하고.

“밤 샌 거냐?”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두 시간은 잤어.”

반태수는 엄대협의 몰골을 보고는 혀를 쯧쯧 찼다.

저걸 보고 있으니 괜히 뒤로 미뤄봐야 못 볼 꼴만 계속 보게 될 듯하다.

“이리로 와서 앉아. 한 번 해보자.”

그 말에 반쯤 감겼던 엄대협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저, 정말?”

“싫으면 관두고.”

엄대협이 펄쩍 뛰었다.

“싫긴! 너무 놀랍고 고마워서 그러지!”

그렇게 말하고는 얼른 반태수 앞자리에 앉았다.

“그 자세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원래는 며칠 더 끌면서 좀 놀려주려고 했는데, 저러고 있는 꼴을 보니 얼른 해치워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힘 빠진 엄대협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반태수는 엄대협의 몸 내부에 마력회로를 새기기 시작했다.

일단 머릿속으로 밑그림을 그린 다음, 그걸 점검해서 이상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본다.

그 과정에서 마력회로를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이미 마력회로의 설계도 자체는 정해뒀기에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력을 키우는 마력회로라고 했지만, 그걸 중심으로 하지는 않았다. 훨씬 다양한 능력을 함께 담았다.

육체적인 능력을 향상시키고, 마력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으며, 강력한 방어 능력과 몇 가지 유용한 공격 능력, 그리고 다양하게 응용할수 있는 보조능력을 추가했다.

또한 두뇌 회전에도 개입해서 기억력이나 계산 능력을 좀 더 향상시켰다.

거기에 정력 향상을 끼얹었다.

마력회로의 설계는 완벽했다. 이제 그걸 새기기만 하면 된다.

반태수는 차근차근 엄대협의 몸에 마력회로를 새겼다.

‘어라? 이것 봐라?’

그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마력회로가 잘 새겨지지 않았다. 기존 마력이 계속 방해를 하는 것이다.

그동안은 이런 일을 겪을 필요가 없었다.

반태수가 자신의 몸에 마력회로를 새겼는데, 이면세계의 마력은 반태수의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주위를 휘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몸 내부에는 코어의 마력밖에 없었다.

한데 엄대협은 다르다. 몸에 균일하게 이면세계의 마력이 분포하고 있었다.

‘하긴, 기공술사가 여기 오면 마력회로가 망가진다고 했지?’

이면세계로 오면 막대한 마력이 몸으로 달려든다.

그러니 마력회로가 망가질 법도 하다. 이렇게나 서로 안 맞으니 말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지.’

주요 인물들에게 마력회로를 다 새겨주고 싶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성공해야 한다.

두 번째 시도를 했는데, 그것 역시 실패했다.

반태수는 엄대협의 몸에 있는 마력을 슬쩍 건드렸다.

엄대협이 가진 마력에는 엄대협의 의념이 닿아 있기에 반태수가 마음대로 움직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쉽지 않다 뿐, 불가능하지는 않다. 게다가 엄대협의 협조를 얻으면 더더욱 쉬워진다.

“몸에서 힘을 쭉 빼. 그리고 네 모든 걸 나한테 맡긴다고 생각해. 그래야 작업이 편해지니까.”

“오케이.”

엄대협은 몸에서 힘을 쭉 뺐다. 그리고 반태수가 시키는 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반태수에게 맡긴다고 끊임없이 생각했다.

반태수는 수월하게 움직이는 엄대협의 마력을 정교하게 조절해 그걸로 마력회로를 새기기 시작했다.

아까 실패했던 첫 시도는 코어의 마력을 이용했었다.

그건 엄대협의 마력이 방해해서 실패.

두 번째는 반태수가 가진 이면세계의 마력을 이용했다.

정교함이 좀 떨어지지만, 최대한 신경을 쓰면 마력회로를 새기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고 판단했다.

한데 그것도 실패했다.

코어의 마력을 썼을 때처럼 격렬하게 방해하지는 않는데, 끊임없이 마력이 섞여드는 바람에 마력회로의 구조가 자꾸 흔들리고 변형되었다.

그래서 마지막 방법으로 떠올린 것이 아예 엄대협의 마력을 이용하는 거였다.

두 번째 시도보다 속도도 훨씬 느렸고, 정교함도 약간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마력회로의 구조를 좀 더 단순하게 바꾸면 훨씬 수월하겠지만, 반태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정도도 넘어서지 못해서야 앞으로 무수히 부딪히게 될 벽은 어떻게 넘겠는:나.

지루한 시간이 이어졌다.

반태수는 집중을 유지한 채 신중하게 마력회로를 새겼고, 엄대협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반태수에게 맡긴다는 생각을 이어가려 애썼다.

잠시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딴 생각을 해도 반태수의 나직한 질책이 튀어 나왔으니까.

“집중해 . 여기까지 와서 실패하고 싶어?”

“그럴 리가. 집중, 집중……!”

엄대협은 엳심히 집중해서 자신의 의지를 계속 반태수에게 내던졌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시간이 결국 끝났다.

“성공.”

반태수는 숨을 길게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대고 살짝 늘어졌다.

진이 좀 빠졌다. 생각보다 마력회로를 새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아니, 타인의 마력을 자신의 의념 하에 두고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굉장한 수련이 되었다.

반태수는 마력에 대한 감각과 컨트롤 능력이 대폭 상승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감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예전 첫 번째 벽을 넘었을 때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었는데.

“끝났어?”

“그래.”

“잘 된 거야?”

“내가 성공이라고 했잖아. 직접 확인해 봐.”

엄대협은 지그시 눈을 감고 자신의 몸에 생긴 변화를 느끼려 애썼다.

아주 선명하게 마력회로가 감지되었다.

“헉! 이거 뭐야?”

마력회로라는 이름이 확 와 닿았다. 이걸 마력회로라고 안 부르면 뭐라고 부르겠나.

“일단 활성화에 성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활성화?”

“성공하면 그냥 딱 알아. 해봐.”

엄대협은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해보려고 애썼다.

“어? 된다!”

마력회로가 전체적으로 활성화 되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한 번 감각을 세우고 나니 활성화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능력별로 일부분만 활성화 하는 것도 성공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는 항상 켜놔.”

반태수는 육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과 마력에 관한 것, 두뇌 회전에 관한 부분, 그리고 정력에 관한 부분을 상세히 알려줬다.

엄대협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필요한 부분만 활성화하는 데 성공했다.

“어때?”

반태수의 물음에 엄대협은 한참동안이나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봤다.

세상에 이런 것이 있을 줄 몰랐다.

온몸에서 힘이 넘쳤다. 그리고 주변에 흐르는 마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재능 넘치는 능력자들이 보는 세상은 이런 걸까?

“와…… 진짜 미쳤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훈련 많이 해. 공격이랑 방어, 그리고 보조 능력은 훈련을 통해 익숙해지지 않으면 있으나 마나니까."

엄대협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이런 걸 받았는데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되지. 진짜 열심히 할 거야.”

“그리고 정력은 시간이 좀 필요할 거야. 너도 느끼겠지만.”

확실히 무언가 달라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변화가 좀 더 지속되면 정말 좋아질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얼마나 걸릴까?”

“그건 스스로 생각해봐. 그런 걸 감각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알았어. 그렇게 할게.”

엄대협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리고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5일."

반태수가 엄대협을 쳐다봤다.

엄대협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을 이었다.

“5일이면 그럭저럭 쓸 만해질 것 같아.”

대신 열심히 마력을 돌려야한다.

“나, 진짜 열심히 할 거야.”

“그래, 그래. 수고해.”

반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에 들어가서 잠깐 누워 있어야겠다.

‘서두르면 큰일 나겠어.’

생각보다 피곤했다. 그동안 이런 피로를 느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벽을 여러 차례 넘으면서 체력이 모자란 적이 많지 않았는데, 마력회로를 새기는 일은 아무래도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물론 지구에서라면 얼마든지 했겠지만, 이면세계는 지구와 좀 달랐다.

“난 좀 잔다.”

반태수가 침실로 향하자, 엄대협이 얼른 들어가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래. 쉬어. 푹 쉬어. 나중에 나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반태수는 피식 웃은 다음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엄대협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이제부터 수련의 시간이다.

***

“저놈 왜 저렇게 들떠 있어?”

데드릭 벨크리스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엄대협이 마력회로를 심은 지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도 엄대협의 몸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 체력과 근력, 민첩이 상당히 높아졌다.

그리고 정력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정력과 체력, 이 두 가지가 엄대협이 가장 좋아하는 변화였다.

5일이라고 짐작했지만, 이대로라면 사흘 정도만 지나도 로잘린을 충분히 기쁘게 해줄 수 있을 듯했다.

그러니 신이 나지 않고 배기겠나.

“이거 좀 의심스러운데? 갑자기 힘이 넘치는 것도 그렇고.”

데드릭 벨크리스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반태수를 바라봤다.

“넌 혹시 뭐 아는 거 없어? 저놈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감이 생긴 거죠. 그나저나 주문은 했습니까?”

“허, 말 돌리는 것 좀 봐라? 뭐, 지금은 일이 급하니까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일 다 끝난 다음에는 어림도 없어.”

반태수는 그저 웃는 걸로 상황을 대충 뭉갰다.

“주문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아주 팍팍 했지. 이놈들이 물건을 사려면 포인트라는 게 필요한데, 제법 많이 쌓였더라고. 그래서 궁금한 건 싹 주문했어. 포인트 바닥날 때까지."

거기까지 얘기한 데드릭 벨크리스가 낄낄 웃었다.

“네가 그걸 봤어야 하는데. 내가 포인트를 쓸 때마다 그놈들이 어찌나 아까워하던지, 눈물까지 글썽였다니까? 뭐, 아지트를 사야 한다나?”

“아지트도 판답니까?”

“제법 쓸 만하다던데? 땅 파는 기능부터 탈출 기능까지 있어서 하나 장만하면 웬만해서는 잡힐 일 없다고 하더라고.”

반태수는 문득 예전에 싸웠던 발드릭이 떠올랐다.

그때 발드릭도 지하로 도망쳤었다.

아마 그게 아지트를 이용한 탈출인 모양이다.

“아무튼 신기해 보이는 거 많더라.”

“혼자 다 가지실 건 아니죠?”

“날 뭐로 보고. 안 그래도 적당히 나눌 생각이었어. 물건 오면 번갈아 하나씩 골라서 나누면 되겠네. 잘 확인하고 연구한 다음, 나중에 바꿔도 되고.”

어쨌든 타노로스가 조직원들에게 파는 상품을 잔뜩 샀으니, 그걸 분석하고 연구하다보면 타노로스와 싸울 때 유용한 정보나 도구가 많이 나올 것이다.

“그나저나 저놈 저렇게 들떠서 제대로 일 하겠어?”

“믿고 기다리시죠. 저래 보여도 아마 잘 할 겁니다.”

두 사람은 태블릿을 통해 엄대협의 모습을 확인 중이었다.

엄대협은 미리 약속된 장소에서 타노로스의 중간상인을 기다렸다.

예전에 데드릭 벨크리스도 그놈을 한 번 잡으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정말 조심성이 많은 놈이라 최대한 이쪽을 드러내선 안 된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저 멀리에서 커다란 트레일러가 한 대 다가왔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주문한 물건이 너무 많아서 트레일러를 동원한 모양이었다.

트레일러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엄대협 앞에 정확히 섰다.

엄대협은 트레일러 운전석 쪽을 기웃거렸다.

운전수는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 하자는 거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들은 것이 없기에 섣불리 행동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대로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그렇게 30분이 지났을 때, 엄대협 뒤쪽 공간에 작은 스파크들이 파직거리며 튀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왜소한 사내가 나타났다.

“웨이퍼 씨?”

엄대협은 화들짝 놀라 뒤로 돌았다.

태블릿을 든 왜소한 사내가 엄대협을 똑바로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는 태블릿을 내밀었다.

“본인확인 부탁드립니다.”

엄대협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태블릿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지잉!

태블릿 화면에 마치 스캔하듯 빛이 지나갔다. 손바닥의 정보를 읽은 것이다.

“본인 확인 완료되었습니다. 첫 번째 거래인데 아주 화끈하게 지르셨네요.”

“그동안 포인트만 계속 모았는데, 이제 한 번쯤 쓸 때가 됐다고 생각했지.”

엄대협은 그렇게 말하고도 반말을 해도 되나 걱정을 했다. 이건 전부 그 웨이퍼라는 자가 알려준 내용이었다.

“물건부터 보여드리죠. 한데 그걸 다 가져가실 수 있겠습니까? 보아하니 아지트도 없는 것 같은데.”

사내는 보통 아지트부터 구하는데, 참으로 특이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트레일러 뒤로 가더니 몇 가지 전자조작을 통해 문을 열었다.

덜컹.

열린 문 안으로 물건이 잔뜩 쌓여 있는 광경이 보였다.

“이제 내려드리겠습니다.”

엄대협은 좀 초조해졌다. 슬슬 반태수와 데드릭 벨크리스가 덮칠 때가 되었는데 왜 안 나타난단 말인가.

우우웅!

트레일러 내부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그러더니 바닥이 움직여 안에 쌓인 물건을 전부 밖으로 토해냈다.

그리고 그 순간, 데드릭 벨크리스가 왜소한 사내 뒤에 내려섰다.

쿠웅!

데드릭 벨크리스의 입가에 사나운 미소가 맺혔다.

“드디어 잡았다. 이 쥐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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