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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297화 (293/351)

297화.  < 잡았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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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릭 벨크리스는 반태수 뒤쪽에 엉거주춤 서 있는 엄대협을 힐끗 쳐다봤다.

“저놈은 웬일로 여기 왔냐?”

데드릭 벨크리스가 엄대협의 얼굴을 알고 있긴 하지만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엄대협은 데드릭 벨크리스가 나타날 만하면 귀신 같이 그걸 알아차리고 자리를 피했다.

데드릭 벨크리스에게만 그런 게 아니라 살라자 샤마쉬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에게도 그랬다.

심지어 안드렐라 윌렉스도 피했다.

엄대협이 편안하게 만나는 한계선은 시정부의 공무원들 정도였다.

시장이나 부시장까지도 잘 만나는데, 그 이상에 위치한 사람들은 엄대협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한데 이렇게 자발적으로 반태수를 따라와 데드릭 벨크리스의 시야 안에 존재한다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니 데드릭 벨크리스가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뭐, 그냥 따라오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당사자이기도 하고.”

"당사자?”

“모르셨습니까? 저놈들이 계속 끌고 다녔잖습니까.”

“뭐? 그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

데드릭 벨크리스의 시선이 대번에 테러범들 쪽으로 돌아갔다.

근육남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물어보지도 않아놓고 내 탓을 하려는 건가?”

데드릭 벨크리스가 성큼성큼 근육남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꽉 쥐었다.

“크으윽!”

어깨가 부서질 듯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내가 안 물었어도 알아서 얘기했어야 할 내용 같은데? 안 그런가?”

근육남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냈다.

"지독한 놈들.”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정보는 내뱉는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감춘다.

교묘하게 말을 돌려 감추기도 하고, 여의치 않으면 입을 다물고 고문을 견딘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근육남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반태수를 바라봤다.

“내가 가진 점혈 마도구도 써 봤는데, 안 통해. 이놈들 진짜 지독하다. 버티는 힘이 장난 아니야.”

그래도 얻은 정보는 대부분 점혈 마도구를 썼을 때였다.

“천천히 하죠. 뭐가 급합니까. 일단 커피 한 잔 하면서 좀 쉬세요.”

“그럴까?”

커피라는 말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환하게 웃었다.

아직 따로 커피와 쿠키를 주지 않았기에 온전히 반태수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권하면 얼마나 기껍겠는가.

“어이! 가서 테이블이랑 의자 좀 가져와!”

데드릭 벨크리스의 외침에 그의 수하들이 후다닥 움직여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왔다.

“여기서 마시려고요?”

여긴 테러범을 가둬둔 곳이다. 여기서 고문도 했고, 심문도 했다.

“뭐 어때? 어차피 한 잔 마시고 또 시작해야 하는데.”

반태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편한 대로 하시죠. 나야 상관없으니. 너도 괜찮지?”

반태수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엄대협을 보며 묻자, 엄대협은 조건반사적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내 의견 따위는 묻지 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난 무조건 따릅니다!”

그 모습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놈 왜 저래? 몇 번 본 적은 없지만, 저런 놈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그런 게 있습니다.”

“뭐? 그런 거?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반태수는 커피를 준비해서 얼른 테이블 위에 놓았다.

커피향이 코끝을 자극하자, 데드릭 벨크리스가 하던 말을 멈추고 커피에 집중했다.

“그래. 나머지는 일단 커피부터 마시고 하자.”

세 사람이 테이블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테러범들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니, 이 와중에 갑자기 저게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게다가 표정은 또 왜 저러나.

표정만으로도 커피를 얼마나 맛있게 마시는지 알 수 있었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커피를 마시면서도 가끔 테러범들을 쳐다봤다.

“생각보다 저놈들 아는 게 별로 없는 거 같아.”

“그런가요?”

“내가 보기에는 그래. 실력은 좀 있는 것 같고, 압수한 장비들도 좋은 것 같은데, 아는 건 별로 없어. 그냥 아는 척하는 것 같단 말이지.”

“아는 척해서 얻을 게 없을 거 같은데, 왜 그러는 걸까요?”

“그러게. 나도 그게 의문이야. 어쨌든 확인은 해봐야지. 할 수 있지?”

“해봐야죠. 그런데 점혈 마도구로도 별 효과를 못 봤다는 게 좀 마음에 걸리긴 하네요.”

지금까지 점혈을 이용한 고문은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지구에서는 고통을 차단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통했다.

점혈을 만들 때, 그 모든 상황을 고려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태수는 커피를 다 마신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테러범들에게 다가갔다.

저놈들을 잡을 때 점혈을 썼다. 그러니 점혈이 안 통하는 건 아닐 것이다.

‘안 통하면…… 통하게 만들면 되지.’

그럼 점혈이 한 단계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반태수는 테러범들에게 말했다.

“아는 걸 전부 말하고 편해지는 게 낫지 않겠어?”

“이미 말할만한 건 전부 말했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섯 테러범 중에서 가장 급이 낮은 걸로 보이는 놈에게 다가가 쇄골 아래쪽을 쿡 찔렀다.

“흡!"

갑자기 눈을 흡뜨더니 온몸이 뻣뻣해져서 바닥에 딱 누워버렸다.

그 상태로 경련하면서 숨을 멈췄다.

차라리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으면 그런가보다 했을 것이다. 한데 저러고 있으니 오히려 괴기스러워서 더 이상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테러범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시발, 저거 뭐야.”

“무섭네.”

“진짜 고통스러운 거 같은데?”

“그러게. 좀 이상하긴 하네.”

그들은 몸을 부르르 떨며 반태수의 눈치를 살폈다. 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저 지경이 된단 말인가.

반태수는 나름대로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보통은 점혈을 쓰면 그걸로 끝이다.

한데 이놈은 그게 아니었다. 체내에서 고통에 저항하기 위한 작용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점혈 역시 계속 변화시켜야 했다.

반태수는 점혈을 조절하면서 원인 분석도 동시에 진행했다.

원인을 완벽하게 파악해야 다음 점혈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다보니 점혈을 좀 오랫동안 쓰게 되었다.

보통 분근착골을 쓸 때는 1분이나 3분 정도 쓰고 좀 길면 5분 정도 한다.

한데 이번에는 7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반태수는 얼른 점혈을 중지했다.

“크허허허헉!”

그자는 막혔던 숨을 몰아쉬었다. 물론 7분 동안 숨을 멈춘 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조금씩 억지로 호흡을 했다.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숨을 몰아쉰 다음에 그대로 대성통곡을 했다.

“으허허허헝!”

반태수는 자신이 너무 신경을 많이 써서 평소 점혈보다 더 깊숙하게 고통이 파고든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나머지 테러범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대성통곡 하는 사내를 바라봤다.

아무리 고통스러웠어도 그렇지, 저렇게 울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테러범들에게 반태수가 말했다.

“이해가 안 가지? 왜 저렇게 우는지. 겪어보면 다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자 다음은……."

반태수가 한 명 한 명, 신중하게 살펴봤다.

방금 저 사람의 점혈을 조절하면서 몸을 살피는 과정에서 발견한 게 있었다.

그걸 확실히 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했는데, 점혈 시간이 과도하게 길어질까봐 일단 멈췄다.

그러니 한 명 정도만 더 확인하면 점혈을 개량할 수 있을 듯했다.

이제 이 정도 마법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개량하고 변형할 수 있었다.

‘마력회로를 연구한 것이 마법에 도움이 되고 있어.’

마법을 대하는 시야가 확 넓어진 느낌이었다.

“너로 하면 되겠네.”

이번에 선택한 사람은 엄대협을 농락하던 놈이었다.

그놈을 손가락으로 딱 가리키자, 엄대협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그걸로 봐서는 데리고 다니면서 그놈이 엄대협을 제법 구박한 모양이었다.

반태수는 가리킨 손가락을 그대로 찔러 그놈에게 점혈을 걸었다.

처음 점혈에 당했던 놈과 똑같은 반응이 펼쳐졌다.

공평해야 하니까 이번에도 7분 동안 점혈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고통을 경감시키려는 체내의 움직임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마저 파악했다.

이내 점혈의 시간이 끝났다.

그놈은 처음 했던 놈과 똑같이 숨을 몰아쉰 다음 대성통곡을 했다.

“자 다음은……."

반태수의 말에 나머지 테러범들이 바짝 긴장했다.

처음 한 놈이 당했을 때야 다른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는데, 그렇게 둘이 당하자, 훨씬 깊은 두려움이 올려왔다.

방금 당한 저놈은 첫 번째 놈이 우는 걸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한데 지금은 처음 그놈보다 더 크게 울고 있었다.

눈물, 콧물에 침까지 쏟아내는 걸 보고 있으니 더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좀 쉬었다 다시 해야겠다.”

반태수는 테러범들을 놀리듯 씨익 웃고는 돌아섰다.

그 사이 데드릭 벨크리스는 울고 있는 두 사람의 뒷덜미를 쥐고 번쩍 들어 올린 다음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아마 이제부터는 아는 거 모르는 거 할 거 없이 열심히 쏟아낼 것이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사라지자, 엄대협이 반태수에게 다가왔다. 벌써 표정부터가 확 달라졌다.

“영감님 안 보이니까 좀 살만 해?”

“그래. 이거 참 이상하단 말이야. 근처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누가 심장을 꽉 옥죄는 거 같아. 숨도 잘 못 쉬겠고, 엄청나게 위축이 된단 말이야.”

그러니 애초에 만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그 모든 걸 정면으로 맞닥뜨리더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생겼으니까.

그걸 얻기 전까지는 절대 반태수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

언제쯤 해줄지 말이라도 슬쩍 던져주면 좋으련만, 반태수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다. 그랬다가 심기가 상하면 손해는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 될 테니까.

"이렇게까지 무리하지 않아도 돼. 힘들면 그냥 돌아가. 너 없다고 뭐 어떻게 되는 거 아니니까.”

엄대협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야 없지. 오랜만에 왔는데 내가 붙어서 모셔야지. 뭐 원하는 거 있으면 언제든 말만 해. 내가 얼마나 유능한지 보여줄 테니까.”

“그래? 그럼 오늘 밤에 술이나 한 잔 할까? 생각해보니 내가 술값도 안 내고 그냥 나와서 아마 열심히 욕을 하고 있을 것 같아서.”

“응? 술? 술값을 안 냈다고?”

엄대협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반태수가 말하는 술집이 어디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갑자기 식은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싫어? 싫으면 말고.”

“아니, 아니, 아니! 누가 싫대? 그냥 잠깐 생각 좀 한 거야. 나야 당연히 좋지. 생각해보니 너하고 술을 마신 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반태수가 씨익 웃었다.

“그날 마신 술, 비싼 거라고 하더라고. 제법 맛있었어. 아마 기대해도 좋을 거야.”

“그래, 시발, 가자.”

엄대협이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잘 생각했어. 너 핸드폰도 찾아야지.”

어제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다른 곳에 들르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갔다.

그러니 오늘은 핸드폰을 찾으러 가야 하지 않겠나.

“너 설마 핸드폰 버릴 생각 한 건 아니지?”

엄대협이 화들짝 놀라며 맹렬히 부인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다행이고.”

엄대협은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참아야 한다. 최소한 남자에게 좋은 것을 받을 때까지는 말이다.

둘이 그러고 있을 때, 데드릭 벨크리스가 상쾌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심문이 잘 된 모양이네요.”

반태수의 말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문제는 내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는 거지.”

“아는 게 별로 없었습니까?”

“쥐뿔도 없어. 뭐, 괜찮아. 나머지 놈들 중에 아는 게 많은 놈이 하나쯤 있겠지.”

그리고 고작 이런 놈들만으로 타노로스를 뿌리 뽑을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좀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런 식으로 야금야금 갉아먹다 보면, 언젠가 무너뜨릴 수도 있지 않겠나.

데드릭 벨크리스의 시선이 갑자기 엄대협에게로 향했다.

“딸꾹!”

안 그래도 데드릭 벨크리스가 나타난 순간부터 표정이 굳고 몸이 한껏 위축되었는데, 저렇게 갑자기 시선을 받으니 너무 놀라 딸꾹질을 시작했다.

“딸꾹! 딸꾹!’’

그걸 본 데드릭 벨크리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하, 어이가 없네. 날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여긴 왜 따라온 거야?”

엄대협은 대답할 수 없었다.

“딸꾹!"

그저 딸꾹질만 했다.

데드릭 벨크리스의 눈에 의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무서운 일을 겪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따라왔다는 건데…… 이거 뭔가 있는데? 그렇지?”

데드릭 벨크리스의 시선이 엄대협과 반태수를 정신없이 오갔다.

반태수가 쉽게 말해줄 것 같지 않자, 그의 시선이 엄대협에게 집중되었다.

결국 데드릭 벨크리스는 딸꾹질을 하는 엄대협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 귓가에 대고 물었다.

“똑바로 말해라. 거짓말 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에 맡기마. 말도 돌리지 마라. 내 머리가 복잡해지면 네 머리도 복잡하게 분해해 줄 테니까. 자, 말해. 아주 단순명료하게.”

엄대협은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어찌나 무서웠는지 어느새 딸꾹질도 멎었다.

“저기, 그러니까…… 정력……."

“뭐? 정력?”

데드릭 벨크리스가 고개를 휙 돌려 반태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서운함과 기대감이 정확히 절반씩 섞여서 버무려져 있었다.

이곳에서 누구보다 더 정력이 필요한 사람이 누군가. 바로 자신 아닌가.

엄대협이 용기를 내서 데드릭 벨크리스의 어깨에 툭 손을 올렸다.

"저기, 어르신. 우리 반 마법사님의 기분을 좀 생각해 주셔야......."

그 말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으허허허! 우리 마법사님 기분은 내가 제일 신경 쓰는 일이지.”

데드릭 벨크리스는 엄대협의 심정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원하는 걸 얻기 전에는 결코 떨어지지 않으리라.

반태수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두 사람의 눈빛을 보고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일이 좀 귀찮아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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