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 테러범 추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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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의 복귀 소식은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어제 저녁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만 연락하면 된다고 여겼었는데, 더 있었다.
예를 들어 키에라 나서스와 케트라 브리저가 있다.
두 사람과는 육체적인 관계까지 맺었으니 사실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원래는 적당히 주변을 정리하고 나면 직접 찾아가려고 했다.
한데 당장 전화가 왔다.
두 사람 모두 서운한 감정을 한껏 토로했다.
반태수는 조만간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그밖에도 스태플레톤에 있는 속성 종족들, 그리고 그 속성 종족들 곁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사실 그들이 반태수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한데 반태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반태수에게 정신적으로 기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현재 글락 그룹을 총괄하다시피 하는 중인 아네스도 연락을 해왔다.
아네스를 달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역시나 아네스에게도 조만간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야 간신히 달랠 수 있었다.
상황을 봐야겠지만, 아마 비행선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다녀오는 게 나을 것이다.
아네스가 있는 에라리스에는 귀환 포탈이 있으니 그쪽은 포탈을 통한 이동으로 다녀올 수 있어서 부담이 훨씬 덜했다.
나머지는 그냥 빠르게 날아서 다녀오는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나서스랑 개척도시 아리크, 혹은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퀴무르 쪽에도 귀환 포탈을 하나씩 확보해 놔야겠어.’
스태플레톤 쪽에도 하나 확보하면 더 좋고 말이다.
반태수는 문득 자신의 마법 실력이 지금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올라서면, 도시와 도시를 이을 수 있는 공간이동 포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공간이동은 무슨. 아직 아공간도 완성을 못 했는데.”
사실 공간이동과 아공간은 어느 것이 더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둘 다 난해한 마법이긴 하다.
아마 아공간을 완벽하게 구현해낼 수 있으면 공간이동에 대한 단초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반태수는 그렇게 예측했다.
아무튼 그들은 나중에 만나서 달래주면 되고, 당장은 여기서 할 일부터 해야 한다.
"테러범이라……."
지금도 테러범의 흔적을 찾아 뒤쫓는 추적팀이 여럿 활동 중이라고 했다.
오늘까지 쉬고 내일 당장 테러가 일어난 곳에 데드릭 벨크리스와 함께 방문하기로 했다.
열두 번이나 테러가 일어났는데, 일어난 장소도 하나같이 규모가 큰 곳이었다.
일단 이곳 크랙톤에서는 세 건의 테러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테러범이 자폭을 했고, 나머지 둘은 도주했다고 한다.
그 세 건의 테러가 같은 날 벌어졌다고 한다.
아무튼 중요한 건 오늘 하루는 완벽한 자유라는 점이다.
물론 언제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았느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음 일을 같이 하기로 한 사람이 직접 쉬라고 말해준 거랑 그냥 혼자 알아서 쉬는 거랑은 전혀 다른 거 아니겠나.
원래는 쉬면서 그동안 밀렸던 마법연구나 혹은 마력회로 연구를 할까 했는데,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반태수는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그리고 전화기를 꺼내 엄대협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계속 가는데 받지를 않는다.
결국 받을 수 없으니 메시지로 넘어간다는 안내가 나왔다.
반태수는 몇 차례 더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도 받지를 않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일단 문자를 남겼다. 확인하면 바로 전화를 달라고.
반태수는 일단 거기까지 하고 밖으로 나갔다.
저택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어서였다.
항상 저택에서는 영역화를 펼쳐놓는다. 예전에 저택에 들어와서 도청장치를 달고 카메라를 달고 하던 놈들을 겪은 다음부터 만든 습관이었다.
방금 저택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반태수도 아주 잘 아는 자들이었다.
비행선의 승무원들과 조종사들이 돌아온 것이다.
정원으로 나간 반태수는 비행선 주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쪽으로 다가가니 다들 반태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인사를 했다.
"오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승무원의 말에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어제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어디 다녀오시는 겁니까?”
"아, 비행선 정비 때문에 정비 업체를 좀 둘러보고 오는 중입니다.”
“어디가 망가졌습니까?”
“아뇨. 정기적으로 정비를 해야 하는데, 크랙톤에서 정비하는 건 처음이라서 알아볼 것이 좀 많았습니다.”
"아, 그렇군요.”
"저택에 두었기에 따로 당직을 서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야 왜 아무도 없었는지 알았다. 사실 그동안도 굳이 저렇게 당직까지 서야 하나 의문이었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업체는 찾았습니까?”
"예. 적당한 업체가 하나 있었습니다. 한데 기술자 몇 명은 다른 도시에서 데려와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비행선이 좀 특별해서 평범한 정비소에서 정비가 불가능한 부분이 있거든요.”
"그럼 그렇게 하시죠.”
“예. 그럼 허락도 받았으니 바로 추진하겠습니다.”
승무원들과 조종사들의 몰골을 보니 정말 발품을 열심히 팔았는지 초췌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고생이 많으셨는데, 좀 쉬시죠. 아, 혹시 괜찮으시면 커피라도 한 잔씩 하시겠습니까?”
승무원 둘과 조종사들의 표정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피로에 잔뜩 찌든 표정에서 막 피어난 꽃처럼 화사한 표정으로 단숨에 바뀌었다.
"감사합니다!”
반태수는 빙긋 웃으며 커피를 준비했다.
마침 자신도 한 잔 마시고 싶어서 승무원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비행선 정비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비행선 정비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소에 얼마나 관리를 잘하고 기본적인 정비를 잘 하느냐에 따라 정비소에서 점검할 때 큰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다.
그동안은 신경도 쓰지 않던 부분이었는지라 승무원과 조종사의 얘기에 빠져들어 즐겁게 들었다.
그렇게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 다들 씻고 쉬러 갔다.
반태수는 그제야 저택을 나섰다.
오늘은 그냥 도시 곳곳을 걸어 다니고 싶었다.
반태수의 저택은 접근성이 좋은 곳답게 번화가와도 가까웠다.
어느새 번화가로 들어선 반태수는 사람 구경을 하며 천천히 걸었다.
가면서 핸드폰을 자주 확인했는데, 새로운 연락이나 문자는 없었다.
"아, 이거 진짜……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지?”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긴 하다.
엄대협이 오랫동안 딴 곳에 가 있었던 적이 예전에도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재미난 걸 들고 오곤 했다.
한데 그때는 한 번도 이러지 않았다.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았고, 솔직히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럴까?
반태수는 결론을 내렸다. 이건 엄대협에게 신경 쓰일 만한 일이 생겨서일 거라고.
마법사의 예감을 무시하면 안 된다.
"이놈이 어딜 간 거지?”
반태수는 엄대협이 갈 만한 곳을 쭉 돌아봤다. 하지만 어디서도 엄대협을 봤다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예전에 갑각 트롤 사체를 보관하던 창고 빌딩까지 찾아갔었다.
그리고 벨리온 길드 쪽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그 근처 변두리로 향했다.
그쪽은 여전했다.
미끼를 낚아서 위험한 임무에 갈아 넣고 돈을 챙기는 브로커들이 잔뜩 활동 중이었다.
그 브로커들 몇을 잡아서 엄대협의 행방에 대해 물었는데, 그들 역시 다들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엄대협이 새 임무를 찾거나 할 때, 이쪽에 와서 정보를 얻어가기도 했던 모양이다.
다들 엄대협이 잘 풀렸다는 걸 알고 있는 걸 보면.
그렇게 잡아온 브로커 중 한 명이 은근슬쩍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변두리에 정보상이 있는데, 거기 한 번 가보시죠.”
“정보상?”
“예. 약도 보내드릴까요?”
브로커는 반태수의 폰으로 약도를 전송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술집이었다.
"거기, 엄대협도 가끔 이용하는 곳이니까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반태수는 고마움의 표시로 아공간에서 황금카드 몇 장을 꺼내서 건넸다.
신 나서 감사 인사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브로커를 뒤로 하고 반태수는 그 술집을 찾아 길을 나섰다.
술집의 위치는 변두리와 번화가의 경계에 있었다.
변두리라는 것이, 여기부터 시작이라고 선을 그어놓은 건 아니다. 하지만 대충 가다보면, 아, 여기서부터 변두리구나, 하고 알게 되는 지점이 있다.
술집의 위치는 절묘하게 딱 그 지점에 위치했다.
그 술집을 중심으로 다른 유흥업체나 술집, 밥집 등이 있었는데, 왠지 다들 그 술집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반태수는 그걸 보며 아마 저들의 주인이 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분위기는 약간 어둑어둑했다. 조명이 없는 건 아닌데, 불빛이 약해서 좀 어두운 분위기를 풍겼다.
문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바가 보이고, 바 뒤쪽으로 술병으로 가득 찬 진열장이 보였다.
그리고 그 진열장 앞에 바텐더가 한 명 서 있었다.
제법 예쁜 얼굴이었는데, 지구에서라면 몰라도 이면세계를 기준으로 하면 미녀에 속하는 외모였다.
바텐더는 반태수를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왠지 반태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 앞에 앉을 수 있는 높은 의자들이 쭉 늘어서 있고, 술집 내부에 테이블도 몇 개 있었다.
반태수는 바에 놓인 의자 중 하나에 앉았다. 바텐더 바로 앞이었다.
술집 안에 손님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도 바에 자리하지 않고 테이블에 앉았기에, 바는 텅 비어 있었다.
바텐더가 반태수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날리며 물었다.
“주문하시겠어요?”
“적당한 걸로 아무거나.”
반태수의 말에 바텐더가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비싼 걸로 드리죠.”
바텐더는 진열장에 있는 술 중에서 가장 모양이 화려한 것을 꺼냈다.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가격을 보유하고 있을 법한 술이었다.
바텐더는 술병을 개봉한 후, 특이한 모양의 잔에 따랐다.
“이 술은 이 잔에 마셔야 맛과 향이 제대로 살아나거든요.”
그녀의 말에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놀라울 정도의 향이 비강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맛 역시 훌륭했다.
반태수의 표정과 눈빛을 유심히 살피던 바텐더가 환하게 웃었다.
"어때요? 글락 그룹 회장님이 보기에도 제법 괜찮은 술이죠?”
그 말에 반태수가 순간 멈칫했으나, 금세 표정을 풀고는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정말 괜찮은 술이었다.
나중에 이름이라도 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바텐더를 똑바로 쳐다봤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 오히려 얘기하기가 더 편해졌다.
"내 얼굴이 그렇게 잘 알려져 있습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바텐더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저야 정보 계통에서 일하는데다가 정보가 모이는 곳에서 정리하고 분류하고 가공하는 일을 하니까 알게 된 거죠. 보통은 모릅니다. 글락 그룹에서 얼굴은 공개 안 하더라고요.”
반태수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왜 여기 왔는지도 알겠군요?”
그 물음에 바텐더가 약간 화가 섞인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죠. 엄대협. 그 조루새끼 때문이죠?”
“조루?”
반태수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텐더를 쳐다봤다.
아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봤는데, 이젠 마음가짐이 달라져서 그런지 좀 더 자세히 살펴봤다.
마력을 보유한 능력자였다.
가진 마력의 속성 자체가 은밀하고 이면세계의 마력답지 않게 움직임이 활발하지 않았다. 또한 분석이나 계산과 관련된 속성이 뒤섞여 있었다.
아무래도 마력 속성이 저래서 외모가 괜찮은 모양이었다.
"엄대협한테 만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얼마 안 됐어요. 뻔질나게 여길 드나들다보니 어느새 이렇게 됐네요. 지금은 후회 중이지만.”
"그래서 엄대협, 지금 어디 있습니까?”
바텐더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말하자면 좀 길어요.”
설명을 모두 들은 반태수는, 그녀가 왜 그렇게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엄대협은 테러 조직과 얽혔다.
지금 테러를 벌인 놈들은 전부 타노로스 소속이니, 결과적으로 타노로스와 엮였다고 보면 된다.
어설프게 일 하나 해보겠다고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평소처럼 그냥 반태수가 할 만한 일이나 알아볼 것이지 대체 왜 직접 일을 하겠다고 나서서 이렇게 상황을 꼬아 버린단 말인가.
바텐더가 반태수의 감정을 좀 읽었는지,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자기도 뭔가를 해보고 싶었나 봐요. 사실 제가 잘못한 거죠. 더 말렸어야 하는데. 제대로 된 정보를 확보하지 못한 것도 문제고......."
정보가 명확하지 않아서 말렸는데, 엄대협이 괜찮을 거라 우기고 막무가내로 일을 진행한 모양이었다.
결과적으로는 테러범이 도주할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 되었다.
바텐더의 표정과 눈빛에는 근심걱정이 가득했다.
"아마 괜찮을 겁니다. 생존력 하나는 대단하니까요.”
바텐더가 품에서 스마트폰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보니까 전화 많이 하셨더라고요. 문자도 보내고. 그 조루새끼가 이거 놓고 갔어요. 나중에 전해주세요.”
반태수는 그걸 받지 않았다.
"나 말고 당신이 주는 게 더 나을 겁니다.”
그 말을 남긴 반태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참고할 만한 정보는 없습니까?”
바텐더가 차분히 말했다.
“테러가 일어난 후에 크랙톤의 대응이 상당히 빨랐어요. 아마 아직 도시를 벗어나지 못했을 거예요.”
이 도시에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가 있다.
둘 다 5대 가문 내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다들 능력이 아주 출중하고.
그러니 대응이 빠를 수밖에 없다.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하죠. 엄대협은 조만간 이리로 보내겠습니다.”
반태수는 그 말을 남기고 술집에서 나갔다.
이제 진짜 엄대협을 찾으러 갈 시간이다.
원래는 내일부터 일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하루 먼저 시작하게 되었다.
"하여간 말썽은.”
반태수는 나직이 투덜거리며 왜곡을 씀과 동시에 허공에 훌쩍 떠올랐다.
일단 엄대협이 얽힌 테러 현장, 프리든 쇼핑몰이 있던 곳에 가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