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290화 (286/351)

290화.  < 엘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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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아르디스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점혈로 심문했다.

에트리안과 테사라 때도 느낀 거지만, 유독 이 가문 사람들은 점혈을 버티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점혈로 느끼는 고통보다 훨씬 큰 고통을 겪는 것 같았다.

물론 같은 고통을 겪어도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대충 그 반응이 어느 정도 범위 안에 있기 마련이다.

한데 이들이 보이는 반응은 그 범위를 지나칠 정도로 훌쩍 넘는다.

적어도 반태수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래서 원래는 전부 처리해 버리려고 했는데, 마음을 바꿔서 에트리안에게 했던 것처럼 안전장치를 달아 다들 살려뒀다.

반태수에 대한 반감이나 해가 되는 일을 하면 바로 점혈이 발동하도록 했다.

같은 마법을 몇 번 반복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개량을 했다.

첫 번째 배신하는 것보다 두 번째 배신할 때 시간이 더 길어지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원격으로 발동하는 장치도 심었다.

사실 이건 이들이 반태수에게 크게 적대적이었기에 쓴 방법이었다.

저대로 시간이 계속 지나면 저들의 정신이 망가질 수도 있다.

물론 반항하지 않고 계속 반태수의 말을 잘 들으면 그럴 일이 없지만, 그때는 거의 반태수의 노예처럼 변해갈 것이다.

이건 반태수가 직접 해보면서 경험적으로 느낀 점이었다.

에트리안과 테사라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짧지만 아르디스 일행의 행동을 봐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억지로 하는 것이 눈에 보였는데, 차츰 거부감이 사라지면서 그냥 순응해 갔다.

반태수는 이게 과연 점혈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하지만 당장 그걸 알아낼 수는 없었다. 이건 시간을 두고 계속 지켜봐야 할 일이다.

아무튼 아르디스로부터 그들의 가문인 스타르나 가문을 반태수에게 도움이 되도록 움직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들의 인장에 대한 정보도 조금 얻었다.

가문의 인장을 써서 마력회로를 새기는 건 상당한 제약이 있다고 한다.

한데 그 제약이 무엇인지는 아르디스도 몰랐다.

가문의 인장에 관한 정보는 오직 가주에게만 전해진다.

아니, 인장으로부터 정보를 받은 사람이 가주가 되는 것이다.

즉, 가주가 되기 위해선 인장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가주가 따로 차기 가주에게 정보를 넘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한다.

반태수는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아공간에서 하리뮬러 가문의 인장을 꺼냈다.

'그럼 내가 이 인장을 못 쓰는 건 인정을 못 받아서 그런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문에서 인장을 쓰는 건 아기가 태어날 때라고 한다.

태어난 아기에게 인장을 가까이 가져가서 쓰는데, 그 때문에 가주는 출산하는 산모 옆에서 아기가 나올 때까지 함께 기다린다고 한다.

이 정도면 가주라는 자리, 너무 극한 직업 아닌가?

물론 한 해에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반태수는 인장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폈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걸 잘 이해하기 위해서 뭘 해야 할까?

마법을 더 연구하고 수련해야 할까? 아니면 마력회로에 대해 더 알아봐야 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이동하다보니 어느새 호텔에 도착했다.

반태수는 호텔 로비로 들어서며 빨리 집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호텔에서 지낼 수는 없지 않은다.

혼자라면 상관없는데, 같이 지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아무튼 빨리 이쪽 일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도록 만든 다음, 이면세계로 넘어가야겠다.

이번엔 지구에서 너무 오래 있었다.

앞으로는 적절히 조절해서 양쪽에 머무는 시간을 비슷하게 맞춰야겠다.

어느 한쪽을 너무 오래 비우면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있다.

복잡한 머릿속을 대충 정리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탄 반태수는 객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객실로 들어가니 제인이 눈이 빠져라 반태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근 안 했어요?”

이제 제인도 포션에 출근해야 한다.

맡은 일도 제법 많았고, 틈 날 때마다 능력을 써서 고대인의 삶을 살핀다.

한데 오늘은 퇴근 시간이 되기도 전인데 벌써 온 것이다.

"보고할 게 있어서 왔죠. 어차피 회사로는 오지도 않으시잖아요.”

사실이기에 할 말이 없었다.

"보고할 게 뭔데요?”

"전에 저희 고모 쿨타임 언제인지 알아봐 달라고 하셨잖아요.”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죠.”

제인의 고모인 엘리스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자그마치 미래예지다.

예지가 인물 중심적이고 단편적인 장면만 보는 것 같지만, 그게 어디인가. 어쨌든 미래를 볼 수 있는데.

"쿨타임 거의 끝났어요. 내일이면 능력을 다시 쓸 수 있다고 하네요. 참고로 고모한테 직접 들은 거예요.”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인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반태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네.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 그러니까 알렉스가 고모를 데려갔어요.”

반태수가 머리를 한 차례 쓸어 올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알렉스가 데려갔다니. 설마 그 회사에 들어가기로 한 겁니까?”

"거기까지는 아닌 것 같고, 알렉스가 무슨 사탕발림을 했는지 이번 일만 도와주기로 했다더라고요.”

"이번 일?”

"네. 사람을 찾는 일이라는데,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고모도 잘 모르는 눈치였고요.”

"그러니까 지금 회사에 있다 이거죠?”

"네. 내일 능력을 쓰기 전까지는 회사에 머물기로 했다는데, 거기 제대로 된 잠자리가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그거야 알렉스가 알아서 잘 구해줄 것이다. 내일 쿨타임이 끝나면 잘 써먹어야 할 테니까.

반태수가 잠시 고민하는 것 같자, 제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런데 우리 고모는 어떻게 끌어들이려고 하셨어요?”

"두려운 미래를 보여주고, 이쪽이 얼마나 안전한지 알려주려고 했죠.”

"예지를 이용해서요?”

"네."

"그게 가능할까요?”

"가능할 거 같아서 시도해 보려고 했죠. 안 되면 말고요.”

제인은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봤다.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무작정 일부터 저지르려고 한 것 아닌가.

제인은 반태수가 엘리스에게 위험한 미래를 보여주는 일이 성공할 것 같지가 않았다.

저렇게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을 만큼 엘리스의 예지 능력은 단순하지 않다.

"그거 잘 안 될 것 같은데요.”

“됩니다.”

당연히 된다. 이건 의지를 어떻게 세우느냐의 문제다.

상대가 그걸 예지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견고한 의지를 세우면 된다.

아무튼 그건 이제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엘리스가 위험한 예지를 하려면 평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위험에 대한 예지를 해야 한다.

한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다른 예지를 할 모양이다.

"그런데 알렉스가 고모를 데려가는데 그냥 내버려둔 겁니까? 나서서 말렸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럴 틈이 없었어요. 좀 늦게 알기도 했고.”

반태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알렉스는 제인을 감금하려던 놈이잖아요. 엘리스, 괜찮겠어요?”

제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저도 그게 좀 걱정이긴 해요. 그래도 이번엔 알렉스가 고모를 데려가는 모습을 본 사람이 제법 많아요. 그럼 알렉스도 함부로 그러지는 못할 거 같은데, 아닐까요?”

반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내일 내가 가서 살펴볼게요. 아무래도 그냥 곱게 끝날 것 같지는 않네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우리 직원 복지를 위한 일인데.”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씨익 웃었다.

제인은 반태수의 저 미소가 오늘따라 더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

엘리스는 신기한 눈으로 사방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온통 새하얀 방이었다.

천장도 벽도 바닥도 의자도 테이블도 모두 하얗다.

심지어 엘리스의 옷도 하얀 색이었다.

엘리스는 검은 옷을 입고 올걸,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튼 이런 방을 대체 왜 만들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데 있으면 눈에 안 좋은 거 아닌가?’

엘리스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엘리스의 시선이 바로 문 쪽으로 향했다.

열린 문을 통해 알렉스가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다.

알렉스는 문을 다시 닫는 걸 잊지 않았다. 그래야 이 방에서 아무도 못 나가니까.

알렉스는 양 팔을 활짝 펼치며 웃었다.

"하하하. 어떻습니까? 여기가 제인이 일 할 때마다 오는 방입니다. 뭐, 이제는 다시 올 일이 없겠지만요."

"아! 안 그래도 제인한테 들었어요. 회사를 그만뒀다고.”

알렉스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 아쉬운 일이죠. 제인과는 평생 함께 가고 싶었는데.”

엘리스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녀는 제인이 보기보다 머리가 좋고 판단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제인이 여길 그만두겠다고 판단했다면,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믿었다.

엘리스는 방 안을 다시 한 번 둘러보며 말했다.

"제인이 여기서 일을 했다고요?”

"네. 맞습니다.”

"대체 이런 방에서 어떻게 일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분명히 집중이 잘 안 됐을 텐데.”

"그래도 깨끗하지 않습니까. 마음까지 깨끗하게 씻어줄 거라 믿고 만든 방입니다.”

엘리스는 개소리 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사실 그렇게 대놓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이제 원하는 걸 말해요. 어떤 예지를 해드리면 되죠?”

"우리는 이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알렉스가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두었다.

엘리스는 사진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알렉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 능력이 뭔지 아시죠? 예지. 정확히 원하는 게 뭐죠? 이 사람의 어떤 미래를 원하는 거예요?”

"가까운 미래를 읽어주면 됩니다. 그놈의 배경을 통해 위치를 유추하려는 겁니다.”

엘리스가 골치 아프다는 듯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배경을 통해 위치를 유추한다고? 말이 쉽지 그게 어디 가능하겠는가.

하지만 일단 이 사진의 주인공, 맥이라는 자의 미래를 한 번 읽어보기로 했다.

원하는 조건은 실내가 아니라 실외에 있으며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배경.

과연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런 조건을 넣어 능력을 발동시키기로 했다.

엘리스는 눈을 지그시 감고 조건을 명확하게 인지하며 마력회로를 작동시켰다.

그녀의 머릿속에 황량한 들판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들판 위에는 늑대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한데 그 늑대들의 모습이 좀 특이했다. 이마에 뿔이 돋았다.

엘리스가 눈을 번쩍 떴다.

"어떻습니까? 뭐가 좀 보였습니까? 맥 그놈,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습니까?”

"어……."

엘리스는 일단 머릿속에서 흩어지고 있는 미래의 한 장면을 끝까지 살펴보며, 정리했다.

"일단 맥이라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어요.”

“예? 맥의 미래를 본 거 아니었습니까?”

"맞아요. 그 사람의 미래를 봤는데, 보이는 건 황량한 벌판이랑 거길 어슬렁거리는 늑대들뿐이었어요.”

"그 말은……."

"맥이라는 분이 죽었다면 그분의 미래를 읽었을 때, 시체가 나왔어야 해요.”

"그럼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거기 있던 늑대들.”

"늑대?”

"예. 그 늑대들이 시체까지 전부 먹었다고 봐야죠. 제 생각은 그래요.”

알렉스가 골치 아프다는 듯 눈을 감고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눈을 뜨더니 엘리스에게 물었다.

"그 늑대들이 있는 곳, 어디인 것 같습니까?”

엘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들판이었어요. 굉장히 넓은.”

전혀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배경이다. 그저 넓은 들판은 찾아보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테니까.

"혹시 거기에 파란색 구슬 같은 거 없었습니까? 크기는 주먹만 합니다.”

"글쎄요. 그 정도로 세밀하게 기억나지는 않아요. 그래도 주먹이면 제법 큰 구슬이고, 거기다 파란색이라면 눈에 확 띄었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지 않은 걸 보면, 아마 없었을 거예요.”

그럼 인장도 맥이 죽은 자리에 없다는 뜻이다. 늑대들이 인장까지 삼켰거나, 아니면 다른 데 흘렸거나.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가 가져갔거나.

더 골치 아파졌다.

알렉스는 지푸라기라도 짚는 심정으로 물었다.

"뭔가 특별한 점이 하나도 없습니까? 뭐든 좋습니다.”

엘리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늑대들, 그냥 늑대가 아니에요.”

"예? 그냥 늑대가 아니라니요? 그게 무슨 말이죠?”

"이마에 뿔이 달린 늑대였어요.”

"뿔?"

엘리스는 좀 더 세밀히 묘사해 주었다. 이마 어디쯤에 났고, 어떤 놈은 하나고 어떤 놈은 둘, 혹은 셋의 뿔이 돋았고, 크기는 어느 정도고, 등등.

설명을 모두 들은 알렉스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마수가 분명했다.

황량한 들판에 늑대 마수들이 어슬렁거린다고? 그거…….

"이면세계?”

맥이 죽은 위치는 이면세계가 분명하다.

그것도 이면세계의 도시 밖, 늑대 서식지로 보인다.

대체 맥이 이면세계는 왜 갔을까?

맥은 기공술사다. 그러니 이면세계로 가면 마력회로가 망가져서 가진 힘을 잃는다.

그런데 왜 굳이 거기로 갔을까? 돌아올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하…… 맥, 이 새끼. 진짜 도움이 안 되네.”

알렉스가 체념하듯 중얼거렸다.

그런 알렉스에게 엘리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끝난 것 같으니 돌아가야겠어요.”

알렉스가 분위기를 바꾸며 최대한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자, 우리 거기에 대한 얘기를 좀 해봅시다. 엘리스, 혹시 국가를 위해 일해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그 얘기는 이미 끝난 걸로 아는데요.”

"하지만 이렇게 유용한 능력을 가진 분을 계속 방치하는 건 죄악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엘리스가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여긴 정말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이었다.

애초에 여길 오지 말았어야 한다.

솔직히 오기 싫었다. 그런데 잠깐 얘기하다보니 어느새 자신이 알렉스의 차에 타고 있었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어쩌면 다른 힘이 개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엘리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게 아니라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그냥 중얼거린 것이다.

한데 놀랍게도 답이 들려왔다.

머릿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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