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 < 의도된 습격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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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자신을 향해 조여드는 불의 회오리를 보며 손가락을 휘휘 저었다.
손가락을 따라 마력의 실이 올올이 풀려 나오며 빠르게 수십 개의 마법진을 만들었다.
퍼버버버벙!
강력한 충격파가 기관총처럼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것이 터지면서 불의 회오리를 산산이 흩어버렸다.
동시에, 반태수를 향해 달려들던 팀 거인사냥꾼 소속 기공술사들이 충격파에 맞아 뒤로 쭉쭉 밀려났다.
"오! 역시.”
반태수는 그걸 보며 살짝 감탄했다.
충격파의 위력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팀 거인사냥꾼의 기공술사들은 그저 좀 밀려났을 뿐, 거의 타격을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 원인은 그들의 육체 능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는 그들의 마력회로였고.
커다란 마력회로를 따라 상당한 양의 마력이 거침없이 흘렀다.
많은 마력이 빠르게 흘러가니 마력회로가 뿜어내는 출력 자체가 올라가 훨씬 큰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의 진짜 능력은 육체강화였다.
여섯 기공술사가 재차 달려들었다.
그들의 몸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그리고 꽉 쥔 두 주먹에 위험한 힘이 맴돌았다.
반태수는 그들의 주먹에 맺힌 힘이 파괴와 분쇄, 관통 속성을 복합적으로 담은 마력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그들의 움직임은 상당히 빨랐다.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몇 번이나 방향을 바꾸고 몸을 비틀면서 반태수의 눈을 속이려고 애썼다.
여섯 명이 동시에 그러고 있으니 웬만한 사람이라면 잠시나마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은 웬만한 사람이 아니라 반태수다.
반태수가 아까 주변에 깔아 두었던 무수한 마법진 중 몇 개가 발동했다.
쩌저저저저정!
여섯 기공술사 앞에 갑자기 실드가 나타났다.
그들은 갑자기 눈앞이 번쩍 하는 충격에 깜짝 놀랐다. 뒤로 주춤 물러나며 앞을 봤는데, 투명한 막이 자리한 걸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대체 무슨 능력이 이렇게 다양해?”
하지만 그들도 아직 쓸 수 있는 패가 남아 있다.
팀 거인사냥꾼의 기공술사들은 일단 뒤로 좀 물러났다. 그러면서 마력회로를 돌렸다.
각자의 마력회로가 서로 다른 패턴으로 작동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
처음 공들여 연결할 때 집중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일단 연결되고 나면 웬만해서는 끊어질 일이 없었다.
그 연결을 통해 이렇게 다양한 능력도 쓸 수 있었고.
빠지지지직!!
여섯 기공술사의 몸을 중심으로 강력한 전격이 뿜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전격이 이리저리 꼬이고 뭉쳐 벼락을 만들었다.
꽈르르릉!
반태수는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꽈과광!
벼락이 반태수를 향해 쏘아지다가 아래쪽으로 휘어지더니 바닥에 꽂혔다.
"별 걸 다 쓰네.”
반태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변 실드를 보강했다.
"이게 다야? 그럼 좀 실망인데?”
그 말에 여섯 기공술사가 발끈했다.
마력회로가 맹렬히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몸이 거무튀튀해졌다.
겉으로 보기에도 굉장히 단단하게 변한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들의 몸이 강철처럼 변한 것이다.
여섯 기공술사가 냅다 반태수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몸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화르륵!
그리고 그들의 주먹에 아까처럼 위험한 힘이 깃들었다.
여섯 기공술사는 반태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천천히 다가갔다.
아까처럼 무언가에 막힐 일은 없을 것이다, 나오면 다 부숴버릴 테니까.
그런 그들을 보며 반태수가 중얼거렸다.
"비슷한 게 반복되는 걸 보니 보여줄 건 다 보여준 모양이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여섯 줄기 벼락이 떨어졌다.
꽈르르릉!
벼락은 정확히 여섯 기공술사의 정수리에 꽂혔다.
그저 벼락에 맞았을 뿐인데 여섯 기공술사가 그대로 엎어졌다.
꽈득!
그들은 동시에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한 발 떨어져서 전투를 지켜보던 자들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
방금 반태수는 벼락에 물리력까지 담았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다들, 특히 아르디스는 굉장히 불안해졌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방금 본 전투 장면만으로 반태수가 얼마나 대단한 강자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과연 자신이 전력을 다하면 저 반태수를 혼자서 잡을 수 있을까?
아르디스는 고개를 저었다. 회의적이다. 아직 전투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반태수를 상대하기 버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르디스는 근처에 있는 가문의 전사들에게 눈짓을 했다.
가문의 전사들은 각각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들을 엄선해서 데려왔다.
저들 다섯 중 셋은 치료에 특화된 능력을 가진 기공술사였다.
그들이 나서서 전투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아르디스도 능력을 썼다.
싸움 자체는 팀 거인사냥꾼에 전적으로 맡기는 게 맞다. 그들의 전투력이 가장 뛰어나니까.
치료의 빛이 팀 거인사냥꾼의 몸을 감쌌다.
그들은 벼락에 맞았음에도 큰 타격이 없는지 벌떡벌떡 일어났다.
방금 받은 치료도 그들의 회복에 한몫 했고.
그렇게 치료하는 동안 남은 두 명의 전사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썼다.
그들은 팀 거인사냥꾼에게 버프를 걸어주었다.
대단한 건 아니고, 체력회복력을 높여주고 근력을 약간 상승시켜주는 능력이었다.
만일 상대와 대등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면 버프가 굉장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별다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거…… 난 뒤로 좀 빠지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아무래도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반태수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함께 있는 전사들이 챙겨온 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지만, 아르디스는 회의적이었다. 총으로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허리케인이라도 몰려오는 듯한 거친 바람소리가.
후우우웅!
아르디스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들을 비롯해 지금 싸우고 있는 팀 거인사냥꾼까지 포함한 넓은 공간을 강렬한 바람이 감싸고 있었다.
그냥 바람이 불고 있을 뿐인데, 마치 그것이 눈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
‘좀…… 이해가 안 가는데?’
왜 저 바람이 이렇게까지 위험해 보이는 걸까?
아르디스는 자신의 감각을 건드리는 바람을 가만히 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팀 거인사냥꾼의 전투는 슬슬 막바지로 치닫는 중이었다.
아르디스는 확신했다.
‘반태수 저놈, 손에 사정을 두고 있어. 얼마든지 싸움을 끝낼 수 있으면서 질질 끄는 중이야. 분명해.’
그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굳이 저런단 말인가.
보아하니 농락하려는 의도도 없었다. 그럴 거면 좀 더 노골적이어야 한다.
한데 지금 저 상황은 아르디스쯤이나 되니까 의도적으로 싸움을 질질 끈다는 걸 알아차렸지, 웬만한 사람은 전혀 위화감을 못 느낄 것이다.
그 증거로, 함께 있는 전사들이 손에 땀을 쥐며 싸움을 구경하고 있지 않나.
꽈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팀 거인사냥꾼의 기공술사들이 전부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대로 정신을 잃은 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아르디스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는 천천히 아르디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보아하니 제일 강한 것 같은데 왜 가만히 구경만 하는 거지? 안 덤빌 건가?”
반태수의 물음에 아르디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의미도 없는 싸움을 해서 뭐 하겠나. 시간과 노력만 낭비할 뿐이지.”
반태수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보아하니 자신이 일부러 싸움을 질질 끌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저건 눈치만 빨라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마 전투 경험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그래도 싸워봐야 하지 않겠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이기 싫으면 말이야.”
반태수의 말에 아르디스의 표정이 살짝구겨졌다.
"지금 협박을 하는 건가?”
"잘 아네. 내가 좀 알고 싶은 게 많거든.”
“알고 싶은 게 많으면 물어보면 될 거 아닌가.”
물론 잘 대답해주겠다는 보장은 못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안 싸울 건가?”
아르디스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좋아. 싸워보지. 솔직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혹시 천운이 닿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아르디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달려 나갔다.
그가 가진 일곱 개의 마려회로가 엄청난 속도로 작동했다.
마력회로의 패턴이 순식간에 이리저리 바뀌었다.
그때마다 아르디스의 몸에서 빛이 나기도 하고 주먹과 발에 위험한 힘이 깃들기도 했다.
마력회로의 패턴 전환 속도가 빠르니 정말 다양한 방식의 공격을 할 수 있었다.
반태수는 차분하게 그 공격을 일일이 막고 피하고 또 반격까지 하며 싸움을 이어갔다.
아르디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 해서 싸웠다.
그리고 반태수는 차근차근 데이터를 모았다.
반태수와 아르디스의 전투는 15분 정도 이어졌다. 사실 15분도 굉장히 오래 싸운 셈이다.
팀 거인사냥꾼과의 전투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까.
싸움은 아르디스가 뒤로 쭉 물러나면서 끝났다. 더 싸울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이다. 쏟아낼 만큼 쏟아냈다는 뜻이기도 했다.
반태수도 굳이 더 싸우자고 쫓아가지 않았다.
더 이상의 싸움이 의미 없다는 건 반태수가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버프 능력이나 치료 능력을 쓴 자들의 데이터는 굳이 추가로 얻을 필요가 없어서 생략했다.
그들은 그거 말고는 그저 단순한 전투능력 밖에 없는 듯했으니까.
그렇게 전투가 끝났다.
하지만 전투가 끝났다고 해서 상황이 끝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진짜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반태수는 이들을 그냥 곱게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자신을 납치하려던 자들이다. 또, 백진희도 납치하려고 했다.
그냥 납치만 하려던 게 아니라, 납치해서 노예처럼 부려먹으려 하던 자들이다.
그러니 어떻게 그냥 보내주겠는가.
죽여 버리거나, 그게 아니면 최소한의 조치는 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반태수는 긴장한 채 서 있는 자들을 슥 둘러봤다.
긴장하지 않은 사람은 아르디스뿐이었다.
아르디스는 긴장하지 않은 대신 허탈감에 빠져 있었다.
수십 년 동안 해온 노력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지독한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싸움이 끝났으니 뭐라고 한 마디쯤 할 법도 한데, 아르디스는 그저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그 침묵을 깬 사람은 아르디스였다.
아르디스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반태수에게 물었다.
"설마 오늘, 우리의 습격을 유도한 건가?”
반태수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생각해보면 굳이 이런 외진 창고에 반태수가 직접 올 일이 뭐가 있겠는가.
아르디스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에트리안이 가문을 배신한 건가?”
반태수가 굳이 이런 곳에 일정을 잡을 이유가 없다는 건, 평소 이동 패턴과 전혀 동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애초부터 이동 가능성이 없는 곳을 지정했는데, 그곳으로 반태수가 온 것이다.
이런 강력함을 감추고.
아무튼 반태수는 굳이 에트리안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트리안은 점점 더 확신에 찬 표정이 되었다.
“설마 테사라도?”
이 역시 대답하지 않았지만, 에트리안은 이미 알아서 결론을 내린 듯했다.
"허어. 믿을 수가 없구나.”
에트리안과 테사라는 가문에 충성하도록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았다.
게다가 테사라는 전사 훈련을 받으면서 한 층 강도 높은 교육을 통해 충성심을 머리에 새기다시피 했다.
한데 그런 테사라가 배신을 했다고? 이렇게 짧은 시간에?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그런 아르디스에게 반태수가 손가락 하나를 올리며 말했다.
“믿을 수 있게 해주지.”
***
알렉스는 짜증이 잔뜩 낀 얼굴로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를 펄럭 펄럭 넘겼다.
이 서류들은 맥의 행방, 그리고 하리뮬러 가문의 움직임에 대해 조사한 보고서였다.
알렉스가 가장 원하는 정보는 맥의 행방이었다.
"이 미친놈이 감히 그걸 먹고 튀어?”
그런데 보고서에는 별 내용이 없었다. 맥의 흔적은 하리뮬러 가문의 저택 근처에서 마치 증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졌다.
심지어 맥의 몸에 심은 위치추적 장치도 작동을 하지 않는다. 필시 맥이 망가뜨렸으리라.
아무래도 맥을 찾는 일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거나 아니면 아예 못 찾거나 둘 중 하나가 될 듯하다.
하지만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맥이 가져간 하리뮬러 가문의 인장을 반드시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야만 한다.
그래야 지금 이 상황이 의미를 갖는 것 아니겠나.
현재 알렉스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 좋지 않은 상황이 보고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리뮬러 가문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손잡고 싸워줄 동맹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벌써 알렉스가 알고 있는 가문들이 참전 의사를 밝혔다.
알렉스가 인장을 훔쳐가려고 했다는 말에 다들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그들은 맥을 찾기 위해 대대적인 수색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알렉스는 더욱 초조해졌다.
맥은 이쪽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저들의 손에 맥이 넘어가면 일이 너무 복잡해진다.
"그나저나 어떻게 자폭한 놈이 한 명도 없는 거지?”
아무리 사람 마음 모른다고 해도 맥의 동료들은 죽음을 무릅써야 할 때 뒤로 물러날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러니 전원 자폭을 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전부 사로잡혀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쪽의 정보가 많이 노출되었고, 그것이 직접적인 위협을 끌어오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놈들이 자폭만 했어도 이렇게 본격적인 싸움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여러모로 짜증이 안 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리뮬러 가문이 펼치는 로비도 장난이 아니었다. 이젠 그쪽 가문에 붙은 다른 가문들도 함께 로비를 하니 알렉스에게 오는 압박이 만만치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맥을 찾아야 한다.
‘대체 어떻게 찾지?’
한참동안 고민하던 알렉스의 뇌리에 특별한 기공술사 한 명이 떠올랐다.
제인과 함께 영입하고자 했으나 결국 영입에 실패한 사람, 제인의 고모인 엘리스가.
엘리스는 예지 능력자다.
그걸 이용하면 맥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알렉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때다. 어떻게든 엘리스를 끌어들여서 맥을 찾아내고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