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화. < 의도된 습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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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점혈을 이용해 맥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얻은 다음, 맥을 처리했다.
맥이 쏟아낸 말 중에는 그가 그동안 해왔던 임무가 어떤 것들인지도 있었는데, 임무 완수를 위해 평범한 사람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희생시키거나 죽이곤 했다.
게다가 맥이 받은 임무 중 절반 이상이 알렉스 개인의 이익과 관계된 임무였다.
맥의 시체는 이면세계의 마수들이 모인 곳에 던져주었다.
보아하니 몸에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장치를 달아둔 것 같은데, 아마 알렉스의 짓이리라.
알렉스 입장에서는 맥이 하리뮬러 가문의 저택에서 빠져나온 다음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걸로 보일 것이다.
그러니 맥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맥이 데리고 온 동료들은 전원 사로잡혔다.
패트릭이 하리뮬러 가문에 정보를 잘 전달했는지 그들도 제거 보다는 사로잡는 쪽을 염두에 두고 전투를 치렀다.
그들을 통해 정보를 뽑아내고 나면, 이번 일의 배후가 어디인지 하리뮬러 가문도 알게 될 것이다.
아무리 하리뮬러 가문이 대단해도 CIA와 대놓고 싸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싸울 상대를 좁힐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알렉스라거나.
알렉스도 이번에 똥싸개가 되긴 했지만 결코 만만한 사람은 아니다.
하리뮬러 가문도 알렉스를 쉽게 처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둘이 싸우는 동안 반태수는 나머지 일을 정리하고 이곳에 기반을 다지면 된다.
반태수는 포탈을 이용해 한국에 있는 연구실로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하리뮬러 가문의 인장을 꺼냈다.
그걸 보고 있으니 두근두근했다.
이건 또 어떤 새로운 것을 보여줄지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어른 주먹만 한 파란색 구슬이었다.
반태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다른 마력 반응이 없었다. 평범한 마도구는 아니라는 뜻이다.
하긴, 마력회로를 몸에 새기는 장치인데 그게 평범할 리 없지 않은가.
반태수는 마력의 실을 뽑아 구슬 안으로 넣어봤다. 명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마력회로를 새기는 물건인데 마력을 쓰지 않을 리 없다.
그러니 마력의 흔적을 먼저 찾아야 한다.
구슬의 내부는 그저 같은 물질로 꽉 채워져 있었다. 아마 이 물질이 특별한 모양이다.
확실히 특별하긴 특별했다. 마력의 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 어떤 저항도 없었다.
게다가 안으로 들어간 마력의 실이 마치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중하면 마력의 실이 분명히 느껴진다. 하지만 집중을 조금만 풀어도 그 느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이건 마치…… 마력을 똘똘 뭉쳐놓은 것 같네.”
반태수는 신기한 눈으로 구슬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중얼거렸다.
이 구슬 자체가 마력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구슬을 이루고 있는 물질이 뭔지 정말로 궁금해졌다.
반태수는 마력의 실에 집중해 구슬 내부를 샅샅이 훑었다.
처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살펴보니 희미한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강력한 마력이 지나간 흔적이었다.
그 흔적을 전부 확인할 각오로 더욱 집중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알아냈다.
흔적의 모양이 하리뮬러 가문의 마력회로와 똑같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이 인장이라는 것은 복사할 마력회로가 새겨진 물건인 것이다.
반태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더욱 집중해 구슬 내부를 확인했다.
마력회로만 있는 건 아니리라. 그 마력회로를 인간의 몸에 복사하기 위한 장치도 되어 있을 것이다.
집중에 집중을 거듭한 결과 더욱 희미한 흔적을 발견했다.
그것이 마력회로를 복사하는 장치가 분명했다.
반태수는 신중하게 그것을 모두 머릿속으로 옮겼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확인해 틀린 곳이 없도록 했다.
"그나저나 이건 어떻게 쓰는 거지?”
그냥 단순히 마력을 불어 넣는 걸로는 쓸 수 없었다.
반태수는 인장을 쓰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인장은 그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뭔가 특별한 조건을 만족해야 작동하는 듯했다.
그 조건이 뭔지 찾아내는 건 아무래도 뒤로 좀 미뤄야겠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냥 하리뮬러 가문 사람한테 물어보면 간단할 것 같은데.’
하지만 하리뮬러 가문에 그런 걸 물어볼 수는 없다. 그랬다간 일이 꼬인다.
반태수는 문득, 굳이 하리뮬러 가문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트리안이 있지 않은가.
그걸 떠올리니 조만간 에트리안의 가문 사람들로부터 의도된 기습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함께 떠올랐다.
인장에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는데, 이러다가 계획 실행일을 지나가 버리면 곤란하다.
반태수는 얼른 시간부터 확인했다.
"이틀을 이러고 있었다고?”
그냥 인장만 좀 확인하려고 했던 건데 벌써 꼬박 이틀이 지나가 버렸다.
반태수는 서둘러 이면세계를 통해 다시 뉴욕으로 이동했다.
깜깜한 밤이었다.
호텔로 들어가니 다들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백진희와 제인이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패트릭까지 있었다.
“뭐야, 다들 안 자고 뭐해요?”
반태수의 말에 다들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대체 어딜 다녀오신 거예요? 미리 말씀을 해주셔야 걱정을 안 하죠.”
"연락도 안 받고.”
반태수는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혼자 조용히 인장을 연구하고 싶어서 한국에 다녀왔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 일이 좀 있었어요. 그럼 나 때문에 여기 다 모여 있는 겁니까?”
"어떻게 찾을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반태수가 살짝 민망하게 웃었다.
"집중하다보니 시간이 얼마나 가는지 몰랐습니다. 나도 깜짝 놀라서 얼른 달려온 거예요.”
"대체 뭘 얼마나 집중하면 그렇게 되는 거죠?”
다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가 되니 저렇게 강력한 힘을 얻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고.
“아무튼 밤이 늦었으니 일단 잡시다. 전 먼저 들어갑니다.”
반태수는 그 말을 남기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꼬박 이틀을 집중했으니 이틀 동안 잠을 한 잠도 안 잤다는 뜻이다.
그러니 얼른 자서 혹시 쌓였을지 모를 피로를 풀어야 한다.
물론 벽을 몇 번이나 넘어 평범한 사람과는 많이 달라졌는지라 며칠 잠을 안 잔다고 해서 크게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저하되는 일은 없겠지만.
반태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문득 에트리안이 떠올라 텔레파시를 보냈다.
몸에 회로를 그리고 그걸 작동시키면서 마법까지 동시에 썼다.
아직 마력회로만으로 텔레파시를, 그것도 저항을 우회해 뇌리에 바로 꽂아버리는 텔레파시를 쓰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마력회로만으로도 그걸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혹은 마법만으로 그렇게 하거나.
물론 시간이 좀 많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 혹시 계획에 변동이 있거나 하지는 않지?
- 예.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진행할 예정이니 약속 시간에 모습을 드러내시면 됩니다.
- 혹시 말이야, 가문의 인장을 어떻게 쓰는 건지 아나?
- 정확한 사용법은 가주님만 알 수 있습니다. 듣기로 아기의 몸에 인장을 갖다 댄다고 했습니다.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 그렇군. 알았어. 그럼 푹 쉬고 내일 보자고.
- 예.
반태수는 텔레파시를 끊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
아침에 눈을 번쩍 뜬 반태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컨디션이 날아갈 듯 좋았다.
아무래도 이틀 동안 잠을 안 자고 인장을 분석한 피로가 제법 있었던 모양이다.
어젯밤에는 그냥 괜찮았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자고 일어나니 확실히 알겠다. 어제는 많이 피곤했었다.
방을 나서니 패트릭이 보였다. 패트릭 앞에는 노트북이 펼쳐져 있었다.
"일찍 일어났네요.”
"안 잤습니다.”
"잠도 안 자고 뭐 했어요?”
"조사를 좀 했습니다.”
"조사요?”
"하리뮬러 가문에 대해 좀 알아봤습니다. 알렉스 쪽은 어떤지도 확인했고요.”
반태수가 눈을 반짝였다. 일을 벌인지 벌써 이틀이 지나지 않았나.
이쯤이면 뭔가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하리뮬러 가문에서 이번 습격의 배후에 알렉스가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포로가 열 명이나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죠.”
하리뮬러 가문에서는 인장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알렉스 쪽 반응이 좀 이상합니다.”
"어떻게 이상하죠?”
"굉장히 당황하고 있습니다.”
반태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패트릭이 말을 이었다.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하리뮬러 가문을 기습했던 팀의 리더인 맥을 찾는 것 같은데 정황을 보면 맥이 하리뮬러 가문의 인장을 들고 튄 것 같습니다.”
반태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양측이 생각했던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제대로 충돌할 것이다.
그런 반태수를 패트릭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왜 그런 눈으로 봅니까?”
"맥, 보스가 처리했습니까?"
반태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말해주려고 했다. 적어도 패트릭은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할 테니까.
"내가 처리했습니다. 아마 그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을 겁니다.”
패트릭이 눈을 반짝였다.
"그럼 가문의 인장도 보스가 챙겼겠군요.”
"맞습니다.”
패트릭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반태수에게 물었다.
"혹시 그 인장, 나중에 하리뮬러 가문에 돌려줄 생각이십니까?”
"그건 가봐야 알겠죠. 하지만 웬만하면 돌려줄 겁니다.”
물론 그 전에 빼먹을 건 전부 빼먹겠지만.
최소한, 인장을 반태수가 마법이나 마력회로로 구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돌려줄 것이다.
사실 굳이 인장을 돌려줄 필요는 없다. 한데 반태수는 왠지 돌려줘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반태수는 패트릭에게 말했다.
"상황을 지켜보면서 좀 더 자세한 정보를 구해보세요. 아무래도 일이 커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네. 맡겨만 주십시오.”
패트릭이 힘 있게 대답했다.
반태수는 패트릭과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일단 씻었다. 그리고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에트리안 쪽 일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
반태수는 약속한 대로 차를 몰고 패트릭이 예전에 구했던 창고로 향했다.
창고지역이긴 하지만 활성화가 되어있지 않아서 인적을 찾기 힘든 곳이었다.
영역화를 통해 적들이 어디 있는지 확인했는데, 다들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수는 모두 열두 명. 저 사람이 아르디스인 모양이군.’
12명의 적 중에서 강렬한 힘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 강했다. 그러니 그가 아르디스 아니겠나.
그들 중에서 한 명이 손에 쇠공을 들었다.
그리고 반태수가 탄 차를 노려보더니 냅다 쇠공을 던졌다.
쌔애액!
꽝!
쇠공은 마치 총알처럼 날아와 차의 엔진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어찌나 강력했는지 달리던 차의 뒤가 확 들렸을 정도였다.
반태수는 이미 그 전에 차에서 내렸다.
아르디스를 비롯한 기공술사들이 빠르게 반태수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넓게 포위하듯 반태수를 둘러쌌는데, 반태수는 그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아르디스가 앞으로 나서며 반태수에게 말했다.
"그냥 순순히 따라오면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으마. 생각 있느냐?”
“날 데려가서 뭘 하려고?”
“별 거 없다. 포션에 대한 얘기나 좀 나누다가 돌려보내주마.”
그러니까 포션 제조법을 모두 털어놓고, 포션 만드는 장비에 관한 정보도 싹 내놓으라는 뜻이다.
물론 말은 돌려보내주겠다고 하지만, 진짜 돌려보낼지는 알 수 없다.
반태수는 아르디스의 얼굴을 가만히 확인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돌려보내줄 생각 같은 거 없는 듯한데?”
아르디스가 피식 웃었다.
“눈치는 또 빠르구나.”
반태수가 씨익 웃었다.
"내가 좀 그런 편이긴 하지. 지금도 괜히 시간 끄는 거 다 눈치챘거든?”
"오호. 그걸 눈치챘어? 그런데 왜 가만히 있었지?”
"궁금해서.”
여섯 명의 팀 거인사냥꾼이 과연 어떤 식으로 마력회로를 움직일지 궁금해서 기다려준 것이다.
사실 팀 거인사냥꾼은 별 준비 없이 싸워도 한 사람을 상대로는 굉장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이렇게 미리 준비를 하면 훨씬 더 강력해진다.
반태수는 팀 거인사냥꾼의 여섯 기공술사들의 마력회로가 하나로 이어지는 광경을 분명히 확인했다.
원래는 각각 따로 작동하는 마력회로였는데, 희미한 마력의 선이 나와 모든 마력회로를 이어버렸다.
팀 거인사냥꾼이 가진 마력회로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심장에 있는 기본 마력회로는 똑같이 가졌는데, 나머지 여섯 개의 마력회로를 각각 하나씩 나눠 가졌다.
다만 그들이 가진 마력회로는 훨씬 거대했고, 더 많은 마력이 흘렀다.
콰우우!
여섯 기공술사의 몸에서 강렬한 바람이 일어나 주변을 휩쓸었다.
공격을 한 것이 아니라 기세만으로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상당한데?”
반태수의 눈이 반짝였다.
팀 거인사냥꾼의 마력회로가 작동하는 방식을 더 보고 싶었다.
그리고 아르디스의 마력회로도 확인하고 싶었다.
일곱 개의 마력회로를 다 열었으니 얼마나 다양한 운용을 할 수 있겠는가.
그 모든 걸 싹 뽑아가고 싶었다.
아마 반태수만의 마력회로를 구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언제까지 준비만 할 거지? 얼른 들어와!”
반태수의 말에 팀 거인사냥꾼이 움직였다.
그들은 반태수를 포위한 채 천천히 돌았다. 그들의 몸에서 차가운 냉기가 뭉클뭉클 뿜어져 나왔다.
새하얀 김이 냉기를 품고 바닥에 쫙 깔렸다.
쩌저저적!
바닥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빠르게 바닥을 얼린 냉기가 반태수의 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반태수는 세차게 발을 굴렀다.
쿵!
냉기가 밖으로 확 밀려났다.
콰우우우!
마치 거인이 위에서 입김이라도 분 것처럼 새하얀 냉기가 확 퍼지며 흩어졌다.
팀 거인사냥꾼은 깜짝 놀라 다시 마력회로를 돌렸다.
후우웅!
이번엔 바람이었다.
화르륵!
그리고 거기에 불이 추가되었다.
팀 거인사냥꾼이 포위한 안쪽에 넓게 회전하는 바람이 일어났고, 그 바람에 불길이 따라붙었다.
화르르르륵!
커다란 불의 회오리가 반태수를 가둔 채 회전했다.
그리고 점차 회전반경이 줄어들었다.
반태수를 향해 불바람이 몰아쳤다.
그리고 그때, 팀 거인사냥꾼이 반태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