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 제인의 마지막 일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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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저 문은 처음 만들 때부터 이런 상황을 가정했다.
혹시 제인을 여기 가두게 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하고서 제작한 문이었고, 그렇게 만든 방이었다.
그렇잖은가. 제인이 가진 능력은 독보적이다. 그러니 제인이 일을 그만둘 가능성까지 다 따져봐야 한다.
제인이 일을 그만둔다고 해서 그냥 안녕히 가라고 보내줄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만든 방이었다.
일단 이 방에 갇히면 다시 나갈 방법은 없었다. 알렉스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
여기서 제인을 더 설득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혼자 나갈 생각이었다.
이렇게 방의 색을 하얗게 꾸민 이유도 다양한 압박을 위해서였다.
이 방의 벽은 웬만한 포탄으로도 부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문 역시 마찬가지다.
알렉스가 원하는 순간 전파도 모두 차단되고.
그러니 일단 여기 갇히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봐야 한다.
한데 문이 저렇게 쉽게 열리다니.
알렉스가 놀라서 어어 하는 사이 제인이 쏙 빠져나갔다.
급해졌다. 알렉스는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 비상을 걸었다.
회사 내에서 급히 비상을 걸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 준비한 어플이 있었다.
그걸 실행하면 바로 비상이 걸린다.
그때부터는 아무도 회사에 들어올 수 없고, 나갈 수도 없었다.
강제로 문이 차단되고 통로를 차폐하는 벽이 내려온다.
회사 내부가 여러 구역으로 자연스럽게 나뉘며, 각각의 구역을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알렉스는 스마트폰과 연동해서 각 구역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알렉스는 차분히 차폐 구역을 확인했다.
일단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봤는데, 제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알렉스는 다음 구역을 확인했다. 그곳에도 제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모든 구역을 차근차근 확인했다. 그런데도 제인을 찾지 못했다.
어이가 없었다.
분명히 문으로 나가자마자 비상을 걸어 각 구역을 차폐했다.
한데 왜 제인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알렉스는 짜증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직접 움직이면서 찾아야할 듯하다. 물론 각 구역도 다시 한 번 확인할 것이다.
일어나 문으로 가서 가볍게 밀었는데, 문이 안 열린다.
"이건 또 뭐야?”
힘을 주고 당겨도 보고 밀어도 보는데, 문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설마 하는 마음에 스마트폰을 꺼내 문에 관련된 어플을 확인했다.
확인해보니 문이 잠겨 있었다. 이걸 열어줘야 문을 열 수 있는 것이다.
“잠긴 문을 그냥 열었다고? 이게 말이 돼?”
제인이 문을 열던 그 순간 갑자기 문이 잠깐 동안 고장 나지 않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 아닌가.
알렉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어플로 잠긴 문을 열었다.
그제야 문이 자연스럽게 밀렸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니, 10미터 정도 되는 공간이 차폐 벽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제 어느 쪽으로 갈지 정해야 한다.
알렉스는 양쪽 문을 동시에 열었다.
복도가 쭉 이어지고 끝에 방이 하나씩 있었다. 일단 보이는 건 아무도 없었다.
알렉스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보안팀장? 지금 어떤 상황인지는 알지?”
- 네. 압니다. 바로 보안팀 투입할까요?
"투입해.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잡아. 정말 중요한 인재니까.”
- 그런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쪽 가문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해결해. 그러니 보안팀장은 목표를 확보하는 데에 집중해. 절대 놓치면 안 돼. 알지?”
- 염려 마십시오. 일단 회사에 들어온 이상, 우리 보안팀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 내가 아주 잘 알지. 그럼 부탁하네.”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나저나…… 대체 어디 있는 거지?”
알렉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각 구역의 화면을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세심하게 살폈다.
***
제인은 신기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반태수가 하는 말이 흘러들어왔다.
그래서 반태수가 시키는 대로 하는 중이었다.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고, 들어가라면 들어가고, 나오라면 나가고.
지금도 머릿속으로 반태수의 말이 또 흘러들어왔다.
- 그 방으로 들어가요.
제인은 바로 앞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사무용 테이블이 세 개 있었다. 각각의 테이블에는 일체형 컴퓨터가 놓여 있었고, 뒤로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다만 대부분이 채광을 위한 유리 창이었고, 문을 여닫을 수 있는 창은 아주 작았다.
그래서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제인은 실망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 어떤 것도 자신의 발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차폐 벽이 저절로 열리고, 제인이 지나가면 다시 닫히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을 지나가는데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넓게 펼쳐진 공원이 보였다.
회사 내에 조성된 공원이었다. 그리고 여긴 7층이었다.
제인은 자신이 과연 7층 높이에서 뛰어내렸을 때, 살아남을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몸에 지니고 있는 마도구가 잘 작동하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유리를 깨고 뛰어내린다면 대번에 들킬 것이다.
- 창문에 손바닥을 갖다 대세요.
제인은 시키는 대로 했다.
큰 유리창에 손바닥을 착 갖다 붙였다.
- 그 상태로 천천히 뒤로 물러나요.
이번에도 시키는 대로 했다. 뒤로 천천히 물러나는데, 놀랍게도 유리창이 손바닥에 붙은 채 따라왔다.
제인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녀는 반태수가 시키는 대로 유리창은 벽에 기대서 세워놓고 유리가 사라져 휑해진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마도구가 얼마나 훌륭한지 또 한 번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도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충격도 없었다.
마치 원래 그 정도 육체 능력을 가진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마도구가 충격을 전부 흡수해주고, 몸의 균형까지 잡아준 것이다.
"와, 진짜 끝내주네요.”
이제 반태수 밑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걸 겪었는데, 어떻게 이걸 다시 버릴 수 있겠나.
마도구에 커피와 쿠키에 토스트까지.
제인은 경쾌한 걸음으로 공원을 가로질러 회사 밖을 향해 나아갔다.
공원의 끝에 회사를 두르고 있는 높은 담장이 보였다. 그리고 그 담장에 나 있는 거대한 문이 보였다.
들어올 때는 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그냥 그런다보다 했는데, 막상 이렇게 나가려니 저 굳게 닫힌 문을 열 방법이 없었다.
그럼 담장을 넘어서 나가야 하는데, 담장을 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담장 꼭대기에 있는 커다란 윤형 철조망은 제인의 힘으로 넘어가기에는 너무 위험해 보였다.
‘그리고 아마 강력한 전류가 흐르고 있겠지?’
제인이 이제 어쩌나 하고 있는데, 머릿속에 반태수의 말이 스며들었다.
- 그냥 문으로 나가면 됩니다. 쭉 가세요.
“진짜요? 정말 그냥 가면 된다고요?”
- 네. 그냥 가면 됩니다.
"설마 제가 문을 뚫고 지나가고 막 그런 건 아니죠?”
- 그냥 가면 저절로 알게 될 겁니다. 두려워할 필요 없으니 당당하게 가세요.
"그럼 정말 갑니다?”
제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거대한 문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당당하게 어깨를 활짝 펴고 힘차게 걸었다.
점점 문과 가까워졌다.
이쯤 되면 누군가 제지를 할 법도 한데,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문 근처에는 총을 들고 지키는 보안요원들도 있었는데, 그들도 제인에게 아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게 뭐지?’
제인은 그 상황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아까 사람들이 우글거리던 곳을 지나칠 때도 비슷하게 느꼈던 감정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다들 저마다 떠드느라 바빴으니까.
차폐 벽이 그들을 가뒀으니 어떤 상황인지 서로 얘기하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이상한 점이 있었다.
제인이 지나갈 때, 차폐 벽이 분명히 열렸는데, 아무도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다.
누구라도 한 번쯤 쳐다보고 뭐라고 말할 법도 한데 말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이상했다.
저들은 저 문을 지키는 보안요원이다. 누군가 다가오면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알아봐야 한다.
한데 마치 제인을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제인이 더 문에 다가가니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냥 걸어가면 된다는 게 저런 의미였던 모양이다.
문이 열리니 그제야 보안요원들이 당황하며 어딘가로 연락을 했다.
그들은 문이 열리고 있다고 소리치고 얼른 확인하라고 난리를 피웠다.
제인은 그런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 밖으로 나갔다.
제인이 나가자, 다시 문이 닫혔다.
회사에서 나온 것이다.
제인 앞으로 세단 한 대가 스르륵 다가와 멈췄다.
운전석을 확인하니 패트릭이었다.
제인은 피식 웃고는 차에 올라탔다.
이내 차가 출발했다.
이로써 제인과 회사의 인연은 끝났다.
반태수는 허공에 뜬 채 멀어져가는 세단을 가만히 쳐다봤다.
세단 주위로 드론들이 마치 세단을 보호하듯 진형을 짜고 함께 날아갔다.
이제부터는 저 드론들이 경호를 할 것이다.
반태수는 세단이 어느 정도 멀어지자, 시선을 돌려 회사 빌딩을 쳐다봤다.
이 거대한 담장 안에는 세 개의 빌딩이 있었다. 그리고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체육관 시설까지 있었다.
오늘 제인을 쫓아다니면서 이곳에서 뭘 하는지도 좀 살펴봤다.
여긴 그냥 회사가 아니라 기공술사나 능력자들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시도하는 회사였다.
또한 강력한 무력집단이기도 했다.
상당한 무장을 갖춘 자들이 회사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직원보다 무장한 자가 훨씬 더 많았다.
그들 중 일부는 회사를 돌아다니면서 경비 업무를 했다.
그리고 일부는 버스나 승합차를 타고 회사 밖으로 나갔다. 마치 어딘가로 싸우러 가는 것처럼.
나가는 차가 있으면 들어오는 차도 있었다.
이들이 얼마나 잦은 임무를 수행하는지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솔직히 이들이 뭘 하든 별 관심은 없었다.
다만, 그냥 내버려두면 귀찮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지금 반태수의 힘이라면 단숨에 저 세 개의 빌딩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아니, 원한다면 모든 걸 그대로 두고 사람들만 싹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저곳의 모든 사람을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반태수는 제인에게 악영향을 미칠 만한 사람들만 적절히 처리하는 걸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그 처리를 지금 당장 하는 것보다는 시간을 좀 두고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제인이 퇴사하자마자 바로 알렉스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이 죽거나 사라져 버리면 어디로 의심의 화살이 날아가겠는가.
귀찮은 일 떼려다가 더 귀찮은 꼴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오늘은 인사만.’
반태수는 코어에서 마력의 실을 뽑아냈다. 간단한 마법 한 방만 쓰고 돌아가기로 했다.
***
알렉스는 보안팀장의 보고를 받으며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놓쳤다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제인이 차폐 해제 코드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해제 코드를 가졌다고? 제인이?”
"예. 도망친 경로를 확인해봤는데, 7층 중앙 사무실의 창문을 떼고 그곳으로 나갔습니다.”
"제인이 거기까지 갔다고?”
알렉스는 아까 제인이 문을 간단하게 열고 나간 장면이 갑자기 머릿속에 번득 떠올랐다.
이러면 말이 된다. 해제 코드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그걸 어떻게 얻었지? 코드 발신기 자체가 세 개밖에 없는데?”
하나는 알렉스가 또 하나는 보안팀장이,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비밀금고에 보관 중이었다.
그렇다면 제인이 비밀금고에서 꺼내갔거나, 아니면 발신기를 복사해서 들고 있었다는 뜻이다.
알렉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금고는 내가 확인해볼 테니까, 보안팀장은 사내 보안 다시 한 번 점검해. 분명히 빈틈이 있어. 그러니 어떻게든 찾아내라고.”
"예. 무슨 수를 써서든 찾아내겠습니다.”
보안팀장이 나가자, 알렉스는 잠시 자리에 앉아서 숨을 돌렸다.
그리고 오늘 제인에게 받은 정보를 정리한 다음, 어딘가로 연락을 했다.
“그래. 나야, 맥.”
알렉스는 눈을 번득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정보 보내줄 테니까, 제대로 계획을 세워서 보고해. 그래, 그거 맞아. 네가 그렇게 원하던 거.”
알렉스는 몇 마디 더 얘기를 나누고는 전화를 끊었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제인에 대한 것이 좀 찝찝하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될 것이다.
그리고 하리뮬러 가문의 그것도 자신의 손에 들어오리라.
알렉스는 그렇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등을 푹 기댔다.
한데 그 순간, 갑자기 아랫배에서 격통이 밀려왔다.
"커억!”
알렉스는 배를 부여잡고 끙끙 앓았다.
“으으윽! 갑자기 왜 이러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결과는 짐작할 수 있다. 이대로 여기 앉아 있으면 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미친 듯이 배가 아프고 당장에라도 쏟아낼 것 같았다.
알렉스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를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조금만 잘못 힘이 들어가거나 빠지면 그대로 쏟아낼 것 같아서였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쏙 빠졌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렇게 한 걸음 딱 걸었는데, 그대로 쏟아졌다.
뿌드드드드득!
다리를 타고 뜨거운 것이 줄줄 쏟아졌다.
"아……!”
알렉스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이 현실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지독한 냄새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뿌드드드득!
그런데도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다. 더 이상 배는 아프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