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283화 (279/351)

283화.  < 고대의 후예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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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리안은 에이든과의 통화를 마친 후,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

에이든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아마 많이 불안하겠지.

하지만 이번 일은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설마 상대가 테사라를 압도할 정도로 강할 줄이야.

‘벼락과 충격파를 썼다고 했던가?’

상대의 얼굴은 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테사라가 본 것은 열다섯 줄기의 벼락이 떨어져 동료들을 쓰러뜨린 것뿐이었다.

그 뒤로는 충격파에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했다.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운이 좋아서, 그리고 상대가 방심해서지 결코 쉬운 상황이 아니었다고 했다.

테사라의 주장은 그랬다.

백진희도 보통은 아니지만 테사라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잡기도 했었고.

하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이래서 강자가 중요하다.

아까 에이든의 전화를 받지 않은 이유는 아직 이쪽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아서였다.

가문 쪽과 텔레파시를 통해 현 상황을 보고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으니까.

그게 마무리 된 다음에야 전화를 받은 것이다.

어쨌든 가문이 나서겠다고 했으니 이제 한결 일이 쉬워지리라.

아무리 손꼽히는 가문이 아니라고 해도 자신의 가문이 가진 힘은 충분히 대단하니까.

아무튼 가문에서 지원해주기로 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일은 나 혼자만 엮인 게 아니니까.’

겉으로는 에이든의 부친이 인맥을 동원해서 에트리안을 끌어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에트리안이 그렇게 되도록 뒤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물론 서로 원하는 바가 맞아 떨어졌기에 이렇게 합류할 수 있었다.

가문에서 누굴 보낼지는 아직 모른다.

한 명이 아닐 수도 있다.

'팀으로 보내주면 좋겠는데.’

가문에서는 강력한 기공술을 바탕으로 여러 명이 시너지를 내는 팀이 존재한다.

그들은 강자 한 명을 상대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에트리안은 생각을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좀 늦긴 했지만 일단 식사부터 해야 할 듯하다.

잠을 잘 못자서 그런지 머릿속이 뻑뻑하다.

‘뭐, 가문에서 보내준 사람이 올 때까지는 할 일도 별로 없지만.’

에트리안은 아직도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아니, 지울 수가 없었다.

계속 감시의 시선이 느껴지는데 어떻게 그 생각을 지운단 말인가.

시선의 방향이라도 알면 좋은데, 그조차 없다. 그저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막 문을 향해 걸어가려는데, 갑자기 움직임이 덜컥 멎었다.

에트리안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뭐라 말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 더 놀랐다. 말도 할 수 없었으니까.

몸도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못하게 된 에트리안은 상황을 파악하려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누군가가 뒤에 있는 게 분명했다. 감시의 시선은 아니지만, 노골적인 시선이 확실하게 느껴졌으니까.

"......!"

에트리안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몸이 허공에 둥실 떠오른 것이다.

붕 뜬 몸이 뒤로 이동하더니 소파에 내려앉았다.

관절이 저절로 구부러지며 소파에 각 잡고 앉은 자세가 되었다.

그제야 자신을 이렇게 한 사람이 누군지 볼 수 있었다.

‘반태수!’

반태수였다. 대체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걸까?

설마 자신이 잘 때 들어온 건가? 그것도 못 알아차리고 자신이 계속 자고 있었다고?

그럴 수도 있다. 테사라 때문에 워낙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으니까.

하지만 대체 이건 어떻게 한 걸까?

몸을 마비시키고 목소리를 막아버리다니. 게다가 사람을 허공에 띄워 조종하기까지.

에트리안이 두려움과 호기심이 공존하는 눈빛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그런 에트리안을 유심히 관찰했다.

일단 뇌파를 파악해 두뇌에 테사라에게 박은 것과 같은 종류의 마법진을 새겼다.

혹시라도 텔레파시를 보내려고 하면 막아야 하니까.

마력회로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테사라가 텔레파시를 쓸 때와는 회로의 작동이 좀 다를지도 모른다고 판단해 더 확실한 뇌파쪽을 택했다.

에트리안의 마력회로는 테사라와 같으면서도 달랐다.

똑같은 모양의 일곱 개로 이루어진 마력회로를 품고 있었다.

위치도 똑같았다.

머리, 가슴, 단전, 양 어깨와 허벅지.

테사라는 저 중에서 가슴과 단전, 오른쪽 허벅지에 있는 마력회로가 활성화 되어 있었다.

한데 에트리안은 머리, 가슴, 단전, 그리고 왼쪽 어깨의 마력회로가 활성화 되어 있었다.

네 개의 마력회로를 쓰는 것이다.

아마 테사라보다 훨씬 더 다양한 능력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테사라는 자신이 어떻게 마력회로를 갖게 되었는지 전혀 몰랐다.

그냥 원래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트리안은 왠지 거기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반태수는 일단 에트리안의 목소리를 돌려줬다.

"이제 말할 수 있을 테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반태수의 말에 에트리안이 경계어린 시선으로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지?”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알면서 왜 물어? 설마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거라 여기는 건가?”

에트리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 통하는군. 날 계속 감시하던 것도 너였고.”

에트리안은 그렇게 말하며 마력회로를 돌렸다.

네 개의 마력회로들이 각각 부분적으로 작동하며 커다란 패턴을 만들었다.

테사라가 쓸 때와는 패턴이 달랐지만, 이건 분명히 텔레파시였다.

두뇌가 반응했으니까.

반태수는 곧장 준비한 마법을 펼쳤다.

“헉!”

에트리안은 깜짝 놀랐다. 마력회로가 갑자기 끊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작동을 멈췄으니까.

그의 시선이 대번에 반태수에게 꽂혔다.

"방금 그거…… 네가 한 건가?”

"뭐, 텔레파시 막은 거?”

에트리안의 표정이 확 굳었다. 자신이 텔레파시 능력을 갖췄다는 걸 알고 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뭘? 아아 너한테 텔레파시 능력이 있다는 거?”

반태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에트리안은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반태수와 연결될 수 있는 건 딱 한 명뿐이다.

"테사라가 배신한 건가?”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내가 누구한테 얘기를 들어야 그런걸 알 수 있는 사람 같아?”

에트리안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않나.

반태수의 말대로 되려면 상대의 마력회로를 완벽하게 꿰뚫어 봐야 하고, 마력회로의 흐름을 통해 어떤 능력을 쓰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러려면 미리 텔레파시를 쓸 때 마력회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알아야 한다.

한데 그럴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테사라는 세 개밖에 못 열었던데, 넌 네 개나 열었군. 머리, 가슴, 아랫배, 어깨.”

반태수의 말에 에트리안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테사라가 그런 것까지 말해준 건가?”

"말해주긴 무슨. 그냥 보이는 거야.”

"마력회로가 보인다고?”

반태수가 마력의 실을 뽑아냈다. 그리고 에트리안이 방금 텔레파시를 쓰려고 했을 때의 패턴을 그린 다음 은은한 빛을 덧씌웠다.

그걸 본 에트리안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자신이 방금 작동한 마력회로의 패턴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그렸으니까.

그걸 보고 나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는 자신의 마력회로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심지어 암기력도 무시무시했다. 잠깐 작동한 마력회로를 그대로 외워서 다시 그려냈으니까.

게다가 허공에 그린 저 빛나는 선은 대체 뭐란 말인가.

에트리안의 눈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자, 우리 그럼 진실의 대화를 나눠보지. 대체 이번 일에 끼어든 이유가 뭐야?”

에트리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

반태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테사라가 배신한 거냐고 했지?”

그 말에 에트리안이 반응했다.

"테사라는 우리 가문의 충성스러운 전사다.”

"그래서 배신 안 했을 거라고?”

에트리안은 그 말에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러웠으니까.

"테사라는 아직 배신하지 않았어. 그냥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아는 걸 좀 얘기했을 뿐이지. 워, 아는 것도 별로 없던데?”

"믿을 수 없다. 테사라는 전사 훈련을 우수한 성적으로 돌파했다. 고작 고문에 당했을 리가 없어.”

반태수가 빙긋 웃었다.

"그래? 그럼 넌 어때? 고문, 견딜 수 있나?”

에트리안이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 어떤 고통에도 난 굴하지 않는다.”

"그래. 그럼 의견을 존중해 줘야지. 일단 맛보기로 1분만 견뎌봐. 테사라도 그랬으니까.”

그 순간, 에트리안의 마력회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태수는 마력회로의 패턴을 암기하면서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유심히 관찰했다.

영역화를 집중해 뒀기에 신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바로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것 봐라?’

지금 에트리안은 능력을 이용해 통증을 차단해 버렸다.

뇌로 들어가는 감각을 막아버린 것이다.

아마 보통 고문에는 아주 효과적일 것이다. 육체는 망가지겠지만 통증을 느끼지 못하니 고문이 소용이 없을 테니까.

반태수는 씨익 웃었다.

점혈을 처음 만들 때, 이런 상황 하나 염두에 두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나.

이면세계는 능력자들도 다양하고 마법이 있는 세상이다.

당연히 통증을 줄이거나 차단하는 방법이 굉장히 다양할 거라 예상했다.

그래서 점혈로 고통을 주는, 그러니까 반태수가 분근착골이라 이름붙인 것은 설사 애초에 신경이 살아있지 않아 통증을 못 느끼는 사람들조차 고통을 피해갈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반태수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에트리안의 어깨 어림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에트리안의 눈동자가 위로 휙 사라져 버렸다.

목소리는 다시 막았다.

너무 고통스러우면 사실 비명도 잘 안 나오지만, 그래도 시끄러울 수 있으니까.

또한 비명을 지르고 싶은데 안 나오면 정신적으로 좀 더 고통스럽다.

“1분 되려면 아직 멀었다.”

반태수의 목소리가 에트리안의 귀에 쏙쏙 꽂혔다.

에트리안은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더 괴로웠다.

이내 1분이 지났고, 반태수가 점혈을 풀어줬다.

"크허허헉! 허억! 허억! 허억!”

애초에 에트리안은 육체적인 능력을 쓰는 기공술사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기공술을 익혔기에 육체가 일반인보다 뛰어나긴 하지만, 그뿐이었다.

고문을 견디는 훈련 같은 건 받아본 적도 없었다.

고통에 대한 내성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점혈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에트리안의 눈에 두려움이 가득 담겼다. 아니, 그냥 두려움이 아니라 극도로 심한 공포가 깃들었다.

"아직도 생각에 변함이 없어? 3분쯤 더 필요하려나?”

에트리안의 눈이 커다래졌다. 방금 그게 1분이라고 했다.

그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한데 3분이라고? 자신이 그걸 견딜 수 있을 리 없다.

차라리 죽으면 다행이다. 죽지도 못하고 계속 그 고통을 받으면 정신이 망가질 것이다.

"뭐든 물어보십시오. 다 말해드리겠습니다!”

에트리안은 반태수가 손가락을 하나 올리자마자 바로 그렇게 대답했다.

반태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간 대화 한 번 나누려면 거쳐야 할 과정이 너무 길단 말이야.”

그렇게 투덜거린 반태수가 다시 물었다.

"왜 굳이 끼어들었어?”

"포션 사업 때문입니다.”

"포션 사업? 거기 한 자리 끼려고? 장비 확인해봐서 알잖아. 거기 끼어들어봐야 포션 못 만든다는 거.”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은 포션이 포션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반태수의 한 쪽 입가가 슬찍 올라갔다.

"그러니까 우리 회사가 포션을 못 만들게 하려고 했다? 이유는?”

"우리 가문에서 포션 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아하, 그러니까 경쟁자 제거의 일환이었군. 그럼 얘기가 좀 되지. 그나저나 너희 가문에서 포션을 만들었다고? 그건 좀 대단한데?”

"이면세계에서 가져오는 포션을 분석해서 재현해냈습니다.”

그래도 대단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걸 재현하지 못해서 다들 포션을 사다 쓰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굳이 우리를 치울 이유가 있나? 포션 수요가 얼마나 많은데. 어느 정도 규모를 생각하는지 몰라도 너희가 끼어들어도 공급이 모자랄 걸?”

"저희 쪽 품질이 좀 떨어집니다. 그리고 시장조사를 어는 정도 하셨는지 모르지만, 이대로 가면 1년 안에 시장이 고착화될 겁니다.”

"시장이 고착화된다고?”

"예. 지금이야 모자란 것처럼 보이지만, 빠른 속도로 포션이 쌓이고 있습니다. 판매한 모든 포션을 전부 사용하는 건 아니니까요.”

이건 좀 문제다. 그렇다면 우리 쪽도 포션 공급을 조절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나중에는 이면세계에서도 굳이 포션을 가져올 필요가 없게 될 겁니다. 특이한 포션이 아니라면요.”

뭐, 그건 상관없다. 어차피 그런 걸 생각하고 시작한 사업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면세계에서 포션을 가져올 필요가 없으면 그 인력을 다른 곳에 쓸 수 있을 테니 그것 역시 상관없고.

"굳이 미국에서만 팔 필요 없잖아. 다른 나라에도 포션의 수요가 엄청날 텐데. 굳이 이런 식으로 경쟁자를 밟을 필요가 있나? 에트리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반태수가 그를 빤히 쳐다보자, 그제야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그게…… 저희 가문의 방식입니다.”

반태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빙긋 웃었다.

"가문에서 또 기공술사를 보내기로 했나?”

에트리안은 그 부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얘기해주었다.

반태수는 기공술사들이 강자 한 명을 상대하기 위한 팀을 구성했다는 얘기가 좀 흥미로웠다.

마력회로가 서로 상호작용을 해서 더 강력한 힘을 낸다고 하니 호기심이 확 일어났다.

"아, 그리고 테사라는 자기가 언제 마력회로를 얻었는지도 모르던데, 넌 알고 있지?”

"예. 우리는 아이가 태어난 순간 마력회로를 심습니다.”

반태수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래도 되나? 아이가 태어난 순간이면 여러모로 굉장히 위험할 텐데?”

게다가 그 정도 시술을 할 수 있으려면 보통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반태수도 아이한테 마려회로를 심으라고 하면 꺼려질 것이다. 성공확률이 높고 낮고의 문제가 아니라 일말의 위험성이라도 있으면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진짜 해야 한다면 할 수 있다. 아마 성공률도 굉장히 높을 것이다. 아니, 거의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반태수의 마력 컨트롤 능력은 그만큼 대단하니까.

에트리안은 생각에 잠긴 반태수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문에는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인장이 있습니다.”

“인장?”

"예. 그것이 가문을 이루기 위한 최소조건입니다.”

고대인의 후예들이 세운 가문에 좀 더 흥미가 생겼다.

아마 저 가문의 인장이라는 것은 만 년 전의 고대인들로부터 전해진 물건이리라.

반태수의 입가가 올라갔다.

"재미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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