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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281화 (277/351)

281화.  < 고대의 후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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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사라는 마력회로를 활성화시켜 기공술사가 된 이후, 상당히 지독한 훈련을 제법 오랫동안 받았다.

심지어 훈련 중에는 고문을 견디는 과정까지 있었는데, 그 모든 과정을 훌륭하게 견뎌냈다.

그녀는 그 훈련을 굉장히 우수한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그 뒤로도 열 차례가 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테사라는, 자신이 누구보다 뛰어난 인내력을 가졌고,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능히 헤쳐 나갈 수 있는 냉정한 판단력을 가졌다고 믿었다.

한데 그 믿음이고 뭐고 오늘 전부 깨졌다.

그동안 받았던 그 수많은 훈련은 아무 소용없었다.

이런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테사라는 두려운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는 빙긋 웃었다.

"부디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군. 혹시 일말의 의구심이라도 남아 있으면 말해. 얼마든지 풀어줄 용의가 있으니까.”

테사라가 기겁하며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저러다가 목이 떨어져 나가는 건 아닐까 걱정 될 정도로 세차게 고개를 휘둘렀다.

"아뇨! 없어요! 의구심 같은 거 전혀 없으니까 그러지 마세요!”

어느새 테사라의 말투도 바뀌어 있었다.

극도의 고통과 공포가 그녀를 계속 바꿔 나갔다.

“그럼 거짓 없는 진실의 대화를 나눌 마음의 준비는 됐나?”

테사라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합니다.”

반태수가 씨익 웃었다.

"난 생각보다 감각이 좋아. 거짓을 말하면 바로 알아차릴 방법이 있으니까 잘 생각하고 답해.”

“네. 잘 생각했어요. 그런데 난 솔직히 아는 게 별로 없어요. 그저 사람 때려잡는 훈련이나 받고 그런 임무만 해서.”

반태수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렸다.

테사라는 그걸 보고는 부르르 떨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아까 저 손가락으로 자신을 찔렀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손가락을 보자마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사소한 기억이라도 싹 끄집어내면 내 질문에 어떻게든 대답할 수 있을 거야. 가끔 생각이 안 나면 내가 충분히 도와줄 수 있어. 보통 3분 정도 겪고 나면 없던 기억도 생기더라고.”

테사라의 입이 쩍 벌어졌다.

빙긋 웃고 있는 저 잘생긴 얼굴이 왠지 악마처럼 보였다.

***

테사라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짜냈다.

하지만 그렇게 애를 썼음에도 두 번이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각각 3분씩이었는데, 한 번 겪을 때마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죽여 달라는 말도 못했다.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는 몸도 움직일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었으니까.

정말 신기하게도 그렇게 3분의 고통을 겪고 나자, 그렇게 머리를 쥐어 짜내도 생각나지 않던 것들이 마치 쏟아지듯 떠올랐다.

아까 반태수가 했던 말이 진실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고통을 겪은 테사라는 모든 반항심을 버렸다.

반태수는 정말로 그녀가 거짓을 말하거나 대충 얼버무리려 할 때마다 귀신 같이 알아차렸다.

그때는 가벼운 벌을 받았다. 10초짜리.

그것만으로도 정신을 차리기에는 아주 충분하고도 넘쳤다.

10초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 줄은 몰랐다.

아무튼 그런 일까지 겹쳐지자 반태수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상한 마음을 품으면 벌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반항심이 사라졌다.

지금은 그저 반태수가 하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긍정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해서 얻은 정보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정말로 테사라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게 다야?”

반태수의 물음에 테사라가 흠칫 놀랐다. 그리고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든 머릿속에 남은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더 이상은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덜덜 떨며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는 그걸 보고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다 나온 모양이네.”

테사라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었다. 그녀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 나왔어요. 이제 정말 다 나왔어요!”

"너 진짜 영양가 없구나.”

반태수의 말에 테사라가 얼른 말했다.

"에트리안은 저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을 거예요.”

"아! 그러고 보니 너 에트리안이랑 텔레파시로 대화한 건 얘기 안 했네? 설마 일부러 빼놓은 건 아니지?"

테사라가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아니에요! 별 얘기도 아닌데 제가 왜 그걸 일부러 빼먹겠어요! 그저 떠오르지 않았을 뿐이에요!”

"떠오르기 쉽게 해주지 않아도 되지?”

"그럼요! 번거롭게 그러실 필요 없어요!”

"별로 번거롭지는 않지만.”

테사라는 반태수가 또 점혈을 걸까봐 얼른 말을 꺼냈다.

“저보고 감시 장치가 붙었으니까 다음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했어요.”

“그게 전부?”

"오늘은요. 예전에는 백진희 납치를 도우라고 지시했어요.”

테사라는 그 대답을 하면서 새삼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지금까지 반태수는 고대인이나 자신의 가문에 대한 질문만 했다.

자신이 이렇게 잡힌 건 백진희를 납치하려는 시도 때문인데, 그 일에 관해서는 아직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걸 자신이 알아서 이렇게 술술 불고 있었다.

"오늘 나하고 한 일은 아직 보고 안 했지?”

테사라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안 했어요. 그리고 안 할 거예요. 믿어주세요.”

"나야 믿고 싶지. 그래도 안전장치 하나 정도는 만들어 둬야하지 않겠어? 에트리안은 며칠 더 지켜보다가 찾아갈 예정이거든.”

테사라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세요.”

반태수는 그녀의 허벅지, 그러니까 공간이 뒤틀려 상처를 입은 곳을 손으로 착 잡았다.

테사라가 흠칫 놀랐다. 그리고 설마 하는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을 보니까 또 오해하는 모양인데? 한 번 더 오해를 풀어줘야 하나?”

테사라가 기겁하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반태수는 씨익 웃고는 뒤틀린 허벅지 안쪽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점혈로 통증을 막아뒀기에 테사라는 거기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 알아차렸을 뿐, 통증을 느끼지는 못했다.

반태수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와 허벅지로 스며들었다.

허벅지 안쪽 상처가 말끔하게 나았다.

"좀 아플 수도 있어.”

반태수는 그렇게 경고하고는 점혈을 풀었다.

"흐으윽!"

지독한 통증이 허벅지에서 올라왔다.

테사라는 한동안 끙끙 앓았다. 통증은 생각보다 금방 사라졌다.

그 이후에는 멀쩡한 몸만 남았다.

테사라는 신기한 눈으로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봤다.

아무 상처도 남지 않았다. 정말 멀쩡해진 것이다.

그녀는 경이로운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치료 능력자는 자신의 가문에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치료 능력자라고 해도 허공 비틀기에 당한 상처를 치료하지는 못한다.

수술을 통해 비틀린 곳을 원래대로 되돌린다고 해서 고쳐지는 것이 아니었다.

공간의 힘이 개입한 자리다. 그렇게 뒤틀린 공간의 힘을 되돌리지 않으면 치료가 불가능한 것이다.

한데 이 반태수라는 자는 단숨에 그걸 해냈다.

내심 한쪽 다리는 이제 못 쓰게 되었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렇게 치료가 되니 별의 별 감정이 다 올라왔다.

그 순간 반태수가 테사라의 몸 몇 군데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어찌나 빠른지 몸 한 번 꿈틀거릴 틈이 없었다.

테사라는 화들짝 놀랐다. 또 점혈을 쓰는 줄 알아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몸에 아무 이상이 없자 슬그머니 반태수의 눈치를 살폈다.

뭔가 하긴 했는데, 그게 뭔지 모르니 불안했다.

"아까 말한 안전장치야. 내가 원하는 순간, 발동하게 맞춰놨어. 네가 배신하는 순간에도 발동하고.”

테사라가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봤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살려서 보내주겠다는 뜻이야. 못 알아듣겠어?”

테사라의 눈이 커다래졌다.

한동안 그녀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머릿속이 너무나 복잡했다.

하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자신은 살았다. 하지만 비밀을 지켜야 하기에 굉장히 불안하면서도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하리라.

"그럼…… 전 그냥 가도 되나요?”

"가긴 어딜 가. 이 객실, 네가 잡은 거잖아. 여기서 씻고 푹 쉬어. 치료를 하긴 했지만 몸에 데미지는 분명히 쌓였을 거야. 그거 풀려면 잘 먹고 푹 쉬는 게 좋아.”

테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태수는 씨익 웃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살았다는 실감이 났는지 테사라는 바닥에 털썩 누웠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떨림은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

반태수는 호텔에서 나온 다음, 바로 왜곡을 써서 하늘을 날았다.

아까 마킹을 통해 패트릭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확인했다.

그러니 아까으I 상황은 알아서 처리했겠지만, 그래도 한 번 확인은 해봐야 한다.

아까 싸웠던 자리에 도착해 보니, 사람은 다 치웠는데, 싸운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반태수는 마법으로 그 흔적을 대충 봉합했다.

부서진 바닥을 녹여서 최대한 원래 모습과 비슷하게 만들고 핏자국도 지웠다.

벼락이 튀었는지 바닥 몇 군데가 그을렸는데, 그것도 지웠다.

그 외에는 별로 처리할 게 보이지 않았다.

반태수는 다시 날아서 머무는 호텔로 향했다.

테사라를 살려둔 이유는 알아볼 것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혹시 뭔가 복잡한 상황이 벌어지면 그녀를 스파이처럼 써먹기 위함이기도 했다.

아까 점혈을 이용해 굴복시켰는데, 이후 몇 차례 험한 꼴을 겪고 나면 아마 반태수의 말에 절대 거역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반태수는 그녀의 몸에 아주 정밀한 마법진을 새겨두었다.

그것도 두뇌에.

뇌파를 감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테사라가 에트리안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려 한다면 마력회로가 작동할 테니, 그것만 감지해 내면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 테사라가 텔레파시를 통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낼 수 없으니까.

그래서 마법진을 새긴 것이다. 뇌파를 감지해 반태수에게 해가 되는 말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오류를 줄이기 위해 벌써 테스트를 충분히 해뒀다. 테사라를 직접 이용해서.

아까 심문 과정에 그것이 교묘히 끼어들어 있었지만, 아마 테사라는 모를 것이다.

테사라의 뇌파에 맞춰서 술식을 구성했기에 오류가 날 확률은 지극히 낮다.

아무튼 그렇게 해가 되는 일을 하는 것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점혈로 연결된다.

5분쯤 작동할 테니 아마 죽다 살아나는 기분이겠지.

오늘 테사라로부터 얻은 정보는 별로 많지 않았다.

아까 말했던 대로 영양가가 없었다.

일단 테사라는 자신이 고대인의 후예인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반태수가 보기에는 피가 좀 옅어졌는지는 몰라도 고대인의 후예가 맞는 듯했다.

일단 테사라와 에트리안은 같은 가문 소속이었다.

그리고 고대인의 후예들이 만든 여러 가문이 존재한다고 했다.

테사라의 가문은 사실 고대인 가문 중에서도 그리 강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가문이 가지는 은밀한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한다.

물론 테사라는 정확히 어떤 식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전혀 모르지만.

그녀가 아는 다른 가문도 몇 개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나마도 그저 이름만 알 뿐이고 어디서 뭘 하는 가문인지는 전혀 몰랐다.

아무튼 테사라가 아는 건 그 정도가 다였다.

그녀는 정말로 훈련과 임무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다.

고대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려면 에트리안을 잡아서 물어봐야 할 듯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호텔에 도착했다.

반태수는 빠르게 객실로 올라갔다.

객실에는 백진희와 제인이 마주앉아 있었다.

표정을 살폈는데, 둘 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이 괜찮다고 진짜 괜찮은지는 모른다. 반태수는 백진희를 좀 더 유심히 살폈다.

‘괜찮은 거 같은데?’

두 여자가 반태수를 발견하고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오셨어요? 갔던 일은 잘 끝났나요?”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마무리 했습니다. 이제 당분간은 별다른 일이 없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백진희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그걸 보니 어쩌면 백진희가 멀쩡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사람 정신에 관계된 건데 어떻게 그리 쉽게 알겠나. 테사라에게 한 것처럼 마법진을 두뇌에 새기지 않는 한.

반태수는 일단 커피부터 내렸다. 그리고 쿠키도 꺼냈다.

두 사람 앞에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놓고, 접시에 적당히 쿠키를 담아서 테이블에 놓았다.

"쿠키도 있었네요?”

백진희와 제인이 눈을 반짝이며 잔을 들었다.

반태수는 두 사람을 보며 씨익 웃었다.

"쿠키랑 커피를 같이 먹으면 아마 제법 괜찮을 겁니다.”

두 사람은 그 말에 쿠키도 하나씩 집었다.

쿠키를 몇 번 씹은 두 사람은 눈을 지그시 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두 사람은 놀란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가 얼른 커피도 같이 마시라는 듯 눈짓을 했다.

두 사람은 홀린 듯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맛과 향이 입안에서 대폭발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특히 커피 맛에 예민하기에 더더욱 반응이 격렬했다.

“으흐으으음!”

두 사람이 마치 동시에 합창이라도 하듯 신음을 흘렸다.

맛과 향의 폭풍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뒤에야 간신히 눈을 뜬 두 사람은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체 왜…… 이걸 이제 알려주신 거예요?”

"세상에. 맛과 향이 미쳤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하죠?”

반태수는 빙긋 웃었다.

확실히 저 두 사람의 반응을 보는 게 제일 재미있다.

"그나저나 패트릭은 없네요?”

"처리할 게 생각보다 많다네요. 특히 사로잡은 사람들 처리가 만만치 않나 봐요.”

"처리 만만치 않으면 적당한 창고에 다 처박아 두라고 해요. 다시 돌려주면 되죠. 내가 알아서 알바레즈에게 돌려줄 테니까 그렇게 하라고 전해요.”

제인이 얼른 대답했다.

"네!”

제인이 패트릭에게 연락하는 사이 반태수가 백진희를 쳐다봤다.

마침 백진희도 반태수를 보고 있었기에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반태수는 제인에게 문자 하나를 남겼다.

오늘 찾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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