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 의심스러운 자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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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열심히 도망치는 테사라의 머리 위를 날아가며 그녀의 마력회로를 유심히 살펴봤다.
‘진짜 신기하네.’
솔직히 좀 기대하긴 했다.
테사라나 에트리안은 다른 기공술사들과는 마력회로가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 말이다.
그리고 테사라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정말 특이한 마력회로였다.
사실 이런 식으로 마력회로를 구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쉽게 구현할 수 없을 것 같아 잠시 뒤로 미뤄둔 상태였다.
테사라의 몸에는 한 개가 아닌 여러 개의 마력회로가 공존하고 있었다.
정확히 일곱 개의 마력회로가 몸 곳곳에 포진해 있었고, 각 마력회로는 전부 연결되어 있었다.
좀 신기했다.
테사라는 저 일곱 개의 마력회로 중에서 고작 세 개를 활성화한 상태였다.
나머지 네 개의 마력회로는 죽은 상태였다.
죽은 마력회로 내부에 살아있는 선 하나가 있어 각 마력회로를 연결하고 마력을 돌리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활성화도 되지 않은 마력회로를 몸에 장착했다는 사실이 좀 신기했다.
만일 마력회로가 하나였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어쨌든 기공술에 의해 마력회로가 구성되었을 테니까.
한데 테사라는 그게 아니었다.
활성화된 마력회로와 비활성화된 마력회로가 공존한다.
이는 미리 저 일곱 개의 마력회로를 몸에 새겨놓고, 그 다음에 마력회로를 활성화시켰다는 뜻이다.
차례차례.
‘마력회로의 위치도 애매해.’
하나는 가슴, 또 하나는 아랫배, 즉, 단전 어림, 그리고 양 허벅지와 어깨, 마지막으로 머리, 이렇게 일곱 군데에 마력회로가 있었다.
그 중 활성화된 것은 단전과 가슴, 그리고 오른쪽 허벅지, 이렇게 세 군데였다.
반태수는 테사라의 마력회로를 열심히 머릿속에 저장했다. 그리고 활성화되어 마력이 흐르는 모습도 마찬가지로 저장했다.
그와 동시에 분석에 들어갔다.
이렇게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분석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그저 머릿속에 기억한 것만으로 분석하면 항상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도 분석이 원활하지 않았고.
아직 그 원인은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원인을 파악하지 않겠는가.
그 원인을 알아내면 왠지 마력회로의 수준이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테사라를 따라가고 있는데, 그녀의 속도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보통은 제법 오랫동안 달려왔으니 체력이 바닥났을 거라고 여기겠지만, 테사라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녀의 마력회로에서 끊임없이 체력을 공급했기에 앞으로 몇 시간쯤 더 달려도 쌩쌩할 사람이 바로 테사라다.
그녀가 속도를 줄인 것은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임무에 실패했으니 수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테사라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공원을 벗어난 지는 오래였고, 여기는 도심지에서 좀 벗어난 곳이었다.
인적 없고, 불빛도 별로 없는 곳, 흔히 우범지대라 불리는 장소였다.
하지만 테사라는 그런 분위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마침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틈이 보였다.
사람이 지나다니기에는 많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몸을 넣을 공간은 있는 곳.
테사라는 그곳으로 비집고 들어간 다음,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오늘 일을 에트리안에게 보고해야 한다.
그녀의 몸속에 있던 마력회로들이 복잡한 경로로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반태수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건 또 뭐야?’
전혀 예상치 못했다.
활성화된 세 개의 마력회로들이 각각 일부분씩 작동했다. 그리고 그 일부분들이 서로 연결되며 전혀 새로운 마력회로를 구성해냈다.
아무래도 테사라의 마력회로는 그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듯했다.
‘이런 식이면 대체 조합이 얼마나 나오는 거야?’
무궁무진한 조합이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 뭘 하는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연락을 하는 거겠지.
그동안 에트리안이 한 번도 연락 같은 걸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테사라를 움직였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에트리안 쪽 마킹을 확인해봤다.
‘그냥 자고 있는 걸로밖에 안 보이네.’
에트리안은 자고 있었다. 하지만 마킹을 중심으로 영역화를 조밀하게 펼쳐 신체의 반응을 확인하니 자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눈만 감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자고 있다가 방금 깼다. 테사라의 연락 때문인 모양이다.
‘저걸 엿들을 방법은 없나?’
설마 했는데 진짜 텔레파시를 쓰는 모양이다.
잠시 후, 테사라가 눈을 떴다. 그리고 골목 밖으로 나왔다.
"후우. 대체 언제까지 밖으로 돌라는 거야?”
테사라의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누가 몸에 감시 장치를 달았다고? 그걸 알면 제거하면 되잖아.”
테사라는 거기까지 투덜거린 다음 어이없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토해냈다.
"하! 그것도 모자라서, 뭐? 내 몸에도 감시 장치가 있을 거라고? 미친 거 아냐?”
테사라는 갑자기 허공에 대고 고함을 내질렀다.
“아오! 젠장!”
발로 벽을 콱 찼다.
꽈득!
벽에 금이 쩍쩍 갔다.
"뭐가 어쩌고 어째? 옷을 벗고 확인을 한 거라고? 그딴 말을 왜 나한테 하는 건데? 이 변태새끼.”
테사라는 한동안 벽에 화풀이를 하다가 이내 흥분이 좀 가라앉았는지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서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살펴봤다.
대체 어디에 감시 장치가 있다는 거지?
"그놈이 말한 거니까 분명히 뭔가 있긴 있을 텐데, 몸에 달았다니 대체 어디에 달린 거야? 아니, 그게 가능하긴 해? 나 잘 때 몰래 달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테사라는 한숨을 푹 내쉰 다음 스마트폰을 꺼내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지도를 실행했다.
일단 여기가 어딘지 파악하고 가까운 호텔로 가서 좀 씻고 옷도 갈아입어야겠다.
오늘 싸움 자체는 오래 끌지 않아서 괜찮았는데, 그 이후 도망칠 때 너무 사력을 다해서 그런지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겸사겸사 샤워하면서 몸도 확인해 보고.’
꼼꼼히 구석구석 확인할 것이다. 에트리안에게 그런 말을 듣고 나니 찝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테사라는 가까운 호텔까지 가는 길을 대충 훑어보고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이동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집중해서 주변을 감지했다.
감지 능력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기본이 되는 단전의 마력회로를 열면 오감이 예민해지면서 새로운 감각이 깨어난다.
집중해야 쓸 수 있는 감각이기에 오랫동안 유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수상한 낌새를 느끼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에트리안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괜히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테사라는 이게 정말 기분 탓인 건지, 아니면 진짜 누가 지켜보고 있어서 이런 느낌이 드는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걸음을 서둘렀다. 다행히 굳이 차를 타지 않고도 갈 수 있는 작은 호텔이 있었다.
물론 좀 오래 걸어야 하지만, 테사라가 누군가. 걷는 것보다 뛰는 것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하니 금세 호텔에 도착했다.
서둘러 체크인을 하고 객실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이제 샤워를 하려고 막 옷을 벗으려는 순간 날카로운 감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테사라는 비스듬하게 대각선 앞으로 한 바퀴 구르며 뒤로 돌아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자세를 잡았다.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이 사방을 둘러봤다.
"분명히 누가 있었는데?”
보진 못했지만 확실하다. 자신의 감각을 분명히 무언가가 건드렸다.
‘설마 내가 여기 들어올 때 따라 들어온 건가? 그걸 내가 못 알아차렸다고?’
그때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테사라는 확인도 하지 않고 일단 주먹부터 날렸다. 손에 낀 건틀렛이 작동하며 강력한 일격이 옆으로 날아갔다.
턱!
콰지직!
테사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옆에 서 있던 누군가가 그녀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막으며 꽉 쥐었다.
한데 건틀렛과 손바닥 사이에서 무수한 충격이 오가더니 결국 건틀렛이 부서져 버린 것이다.
테사라는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컨틀렛의 반사 기능이 연달아 작동하면서 결국 한계치를 넘어가 버린 것이다.
한계를 넘는 충격이 연달아 쌓이며 건틀렛이 부서졌다.
그냥 부서진 것도 아니고 거의 가루가 되다시피 했다.
원래는 반대쪽 주먹도 내지르려고 했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그러면 나머지 건틀렛도 부서질 게 뻔하다.
테사라는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바람 칼날을 날렸다.
후우웅!
무수한 바람의 칼날이 방안의 사내, 반태수에게 날아갔다.
반태수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테사라를 쳐다보기만 했다.
바람 칼날은 반태수 앞에서 살랑거리는 바람으로 변해 반태수의 머리카락을 휘적휘적 날려주었다.
테사라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도 잊고 입을 헤 벌리며 반태수를 멍하니 바라봤다.
“다 한 건가? 더 할 거 없고? 기회를 줄 테니까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봐.”
반태수의 말에 테사라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하, 제대로 무시당했네.’
테사라는 자신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
하고 싶은 걸 다 하라고 했겠다?
아직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실전에 써먹을 수 없는 기술이 하나 있었다.
시간을 충분히 준다면 그걸 쓰면 된다.
‘깜짝 놀라게 해주지.’
테사라가 마력회로를 작동했다.
그걸 본 반태수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육체 능력자라서 그런지 이런 식으로 슬쩍 찌르면 바로 반응을 한다.
또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경로로 마력이 흐른다.
활성화된 세 개의 마력회로를 이용해 새로운 마력회로를 구성해 작동하는데, 아까 것과 달리 굉장히 복잡했다.
거의 각 마력회로의 절반 이상이 포함되었다.
반태수는 열심히 그 경로를 기억했다. 이건 분석해서 제대로 연구하면 정말로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대체 무슨 능력인지 궁금해서 유심히 살펴보는데, 갑자기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반태수는 방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비를 전부 했다.
일단 영역화를 최대한 집중해서 주변에 깔았다. 뭔가 특이한 이벤트가 생기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그리고 각종 방어에 관한 마법을 몸에 무수히 걸었다.
기본적인 실드를 비롯해 내구력 강화, 충격 흘리기, 그리고 언제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곳곳에 마력을 분산해 심었다.
그런데도 불길한 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반태수는 가만히 그 느낌을 가늠하다가 불현듯 옆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그 순간, 조금 전까지 반태수가 있던 공간이 일그러졌다.
반태수는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바로 파악했다. 영역화가 집중되어 있기에 현상을 잡아낼 수 있었다.
그곳에 있던 공간이 반 바퀴 뒤틀렸다.
공간 자체가 뒤틀린 거라서 만일 거기 그대로 서 있었다면, 위치상 심장이 있던 공간이 180도로 돌아갔을 것이다.
당연히 심장과 연결된 모든 혈관이 잘렸을 테고.
실로 무시무시한 일격이었다.
반태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영역화로도 낌새를 전혀 못 느꼈다.
아무래도 저걸 파악하려면 영역화의 수준을 몇 단계 더 높여야 할 듯하다.
아니면 공간에 특화된 감지 체계를 끼워 넣거나.
테사라는 반태수가 옆으로 한 걸음 움직여 자신의 공격을 피하는 걸 보고는 또 깜짝 놀라 입을 헤 벌렸다.
평소에는 성공률이 지극히 낮고, 성공하더라도 온전히 능력이 들어가지 않아 온갖 낌새를 사방으로 풀풀 날리게 된다.
한데 오늘은 그야말로 끝내줬다.
천 번쯤 연습하면 한 번 될까 말까한 일격이 나온 것이다.
능력이 발동하는 순간, 테사라는 확신했다. 상대를 죽였다고.
한데 너무나도 절묘한 타이밍에 상대가 그걸 피해버렸다.
허공 비틀기는 완벽하게 발동하기만 하면 절대 실패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결코 알아차릴 수가 없으니까.
한데 그걸 피하다니, 이걸 믿어야 할지, 아니면 우연히 벌어진 거라고 여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끝내주는데? 혹시 그거 다시 한 번 쓸 수 있나?”
테사라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능력을 썼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낌새가 풀풀 풍겼다.
이 정도면 굳이 영역화를 개선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미리 알아낼 수 있다.
심지어 저걸 비틀어 상대에게 되돌려 주는 것도 가능했다.
반태수는 즉시 그걸 테스트해봤다.
안 그래도 아공간 마법을 열심히 연구했기에 공간에 대한 이해 수준이 상당했다.
그래서 그런지 능력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는지도 파악해 분석할 수 있었다.
반태수는 두뇌를 여러 개 할당해 그것을 빠르게 분석하고 되돌려주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내 능력이 발동했고, 반태수가 그것을 되돌렸다.
꽈득!
"어!”
테사라는 순간 멍청한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반태수가 있는 곳을 비틀었는데, 자신의 허벅지가 돌아갔으니까.
"아아아악!”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면서 뒤늦게 찾아온 고통 때문에 테사라는 비명을 질렀다.
그냥 다리를 칼로 절단하는 것과는 달랐다.
공간이, 그것도 고작 주먹만 한 공간이 비틀렸기에 허벅지 내부가 뒤틀린 것이다.
“흐으으윽!”
테사라는 허벅지를 움켜쥐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반태수는 그걸 보면서 허벅지 근처를 점혈해서 통증을 죽여 버렸다.
“허억! 허억!”
테사라는 두려운 눈으로 반태수를 올려다봤다.
고통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다친 허벅지가 치료되지 않았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반태수는 궁금한 걸 물었다.
"너 혹시 고대, 그러니까 한 만 년 전쯤 살던 사람들에 대해 알아?”
테사라가 놀란 눈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아는 모양이네. 설마 했는데, 정말로 고대인의 후예였어?”
"난 고대인의 후예가 아니야.”
"거짓말 하면 벌 받는다.”
반태수가 씨익 웃자, 테사라가 흠칫 놀라더니 혐오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더러운 놈.”
반태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더러운 건 네가 더 더럽지. 땀 잔뜩 흘리고 아직 씻지도 않았잖아. 난 샤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든?”
테사라는 주저앉은 채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
반태수가 뺨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건 풀고 가야겠네.”
테사라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반태수는 바로 점혈을 썼다.
일단 입을 막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분근착골을 썼다.
테사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온몸이 경직되면서 눈동자가 휙 올라갔다.
마비되었는데도 온몸이 파르르 경련했다.
반태수는 1분이 지난 후, 점혈을 풀어줬다.
"자, 이제 제대로 진실의 대화를 나눌 기분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