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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279화 (275/351)

279화.  < 의심스러운 자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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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희는 갑자기 하늘에 쫙 펼쳐진 거대한 그물을 올려다봤다.

누군가 공원의 숲에서 저걸 하늘에 대고 쏜 것이다.

하늘에서 펼쳐진 그물은 정말 컸고, 그물 가장자리에 무거운 추가 쭉 달려 있었기에 웬만해서는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물의 재질도 금속섬유를 여러 겹 꼬아서 만든 것인지라 잘라내기도 만만치 않았다.

백진희는 적들이 그물을 쏜 순간, 곧장 마력회로를 돌렸다.

그리고 그물이 최고도에 이른 순간, 발로 땅을 박찼고.

촤라라락!

그물이 땅에 떨어졌을 때는 이미 그물망의 범위를 벗어난 뒤였다.

그렇게 그물 공격을 빠져나간 백진희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마치 갑자기 사람이 생겨난 것처럼, 원래 없던 자리에 불현듯 나타난 것이다.

테사라였다.

몸에 짝 달라붙는 새까만 옷을 입고, 기계로 이루어진 팔뚝까지 감싸는 건틀렛을 꼈다.

허리띠에는 작은 금속 병이 양 옆으로 다섯 개씩 꽂혀 있었는데, 각 병마다 색깔이 달랐다.

옷이 몸에 달라붙어 있어서 몸의 굴곡은 물론이고 근육의 움직임까지 고스란히 보였다.

상당히 민망한 옷인데도 테사라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테사라의 근육이 살짝 부풀어 오르면서 꽉 조여졌다. 쩍쩍 갈라진 근육의 선이 선명하게 보였다.

테사라가 백진희의 얼굴에 주먹을 내질렀다.

백진희는 간신히 손을 들어 테사라의 공격을 쳐냈다.

조금만 반응이 느렸으면 코에 한 방 맞을 뻔했다.

한데 그 순간 방어막이 자동으로 발동했다.

쩌어어엉!

방어막이 깨졌다.

방금 공격은 방어막 없이 막았다면 이쪽이 큰 피해를 입었을 거라는 뜻이다.

백진희는 빠르게 옆으로 이동했다.

정장 구두였던 그녀의 신발이 어느새 편안한 운동화로 바뀌었다.

그냥 운동화가 아니라 마도구였다.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모습이 달라질 때마다 적용되는 마법이 달라진다.

구두일 때는 매력을 높여주는 마법이 은근하게 작용하고, 운동화일 때는 체력 회복을 돕는 마법이 작용한다.

꽈득!

테사라의 발이 땅을 파고들었다. 보도블록에 쩍쩍 금이 가더니 박살 나면서 그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했다.

백진희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마력회로를 더욱 빠르게 돌렸다.

그와 동시에 마도구도 작동했다.

여러 개의 실드가 나타나 테사라가 오는 쪽을 막았다.

테사라는 어깨로 실드를 들이박았다.

꽈앙!

일곱 개의 실드를 펼쳤는데, 그 중에서 다섯 개가 깨졌다.

그걸 본 백진희의 눈이 번득였다.

실드를 다섯 겹이나 깼으니 어깨 차징이 더 강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아까 테사라가 주먹으로 깬 방어막은 저 실드 일곱 겹보다 더 강력하다.

한데 주먹으로 그걸 깨고도 아무렇지도 않던 사람이 고작 실드 다섯 겹을 깨고 뒤로 주춤 물러났다.

비록 반걸음도 안 되는 거리지만, 물러났다는 점이 중요했다.

백진희의 시선이 테사라가 손에 낀 건틀렛에 닿았다.

저 건틀렛이 특별한 물건이다.

테사라가 입은 옷도 특별한 물건이지만, 백진희가 보기에 저 옷은 건틀렛보다 못하다.

백진희는 주춤하는 테사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테사라의 균형이 조금이라도 흔들렸을 때 공격하고자 한 것이다.

빠르게 파고든 백진희의 손발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테사라의 얼굴을 향해 주먹 두 방을 날렸다.

쩌정!

테사라가 급히 팔을 들어 주먹을 쳐냈다.

그 순간 주먹과 거의 동시에 들어간 로우킥이 테사라의 무릎 언저리에 작렬했다.

꽈앙!

균형이 흔들린 상태에서 주먹을 막는 중이었기에 이건 피할 수 없었다.

타격 당한 순간 옷이 쫙 조여지며 충격을 분산했지만, 백진희의 킥이 워낙 강력했는지라 내부로 충격이 파고들었다.

내부로 파고든 충격은 테사라의 근육이 다 막아냈다.

백진희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 상대가 별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테사라의 주먹과 발이 방금 백진희가 있던 자리를 날카롭게 할퀴고 지나갔다.

훙! 훙! 후웅!

테사라는 아깝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다시 자세를 잡고 백진희를 노려봤다.

백진희는 테사라의 팔과 부딪친 손을 열심히 털고 있었다. 상대는 그저 팔로 자신의 공격을 막은 것뿐인데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테사라는 그런 백진희를 보며 말했다.

"생각 이상의 실력인데? 보통 마력을 각성하면 그 정도로 강해지나? 모르는 사람이 상대했으면 기공술사로 착각했을 것 같은데?”

그것도 아주 실력이 뛰어난 기공술사 말이다.

테사라가 씨익 웃었다.

"그래도 그 정도로는 나한테 안 돼. 그건 너도 대충 알지?”

백진희가 살짝 발끈했다.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그 건틀렛 빼면 내가 쉽게 이길 거 같은데?”

"아, 이거?”

테사라가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주먹을 꽈악 쥐었다.

"이거 별 거 아니야. 그냥 충격을 반사하는 기능밖에 없는 단순한 장비야.”

보통 주먹으로 무언가를 치면 충격이 주먹에도 온다. 그렇게 온 충격을 반사해 되돌리는 기능을 가진 건틀렛이었다.

물론 그게 다가 아니다. 애초에 주먹질을 할 때마다 강한 힘으로 밀어줘서 파괴력을 더 높이는 기능이 기본이다.

그러니까 저 건틀렛과 부딪치면 안 된다. 이쪽의 공격도 전부 반사해 버릴 테니까.

어쩐지 공격한 손이 너무 아프다 했더니 저런 장비일 줄이야.

해법은 두 가지다.

감히 반사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을 하거나, 아니면 건틀렛을 피해서 공격하거나.

테사라의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맺혔다.

"자, 다시 시작해 보자고.”

그녀의 눈에 백진희 뒤쪽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그물을 수거하고 있었다. 저걸 다시 써서 백진희를 잡으려는 모양이었다.

‘일이 수월해지겠네. 내가 빈틈만 만들어주면 되겠어.’

백진희의 실력이 상상 이상이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이기겠지만, 시간이 제법 많이 소요될 것이다.

여기서 시간을 오래 끌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빨리 끝낼 수 있으면 빨리 끝내는 게 좋다.

‘그럼 나도 힘을 좀 써볼까?’

테사라는 씨익 웃으며 마력회로를 돌렸다.

육체강화 말고 다른 힘을 슬쩍 꺼내기로 했다.

그 다른 힘이 팔을 타고 흘러 주먹에 맺혔다. 그리고 건틀렛에 스며들었다.

테사라는 백진희 뒤쪽에 있는 자들의 준비가 끝난 걸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백진희와는 몇 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후아악!

주먹에서 바람이 일어나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백진희를 향해 날아갔다.

바람이지만 그냥 바람이 아니었다.

쩌저저저저정!

백진희의 몸 주변에 방어막이 나타나 그 바람 칼날을 모조리 막았다.

백진희는 깜짝 놀라 뒤로 훌쩍 물러났다.

바람 칼날을 던지자마자 달려든 테사라가 백진희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씨익 웃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백진희가 다급히 양 팔을 교차해 주먹을 막았다.

꽈아앙!

방어막이 또 한 차례 나타나며 테사라의 주먹을 막아냈다.

"이거 정말 성가신데?”

테사라가 기관총을 쏘듯 주먹을 마구 내질렀다.

꽈과과과과과광!

방어막이 부서졌고, 백진희의 팔에 주먹이 작렬했다. 그 충격에 백진희가 뒤로 훅 날아갔다.

다치진 않았다. 마력회로가 돌아가며 몸이 받은 충격을 자연스럽게 흘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뒤에서 준비하고 있던 자들이 던진 그물이 백진희를 덮쳤다.

어찌나 절묘한 순간 그물이 내려앉았는지 대처할 틈이 없었다.

"으윽!”

백진희는 그물의 무게가 상당해서 순간 비틀거렸다.

“잡았다!”

열다섯 명이나 되는 사내들이 우르르 나와 백진희를 향해 총을 겨눴다.

백진희는 그걸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전투가 자신의 생각과 너무 다르게 흘러가고 마무리 되었다.

다음에 또 이런 식으로 싸우게 된다면 좀 다른 방식을 연구해 봐야겠다.

'그나저나 대단하네.’

백진희는 좀 떨어진 곳에 여유 있게 서 있는 테사라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만일 모든 장비를 다 빼고 일대일로 붙는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듯했다.

아니, 저쪽은 변변한 장비가 건틀렛뿐이니 장비는 이쪽이 훨씬 유리하다.

새삼 자신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뼈저리게 들었다.

좀 더 열심히 기공술도 연마하고 전투와 관계된 수련 시간도 늘려야겠다.

최소한 테사라 정도는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었다.

왠지 그래야 계속 반태수 옆에 있을 자격이 될 것 같았다.

그 정도도 되지 않으면 계속 민폐만 끼치지 않을까?

"뭣들 하세요? 얼른 포장해서 데려가야죠. 우리 여기서 이렇게 미적거릴 시간 없어요."

테사라의 말에 열다섯 사내가 서둘러 움직였다.

일단 그물을 둘둘 말아서 백진희가 옴짝달싹 못하도록 만든 다음 차에 싣고 가면 된다.

그러려고 그들이 막 움직이려는 찰나, 하늘에서 열다섯 줄기의 벼락이 떨어졌다.

꽈르릉!

그냥 벼락이 아니라 관통과 침습, 증폭까지 담긴 벼락이었다.

열다섯 사내들이 입고 있는 전투복의 방어력을 뚫고 타격을 주려면 그냥 벼락으로는 안 된다.

벼락을 맞은 사내들이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테사라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깜짝 놀라 멍하니 쓰러진 자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그물에 잡힌 백진희를 데려가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는지 얼른 백진희 쪽으로 달려갔다.

테사라가 그물을 손에 쥔 순간 그녀의 복부에서 충격파가 터졌다.

꽈앙!

“커억!”

낌새도 못 느낀 채로 복부를 당했기에 그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뒤로 휙 날아가 바닥을 두어 바퀴 구르고 벌떡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쿨럭!"

기침과 함께 피를 토했다. 내장이 상한 것이다.

테사라는 크게 당황했다. 자신을 상하게 한 자가 누구인지 전혀 낌새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아까 벼락을 쏟아낸 것도 누군가의 능력일 텐데, 그것 역시 아무 느낌 없이 그냥 쏟아졌다.

그 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자신에게 벼락을 쓰면 그냥 당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백진희를 의심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 능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저렇게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연기일 수도 있지만, 테사라는 그게 아니라고 믿었다. 감이었다.

어디 있는지 감지하지도 못하는데, 낌새를 알아차릴 수도 없는 공격을 날린다. 심지어 강력하기까지 하다.

아마 방금 그 공격을 두 번만 더 맞아도 쓰러질 것이다.

이럴 때는?

‘튀어야지.’

테사라는 일단 마력회로를 돌려 자신의 상처를 치료했다. 은은한 빛이 그녀의 복부에 맺혔다가 몸 내부로 스며들었다.

이 정도면 응급처치는 됐다. 그러니 이제 도망치는 일만 남았다.

테사라는 일말의 미련도 없이 몸을 돌렸다.

제닉스와 파이안에서 보낸 동료들이 쓰러져 있었지만, 그들을 구할 여력 같은 건 없었다.

일단 자신이 살아남아야 나중에 뭐라도 해보지 않겠나.

테사라의 다리와 허리 근육이 꽉 조여졌다.

그녀가 발을 디딘 보도블록이 꽈드득 부서졌다.

꽈앙!

테사라가 전력으로 몸을 날렸다.

그녀는 도로를 따라 도망치지 않고 공원으로 들어갔다.

나무들 사이로 들어간 순간, 그녀는 도주에 성공했다고 믿었다.

마력회로를 팽팽 돌리며 근육에 다소 무리가 갈 정도로 능력을 썼다.

한계에 가깝게 능력을 쓰면 뼈까지 강화된다.

달리는 그녀의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그리고 기척이 사라져갔다.

그 역시 그녀가 가진 능력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렇게 도망치는 테사라의 머리 위에서 반태수가 속도를 맞춰 날아가고 있었다.

***

백진희는 그물에 덮인 채 공원으로 도망치는 테사라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꽁지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도망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났다.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정리하지?”

백진희는 일단 그물에서 벗어났다.

제대로 잡으려고 작정하고 만든 그물인지라 여기저기 걸리는 부분이 많아서 그냥 빠져나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그물에서 나오고 보니 옷이 다 망가졌다. 여기저기 긁히고 찢어져서 당장 옷부터 갈아입어야 할 듯했다.

백진희는 바닥에 쓰러진 열다섯 명의 사내들을 잠시 내려다봤다.

보아하니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벼락이 제대로 온몸을 지져놔서 회복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뭐, 상급 포션 한 병이면 해결될 거 같네.’

저들에게 포션을 지급해 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아무리 포션을 마신다고 해도 분명히 문제가 남을 것이다.

몸 내부를 전기로 꼼꼼하게 지진 상태다.

아마 두뇌도 많은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러니 포션으로 되살린다고 해도 분명히 후유증이 남을 것이다.

“여기에 방치하면 알아서 데려가려나?”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멀리서 트럭 한 대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다들 도로 위에 널브러져 있기 때문에 저 트럭이 여길 지나가려면 밟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백진희는 일단 몸을 감췄다.

이런 자리에 있는 모습을 보여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제법 큰 트럭이었는데, 열심히 달려오다가 바닥에 쓰러진 자들을 봤는지 바로 앞에서 차를 멈췄다.

트럭 운전수는 내리지 않고 조수석에 있던 사람이 내렸다.

숨어서 지켜보던 백진희가 깜짝 놀랐다.

“제인?”

백진희는 반사적으로 트럭 운전수를 확인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딱 적당할 때 도착했네요.”

제인이 그렇게 말하며 백진희를 바라봤다. 그녀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맺혀 있었다.

"이럴 줄 알고 제가 미리 섭외를 했죠. 뭐해요? 안 싣고.”

제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바닥에 쓰러진 사내 한 명을 트럭 짐칸까지 질질 끌고 갔다.

그걸 본 백진희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쓰러진 사내들을 빠르게 트럭에 실었다.

마치 장난감이라도 가지고 놀듯 휙휙 던져서 트럭에 전부 실었다.

백진희는 그물까지 꼼꼼하게 챙겨서 트럭에 실었다.

"다 실었죠? 그럼 출발합니다!”

제인이 트럭을 몇 차례 두드리자 차가 출발했다.

트럭은 그녀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호텔로 향하며 백진희가 물었다.

“패트릭은요?”

“호텔에 있어요. 짐칸에 실은 거 처리해야 하잖아요. 여기저기 연락 돌리는 중이에요.”

백진희는 갑자기 마음이 든든해졌다.

"고마워요.”

제인이 씨익 웃었다.

"고맙기는요. 우린 이제 가족이나 다름없잖아요.”

그 말이 백진희의 가슴을 꽉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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